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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 <334> 통영 미륵산

호젓한오솔길 2011. 12. 23. 23:08

 

[산&산] <334> 통영 미륵산
그림과 음악, 문학의 원형… 예술가들이 빚진 영감의 공간
전대식 기자

 

 

 

경남 통영 미륵산(彌勒山·458m)은 '영감(靈感)의 산'이다. 시인 서정주를 키운 게 팔 할이 바람이었다면 '예향 통영'의 문인, 화가 등 예술가를 키운 건 팔 할이 미륵산이다.

'통영의 피카소'인 화가 전혁림은 산의 영기에서 색감을 깨쳤고, 작가 박경리는 어린 시절 산마루를 바라보며 문학도의 꿈을 키웠다. 청마 유치환이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함께 에메랄드 빛 다도해의 풍광을 보고 감탄했는가 하면, 시인 김춘수의 시심과 김상옥의 시흥도 미륵산의 웅혼한 기운에 빚진 바가 있다. 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음악가 윤이상은 일찍이 "통영 미륵산의 예불과 범종 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자신의 음악적 원형을 이 산에서 찾았다. 하여 통영 사람들은 '색상·악상·시상·
영상'을 불러일으키는 이 산을 '한편의 교향곡 같은 산'이라고 예우한다.

미륵산은 또 '미래 부처가 찾아온다'는 산이다. 신라의 원효가 그리 예언했다. 중생을 구제하려고 도솔천에서 내려온다는 미래의 부처인 미륵은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는데, 이 산의 옛
이름이 용화산(龍華山)이 여기서 비롯됐다. 미륵을 맞으려고 용화사, 도솔암과 미래사가 닭이 알을 품은 듯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근대 불교계의 큰 선승인 대종사 효봉이 이 산 아래 절에서 용맹정진했다. 암자에 가보면 대찰이 주는 위엄보다는 효봉 문중의 추상같은 삼엄한 승풍이 오롯이 느껴진다.

사실 통영에서 제일 높은 산은 벽방산(650.3m)이지만, 통영 사람들은 미륵산을 엄지로 추켜세운다. 산 높이는 비교적 낮지만 산세가 품은 웅숭깊은 매력과 다도해와 '동양의 나폴리'인 통영항을 한눈에 담는 조망미가 일품이다. '산림청의 100대 명산'에 포함되는 데 조금도 손색이 없다. 지난 2008년 4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 일명 '미륵산 케이블카'가 설치되면서 산행이 아니더라도 정상까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등에게

예술적 감성 제공한 명산


정상엔 다도해
파노라마 조망

당포해전
한산대첩 전망대도

국내 최장 케이블카도 운행


등로는 단출하다. 기점인 용화사 광장에서 출발해 현금산(339m)으로 간다. 정토봉(334m)에 올랐다가 미륵치를 밟고 산꼭대기로 오른다. 미래사~편백숲을 지나 순한 길을 걷다 용화사에 잠시 들렀다가 기점으로 돌아온다. 넉넉잡아 3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가족산행으로 무리가 없고, 케이블카를 타면 노약자나 몸이 불편한 분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산 주변에 있는 달아공원의 낙조가 좋아 연말 해넘이 산행지로도 괜찮겠다.

용화사 광장
화장실 쪽에 다보탑 모양의 철탑이 서 있다. 많은 등산객이 '일본인이 만든 탑'으로 잘못 아는데, 실은 용화사에 만든 행사용 탑이다. 광장과 주차 요금소 임시 건물 사이로 등산로가 있다. 1분을 채 못 가 길이 나뉜다. 곧장 가면 관음사, 도솔암을 거쳐 정상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오른쪽 '미수동 띠밭등' 방향으로 진입한다.

길은
소나무 숲 아래를 지나 비스듬히 오른다. 별다른 이정표가 없어 산행 안내리본을 따른다. 관음사 뒤쪽 능선부터 조금씩 길이 오르지만 이내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감시초소 사이가 오름길(10분 소요)이다. 까다롭지 않다. 감시초소에서 뒤를 돌아보면 통영항과 통영 시내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안부에서 쉬지 않고 바로 올라왔다면 이곳을 쉼터로 삼아도 좋겠다.

초소에서 70여m 오르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현금산, 왼쪽이 주 등산로다. 현금산은 딱히 조망이나 별 볼거리가 없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실제 위치와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표시돼 있다.



현금산에서 능선을 따라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조금 뒤 오른쪽 숲을 뚫고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정토봉이다. 부처가 산다는 청정한 땅을 뜻하는 봉우리다. 산양읍의 너른 들이 발밑으로 지척이다. 바다에는 곤리도, 대장재도, 추도, 두미도가 떠 있다. 북서쪽을 보니 사량도의 지리산, 옥녀봉도 조망된다.

정토봉에서 미륵치까지는 내리막길로 6분가량. 여기에서 길이 다섯 군데로 갈린다. 예전에 산양읍 사람들이 통영으로 갈 때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 지금은 등산객의
만남의 광장이 됐다.



이정표에 표시된 미륵산 정상 방향을 따른다. 여기서부터 약간 너덜 구간에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중간 중간 등산로에서 암릉이 튀어나온 곳은 전망대로 삼을 만하다.

30분 정도 쉬엄쉬엄 오르다 고개를 들면 360도의 파노라마 조망이 왈칵하고 덤빈다. 미륵산 정상(표석상의 높이는 461m·개념도는 지리원 높이를 표시했다)이다. 국내 최초 해상
국립공원인 한려수도의 바다 물결이 춤을 춘다. 이 일대에 562개의 섬이 있다는데 손가락으로 몇 개까지 헤아리다 그만둔다. 국립공원 100경 중 최우수 경관으로 '미륵산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조망'이 선정된 연유를 알 것 같다. 시인 정지용도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한때 환경훼손 논란을 일으켰던 미륵산 케이블카의 곤돌라들이 그 풍경 가운데로 획을 그으며 분주히 움직인다. 정상 주변에 당포해전·한산대첩·통영상륙작전·박경리 묘소 전망대 등도 있다. 다 둘러보려면 수십 분은 족히 넘겠다.

당포해전 전망대를 통과해 나무 계단으로 내려오면 미래사 방향 이정표가 있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50m쯤 가면 다시 미래사로 꺾이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 케이블카 승객과 등산객이 섞여 주말에는 복잡할 수 있으니 길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이제부터 능선 사면을 따라 미래사까지 간다. 미래사 방향 이정표만 놓치지 않으면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7분 정도 솔숲을 내려오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미래사. 울창하고 빽빽한 편백 숲이 기다린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심은 것이다.

미래사는 효봉 스님을 모시던 구산 스님이 1954년 토굴 두 칸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효봉의 제자인 법정 스님과 일초 스님으로 불린 작가 고은이 이 절에서
공부했다. 일제강점기에 판사를 지내다 늦은 나이인 38세에 출가한 효봉은 선정에 빠지면 미동조차 하지 않아 '절구통 수좌'로 불렸다. 미래사에서 370m 떨어진 미륵전 옆에 스님이 앉아서 풀이 나지 않는다는 수도 터가 있다.

미래사에서 다시 삼거리로 나온다. 이제부터 미륵산 2~3푼 능선을 따라 난
둘레길을 걷는다. 삼거리에서 띠밭등까지는 15분 정도. 케이블카를 타려면 띠밭등에서 도남동 쪽(띠밭등~케이블카 하부역사 1.2㎞)으로 가면 된다. 케이블카는 동절기(10~2월)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길이 1천975m로 국내 최장이다. 요금은 편도 5천500원(왕복 9천 원), 운행시간은 10분(편도 기준) 정도 소요된다.

띠밭등에서 5분 정도 가면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산행 안내리본을 참고하자. 10분 정도면 용화사에 닿는다. 템플스테이 전수관 공사가 한창이다. 절 뒤 언덕에는 효봉 스님 석조 좌상이 있다. 용화사에서 용화사 광장까지는 5분 정도 걸린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통영 미륵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통영 미륵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