[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6] 복어
최근 한 중견 탤런트가 복어 요리를 먹고 중태에 빠졌다 살아났다고 한다. 복어의 난소와 간에 들어 있는 테트로도톡신(tetro dotoxin)은 청산가리, 즉 시안화칼륨보다 100배나 강한 독소로서 소량만 섭취해도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켜 호흡 곤란을 일으키며 심하면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 1774년 9월 7일 당시 남태평양을 탐험하던 쿡 선장은 선원들이 복어를 먹고 근육 마비와 호흡 곤란 증상을 보였으며 음식 찌꺼기를 먹은 돼지들은 모두 죽었다고 기록했다. 1975년에는 일본의 가부키 배우 반도 미쓰고로가 복어 간 요리 네 접시를 먹어 치우는 객기를 부리다 숨지기도 했다.
테트로도톡신은 흔히 '복어 독'으로 불리지만 영원(newt), 개구리, 문어, 불가사리 등에서도 발견된다. 동물들의 독소는 대개 동물의 종류에 따라 독특한 법이다. 뱀의 독과 거미의 독은 화학적으로 전혀 다른 물질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다양한 동물들이 정확하게 동일한 화학식을 가진 물질을 지니도록 진화했을까?
동물의 세포막에는 나트륨 이온이 드나드는 채널이 있는데 테트로도톡신은 바로 이 채널을 막아버리는 작용을 한다. 체내에 이 독소를 다량 함유하고도 멀쩡히 잘 사는 동물들은 모두 이 독소에 면역력을 갖도록 나트륨 채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은 소량만 섭취해도 생명이 위독한데 왜 이들은 그 엄청난 양에도 끄떡도 없는 것일까? 독을 지닌 복어는 독이 없는 복어에 비해 무려 500~1000배의 테트로도톡신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독소를 지니도록 진화하는 데에는 포식동물로부터의 보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복어는 물론 푸른점문어나 검은과부거미가 실제로 그들을 잡아먹는 동물의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양의 독소를 장전한 까닭은 또 무엇인가? 이들은 스스로 테트로도톡신을 생성하는 게 아니라 그 독소를 분비하는 박테리아를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이른바 먹이연쇄에 따른 생물농축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서부에서 그런 박테리아를 섭취한 영원만 집중적으로 잡아먹는 뱀의 몸에는 무려 1.8g의 테트로도톡신이 들어 있다. 불과 2mg이면 목숨을 잃는 우리 인간 900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다. 자고로 음식은 잘 가려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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