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정신과 문화의 고향
모로코는 북아프리카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이 기원전부터 살아왔는데, 로마, 게르만 족, 비잔티움, 아랍 등 여러 민족의 외침을 받아왔다. 7세기 중반 아랍부족은 북아프리카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788년 바그다드를 수도로 했던 아바스 왕조의 귀족 이드리스 1세가 모로코에 정착하면서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이드리스 왕조가 탄생되었다. 그가 베르베르 여인과 결혼하여 모울래이 이드리스 2세를 낳았고 베르베르 족의 동화정책에 힘을 기울였다. 이후 모울래이 이드리스 2세에 의해 수도를 페스로 옮겨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로코 왕국의 기반을 다졌다. 튀니지의 카이루완과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추방된 안달루시아 지방의 순례자, 지식인, 상인, 군인, 신비주의자, 망명자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을 때 페스는 이들을 받아들여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그 결과 페스는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어 모로코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그 결과 9세기 후반 모로코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카이라윈 모스크가 건축되었고, 모스크의 부속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서양의 중세 대학이 12세기에 설립된 데 비해 2세기 정도 앞선 것이다. 중세 이슬람은 자연과학이 뛰어났는데 페스 대학에서 천문학, 수학 등을 배우기 위해 당시 유럽의 유학생들이 물밀듯이 몰려들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페스 대학 출신들이 모로코를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로코의 독립 운동의 핵심인물을 배출했고 현재와 미래의 모로코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계속 키워내고 있다. 투표하러 갈 때도 유권자들의 관심은 후보자들이 이 대학 출신인가 아닌가에 집중된다고 한다. 이를 통해 페스는 모로코의 정신과 문화의 고향으로 원심력 같은 역할을 하는 도시임을 알 수 있다.
9,400개의 골목길을 따라 중세 시간 속으로
페스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눠진다. 메디나(구시가지)인 ‘페스 엘 발리(Fes el Bali)’, 왕궁과 유대인 지구(멜라)가 공존하는 ‘페스 엘 제디드(Fes el Jdid)’, 그리고 ‘페스 빌레 노빌레(Fes Ville Nouvelle)’는 20세기 새롭게 건설된 신시가이다. ‘페스 엘 제디드’에는 14세기 메리니드 왕조(13~16세기 중반)때 완성되어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르엘 막젠 왕궁이 있다.
페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인 ‘페스 엘 발리’는 9,400개에 가까운 좁은 골목길을 따라 350개의 모스크, 대학, 터, 종교, 학교, 시장, 주택들이 모여 있다. 이곳은 골목을 잘못 들어서면 끝없이 헤매게 되는 미로이다. 구시가를 효율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 좋은데 왜냐하면 가이드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9,400개에 이르는 페스의 좁은 미로를 찾아다니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골목 안을 들어서면 위로 올라갈수록 양쪽 건물은 서로 맞닿아 키가 작은 나도 지나가기 힘들었다. 동키에 짐을 잔뜩 싣고 가는 사람들을 아슬아슬 피해 가거나, 오가는 사람들이 서로 어깨를 피해가며 지나는 풍경은 페스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밥 보우 젤로우’ 문은 페스 엘 발리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이 문에서부터 중세시대로의 흥미로운 여정이 시작된다. 낡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나는 시장은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상품 진열과 정리에 바쁜 모습이었다. 화덕에서 갓 구워낸 빵 냄새가 시장 구석구석에 퍼졌다. 뚱땅뚱땅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한 대장간을 지나 낙타 상인들의 숙소인 ‘카라반 세라이’와 모스크의 첨탑을 지나 네자린 저택(Place an-Nejjarine)으로 향했다. 네자린 저택은 1711년 지어진 것으로 정원이 아름다워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모두 3층으로 각 층마다 회랑과 나무 기둥, 아랍 식 아치, 목조 발코니와 스투코(석회 반죽을 바른 벽면 장식)장식이 매우 훌륭하였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자 페스의 구시가가 좀 더 가까이 보였다. 350개의 모스크가 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닌 듯했다. 뾰족하게 모스크의 첨탑들이 곳곳이 박혀 있다.
‘페스 엘 발리’의 하이라이트는 가죽 염색 작업장인 ‘탄네리’(tanneries)이다. 좁은 골목길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이 좁은 골목에 과연 가죽 염색장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계단을 올라가 전망대 앞에 서자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염색 통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허리까지 차는 염색통 속에 사람이 들어가 가죽 천을 치대는 작업 과정이 압권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려면 심한 악취를 견뎌 내야 한다. 양, 낙타, 소가죽을 벗겨 부드럽게 하기 위해 비둘기 똥을 넣은 하얀 염색 통에 담갔다가 물로 씻어내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가죽 제품 전시장에서는 손님들에게 민트 잎을 주면서 냄새를 견디라고 알려 주었다. 민트 잎 향기를 맡아도 악취는 견디기 힘들었다. 보는 것만도 이 정도인데 작업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얼마나 크겠는가. 손쉽게 사는 가죽 제품이지만 이처럼 힘든 공정을 거치는 줄은 몰랐다.
염색 작업의 통은 하얀색부터, 노란색, 갈색, 붉은색, 검은색 등 다양한데 모두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천연 염색을 한다, 전시장에는 이런 공정을 거친 부드러운 가죽 제품들로 가득했다. 가죽 신발, 점퍼, 조끼, 가방 등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색깔의 제품이 많았다. 모로코의 가죽은 전부 수제로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값이 저렴하고 질도 좋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모로코 음식을 대표하는 타진(Tajine) 요리에 사용되는 그릇을 만드는 타진 공방이었다. 타진은 둥근 바닥에 낮은 테두리가 있는 접시와 원뿔모양의 뚜껑으로 된 그릇으로 오랫동안 끓여도 수분이 증발되지 않고 요리의 본래 향과 맛을 잘 보존한다고 한다.
모로코 식당에서 여러 개의 화덕 위에 타진 그릇이 올려져있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내가 타진을 특히 좋아하는 것은 음식을 주문하면 즉석에서 뜨끈뜨끈하게 만들어 내오기 때문이다. 타진 공방은 이런 타진 그릇을 만드는 곳인데, 먼저 타진의 원료가 되는 찰흙의 원석을 갈아 물을 넣고 수십 번 치대어 찰흙을 만든 다음 물레를 돌려 그릇의 형태를 빚고 그것이 어느 정도 굳으면 여러 색깔의 염료로 무늬를 넣어 디자인한다. 색칠을 한 다음 유약을 바른 후 가마로 옮겨 층층이 그릇을 다 쌓고 나면 가마의 문 입구를 흙벽돌로 쌓아 막고 아궁이에 석탄을 넣어 불을 지펴 구워내었다. 우리 도자기 굽는 과정과 거의 흡사했다. 페스의 도자기 공방은 기계식이 아니라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살아가는 페스 사람들
페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던 구시가지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길이 좁고 미로여서 물건을 운반하는 등등의 생활에 불편함이 따르지만 그곳을 잘 보존하여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로 지켜냈다. 자신들이 살아온 터전을 허물지 않고 현대적인 신시가지(페스 빌레 노빌레)를 구시가지 바로 옆에 따로 만들어 놓고 옛 성벽이나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보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살면서 전통 방식을 이은 생활 공예를 발전시켜 모로코만의 독특한 전통문화를 계승한 주역들이다. 페스는 역사적인 고도 보존을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박물관화 하는 것보다는 그곳에서 함께 삶을 살아갔을 때 더 잘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글 | 사진ㆍ김지희 서울광영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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