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용아장성능
솔길 남현태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설악산 용아장성능 산행을 위해 1박 2일 예정으로 설악산 용대리로 출발한다. 원래 계획은 대구에 있는 산악회를 통해 15명이 대형 버스로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출발 하루 전 대구에서 같이 가기로 한 단체팀이 비상근무로 불참하는 바람에 포항에서 5명과 대구지역 3명(안내인 포함) 총 8명이 15인승 봉고차로 출발하기로 약속되었다. 차 멀미를 하는 나로서는 작은 봉고차가 상당한 부담이 가중된다.
산에 갈 때는 항상 그렇듯이 대구에서 출발 약속 시간이 7시 40분인데 새벽 3시에 벌써 잠을 깨어 컴퓨터 앞에서 어물쩍 거리며 출발 시각을 기다린다. 5시 30분에 집을 나와 포항시내에서 일행 4명을 태우고 대구 성서의 약속장소에 7시경에 도착했다. 대구에서 가이드 등반대장이 준비한 봉고를 타고 설악산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각자 산행 준비를 하고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편도 요금이 인당 2,000원이다.
백담사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수렴동 대피소까지 걸어가는 길은 백담사 계곡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모두 저녁 준비가 분주하다. 내일 용아장성 산행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안주로 삼아 소주와 동동주를 건아 하게 걸친 푸짐한 만찬을 해결하고 내일 점심밥까지 카레 주먹밥으로 준비해 두고는 새벽 산행 출발을 위해 모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지만 통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돌아눕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공간에 곰팡이냄새가 나는 대피소 분위기도 그렇지만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피리 소리, 바드득 바드득 이빨을 갈아대는 악기 소리, 술을 먹다가 늦게 들어와서 담요를 잃어 버리고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지거리를 해대는 노랫소리에 자다가 시끄럽다고 짜증 내며 고함치는 앵콜소리 주위가 온통 야외 공연장인지 피난민 대피소 인지 어수선하고 살벌한 분위기다. 미리 준비했던 귀 마개를 잊어버리고 집에 두고 온 것을 후회하면서 침랑속으로 폭 들어가 무릎이 코에 닿을 정도로 웅크리고 밤새도록 뽀스락뽀스락 이리저리 골고루 몸을 뒤집어가며 새우잠을 청해본다.
새벽 4시에 모두 일어나 각자 들뜬 마음으로 행장을 챙기고 코펠에다 펄펄 끌인 라면을 모두 젓가락을 들고 달려들어 흐르는 국물을 라면 봉지로 받쳐가며 뜨거워서 후후 불어댄다. 그렇게 허기를 달랜 후 04시 50분경 용아장성 산행길의 대장정에 오른다. 사방이 캄캄한 새벽에 랜턴 불을 이마에 달고 가이드의 뒤만 졸졸 따라서 등산금지 구역이라 주위의 눈치를 보아가며 대피소 뒷산 급경사 길을 헐떡대며 뛰어들어 오른다. 대구에서 오신 두 분은 산행 대장의 친구 분 들인 데 산행경험이 많아 우리 일행의 앞뒤에 서서 길을 안내하고 산행대장님은 앞서 나가며 위험한 곳에선 미리 로프를 메어 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운 산행길 용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여기저기 카메라를 대고 셔터를 눌러 보지만 번쩍하면서 찍히는 것은 몇 개의 소나무 가지와 바위 조각뿐이고 주위는 온통 깜깜하다. 날이 밝아 경치가 보일 때까지 기다리다 천천히 오르고 싶은 심정이지만 등반대장님 왈 뒤에서 따라 올라오는 팀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 개구멍바위에서 밀리기 전에 맨 앞에 먼저 가야 한단다. 멀리 오세암 불빛이 희미하게 비칠 무렵 어느새 우리는 어둠 속으로 아찔한 뜀바위를 넘어서 개구멍 바위에 이르럿다. 개구멍 바위에는 안전 로프가 없으면 대단히 위험하다. 대장이 로프를 치는 동안 어슴푸레한 주위를 둘러보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주위에 어둠이 서서히 겉치고 로프를 메는 동안에 동녘 하늘이 점점 밝아온다. 어두 침침한 개구멍 바위의 모습을 드려다 보니 을 시년 스럽다. 조기 안에 박힌 바위를 밖으로 벼랑 쪽을 돌아서 한참을 기어올라가야 한다. 좌측 아래는 수십 길 낭떠러지다. 아차 실수라도 하는 순간에는 그대로 황천길로 가야 한다. 로프를 메기가 힘이 드는지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어 이제는 건너편 오세암이 선명하게도 보이고 하늘을 쳐다보니 태양이 비치는 구름의 형상과 색깔이 오색 비늘처럼 참으로 아름답다.
잠시 후 뒤따라온 팀의 안내인까지 합세하여 밧줄을 멘다. 줄이 다 매어지고 내가 맨 먼저 개구멍을 어렵게 통과하는데 기어들어 가면서 몸을 들어라고 하는데 등에 멘 45리터짜리 배낭이 자꾸 위쪽 바위에 걸리는 것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마지막 통과 부분에서는 개구멍에 박힌 바윗돌을 바깥쪽으로 돌아서 나가야 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커먼 낭떠러지가 아찔한 것이 오금이 저리고 마음과는 달리 몸은 아직 죽기가 싫은지 자꾸만 좁은 공간의 안쪽 바위틈으로 파고들어간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휴 이제야 살았다. 뒤를 돌아보니 조기 튀어나온 바위를 돌아서 통과하기가 그렇게 두려울 줄이야 그래서 바동거리며 기어 나온다고 개구멍이라고 하는가 보다. 머리 위에는 이곳을 통과하다 떨어져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동판이 바위에 박혀 있는데 쳐다보니 섬뜩한 느낌이 든다. 여기가 옛날에 축구 국가대표 감독하시던 분이 떨어져 죽었다는 곳인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두려움에 소름이 끼쳐온다.
사방이 점점 밝아왔다. 추모 동판을 바짝 당겨서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마음이 떨리니 손까지 떨렸는지 사진이 흐리기만 하다. 전원 무사히 통과하여 올라가다가 돌아보니 어느덧 개구멍 바위 앞에는 수백 명이 줄을 서서 두려움에 벌벌 떨며 기다린다. 서둘러 빨리 오기를 참 잘했다며 모두 즐거워하는 표정들이다. 대장님의 깊은 뜻을 이제야 깨우치며 여유를 가지고 잠시 쉬어가잔다. 앞을 바라보니 가야 할 용아의 봉우리들은 서슬이 날카롭기만 하다. 용아의 노송들은 죽어서도 고사목이 되어 하늘을 바라보며 유구한 세월 하늘을 향해 활갯짓을 하고 있다.
바위에 붙어서 어렵사리 꽃을 피운 외로운 야생화와 날카로운 용의 이빨을 한 바위들 그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지독한 노송들과 고사목 그리고 비단에 수를 놓은듯한 아름다운 새벽 하늘에다 정신없이 사진기를 겨누면서 용아의 봉우리를 하나하나 타고 넘어가는데 등 뒤로는 오세암이 점점 아련히 멀어져만 간다. 날이 점점 밝아지니 날카로운 암릉과 오색 단풍의 조화를 바라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 여가가 없다. 오르고 내리는 바위길을 수없이 반복하며 맞은 편 오세암에서 오는 꾼들도 이제 가끔 만난다.
저 높은 꼭대기에 바위틈 마다. 신기하게도 제각기 자리를 잡고 뿌리를 밖은 노송들이 고된 삶을 이어가며 날카로운 용아의 암봉들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활갯짓을 해 대는 자연의 아름다운 진풍경이다. 바위에 콕 박혀 어렵게 살아온 노송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나 인제 그만 죽어 버릴까?, 참고 조금만 더 살아볼까?" 그렇게 자신에게 수없이 되물어가며 수백 년의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을 것이다.
때로는 올라가기가 쌍그러운 위험한 곳도 있고, 가끔 걸어온 길 돌아보니 아찔할 정도로 장관이요 걸어갈 길 앞을 보아도 장관이다. 우측에 수렴동 계곡도 아름답긴 마찬가지다. 마주 오는 사람을 기다리면서 단풍의 화사한 때깔에 매료되기도 해보고 미끄러운 바위에서 더듬대며 너무 느리게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기다리기가 지루하여 위험하게도 옆으로 비집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 "올라가게 빨리빨리 좀 내려 오이소."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위험한 곳에서 그럴 수는 없고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 오이소" 라고 하며 한발 한발 오르다 보면 어느덧 정상이다.
새처럼 생겨서 새바위라고 하는지는 몰라도 하도 커서 무거워서 못 날겠다는 농담도 주고받으며 가는데 날카롭고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하나 앞에 놓인다. 높다. 높아 어이 갈꼬 잠시 쉬어서 가잔다. 그러나 여기서 다른 일행들과 헤어지고 말았다. 일행들이 쉬는 동안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없기에 그 틈을 이용해 혼자 먼저 올라가서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핸드폰 통화를 해봐도 안 되고 무작정 기다리자니 우회 길로 돌아서 먼저 갔을 것 같은 예감에 혼자서 괜스레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자꾸 든다. 봉정암이 1차 목적지 므로 할 수 없이 미지의 암릉길을 혼자서 봉정암까지는 가야만 한다.
대장과 소속 부대를 잃어버린 낙오병은 다른 부대와 합류해야만 살아남는다. 한 발 잘못 디디면 저승길이 보이는 험한 암벽길을 혼자 가기가 두렵다. 그래서 단체산행 팀인 울산의 알프스산악회 회원들의 뒤를 따라 눈치를 보아가며 슬슬 꼽사리 끼어서 함께 걸었다. 걸어온 능선길 돌아보니 행인 모습이 마치 개미들이 기어 다니는듯하고, 앞에는 멀리 소청봉과 가야 할 무시무시한 용아의 암릉길이 버티고 있다.
좌측 가야동 계곡 쪽 단풍 풍경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온다. 이 험한 산에 부부가 함께 산행을 하는 정겨운 모습들도 보인다. 저기 앞에 가는 울산 아지메 정말로 산을 잘 탄다. 날카로운 용의 이빨 싸이의 설익은 단풍도 바위와 조화를 이루니 아름답기만 하다. 가자 저 아름다운 용아를 하나하나 타고 넘어서 살금살금 기어서 가다가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잠시 고개 들어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본다. 걸음을 멈추고 절경 속에서 쉬어가고 싶었지만 그러나 외톨이는 항상 마음이 바쁘다.
칼등바위를 지나니 바위 모양이 마치 가지가지 만물상이다. 불안한 자세로 사진 찍는 아저씨도 보인다. 아저씨 조심하이소 떨어지면 황천이라요. 수렴동(구곡담)계곡 울긋불긋 끝없이 이어지는 암릉길 그냥 감탄하여 입만 벌리고 앞으로 나아 간다. 손대면 톡 하고 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암봉들의 자태가 더 아름답다. 구곡담 계곡의 아름다움 공룡능선의 모습을 바라보며 때로는 비탈 암벽에 붙어서 나가는 길이 대단히 쌍그럽다. 쳐다보니 단풍이 바위와 어우러져 자태를 더하고 올라와서 돌아보니 천 년 불변의 바위라면 더 좋고요, 천수를 다한 고사목이라도 좋아요, 이곳에 영원히 머물 수 만 있다면 나는 여기서 살고 싶다.
고사목 사이로 바라본 천년 바위의 대장군 같은 위용이 가던 나를 멈춘다.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용아에도 단풍이 달라 붙어 있다. 양치질 좀 해야겠다. 구곡담 계곡에 뾰쪽하게 달라붙은 저 바위는 무엇인고 혼자 뭇고 답하고를 반복하면서 드디어 마지막 난코스 30M 수직 벽을 통과했다. 후~유~ 30M 하강 수직 벽의 전경을 사진기에 담고, 다시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 그 아슬아슬했던 용아장성능의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우리 일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벌써 지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오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손전화를 걸어보지만, 통화도 안 되고 하여 혼자서 잠시 머뭇거리며 기다리다가 아늑한 봉정암으로 향한다. 봉정암 가는 길엔 단풍이 다사롭다. 봉정암 뜰 안엔 온통 산꾼들로 붐빈다.
용아장성 등반에 6시간이 소요되어 오전 10시 50분에 봉정암에 도착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우리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봉정암 주위를 돌아보며 주위 풍경들을 사진기에 담은 후 한쪽 자리에 혼자 앉아서 원기 보충을 한다. 어제 사온 설익은 차가운 카레 주먹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다가 다시 올라온다. 초콜릿과 과자로 요기하며 다시 일행에게 전화를 해보니 이제 마지막 수직 벽에서 하강 대기 중이란다. 한참을 혼자서 앉아있으니 등에 땀이 식어서 한기를 느끼며 배낭에서 겉옷을 꺼내서 입어본다.
정확히 11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봉정암에서 등산객들에게 점심 공양을 한다. 모두 미역국과 밥을 타다가 먹기에 뜨거운 국물이나 한 그릇 얻어먹을까 하고 줄을 섰다가 혼자서 타다가 먹기가 좀 그러하여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일행을 기다려 본다. 봉정암 뒤쪽의 바위들이 참 아름답다. 무려 1시간 10분을 기다린 12시쯤 되어서 일행들이 내려왔어 함께 점심 공양을 받으러 갔으나 밥은 다 떨어지고 미역국만 한 그릇씩 얻어다가 어제저녁에 싸온 주먹밥을 말아서 모두 부처님의 은덕으로 점심을 따뜻하게 해결한다.
이제 가야동 계곡으로 하산하기 위해 봉정암에서 우측 언덕을 오르니 사리탑이 있다. 사리탑에서 한 사람의 비구니가 열심히 절을 하고 있다 아마도 삼천 배를 올리나 보다. 여기서 바라본 소청봉도 아름답고 용아장성능의 모습도 장관이다. 아름다운 용아의 곡선을 감상하면서 걸어온 길 돌아보니 참 대견스럽고 꿈 같은 산행이었다.
공룡능선 쪽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소청봉에도 점점 구름이 덮인다. 아늑한 봉정암의 모습을 뒤로하고 하산길은 아름다운 계곡 경치가 빼어난 가야동 계곡으로 향한다. 용아능선도 산행금지 구역이라고는 하지만 산행하는 사람이 줄을 이었으며 가야동 계곡에도 역시 통제 구역이지만 막상 들어오니 산꾼들이 더러 있다.
일행이 계곡에 내려서니 단풍이 제대로 물들어 정말 아름답다. 절경이 따로 있나! 여기가 절경일세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또 집에 가기 싫어진다. 이 좋은 풍경을 두고 어이 갈거나 모두 발길이 자꾸만 더디어진다. 속세의 모든 시름 툭툭 털어 버리고 여기 이대로 그냥 머물 수만 있다면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않으련만 어찌 이리도 고울 수가 오색 단풍과 계곡 풍광에 그냥 눈이 부실 뿐이다.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계곡의 하류로 내려올수록 단풍 시기가 좀 이르다. 그래도 그 아름다움이야 어디 가랴 바위 홈통에 박힌 초목에 단풍이드니 그 아름다움 더 한다. 수렴동 대피소 뒤편으로 내려오니 양심 저리게 하는 입산 통제 표지판이 보인다.
백담사 앞 다리 위에는 셔틀버스의 승차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북적인다. 다리 위에서 줄을 서서 승차순서를 기다리며 어둠이 깔리는 백담사 계곡을 사진기에 담아도 보면서 지루하게 1시간 이상 기다려서 셔틀버스를 타고 용대리 주차장으로 나와 봉고차로 대구 성서까지 달려왔어, 다시 내 차로 포항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다. 그 명성만큼이나 꿈에 그리던 이틀간의 즐거운 설악산 용아장성능 산행길을 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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