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 마음 추억이 된 백두대간 12구간 (밤티재~ 속리산~ 비재)
설렌 마음 추억이 된 백두대간 12구간 (밤티재~ 속리산~ 비재)
솔길 남현태
민족 최대의 명절인 구정을 사흘 앞 둔 2월도 어느덧 셋째 주말을 맞이한다. 간간히 복수초와 바람꽃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올라오는 따뜻한 남녘의 봄소식과는 달리 요즘 나라 안은 온통 여야 정치권이 국무총리 인준 안을 앞에 놓고 찬성하는 여당과 반대하는 야당이 서로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기 싸움이 뉴스를 장식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네 인간사 시끄러워도, 어김 없는 계절은 수그러든 추위가 겨울의 끝자락임을 알리는 이번 주 백두대간 길은 덕유산권 이후로 한 동안 조금은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눈 쌓인 무명 산행 길과는 달리 옛날 풍류가들이 4대 명산으로 꼽았으며, 요즘은 100대 명산 중에 당당히 10위에 올라 있는 명산 중에 명산이라고 하는 속리산을 통과하게 되니, 여러 번 가본 속리산이지만 대간 마루금을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모습이 새롭게 기대가 된다.
매번 새벽 4시에 출발을 하는 대간 길은 늘 잠이 부족하다. 새벽 2시 40분에 알람을 맞추어 두고 일어나 먹기 싫은 멀미 약을 마신 후 산행 준비를 마치고, 돌아올 때 음주 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마눌의 차를 타고 연하재에 나가서 잠시 기다리다가 4시 15분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는 것이 이제 습관화가 되어버린 듯하다.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는 버스에 오르니, 멀미를 하는 나를 위해 산이좋아님이 오른 쪽 앞에서 두 번째 자리를 내 자리로 잡아놓아 감사한 마음으로 앉는다. 오늘 산행에 참여한 대원이 28명이고, 늘 버스는 두 좌석에 한 사람씩 넉넉하게 앉아서 가게 되어 배낭을 가지고 타니, 추운 날씨에는 산행 준비를 하기가 참 편리한 것 같다.
따뜻한 버스 안에서 잠시 단잠을 즐기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서산휴게소에 들려서 각자 용변을 보고 아침을 먹을 사람은 먹고, 단체로 준비해온 떡과 요구르트로 대부분 아침을 해결한다. 나는 멀미 약을 마시기 위해 집에서 아침을 먹고 왔지만, 그래도 오전 산행을 위해 떡으로 뱃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나서 산행 준비를 한다.
원래 오늘 산행 계획은 늘재에서 출발을 하기로 하였지만, 밤티재에서 문장대 까지가 출입 통제 구역이라 밤티재와 문장대에 국공(국립공원 감시원)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올라가야 하기에 늘재에서 밤티재까지(약 3 Km)는 다음 산행으로 미루고, 오늘은 산행금지 구역인 밤티재에서 출발하여 바로 문장대로 오르기로 계획을 수정한다.
아침 6시 50분경에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밤티재에 도착하니, 구정을 며칠 앞둔 섣달 스무이레 그믐 달이 비치는 새벽 날씨가 참 포근하다. 각자 산행 준비를 하고, 밤티재 도로를 가로 질러 모여 앉아서 느긋하게 기념 사진을 찍은 후 출입금지를 알리는 철망 울타리 쳐진 곳을 우회하여 속리산 자락으로 오르면서 제 12차 백두대간 길은 시작된다.
잠시 가파른 비탈길 따라 능선에 올라서니 멀리 속리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새벽 잠에서 깨어난 듯 꿈틀거리고, 심설이 남은 미끄러운 능선 길은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고도를 높여간다. 바위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속리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서고, 노송 아래로 바라본 좌측 가마득한 산등성이들 위로 맞이하는 일출은 오늘 날씨가 봄날처럼 포근하여 사방에 운무가 끼어서 선명하지 못하다.
운무에 일그러진 일출을 바라보며, 잔설이 얼어 미끄러운 길을 따라 고개를 내려서고 다시 하얀 비탈길을 오르는 발걸음 로프가 매어진 경사길 때로는 상당히 미끄러워 오르기 까다로운 곳도 있다. 바위 봉우리 문장대는 점점 가까워지고, 아침 햇살이 누리에 퍼지는 바람기 없는 포근한 겨울 산행에 모두 땀을 흘리며 걷는다.
멋진 바위들이 어우러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노송 어우러진 바위 능선이 꼬불꼬불 길게 늘어지고, 좌측으로 성불사가 있는 장암리 골짜기 운무 속에 아련하다. 거대한 바위가 길을 막은 곳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가자고 하여, 선두팀 사진 찍어주고 나도 같이 찍혀본다. 바위를 돌아 올라서 다시 기념 사진을 찍어가며, 바위 틈을 요리조리 비집으며 걷는 길이 미끄럽고 위태로워 보인다.
골짜기 건너 톱날처럼 아름다운 바위 능선은 과연 명성에 걸맞는 속리산이다. 하얀 잔설이 발린 거친 바위 능선이 더욱 야성미가 넘치고, 잿빛 바위와 하얀 눈에 다문다문 박힌 노송이 봄볕을 받아 생기를 불어 넣으며, 함께 어울려 뒹구니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커다란 바위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 나가는 길, 얼어 붙은 잔설과 서리가 미끄러워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옛날 대간 길에 오늘 함께 온 대원 중 한 명이 여기서 인대를 다쳐 고생을 한 곳이라고 하며, 대간을 종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산이좋아님이 선두에서 요리조리 미로 같은 바위 사이 길을 잘 찾아 올라간다.
로프가 매어진 바위 벼랑이 아이젠을 차고 오르기가 까다로운 길을 올라가서 돌아본 바위 벼랑 풀하우스님이 로프에 매달려 고전을 하고 있다. 회원님들이 따라 오기를 기다리며, 잠시 사진을 찍으면서 숨 고르기를 한다. 커다란 돌덩이들을 이리저리 포개놓은 듯한 거대한 바위 사이를 비집으며 따라 오는 회원님들 모습이 자연 속에 꿈틀거린다.
차가운 바위에 뿌리를 내린 가녀린 노송들이 하얀 눈 위에서 시린 발 구르고, 엉거주춤 걸터앉은 바위들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 길은 위험해서인지 출입이 통제된 구간이라고 한다. 통제구역을 벗어날 수 있는 곳 빤히 보이는 문장대와 주변의 바위 봉우리들이 하얀 분장을 하고 아침 햇살에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로프가 눈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미끄러운 급경사 길은 네 발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 미끄러운 경사길 올라 좁은 바위 사이를 다람쥐처럼 기어서 빠져 나오고,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숲 사이로 우회하여 올라와 여러 번 대면하여 낯익은 속리산 문장대에 도착한다.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 영봉에 올라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 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륜삼강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문장대 아래서 선두팀 기념 사진 찍은 후 철계단을 따라 문장대를 오르니, 평소에 늘 복잡하던 문장대가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 우리들의 독 무대다. 문장대 오르면서 바라본 걸어온 능선에 따라 오는 회원님들 모습이 보이는데, 감시 카메라 앞을 그냥 통과하고 있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오늘 산행길이 아닌 관음봉과 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신비롭게 펼쳐지고, 걸어온 능선 풍경이 추억처럼 아름답게 드리워져 있다.
문장대 위의 웅덩이들은 꽁꽁 얼어 빙판을 이루고 불어 오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갑자기 오싹한 한기를 느끼게 하고 법주사 쪽으로 이어지는 우람한 능선도 속리산의 명성을 느끼게 한다. 멀리 가야 할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대간 마루금이 설레는 마음을 기다리고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등허리를 타고 남으로 뻗어 내려온 한반도의 중추 백두 대간은 태백산에서부터 방향을 바꾸어 서진하면서, 소백산을 비롯한 중원의 고봉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다가 우뚝 멈춰선 자리에서 속리산이 불끈 솟았다. 여기서 돌돌 뭉친 백두기운 한 자락을 뚝 떼어서 한남기호정맥에 내어주고 다시 마치 처음 시작한 것처럼 지리산을 향하여 유장하게 흘러간다.
속리산을 천하의 명산으로 삼는 것은 한반도 중원 이남에서 백두기운을 공급해주는 강력한 펌프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속리산은 한반도의 척추와 정강이 뼈가 만나는 요추 같은 구실을 하여 백두 대간의 무게중심에 해당하는 것이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낙동강, 금강, 남한강으로 나뉘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속리산은 우리 한반도를 지탱하는 삼태극의 정점으로서 명산 중에 으뜸인 것이다.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바라 보며, 꽁꽁 얼어 있는 바람 차가운 문장대를 내려선다. 문장대를 내려서면서 바라본 올라온 능선에는 아직 따라 오는 회원님들 모습이 보이고, 회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문장대를 뒤로 하고 선두팀은 천왕봉으로 향한다. 다져진 눈 길을 따라 문수봉인 듯한 바위 봉우리를 지나 전망 바위에서 바라보니, 멀리 비로봉과 속리산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신선대 휴게소에서 잠시 행장을 풀고 알파인님이 쏜 신선주를 네 사람이 나누어 마시며 쉬어 간다. 휴게소 옆에 설치된 신선대 정상석에서 기념 사진 찍어주고 찍혀본다. 산죽과 잔설이 어우러진 하얀 오솔길 따라 오르락 내리락 이어지는 걸음은 앙상한 가지 사이로 보이는 암봉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입석대(970m)는 기둥 같은 모양의 바위로 높이는 약 13m 이며,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수련한지 7년째 되던 해 이 돌을 새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비로봉인 듯한 바위 봉우리를 지나 미끄러운 계단길 내려선 걸음은 좁은 석문을 통과한다. 고릴라 바위(상고외 석문)는 고릴라 형상을 닮은 자세히 보면 어미와 새끼 고릴라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경관을 감상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고릴라 바위를 지나 다시 계단길 올라선 서두른 걸음은 천왕봉이 지척에 보이는 햇살 다사로운 산죽길을 걷는다. 두껍등 바위 등산화를 올려놓은 듯한 모양의 이 바위는 반대편에서 보면 두꺼비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두껍등이라 불린다. 도룡용 바위는 바위 절벽에 한 마리의 도룡용이 붙어 있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선두팀 발걸음은 천왕석문 앞에 도착하여, 기념 사진 찍어주고 나도 한 장 찍혀보고 천왕석문을 통과한다. 천왕석문을 뒤로하고 잠시 오르막길 치고 오른 발걸음은 문장대에서 약 1시간쯤 소요되어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1,058m)에 올라선다.
속리산 천왕봉은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조선지지자료' 등에 천왕봉으로 기록되어, 옛 부터 '천왕봉'으로 불려오다가 '한국지명총람'에는 '천황봉'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것은 일제 강정기에 전국 명산의 최고봉들인 '천왕봉'이 일본 천황을 상징하는 '천황봉'으로 바뀌었다가 최근에 다시 '천왕봉'으로 되돌려 부르기 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인듯하다.
천왕봉 정상에서 선두팀 기념 사진을 찍고, 천왕봉 정상에서 돌아본 걸어온 능선과 속리산의 암봉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천왕봉에서 속리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이어지는 마루금을 바라보면서 미끄러운 길 따라 고도를 낮추어 간다. 잔설이 남아 미끄러운 오솔길을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뒤에 알파인님의 배낭이 열려 도시락과 과일통이 날라가는 줄도 모르고 걷다가 뒤 따라 오던 산이좋아님이 과일 통은 주워 왔지만, 먹지도 않은 도시락은 영영 분실하게 된다.
크고 작은 무명 봉우리 오르락 내리락 지루한 발걸음이, 다시 오르막 길 치고 오른 걸음은 639봉을 넘어 피앗재 삼거리에 내려선다. 피앗재 삼거리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형제봉으로 가는 길에 양지바른 봉우리에 앉아 점심을 나누어 먹고, 가파른 바위 벼랑길 따라 바위 봉우리 형제봉으로 오른다.
형제봉에 올라 돌아보니 방금 걸어온 능선 길이 봄 볕 속에 아련하고, 형제봉 정상석 너머로 바라 본 속리산의 추억은 운무 속에 점점 멀어져 간다. 형제봉(829m)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한국지명총람'에 형제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산의 두 봉우리가 형제처럼 나란히 솟아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형제봉 정상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념 사진을 찍으며 바라본 만수리 냉골 풍경 운무에 은은하다. 가야 할 갈령 삼거리 쪽 풍경과 비재로 향하는 나지막한 능선을 바라보며, 형제봉 내려서는 급경사 길 다져진 빙판이 미끄럽다. 갈령 삼거리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길에서 처음으로 마주 오는 대간팀을 만나고 잠시 쉬어간다.
후미 팀이 이제 천왕봉을 지났다고 하니 약 2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 듯하다. 비재로 향하는 길에 서울에서 온 대간팀이 점심을 먹고 있는 헬기장을 지나, 대간 마루금에 유일한 못이라고 하며, 약 오륙백 평 정도의 크기로 전설이 서려 있는 못제에 도착한다.
상주에서 후백제를 일으켜 천하를 호령하고 싶었던 견휜의 꿈과 야망이 소금 삼백 가마의 모략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는 애잔한 전설이 서려 있는 못제는 이런 산꼭대기에 백두산의 '천지'나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화산 분화구가 아닌 못이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못둑으로 난 마루금을 뒤로하고 다시 오르막길 올라가는 길에 좌측으로 보이는 억시기 마을 풍경이 평화롭다.
지루한 오르막길 오르락 내리락 발걸음이 전망 바위에 올라 바라보니, 가야 할 마지막 봉우리와 멀리 지난 주에 올랐던 봉황산이 펼쳐진다. 걸어온 봉우리와 능선에 솔 빛 푸르러 봄 기운이 감도는 나지막한 능선들 잠시 굽어보고, 다시 내리막 길 내려서며 마지막 봉우리 치고 올랐다가 급경사 내리막 브레이크 밟으며, 마지막 나무 계단길 따라 오늘의 종점 백두대간 비조령에 도착하여, 듬직한 비조령 표지석 앞에서 선두팀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산행길은 종료된다.
하산 예정시간 보다 2시간 정도 이른 오후 2시 4분경에 선두팀이 비재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어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아 기사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직 느긋하게 상주 시내에서 쉬고 있었는지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여, 네 명이 나무계단에 앉아 남은 간식 먹으면서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급하게 달려온다.
버스 안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기다리니 회원님들 하나 둘 하산을 하는데, 지난 번까지 폭탄이었던 소나님이 중간팀 중에서도 10위권으로 하산을 하여 모두가 깜짝 놀란다. 늘 꼴찌로 하산을 하여 모두를 기다리게 하거나, 도중에 하산을 하여 택시를 타고 오던 폭탄 중에 폭탄이 오늘은 좋은 성적으로 앞쪽에서 하산을 하니, 모두가 신기하게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가 도핑테스트를 해봐야 한다고 하여 잠시 폭소를 터트리게 한다.
오후 3시 40분경에 후미가 하산을 완료하여 간단하게 소맥 몇 잔씩 나누고, 오후 4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출발하여,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북영천 기사 식당에 들려서 저녁을 먹으면서 하산주를 나눈 후 대체로 이른 시간인 저녁 7시경에 연하재에 도착하니, 마중을 나와있는 마눌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제 12차 백두대간 길을 갈무리해본다.
(2015.02.15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