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용장공 이무기 능선
경주 남산 용장공 이무기 능선
솔길 남현태
총선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콩가루 집안 같은 야당은 분열되어 세인들의 호기심거리가 되고, 여야 정치권이 민생은 뒤로한 체 서로 표심을 살피며 이해타산만 따지느라 옥신각신 하는 동안 착 깔아 앉은 나라 안의 분위기는 왠지 무겁게만 느껴진다. 서민들은 모두가 IMF 금융위기 때 보다 더 살기가 팍팍하다고들 하는 어려운 시기에 맞이한 병신년도 벌써 둘째 주말이 다가온다.
이번 주에는 별 다른 산행 계획 없이 오랜만에 마눌 하고 가벼운 산행을 하고 와야 겠다 는 생각으로 내일 산에 가자고 하였더니, 다음 주부터 또 도망가려고 오늘은 특별이 콧구멍에 바람을 넣어주러 가려는가 보다 한다. 다음 주부터는 금남, 금강정맥을 출발하고, 다음 달 넷째 주부터는 낙남정맥을 시작하여, 매월 셋째와 넷째 주에는 원거리 산행을 간다는 예고를 듣고 못 마땅하여 빈정거리며 하는 말투다.
멧돼지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자고 한다. 마눌 하고 산에 가려면 산행 거리가 너무 멀어도 산이 너무 높아도 안되고, 길이 너무 험해도 안되니, 마땅한 산행지를 고르기가 어렵다. 가까운 근교 산들은 웬만한 곳은 거의 다녀 본 곳이라 어디로 갈까 하다가 제일 문안하다 고 생각이 드는 경주 남산 용장골 코스로 가보기로 한다.
골짜기 능선 마다 옛 서라벌 천 년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유서 깊은 경주 남산은 산이 높지도 산세가 험하지도 않으면서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산이다. 다른 곳에 산길이 막히는 겨울철 산불경방 기간에 산행하기 좋은 곳이라 몇 년 전에 마눌하고 웬만한 골짜기와 능선은 거의 답사를 해보았지만, 그 중에서 산세가 으뜸인 용장골로 다시 찾아간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용장골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 요금 2천 원을 지불하고 한산한 곳에 골라잡아 주차를 한다. 한 며칠 매섭던 날씨가 생각 보다 많이 풀려서 인지 윗도리를 벗어 배낭 속에 넣고 겨울 등산 티 하나만 입고 출발을 하니, 조금 싸늘하기는 하여도 기분이 상쾌하다.
주차장 가에 있는 난산 지구 등산로 안내판과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매월당 김시습의 '금호신화'의 산실 용장사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이야기가 있는 남산팔영 마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남산팔영은
늦은 봄날 새소리/ 송단 푸른 숲 가을 달빛/ 쇠비산 저녁 노을/ 상내걸 성근 비 속 백로
금오산을 감도는 푸른 안개/ 노루골 오색 단풍/ 천룡사 새벽 종소리/ 노촌의 갈대
주차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용장리 마을 골목을 지나서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돌아본 풍경은 소한을 지난 겨울 햇살이 따사롭게만 느껴진다. 고위봉, 금오봉 삼거리에서 금오봉을 먼저 오르기로 하고, 좌측 용장사지 쪽으로 향한다. 천 년을 흐르는 물소리 정겨운 골짜기에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나무데크로 등산로가 설치 되어 있고, 암봉 위의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 무리 지어 유유히 흘러간다.
날씨가 건조한 겨울철에 넉넉하게 흐르는 해맑은 물줄기는 용장골의 깊은 역사를 노래하고, 절골 석조약사여래좌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주위를 살펴보지만 근처에 불상의 흔적은 없다. 아마도 약사여래와 불상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기 위한 안내판인 듯하다. 계곡 반석 위를 오가는 산님들 바위에 앉아 막걸리 잔 나누는 산님들 모두 여유롭기만 하다.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29세 때 이곳 용장사로 들어와 7년 동안 은적암에 머물면서 우리 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호신화'를 필집 했다는 매월당 김시습에 대한 안내판에는 잡다한 세속의 번뇌를 씻어낸 뒤 이곳을 떠나 충남 부여 무량사에서 후학을 지도하다가 지금 내 나이와 같은 59세에 별세를 했다고 하니 찡한 가슴이 콩닥인다.
용장골에서/ 매월당 김시습
용장골 깊으니/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가는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깰줄을 모르는구나 억새처마 밑에서/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천 년의 향기가 스며든 오솔길 따라 깊숙이 들어선 골짜기 멀리 능선 위에 하얀 석탑이 가물거려 살짝 당겨보니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올려다 보이는 이곳에 삼층석탑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일본의 목탑, 중국의 전탑, 한국의 석탑에 대한 자세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바위와 독야청청 노송들이 어우러져 구름 아래 노니는 골짜기 암벽에 붙어 사는 가녀린 노송들은 금수저 은수저 따지지 않고 저마다 제자리를 지키며, 주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꿋꿋하게 살아간다. 느릿느릿 발걸음은 작은 다리 설잠교 앞에 도착한다.
설잠교 안내판에는
신라시대 용장사가 있었다 하여 이 골짜기를 용장골이라 불러 왔다. 용장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조선초 매월당 깁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산실을 짓고 "유금오록"에 155수의 시를 남겼고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곳이며, 또 속세를 떠나 산승으로 있으면서 단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로 북향화를 심었던 곳이다. 이 유서 깊은 용장골에 다리를 놓으매 매월당 김시습을 기려 설잠교라 하였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또는 동봉, 법호는 설잠, 관향은 강릉이다.
방금 올라온 용장골 풍경을 바라보며 설잠교를 건너니, 용장사지 아래 골짜기에 용장사지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용장사지 오르는 능선 아래 옛날 용장사에서 사용하다 굴러 내려온 듯한 절구통 하나가 길가에 뒹굴고 있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용장사지로 오르는 길은 빼곡한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잠시 후 왕대나무 숲을 지난다.
송죽이 키를 자랑 하는 숲에서 올려다본 하늘엔 노는 구름 한가롭기만 하고, 대나무 숲을 지나는 오르막 길에서 돌아 보니 따라 오는 마눌은 벌써 힘이 드는 모양이다. 이어서 김시습의 시에 나오는 선우대 숲을 지난다. 좌측으로 생태복원을 위해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붙은 길로 들어가보니, 판판하게 넓은 곳이 행여 용장사지 인가 했는데, 선우대 우거진 안쪽에 무덤이 보이고 점심을 먹으며 쉬고 있는 산님들이 보인다.
용장사지 라는 안내판이 있고, 머리 위에 삼층 석탑이 올려다 보이는 곳 천년 고찰이 있었던 절터 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좁아 보이는 판판한 능선에 올라선다.
용장사는 신라 경덕왕 때의 고승 대현과 조선시대의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 시대에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설잠스님(김시습)이 이곳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서 금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조선 중기까지는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절터 축대들과 기와 조각들만이 폐 터를 뒹굴고 있다.
용장사지 앞 축대가 있는 곳에도 바위에 호박을 판 절구통이 보인다. 바라본 고위봉 쪽 풍경 아늑한데, 넓은 바위 비탈에 뿌리 내린 난장이 노송은 분재처럼 곱게 단장을 하고, 용장골을 내려다 보며 겨울 햇살을 즐기고 있다.
바위와 노송들이 어우러진 용장사지 능선 건너 고위봉과 하산 할 이무기 능선을 돌아보며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 바위 틈에서 사투를 벌이는 잎이 몇 개 남지 않은 노송의 얼굴 빛은 초조하게만 보이고, 느린 발걸음은 용장사곡 석불좌상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염불을 외며 주위를 도는 대현스님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고 하는 석불좌상은 그 후 억불 정책이나 일제 강정기에 몸살을 앓은 듯 지금은 목이 떨어져나간 안쓰러운 모습이다. 석불좌상 바로 옆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도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다.
석불좌상을 뒤로하고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길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배배 꼬인 소나무들이 참 아름답게 보인다. 바위에 앉은 난장이 노송과 비틀린 허리가 늘씬한 소나무 사진을 찍고 있는데, 포항의 산 선배인 방장님이 올라와 인사를 나누고 잠시 함께 걸으며,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에 도착한다.
인간이 정성드려 만든 탑이 서로 이해 관계가 얽힌 다른 인간들에 의해 많이 훼손된 모습이 안쓰럽다. 석탑 앞에서 바라본 용장골 건너 태봉과 이무기능선, 고위봉이 어우러져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석탑을 뒤로하고, 금오산을 향한 발걸음은 바위들이 아름다운 능선 길을 걸어 남산 순환도로에 올라선다.
잠시 순환도로를 따라 걷다가 금오봉 삼거리의 이정표를 지나 호젓한 오솔길로 접어들고, 비파골의 전설을 담은 안내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금오산(468m) 정상에 도착한다. 금오산 정상에 있는 남산과 망산의 유래를 담은 안내판이 있고, 많은 산님들이 머무는 금오산 정상을 뒤로하고 오던 길을 따라 고위봉 쪽으로 가는 길에 삼화령을 알리는 안내판을 지난다.
삼화령 안내판 앞에서 생의사지로 올라가는 길은 없어 바위 모습을 살짝 당겨보고,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걷다가 이영재에서 다시 봉화대 능선 등산로에 접어든다. 봉화대 능선에서 돌아보니, 용장골과 용장사지 능선, 금오산과 걸어온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지고, 가야 할 능선과 고위산 모습이 멀어 보이는지 힘들어 하는 마눌의 발걸음은 칠불암 삼거리에 도착한다.
칠불암 삼거리 이정표 산님들 머물고 있는 칠불암 전망 바위에 올라 바라본 조망은 중국산 미세 먼지 때문인지 날씨가 풀려서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지 약간 흐릿한 느낌이다. 등산로가 반들반들한 백운재 삼거리에 도착하여 마눌은 힘이 드는지 자꾸 골짜기로 내려가려 한다.
고위봉 바로 아래서 마주 오는 산님과 습관처럼 인사를 했는데, 부자간에 정겹게 산행을 온 야로밀님을 만나 잠시 인사만 하고 헤어진다. 지난 가을 주왕산 대궐령 산행길에서 우연히 만나고, 오늘 경주 남산 고위봉에서 또 만나게 되는 반가운 호젓한오솔길 카페 회원님이시다.
전망 바위에서 바라본 발 아래 백운암과 심수골 풍경 아늑하고, 높은 바위에 뿌리내린 노송의 뒤틀린 몸매가 당당한 모습이다. 경주 남산의 최고봉인 고위산(494m) 정상에는 낡은 무덤 한 기가 산님들의 발 아래 뭉개져 먼지를 날리고 있다. 고위봉의 이정표에서 천우사 방향인 이무기 능선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재난 취약지구를 알리는 이무기능선 탐방 안내판을 지난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니, 하산 할 이무기능선과 용장리 전경과 용장골 건너 걸어온 금오봉 풍경이 시원스럽게 한 눈에 들어오고, 갈라진 바위 사이에 뿌리 박은 난장이 노송은 바위에 솔가지를 꽂아놓은 듯 그 용모가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하다
위험한 곳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바위능선의 소나무들은 모두 분재를 가꾸어놓은 듯한 이무기 능선에서 바라본 용장골과 금오산, 돌아본 고위봉의 암릉 풍경이 바위에 노송들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배배 틀면서 올라간 깡마른 노송은 수령이 꽤 오래되어 보인다. 바위에 노송들 사진을 찍으며 내려오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는데, 마눌은 힘들고 지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무기능선 아래 설치된 재난 취약지구 안내판을 지나 다시 용장골로 접어드니, 바위 사이로 흐르는 개울 물이 바위에 얼음이 붙어 있지만 손을 씻어도 그리 차갑지가 않다.
아침 11시경에 산행을 시작하여 약 10Km의 짧은 거리에 5시간 50분이나 소요된 느림보 산행을 마치고 오후 5시경에 용장리 주차장에 돌아오니, 마눌은 피로한 기색이다. 서둘러 행장을 풀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길을 달려 포항으로 돌아오면서, 오랜만에 마눌과 함께 걸어본 경주 남산 용장골 산행 길을 갈무리해본다.
(2016.01.10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