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살 드러낸 계곡 따라… 천년 산사로 가는 길
양평 용문사 계곡
- 양평 용문산을 찾은 탐방객들이 용문사 일주문을 지나 키 큰 소나무들이 울창한 계곡길을 걷고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한바탕 '단풍 잔치'가 끝난 계곡은 흑백으로 잦아들고 있었다. 연하고 짙은 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무와 산, 바위 색깔은 초록이나 단풍의 컬러를 벗어버리고 본래의 속모습을 드러낸다. 숨결도 가만히 낮아진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은 아름다운 봉우리와 계곡으로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양평이 용문에 의지하고 있다'는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답게 웅장한 산세다. 용문산 계곡은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사람 키를 넘긴 바위들이 물길 가운데 굴러다니는 게 산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용문사 일주문을 지나 본격적으로 펼쳐진 계곡이 천 년 사찰 탐방에 길동무를 해준다. 웅장한 산세로 긴장했는데, 동네 뒷산 오르듯 나지막하고 편안한 산길이 1㎞ 정도 이어진다. 키 큰 소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숲 때문일까. 일주문 앞 용문산관광단지에서 느끼지 못했던 서늘한 기운이 산속에 가득하다 싶더니 일찍 내려 녹지 않은 눈덩이들이 발길에 차인다.
- 용문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한 가족이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잎 날리기 놀이를 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용문사보다 은행나무가 먼저 시야를 압도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높이 42m, 둘레 11m를 넘어 유실수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 용문사 관계자는 "주변 산세가 바람과 폭풍을 막아주고 계곡물이 가까이 있어 다른 은행나무들과는 달리 키가 훤칠하게 컸다"고 했다.
이 나무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맏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 잃은 설움을 가슴에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길에 심었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뿌리를 내려 이처럼 자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 세종 때는 정3품 이상 벼슬인 당상 직첩을 하사받아 벼슬을 한 나무이기도 하다. 고종이 승하했을 때 큰 가지가 부러지는 등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미리 알려주는 영험함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천 년을 넘겼지만 아직도 봄이면 싱싱한 이파리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노랑 단풍잎으로 무성한 것을 보면 경외스럽다. 올해도 80㎏짜리 다섯 가마의 은행을 수확했다고 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주위 나무들보다 2~3배 키가 큰 탓에 벼락을 맞을 염려가 있어 90여m 높이의 피뢰침을 단 철탑을 옆에 세워놓았다.
용문사는 은행나무 잎과 나무 모양을 새겨넣은 종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울리고 있다. 사찰 내 전통찻집을 찾아 장작불 벽난로 옆에서 대추차를 마시며 산속의 한기를 녹여도 좋다.
용문계곡 오솔길은 용문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나무 사이를 거닐며 명상에 잠겨 산책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맑고 고요한 산사에서 자연의 나직한 숨결에 젖어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은 일주문 앞에 있는 친환경농업박물관 부설 자연음식연구소에서 연잎밥을 만들어 먹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자연음식연구소는 친환경 농업의 고장인 양평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팽이버섯도토리전, 두부스테이크 등 자연음식과 사찰음식 만들기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여행수첩
■서울 청량리역~용문역(매시간 한 대씩 운행). 용산역 출발 중앙선 전철을 타고 용문역에서 내려 용문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031)775-5797
친환경농업박물관 부설 자연음식연구소 (031)772-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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