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족은 주로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길림성 기타 지역 그리고 흑룡강, 요녕, 내몽골자치구 및 내지의 일부 도시에 분포돼 있다. 총인구는 192.38만명(2000년), 그중 길림성에 114.5688만명 살고 있다.
중국 조선족은 조선반도에서 중국 동북3성으로 들어온 조선인들이다. 그중 일부는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에 이미 동북경내에 자리잡았다. 19세기 중기부터 육속 비교적 많은 조선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특히, 1869년 조선 북부지역이 흉년이 들면서 대량의 조선인들이 연변 등지로 몰려들었다. 1910년,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병탄하면서 더욱 많은 대량의 조선인들이 중국 동북 각지로 건너왔다.
조선족은 자체의 언어,문자를 갖고 있다. 언어의 종속관계에 있어 아직 정설은 없지만 조선문은 1444년에 창조됐고 40개 단음 자모이며 맞춤법에서 동일 음절의 단음이 글자로 되어 네모형 문자를 형성한다.
해방전 조선족지역은 봉건지주경제단계에 처했고 일부 자본주의 경제성분이 들어 있었다. 소수의 만족, 한족'점산호(占山户)'들이 농민들이 개척한 토지를 강점해 농민들은 소작농, 고농으로 전락됐다. 동시에 조선족 중에서도 일부는 극소수 지주로 분화됐다. 소작관계에는 수확량에 따른 조세(活租)와 전도금이 있었고 임대률은 50%에 달했다. 그밖에 여러가지 초한계를 넘는 경제적 압박도 받아 왔다.
조선족은 한랭지구에서 벼농사짓는 장점을 갖고 있다. 도문강, 압록강 유역에는 산, 황원, 소택이 많은데다 한랭하고 무상기간이 짧은 등 곤난을 극복하면서 동북지역에서 벼농사를 시작해 왔다. 연변은 동북지역에서 이름난 '벼농사의 고향'으로, 생산한 입쌀은 희고 기름기가 많아 북경과 천진지역의 벼와 같이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다. 조선족 집거지역의 대부분은 원시삼림에 있으며 '장백임해'로 알려지고 있으며 중요한 임업기지이다. 이 지역의 인삼, 담비가죽, 녹용은 동북 '3가지 보약'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동북범, 꽃사슴, 다람쥐 등 진귀한 동물도 있으며 연변 황소는 중국 5대 지역 우량종 소 중의 하나이다.
조선족 문화예술
조선족은 수준 높은 우수한 전통문화예술을 갖춰 왔다. 특히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며 문화교육을 중시, 조선족 집거지인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노래와 춤의 고향'으로 절찬받고 있다. 명절 혹은 행사가 있을 경우, 남녀노소가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가족 희사에서도 '가정식 가무야회'를 연다. 물동이춤, 부채춤, 장고춤 등은 모두 즐기고 있는 전통적 가무종목이다.
조선족 가곡의 선율은 유창하고 구성지며 명랑한 특징을 갖고 있다. 무도는 부드럽고 우아한 자세를 보이며 격앙되면서도 심오한 함축성 들어있고 예스럽고 소박하며 시원시원한 감을 주어 민족특색이 짙게 발산한다. 민족풍격과 생활기백이 들어있는 연극, 곡예도 비교적 높은 예술수준을 갖고 있다. 씨름, 축구, 그네, 널판뛰기, 줄당기기, 육상경기 등은 조선족 전통 체육오락종목이다. 그중 축구는 가장 보급화됐고 연변은 또한 '축구의 고향'으로도 불린다.
경축일과 휴일이면 도시나 농촌이나 모두 축구를 위주로 여러가지 체육활동을 진행한다. 부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종목은 그네와 널판뛰기로 경기나 표현을 한다. 조선족의 문학도 매우 풍부, 특히 항일전쟁 중에서 창작된 '총동원가(总动员歌)', '유격대진행곡','민족해방노래','연길감옥노래(延吉监狱歌)'등은 모두 전투성이 강한 시가작품이다. '전투의 밀림','복수', '피바다의 노래' 등 작품은 조선족과 각 민족 인민들이 함께 항전하는 결심을 생동하게 표현했고 상당히 높은 예술수준을 보여주었다.
조선족 교육
조선족들은 교육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일직 20세기 30년대 초 많은 학교를 창설하고 초급중학교육을 보급시켰다. 1949년 중국 첫번째 민족대학 연변민족대학을 건립하고 자금을 모아 100여 개 소학교를 세웠다. 연변지역은 1952년 소학교육, 1958년 초급중학교육, 1980년대는 도시에서 고등학교교육을 보급시켰다.
조선족 풍속습관
주택: 조선족 가옥은 나무로 틀을 짜고 지붕은 4개 경사면을 이루었으며 볏짚 혹은 기와를 올린다. 벽은 토담이고 석회를 칠한다. 현재는 벽돌과 기와 집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음식: 주식은 입쌀이고 국물은 일상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한가지 음식이다. 개고기, 소고기, 닭고기, 바닷물고기, 김치, 고추장을 즐겨 먹으며 양, 오리, 거위 및 기름진 음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고기는 일반적으로 국을 끓이고 삼복절에 많이 먹는데 무더운 여름철에 몸보신으로 한다. 전통풍미음식에는 찰떡, 냉면, 장국 등이 있다.
의복, 장신구: 흰색 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 이름났다. 여성들은 짧고 편한 복장에 긴 치마를 입는데 색상은 산뜻하고 아름다우며 분홍색, 하늘색, 연녹색 등이 있다. 남성들은 희색의 짧은 상의에 조끼를 입고 바짓가랭이는 넓으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바지의 단에 명주 끈을 매고 외출시 장포를 입는다. 아가씨와 젊은 부인들의 드레스는 오색찬란하고 눈부시며 짙은 민족특색을 담고 있다. 어린이들의 상의 옷소매는 '칠색단(7가지 어울리는 비단색)'으로 만들어져 입으면 무지개가 몸에 그려진 것 같다. 이는 조선족이 무지개는 광명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결혼 풍속: 신랑 혼례와 신부 혼례가 있다. 신랑이 말을 신부를 맞이하러 떠나 신부의 집에서 진행하는 혼례를 신랑혼례라 한다.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신랑네 집에 와서 진행하는 혼례를 신부혼례라 한다. 결혼식날 저녁, 친척들과 청년남녀들은 신랑 신부와 함께 오락활동을 진행, 노래와 춤으로 밤 깊게까지 이어간다.
장례: 도시에서는 주로 화장, 기타 지역에서는 토장한다.
명절: 춘절, 정월대보름, 청명, 단오, 중추절, 노인절 등이 있다.
예절: 조선족은 예절을 중요시하고 매우 강구하고 있다. 부모와 어른에 대한 효경은 조선민족 전통적 미덕이다. 아랫사람이 웃사람에게 말을 건늘 때 반드시 경어를 사용해야 한다. 동배 간에 처음 만났을 때도 경어로 예의를 표한다.
식사를 할때, 먼저 노인에게 독상을 차려드리고 노인이 숟가락을 든 후에야 같이 먹는다. 식사 시, 숟가락을 국사발 안에 넣고 밥상우에 놓여 있으면 이미 다 먹을 것을 뜻한다. 후배는 선배 앞에서 술이나 담배가 금지돼 있으며 집안 행사에서 젊은이와 노인이 동석을 피면하지 못하는 경우, 젊은이는 술잔을 뒤로 돌려 마시면서 노인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흡연시, 젊은이는 노인에게서 불을 빌지 못하며 받지도 못한다. 그렇지 않는 경우, 불경 행위로 간주된다. 웃사람과 함께 길을 걸을 때 아랫사람은 반드시 웃사람의 뒤를 따라야 하고 급한 일로 먼저 앞서 걸어야 할 경우 공손하게 사연을 말한다. 길 가는 도중에 웃사람이 걸어오면 아랫사람은 길 옆에 돌아서면서 인사를 한다. '선족'이라 부르는 것을 기피하며 혼례와 장례, 명절 기간 개를 잡지 않고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부모 출생 60주년의 날에는 자녀가 '환갑'을 차려준다. 이날 자녀, 친척들이 모여 새 옷차람을 한 부모님을 중간에 모셔 앉히고 성장을 한 자녀들은 선후 순으로 절을 하고 술을 부어올린다. 예의식이 끝난 후 기타 손님들을 접대한다.
조선족 종교신앙: 조선족은 역사상 여러가지 종교를 신앙해 왔다. 기독교와 천주교외, 조선족 특유의 천도교(天道教), 청림교(青林教)가 있다. 불교도 조선족 가운데서 비교적 큰 영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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