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오솔길 2012. 11. 13. 00:29

 

명판관 어득호 현감

 

 

조선 중엽에 어득호(魚得湖)라는 연일현감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호탕하고 인자하였으며, 덕행이 많아 항상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고을을 다스렸다고 한다. 또 공평무사한 재판으로 백성들로부터 명판관(名判官)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여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삭풍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눈보라 치는 추운 어느 날, 연일현 성하(지금의 대송면 남성리)에, 옹기장수 한 사람이 옹기를 지고 나타나 옹기 사라고 외치면서 돌아다녔다. 들판을 가로질러 성내의 마을로 가던 그는 옹기짐을 내려 지게짝지에 받쳐 놓고 길가에서 소변을 보았다. 그때 홀연히 하늬바람이 세차게 불어 옹기짐이 넘어졌고, 지게 위에 있던 옹기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보잘것없는 옹기행상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면서 아흔이 된 늙은 어머니까지 봉양해 온 그였다.그런데 졸지에 옹기가 다 깨어져 버렸으니 앞길이 암담하고 하늬바람에 대한 원망과 설움에 북받쳐 하늘을 우러르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때 마침 정선달이라는 사람이 지나가다 산산조각이 난 옹기 앞에서 통곡하는 그를 바라보고 우는 이유를 물었다.옹기장수는 옹기가 깨어진 연유를 말하고 아흔이 넘은 노모와 처자식이 꼼짝없이 굶어죽게 되었다고 울먹였다.


전후사정을 듣고 난 정선달은 옹기장수를 계속할 수 있도록 보상을 받아 낼 도리가 있으니 생각이 있으면 따라와 보라며 앞장서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옹기장수는 귀가 번쩍 띄어 빈 지게를 지고 뒤를 따라갔다. 정선달은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늬바람을 고소하는 소장을 써주며 이 고을의 어득호 현감에게 직소(直訴)하라 했다.


옹기장수는 소장을 고맙게 받아 쥐고 연일현 동헌 마당에 들어가 사또 뵙기를 청하였다.
어 현감은 동헌에 나와 앉아 “어디 사는 백성인데 무슨 까닭으로 나를 만나자고 하는가?” 하고 물었다.옹기장수는 현감에게 소장을 바치는 한편, 자초지종을 울면서 고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현감은 소장을 한번 훑어보고 어이가 없는지 옹기장수와 소장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히죽 웃고 나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슴을 죄며 어사또의 분부만 기다리는 옹기장수에게 어 현감이 말했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놀랍구나.그럼에도 옹기를 깨서 네 장사를 망쳐 버린 하늬바람이란 놈이 고약한 놈이다. 내 그놈을 잡아다가 옹기 값을 변상케 할 터이니 기다리고 있거라.”


부드러운 목소리로 옹기장수를 달래던 어 현감은 아전들과 군노사령(軍奴司令)들을 불렀다. 사령들이 대령하니, 어사또는 하늬바람이란 놈을 즉각 포박하여 대령하라고 명하였다. 명령을 받은 군노사령들은 어리둥절하여 사또가 도대체 무슨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조아리니
“ 이놈들! 나라의 녹을 먹고 이 관아에서 일한 지 이십 년이 넘는 놈들이 그다지도 무식하단 말인가. 하늬바람을 잡아오라는 말이렸다.”


하고는 빙그레 웃었다. 여전히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또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 현감이 크게 웃으면서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형산강의 부조시장(扶助市場)에 가서 정박하고 있는 강원도, 원산, 청진 방면에서 온 배의 사공과 선주, 또 부산, 동래, 목포, 군산 방면에서 온 배의 사공과 선주를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말이렷다. ”


군노사령들은 현감의 명령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곧장 달려가 형산강의 부조시장과 포항어귀에 머물고 있는 선박을 뒤져 다른 지방에서 온  선주와 사공을 모조리 잡아다가 동헌마당에 시립 시켰다. 어 현감은 영문도 모른 채 잡혀와 마당에 집결한 선주와 사공들을 향하여 


“형산강과 포항어귀에 머물고 있는 선주와 사공들은 잘 들어라.이 고을 관내에 너희들이 들어와 머물고 있는 지가 벌써 수십 일이 경과되어 배에 싣고온 상품은 거의 다 매매거래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돌아가지 아니하고 아직껏 머물고 있느냐. 그 이유를 이실직고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선주와 사공들이 대답하기를  


“부산, 동래 방면이나 강원도, 함경도 방면으로 가려고 하는 배는 모두 하늬바람이 잘 불어주어야 하는데 하늬바람이 불지 않아 뱃길이 나쁘므로 아직 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루 바삐 돌아가고 싶어 하늬바람이 불어주기를  천지신명에게 빌기도 하였사오나,  하늬바람이 불어주지 않아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어 송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하늬바람만 불어주면 빠른 시일내에 떠나겠사오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어득호 현감은


'그래, 네 이놈들! 너희들이 고향에 빨리 돌아가고자 천지신명에게 하늬바람이 불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하고 제사도 지내고 했단 말이지.  그러니까 오늘 하늬바람이  갑작스럽게 불어 이 성중에서  옹기장수 한  사람이 옹기짐을 넘어뜨려 옹기가 모두 박살이 나서 오십 냥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러니 하늬바람을 부른 너희들의 죄인즉, 배 한 척당 돈 두 냥씩을 모아 옹기장수의 손해를 변상하도록 해라.”  


이 같은 판결에  선주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현감의 판결에 감히 불복할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돈을 내놓았다. 어 현감은 덕분에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된 옹기장수는 만면에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동헌 마당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우리 사또 명사또, 우리 사또 명판관. 우리 사또 만만세”  라고 외쳤다고 한다.

(자료 : 포항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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