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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羅·唐) 동맹이 반(反)민족적 행위? 삼국시대엔 '민족 일체감' 없었죠"

호젓한오솔길 2010. 12. 15. 20:32

 

"나·당(羅·唐) 동맹이 반(反)민족적 행위? 삼국시대엔 '민족 일체감' 없었죠"

 

 

구대열 교수는“국제정치학자의 시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들여다보니 신라인들의 국제정치 감각이 오늘날 못지않게 현실적이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김지호 인턴기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통일의 정치학' 펴낸구대열 이화여대 교수

 

"한반도 동남쪽 외진 곳에 위치했던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패권국이었던 당(唐)과의 관계를 확고한 외교·군사 동맹으로 발전시킨 덕분입니다. 고구려·백제·신라가 모두 당과 손잡으려고 했지만 당의 대외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용한 신라가 승자가 된 거죠."

구대열(65)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고구려·백제·신라의 교류와 정체성, 당을 상대로 펼친 동맹외교, 신라의 통일전략과 전술을 분석한 '삼국 통일의 정치학'(까치)을 출간했다.

구 교수는 이 책에서 민족주의 관점으로 신라의 삼국 통일을 비판하는 시각들을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반박한다. "나·당 동맹은 외세와 결탁한 반(反)민족적 행위도, 사대주의도 아니다"는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독일의 통일을 주도한 카브르나 비스마르크는 통일을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고 자국의 발언권과 위상을 높이는 게 목표였고, 그러다 보니 통일이 된 거지요. 신라 역시 '북쪽을 치고 서쪽을 막으면서' 허둥지둥 지나다 보니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게 됐고, 통일을 이룬 후에야 '우리가 큰일을 해냈구나!' 하면서 기지개를 켠 겁니다."

구 교수는 "통일국가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고, 민족적 일체감도 없었던 삼국인들에겐 통일이란 관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라의 삼국 통일은 '통일'이란 측면보다 그 이후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준 토대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한국근대외교사 전공인 구 교수가 삼국시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19세기 말 중국공사 하여장(何如璋)이 서양 외교관에게 '한국인들은 힘을 은근히 내비치면서 달래면 쉽게 따르는 어린애 같다'고 말한 것을 읽었습니다. 중국인이 한국인을 왜 이토록 얕잡아보게 됐는가가 화두가 됐고, 그 후 역사 속 우리 외교에 천착하게 됐습니다."

구 교수가 생각하는 최상의 동맹관계는 '강대국이 주도하고, 약소국은 이에 편승하거나 이용하는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도 당에 조공했지만 신라 만큼 존재감을 각인시키진 못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당에 '작지만 강한' 고구려는 안보 위협이었어요. 백제는 자기네 요청을 중국이 몇 번 거절하자 관계를 차단해버렸어요. 신라는 그렇지 않았죠."

구 교수는 "지금 한국 역시 국익과 가장 합치하는 파트너를 찾아 현실적 계산에 입각한 통일전략을 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주변 4강과의 관계를 원만히 조절하지 못하면 장애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러시아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국경지대의 위협 요소를 제거한다면서 함경도의 비무장을 요구하거나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살벌한 국제정치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력투구했던 신라의 통일 과정은 통일문제에 직면한 우리에게 생생한 교훈을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