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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궁궐 시리즈 # 7

호젓한오솔길 2009. 2. 2. 20:46

 

# 7 편에서는 동문(10번)으로부터 서문(11번) 바로 오른편, 연주봉 옹성까지의 북벽과,

봉암성(23번), 한봉성(25번)등 외성을 포함 수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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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좌익문) 문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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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문 북쪽으로 오르는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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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경사(長慶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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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에서 약 900m 동북쪽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남한산성 축성과 함께 세웠으나

현 건물은 대부분 근래 재건축한 것이다.

 

- 장경사 신지 옹성(長慶寺信地甕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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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성에 대한 적의 직접 충격을 막고 적을 측면에서 통제하는 보조성곽이다.

이 옹성은 5 개의 옹성 중 가장 작고 암문을 통하여 본성과 소통하며,

둘레가 150.9m, 여담이 40개, 2 개의 대포혈이 있다

 

- 암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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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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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장대로 오르는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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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포(軍鋪 : 초소)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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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장대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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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전영장(前營將)과 좌영장(左營將)이 진을 치고 휘하장졸을 지휘하던 곳이다.

  

-동장대 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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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문으로 가는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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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문(전승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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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여담(女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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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이란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적으로 부터는 몸을 방어하고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을 말한다.

 

 - 북문에서 보이는 연주봉 옹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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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 후 300mm 줌인.

 

- 연주봉 옹성(連珠峰 甕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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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옹성은 본성과 연주봉을 연결하고 있으며 둘레는 274m, 73개의 여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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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현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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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교 기념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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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무관(鍊武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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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무당이라 불리던 것을 숙종 때 개수하고 연무관이라 하였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무술을 닦고 무재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 한양에 보내는 등 군졸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성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 남한산성 역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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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벽기록,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의 필적이 소장되어 있다.

 

- 현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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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당시 항복하기를 거부한 윤집, 오달제, 홍익한 삼학사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 지수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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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의 문관 이세화가 현종 13년(1672)에 건립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이 건물을 중심으로

세개의 연못이 있었으나 현재는 두개가 남아있고 고관들의 정자로 이용된 곳이다.

  

- 망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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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산성 성내 9개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로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장의사를 허물고 불상과 금자 화엄경, 금정 하나를 옮겨 놓았다하나

옛 망월사는 모두 타버리고 1990년에 복원되었다.

 

- 본성과 연결된 봉암성(蜂巖城)의 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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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암성은 본성의 동장대에서 동북쪽 벌봉(蜂巖)을 연결하는 성으로 숙종 12년(1686)에 부윤 윤지선이

처음 쌓았는데 둘레가 1142.8m이고 여장(女墻)이 74개다. 병자호란 때 청병들이 벌봉에서 본성의 동태를

살폈기때문에 본성의 보강차원에서 쌓은 것이다.

 

- 폐허의 봉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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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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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밖에서 바라본 암문

 

- 벌봉 정상으로 올라간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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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봉(蜂巖) 정상의 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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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암성의 북쪽 끝 벌봉은 봉암성에서 세번째로 높은 해발 505.2m이다.

봉암 왼쪽에는 연결되었던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다.

 

- 한봉성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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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진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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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에 나무나 잡목이 기생하도록 방치함으로써 성벽의 파괴는 가속되고 있었다.

 

- 외성(한봉성) 성곽의 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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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형적으로 더 이상의 성벽 연장이 어렵고 본성과 외성 사이는 깊은 계곡으로 적이 침투하여도

독안에 든 쥐이고 행동의 자유가 전연 없는 곳이다.

 

- 가파른 한봉 능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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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의 돌계단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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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사의 종점, 비에 젖은 동문(좌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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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ilogue -

4차에 걸쳐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남한산성 답사를 마치는 동안,

날도 저물고, 흐리기도 하고, 비도 오고, 눈보다 더 위험하다는 낙옆 쌓인 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계절과 역사를 봅니다. 남한산성 같은 천혜의 요새에서 조정만은 항전을 계속할 수

있었겠지만 성밖의 백성들의 피해는 더욱 심했을 것으로 항복을하여 피해를 줄이고 후일을 도모하는것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