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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코피 루왁’의 비밀

호젓한오솔길 2012. 1. 20. 08:20

 

철창 안에 갇힌 사향고양이 ‘루왁’

사타 라운지

 

얼마 전에 종영된 TV 일일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커피에 관한 에피소드가 방영된 적이 있다. 광수와 인나가 이순재 집을 방문해서는 오현경이 아끼는 커피를 몰래 맛보려다 세경에게 들키고 만 것.

세경이 “매우 비싼 커피”라며 못 먹게 하자, 급기야 광수는 그 커피를 몰래 훔치려는 계획을 꾸민다. 광수는 마약밀수범처럼 커피를 비닐봉지에 넣은 후 실로 매달아 입안에 삼켜서 세경이한테 들키지 않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하숙집에 도착한 후 실을 당겨 커피 봉지를 빼내려는 순간, 실이 끊어지면서 커피는 광수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이들이 그처럼 맛보려고 안달했던 그 비싼 커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블루마운틴, 코나보다 더 비싼 '루왁'

커피는 일반적으로 품종이나 토질, 기후에 따라 맛과 향이 결정되는데, 가장 비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커피는 ‘블루마운틴’과 ‘코나’가 꼽힌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산맥의 고지대에서 철저한 품질 보증에 의해 생산되는 블루마운틴은 생산량이 극히 적다. 다른 커피와 섞어서 맛을 더하는 블렌딩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나 비싼 값에 팔린다.

▲ 코피 루왁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드는 커피이다 

 

하와이의 해발 4천 미터 이상 고산지대의 소규모 농장에서 재배되는 코나는 손으로 일일이 따서 습식가공으로 생산되는 고급 커피이다. 이 역시 맛이 일품이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가운데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광수가 훔치려던 커피는 블루마운틴도 아니고 코나도 아니었다. 그 커피는 인도네시아의 ‘코피 루왁(kopi luwak)’이다. 코피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며, 루왁은 그 지역에 서식하는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일컫는 인도네시아 방언이다.

다시 말해서 코피 루왁은 긴꼬리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은 후 배설한 배설물 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남은 커피 씨를 주워 모아서 만든 커피이다.

위장에서 발효되며 특별한 맛과 향이 더해져

곤충이나 작은 동물, 열매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인 사향고양이는 잘 익은 커피열매를 매우 좋아한다. 사향고양이가 열매를 먹으면 위와 장을 거치면서 과육과 과피는 소화되고 커피 씨 부분만 남아 배출된다.

그런데 소화되는 과정에서 적정한 수분과 적당한 온도로 인해 커피 씨가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르게 숙성된다. 사향고양이의 침과 위액 등이 섞여서 발효과정을 거치며 커피열매의 씨에 특별한 맛과 향이 더해지는 것이다.

커피 전문가들에 의하면 사향고양이 체내의 효소 분해과정에서 많은 아미노산이 분해되며 특유의 맛을 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세상에서 가장 좋은 커피 가공시설은 수백억 원을 들여서 만드는 첨단 커피 제조공장이 아니라 긴꼬리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인 셈이다.

인도네시아의 긴꼬리 사향고양이 외에도 이런 커피가공시설을 갖고 있는 동물이 있다. 베트남의 열대다람쥐와 예멘의 원숭이가 그런 동물이다. 이 동물들 역시 커피 열매를 먹고 배설하는데, 그것을 모아 커피를 만든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작아서 다람쥐 똥 커피의 경우 베트남에서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외국 귀빈들에게나 대접한다고 한다.

철창 안에 가둬두고 억지로 커피열매 먹이기도

▲ 사육되는 사향고양이들이 커피열매를 먹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인도네시아에서는 코피 루왁이 인기를 얻자 야생의 사향고양이들이 싸놓은 배설물을 수집하

는 것이 아니라 철창 안에 가두고 커피 열매를 먹이로 줘서 배설물을 얻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야생에서 사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조금이라도 늦게 발견하면 변질되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기 쉽다. 곰팡이가 피어 있거나 햇볕에 바짝 말라 버린 것은 커피 본래의 맛과 향을 이미 잃어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한 외신에 의하면 필리핀 북부의 일부 커피농장 주인들도 사향고양이를 잡아 철창에 가두고는 가짜 코피 루왁을 생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코피 루왁의 맛이 뛰어난 것은 야생 동물이 본능적으로 가장 잘 익고 좋은 커피 열매만을 골라 먹었기 때문이다. 또 철장 안에서처럼 무작정 커피 열매만 먹는 게 아니라 야생에서 구한 여러 가지 먹이와 함께 자연스런 발효과정을 거쳐서 그처럼 독특한 맛을 내는지도 모른다.

코피루왁을 만드는 한 바리스타에 의하면 ‘여러 가지 커피 맛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코피 루왁을 맛볼 경우 다른 커피와의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코피 루왁이 이처럼 비싸고 관심을 끄는 것은 그 희귀성 때문이라고.

날로 고급화되는 입맛과 비싼 명품만 찾는 풍조 덕분에 옛날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사향고양이들이 괜히 철창에 갇힌 채 커피열매만 먹어대야 하는 운명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