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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바닷바람과 아찔한 온천물의 만남… 지금이 그 때다

호젓한오솔길 2012. 12. 21. 22:56

[따뜻한 국내여행]

아찔한 바닷바람과 아찔한 온천물의 만남… 지금이 그 때다

부안=글·이영민 기자 

사진·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변산반도 여행

상극(相剋)은 서로를 더욱 강화해주는 힘을 가진 것일까? 한겨울 매서운 바닷 바람 속에서 온천욕을 하고 나면 머릿 속은 더 맑아지고 몸은 한층 개운하게 느껴진다. 대명리조트 변산 아쿠아월드 노천탕에서 한 여성이 스파를 즐기고 있다.

 

이번 주엔 '피한(避寒)여행 특집', 국내편이다. 스산하지만 아름다운 겨울바다와 온천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들을 모았다. 새해 첫 해돋이를 맞이할 수 있는 전국의 일출 명소와 해맞이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을 마련한 전국의 불교사찰도 소개한다.

 

신라시대 문인 최치원은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가야산 독서당에 부침)'이란 시에서 가야산 물소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狂奔疊石吼重巒(바위 사이를 내달리며 온 산에 소리쳐)

人語難分咫尺間(지척에 있는 사람 말도 못 알아듣겠네)

常恐是非聲到耳(시비 다투는 소리가 들릴까 걱정되어)

故敎流水盡籠山(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감쌌구나)


물은 인간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거대한 소리를 내어 세상의 소리를 막아주는 것이다.

큰 소리라면 겨울 바다도 지지 않는다. 겨울이면 바다는 바람을 타고 흔들리며 한껏 목놓아 운다. 이 파도 소리가 가득한 해변에 서면 생활에서 오는 근심 걱정은 물론 한숨과 푸념조차 들리지 않는다.

겨울 바다가 유독 고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소리에 잠시 귀를 닫으면 생각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두툼한 털모자 속으로 파고드는 바닷바람을 맞으면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아찔해졌다가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그렇게 차가운 해풍을 맞다 보면 자연히 온천(溫泉)욕이 떠오른다. 굳이 지열에 데워지고 광물 성분이 녹아든 '정통 온천'이 아니라도 좋다. 겨울 바다에서 털어낸 고민의 자리를 채워줄 온기만 있다면 충분하다.

겨울 바다를 맞고 선 채석강

채석강에는 거센 파도와 차가 운 바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 냉랭함을 뚫고 절벽에 한 걸음 가까이 가면 역사가 빚어낸 예술품을 만나게 된다.

 

지난 17일 찾아간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해수욕장은 이러한 겨울 바다의 진수였다.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에선 겨울 바다가 사납게 일렁이고 있었다. 얼마나 기온이 내려간 것일까? 해안가에는 스티로폼처럼 얼어붙은 하얀 물거품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잔뜩 성이 나서 뭍으로 달려오던 파도가 한 줌 물거품으로 끝나는 그 모습이 헛된 욕심의 끝과 닮아 있었다.

바다의 옆은 10여m 남짓한 검붉은 암석 절벽. 한겹 한겹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듯한 절벽 곳곳에 헐벗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황량하고 쓸쓸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노인의 주름살 같기도 했고, 길고 긴 세월을 기록한 거대한 역사책을 옆으로 눕혀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절벽 한쪽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이곳은 약 7000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퇴적층이 파도에 깎이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물이 빠지니 채석강의 너른 갯바위가 드러났다. 바위 위에는 굴이나 조개껍데기 같은 바다의 흔적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이 바위에서 부모는 아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연인들은 단단하게 팔짱을 끼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채석강 위쪽 닭이봉(85m) 팔각정에선 적벽강이 보였다. 채석강과는 격포해수욕장을 놓고 마주한 곳. 이곳 역시 해안 절벽이다. 이 절벽 위엔 수성당(水聖堂)이란 당집이 있는데, 풍랑에서 어부를 보호하는 여신 '개양할미'의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개양할미는 아홉 딸을 낳아 전국 팔도에 나눠준 뒤 막내딸만 데리고 이곳 수성당에 살면서 서해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여덟 딸은 각각 전국 팔도를 지켜주는 신이 되었단다.

따뜻한 노천탕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아쿠아월드 실외 유수풀.

 

겨울 바다의 낭만도 잠시. 몸이 빳빳하게 얼어붙었다. 채석강 바로 옆에 있는 대명리조트 변산 아쿠아월드로 향했다. 이곳은 총면적 7317㎡(3000여평),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되어 있는 물놀이 공간이다. 온천수는 아니지만, 기포탕·동굴탕 등 온수 찜질 시설과 미끄럼틀·바스켓 폭포 등 다양한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중에서도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격포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즐기는 노천탕이다. 레몬, 라벤더, 솔 등 천연 성분을 물에 풀어 피부에도 좋지만 색감도 예쁘다. 수온을 39~41도 사이에 맞춘다고 하더니 차가운 바깥 날씨에 맞춰 힘차게 허연 김을 뿜어냈다. 탕 속에 몸을 담그니 매섭던 겨울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회색빛 겨울 바다 위로 탁 트인 하늘에선 청량한 공기가 쏟아졌다.

"뚜~ 뚜~ 뚜~" 짧은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10분 후 해가 진다는 신호다. 해질 무렵이면 세 칸짜리 이 노천탕은 석양을 보러 온 사람으로 북적인다. 바다로 떨어지는 태양 덕에 탕에 몸을 담근 이들의 얼굴도 붉게 물든다. 그러고 보니 따뜻한 물로 온몸을 감싸주는 일도 사람을 평온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여행수첩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줄포IC에서 나와 들어가면 바로 변산반도로 들어설 수 있다. 아니면 군산으로 들어가 새만금 방조제(33㎞)를 타고 변산으로 갈 수도 있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부안터미널까지 하루 16차례 운행되는 고속버스(약 2시간50분)를 이용할 수도 있다.

동진강과 만경강이 흘러드는 새만금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제1의 백합 산지로 꼽혔다. 하지만 간척사업이 진행된 이후 잡히는 백합의 수가 크게 줄어, 지금은 다른 지방에서 백합을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여전히 따끈한 변산반도의 백합죽<사진>은 차가운 바닷바람에 꽁꽁 얼었던 여행객들의 몸을 사르르 녹여주고 있다.

채석강이 있는 격포에서 백합죽을 먹는 곳으로는 군산식당(063-583-3234)이 유명하다. 1인분에 1만1000원짜리 '충무공정식'을 먹으면 백합죽과 간장게장, 갑오징어무침 등 풍성한 상차림을 받을 수 있다. 식사 인원에 따라서 백합죽보다 바다냄새가 풍부한 바지락죽을 맛볼 수도 있다. 소문이 많이 난 백합집을 찾는다면 부안IC 부근의 계화회관(063-584-3075)도 좋다. 대항리에 있는 변산온천산장(063-584-4874)은 바지락죽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