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여러 의미의 백두대간
1)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 땅을 산과 강이 정연한 원칙에 따라 어우러져 있는 유기체와 같은 존재로 바라보았다.
전통적 지리 인식체계에서는 산의 흐름을 살아있는 나무에 비유하여, 기둥줄기와 큰 줄기, 그리고 작은 줄기와 곁가지로 나뉘는 것으로 보았고, 줄기와 줄기 사이, 가지와 가지 사이에 강이 생성되어 흐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국토’를 달리 표현할 때에는 산천(山川), 산수(山水), 산하(山河), 강산(江山) 등과 같이 ‘산’과 ‘물’을 함께 일컬어 ‘나라 땅’을 나타내었다.
이렇게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원리를 ‘산수경(山水經)의 원리’, ‘산수분합(山水分合)의 원리’ 또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원리로 전통적 자연관, 산천관, 지리관, 국토관을 설명한다.
백두대간은 이러한 전통적 국토지리 인식체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때의 백두대간은 나무 한 그루, 곧 국토 전체를 의미한다.
2)'산경표'가 분류하고 있는 1대간(大幹)ㆍ1정간(正幹)ㆍ13정맥(正脈) 중 1정간ㆍ13정맥과 그 정간ㆍ정맥에 딸린 부속 산지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백두대간으로 보는 개념이다. 이 경우의 백두대간은 기둥줄기와, 이에 부속된 기맥(脈) 또는 지맥(支脈)을 모두 포함하게 된다.
백두대간에서 정간ㆍ정맥이 갈라져 나가듯이 정간과 정맥에서도 수많은 갈래가 나뉘어 뻗으며, 백두대간에서도 정간ㆍ정맥 이외의 수많은 갈래가 뻗어나간다. 마치 큰 나무의 기둥줄기에서 굵은 가지가 뻗어나가고, 가지마다 곁가지가 있고, 기둥줄기에서도 곁가지가 뻗어나가는 것과 같다.
넓은 의미의 백두대간은, 나무에서 굵은 줄기만을 잘라내고 기둥줄기에 붙은 곁줄기와 곁가지를 모두 남겨둔 모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산경표'는 이 넓은 의미의 백두대간에 산과 고개 이름 464개를 수록하고 있으며, 정맥에 준하는 규모를 가진 산줄기와 함께 수많은 갈래가 포함되어 있어, 단일한 산줄기로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3)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원산 - 낭림산 - 두류산 - 분수령 - 금강산 - 오대산 - 태백산 - 속리산 - 장안산 - 지리산에 이르면서 한 번도 물줄기에 의해 잘리지 않고 이어져 내리는 큰 산줄기를 일컫는다.
이때의 백두대간은 단일한 산줄기로서 ‘백두대간’이라는 고유명사를 가지게 되는 ‘연속된 산지체계’이다. 정간과 정맥은 물론 작은 갈래까지 모두 제외한, ‘산지 분류체계의 중심(척량, 등뼈) 산줄기’로서 대표성을 가지게 된다.
'산경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이 백두대간의 산과 고개를 123개 항목(이름은 124개)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무에서 모든 줄기와 곁가지를 잘라내고 남은 기둥줄기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좁은 의미의 백두대간에서 백두대간의 지리적ㆍ공간적 실체와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
4)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지도상의 거리로 약 1,625km에 달하며, 남한의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약 690km에 이르는 장대한 산줄기라고 알려진 개념이다. 그런데,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 개념의 백두대간은 가장 좁은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의 백두대간은 ‘연속된 산지체계’(mountain system)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연속된 산지의 ‘정상부 능선’(稜線, ridge line)을 따라 걷는 ‘종주 산행 노선(trail)’ 과 그 길이를 일컫는 것이다. 흔히 산악인들이 ‘백두대간을 종주한다’고 하는 것은 ‘분수령’(分水嶺)이 아닌 분수령의 ‘정상부 능선’(ridge line), 곧 분수계(分水界, divide line) 또는 분수 능선(分水稜線)을 산행 노선으로 삼는 ‘산행 유형’의 하나이다. 백두대간의 존재가 처음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기에 한국대학산악연맹 소속 대학생들이 그 실체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종주 답사한 이후, 그 보고서를 연맹 회보에 실은 것을 계기로 산악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고, 산행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때의 백두대간은 종적(縱的)인 개념만 가질 뿐 횡적(橫的)인 개념을 내포하지 않으며, 넓이(area)나 규모(입체, mass)를 생각할 수 없어 산지(山地, mountain zone, mountain land, upland)의 지리적 범위를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 산경표
산경’(山經)이란 산의 경과(經過), 즉 산의 흐름을 천(직물)의 날줄(날실)에 비유한 말이다. '산경표'는 우리나라 산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로 흐르다가 어디서 끝나는지를 족보 형식으로 도표화(圖表化)한 책이다.
백두산(白頭山)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기둥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하고, 이 기둥줄기로부터 뻗어나간 2차적 산줄기를 정간ㆍ정맥으로 분류하고 이름을 붙여,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대간ㆍ1정간ㆍ13정맥으로 체계화하였으며, 이 줄기에서 갈라져 나간 크고 작은 갈래의 산ㆍ고개ㆍ일반 지명을 산줄기별로 분류하여 도표로 만들었다. 편집체제를 마치 족보와 같이 하였는데, 백두산을 1세 할아버지로 친다면 지리산은 123세 손이며 가장 길게 뻗어나간 줄기의 마지막 자손은 전남 광양의 백운산으로서 171세 손이 된다.'산경표'는 한 마디로 우리나라 산의 족보이다.
'산경표(山經表)'는 '해동도리보(海東道里譜)', '기봉방역지(箕封方域誌), '산리고'(山里攷, 이상 서울대학교 규장각),'여지편람'(輿地便覽)(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해동산경'(海東山經, 국립중앙도서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된 책의 일부로서 '정리표'(程里表, 道里表)와 함께 전해온다. 모두가 한문으로 된 필사본(손으로 쓴 책)이며, 필자와 연대를 밝히지 않았고 서문이나 발문도 싣지 않고 있다.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가 단행본으로 펴낸 '산경표'(山經表)는 한문본이기는 하지만 활자화되어 있어 비교적 읽기가 쉬운 편이다. 조선광문회는 육당 최남선이 주축이 되어 우리 고전(古典)의 보존과 보급을 통해 민족문화를 선양할 목적으로 1910년 12월 만들어진 단체이다. 이 조선광문회가 최성우(崔誠愚) 소장본을 바탕으로 1913년 2월 간행한 활자본 '산경표'를 조선광문회본 '산경표'라고 부른다. 잡지만한 크기(28.7×18.3㎝)이며, 102쪽(원문에는 頁[혈]이라 표기)으로 되어 있다. 산ㆍ고개ㆍ일반 지명 1,580개 항목을 싣고 있는데, 누락 사항 등을 정리하면 산 1,139개, 고개 411개, 일반 지명 61개 등 모두 1,611개 항목이 된다. 후에 이 책을 영인(사진을 찍어 인쇄하는 일)하여 발간한 것도 있고, 최근에는 한글로 옮긴 책도 나왔다.
▶ 백두대간의 실체
백두대간과 ‘백두대간 종주 노선’은 그 개념을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산과 등산로를 동일시할 수 없듯이, 설악산과 설악산의 특정 등산로를 동일시할 수 없듯이, 백두대간이라는 산줄기와 백두대간의 종주 노선은 서로 동일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백두대간을 ‘점(點)과 점을 연결하는 선(線, line)’으로 이해하려 하면 그 지리적ㆍ공간적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지도에 산을 나타낼 때 산의 정상부(peak)에 ▲기호와 함께 산 이름을 표기한다고 하여 그 삼각점(peak point)만을 산으로 볼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갯마루에 고개(pass) 이름을 표기한다고 하여 그 고갯마루를 고개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산과 고개는 산등성이의 정상부에 있는 특정 지점(point)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평지로부터 출발하여 그 사면(斜面)을 오르고 정상이나 고갯마루를 지나 반대편 사면을 통하여 다시 평지에 내려서는 전구간을 뜻한다. 곧 종(縱)으로 늘어선 산지에서는 그것을 횡(橫)으로 가로지르는 길[路]이 고개이다. 그리고 ‘능선’(稜線)이라는 말도 사면(斜面)을 포함하는 ‘산릉’(山稜, 산등성이, ridge)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고 그 ‘정상부 능선’(산날, 마루금, ridge line)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백두대간의 개념과 지리적 범위를 이해하려면 우선 이러한 사실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백두대간은 ‘산-고개-산-고개-산-고개……’로 이루어진 ‘연속된 산지체계’이다. 백두대간은 남북으로 길이를 가지면서 높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하며, 동서로 폭(width)을 가지면서 넓어졌다 좁아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연속된 산지체계(mountain system)이다. 지도에서는 넓어졌다 좁아지기를 반복하는 면(面)과 면의 연결 구조로서 장대한 띠[帶, belt] 모양[帶狀]을 이루며, 지상에서는 넓고 높은 공간적 규모(입체, mass, body)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백두대간의 본질적 속성이다. 백두대간의 실체는 ‘지대’(地帶, zone)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백두대간이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線)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설악산의 경우 ‘미시령 - 황철봉 - 저항령 - 마등령 - 공룡능선 - 대청봉 - 끝청봉 - 한계령……의 정점을 잇는 능선’ 으로 기록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산경표'는 이 구간을 ‘미시파령(미시령) - 설악산 - 오색령(한계령)……’으로 기록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 전체 …… 미시령 전구간, 설악산 전체, 한계령 전구간 …… 오대산 전체 …… 지리산 전체’로 이루어진 ‘연속된 산지체계’이지, 결코 특정 산의 특정 산릉(山稜, ridge)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특정 능선(ridge line)으로 이루어진 산행 노선(trail)도 아니며, 선(line) 자체는 더욱 아니다.
어느 산의 주봉(主峰)이나 정점(頂點)이 백두대간이나 정맥의 주능선(마루금, ridge line) 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이를 ' 산경표'의 오류 또는 부정확한 사례로 지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산경(山經)의 구조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산경표'의 산줄기 구조는 어느 산의 주봉(主峰)이나 정점(頂點)이나 주능선(主稜線)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산 전체를 포함하는 구조이다. 어느 산 하단의 아주 짧은 한 구간만이라도 그 줄기에 포함되어 물을 가르는 분수령(分水嶺) 역할을 하고 있으면 그 산 전체를 거쳐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하기 때문에 개별(특정) 산의 주향(走向)은 정간ㆍ정맥의 주향과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대간ㆍ정간ㆍ정맥은 개별 산의 특성을 뛰어 넘어 ‘산지의 연속된 체계’로서 큰 물줄기의 분수령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분수령(分水嶺) 역할을 담당하는 산지의 연속된 체계’이다. ‘산’이란 ‘주변의 평지보다 우뚝하게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을 말하며, 그러한 지형이 연속되어 있어 물의 흐름을 양쪽으로 갈라놓는 역할을 할 때 그 연속된 산지를 ‘분수령’ (분수 산줄기)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분수계’(分水界, divide, divide line)란 분수령(분수릉) 정상부의 무수한 지점(point)과 지점을 연결하는 선(line)으로서, 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흐르는 경계선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간ㆍ정간ㆍ정맥(great mountain chain, mountain range, mountains) 체계와 분수계(divide line)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분수계’는 대간ㆍ정간ㆍ정맥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의 하나일 뿐이다. 백두대간은 합당하고도 온당한 지리적(geographical) 범위(domain, zone)를 점유하고 있는 존재이다. 거대한 자연환경의 장(場, field)이며, 생태의 장이며, 스스로 살아있는 자연이다.
◆ 백두대간
○ 백두대간 유래
우리국토의 등뼈를 이루는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유래는 우리민족 고유의 성산인 백두산(白頭山)의 신성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백두산은 고대 단군신화로부터 시작해서 언제나 크고 높으며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겼으며 본격적으로 숭배화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 생각된다.
또한 조선 세종때 두만강,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을 확보함에 따라 백두산은 영토의식 성립과 함께 민족의 산으로 명실상부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관찬사료인 세종실록에 [백두산(白頭山)의 내맥(來脈)], 조선왕조실록에는 산맥 ·정맥 ·대맥 등의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이르러 함경도지도, 이익의 성호사설등 고지도와 지리서에 [백두대간]이라는 표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산줄기로서, 총길이는 약 1,400km에 이른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이다.
※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표시된 15개의 산줄기들은 10개의 큰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그것을 구획하는 울타리이다.
1대간 : 백두대간 (백두산∼두류산∼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
1정간 : 장백정간(원산∼서수라곶산)
13정맥 : 청북정맥(낭림산∼미곶산)
청남정맥(낭림산∼광량진)
해서정맥(개연산∼장산곶)
임진북예성남정맥(개연산∼풍덕치)
한북정맥(분수령∼장명산)
한남정맥(칠현산∼문수산)
한남금북정맥(속리산∼칠현산)
금북정맥(칠현산∼안흥진)
금남정맥(마이산∼조룡산)
금남호남정맥(장안치∼마이산)
호남정맥(마이산∼백운산)
낙동정맥(태백산∼몰운대)
낙남정맥(지리산∼분산)
※산이름으로 된 것(2개) : 백두대간, 장백정간
※지방이름으로 된 것(2개) : 호남정맥, 해서정맥
※강이름으로 된 것(11개)
10대강 :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산줄기 15개 - 1대간, 1정간, 13정맥
산줄기는 각각 1개의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으로 나눌 수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짓는데, 이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라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내용.)의 원리를 따른 것입니다. 이에 따라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한다.
산줄기 이름의 특징은 백두대간과 장백정간같이 산이름을 딴 것이 두 개, 해서나 호남처럼 지방이름을 딴 것이 두 개, 나머지 11개는 모두 강이름을 따서 그 강의 남북으로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산줄기의 순서 역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중심 산줄기로 하고, 여기서 가지 친 장백정간과 낙남정맥을 우선하고, 백두대간의 북쪽으로부터 가지 친 차례대로 그 순서를 정했다.
이와 같이 산줄기 이름을 강에서 따온 것이 많은 까닭은 정맥의 정의를 강유역의 경계능선, 즉 분수령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 강의 위치, 유역의 넓이, 모양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지리인식을 높여 실생활에서의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순서는 백두대간의 북단으로부터 차례대로 강과 그 유역을 파악하여 지형지세를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산줄기의 이름과 강이름을 연관하여 부여한 것은 산이 곧 그 강을 이루는 물의 산지라는 당시의 상식이 담겨 있음이다.
① 백두대간(白頭大幹) :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무산의 허항령과 갑산의 보다회산을 지나 길주의 원산(圓山)에 이르며, 이곳에서 동쪽 장백산을 통해 장백정간을 갈라놓는다. 갑산의 황토령, 북청의 후치령, 함흥 북쪽의 황초령을 지나 영원의 낭림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을 흘려놓는다. 정평의 상검산을 거쳐 영흥의 철옹산까지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양덕의 오강산을 거치고, 문천의 두류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해서정맥을 내려놓는다. 덕원의 마식령, 안변의 백학산을 넘어 평강의 분수령에 이르며, 이곳에서 남쪽으로 한북정맥을 흐르게 한다. 북상하여 안변 남쪽 철령을 지나고, 고성의 온정령을 지나 금강산에 이른다. 남쪽으로 간성의 진부령, 인제의 미시령, 양양의 설악산, 강릉의 오대산과 대관령, 삼척의 백복령과 두타산을 지나 태백산에 이르며, 그 북쪽에서 낙동정맥을 남쪽으로 보낸다. 서남쪽으로 풍기의 소백산을 지나 순흥의 죽령, 문경의 조령, 보은의 속리산에 다다라 서쪽으로 한남금북정맥을 놓아보낸다. 남쪽으로 황간의 추풍령, 지례의 삼도봉, 무주의 덕유산, 장수의 육십령을 거쳐 장안산에 이르고, 여기서 서쪽으로 금남호남정맥을 출발하게 한다. 안의의 백운산과 운봉의 여원치를 거쳐 지리산에 이르러 그 대장정을 마무리하며, 남은 기운을 취령을 거쳐 낙남정맥(정간)으로 흐르게 한다. 한 번도 물줄기에 의해 잘리지 않고 이어내려 오면서 양쪽으로 물을 가르고 산줄기를 흐르게 하는 중심 산줄기이다.
② 장백정간(長白正幹) : 백두대간의 원산(圓山)에서 장백산을 거쳐 동북쪽으로 뻗어 함북 경성의 거문령, 부령의 정탐령, 회령의 엄명산, 종성의 녹야현, 경흥의 백악산을 지나 두만강 하구 남쪽 서수라곶산에서 멈춘다. 함경북도를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가로지르는 이 산줄기 서북쪽의 물은 두만강으로, 동남쪽의 물은 동해로 흐른다.
③ 낙남정맥(洛南正脈) : 백두대간의 끝 지리산에서 취령을 거쳐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경남 곤양의 소곡산, 사천의 팔음산, 고성의 무량산에 이르고, 동북쪽으로 진해의 여항산, 창원의 청룡산과 불모산을 지나 김해의 분산(盆山)까지 흐른다. 낙동강 남쪽을 에워싸는 산줄기이다. 그 서쪽의 물은 섬진강으로, 남쪽의 물은 남해로 흐른다. 장서각본 "산경표"에는 낙남정간(洛南正幹)으로 표기되어 있다.
④ 청북정맥(淸北正脈) : 백두대간의 낭림산에서 시작하여 태백산을 거쳐 서쪽으로 뻗으면서 평북 강계 남쪽의 적유령과 구현, 운산의 월은령, 삭주의 온정령과 천마산, 철산의 백운산, 용천의 용골산을 지나 신의주 남쪽 미곶산에 이른다. 청천강 북쪽, 압록강 남쪽 산줄기이다. 고려 덕종 때(1032~1034년) 축조한 천리장성은 이 청북정맥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⑤ 청남정맥(淸南正脈) : 백두대간의 낭림산에서 영원의 지막산을 거쳐 서남쪽으로 흘러 평북 희천의 묘향산에 이른 후, 계속 서남쪽으로 평남 덕천의 장안산, 개천의 백운산, 안주의 마두산, 숙천의 함박산, 자산의 황룡산, 순안의 자모산과 법흥산, 영유의 미두산, 증산의 국령산, 함종의 호두산, 용강의 봉곡산과 오석산을 거쳐 삼화의 증악산까지 뻗는다. 청천강 남쪽, 대동강 북쪽 산줄기이다.
⑥ 해서정맥(海西正脈) : 백두대간의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서남쪽으로 강원도 이천의 개련산(開蓮山)까지 흐르고("산경표"에는 이 구간에 대한 명칭이 없으나 산줄기의 연속성을 고려하여 해서정맥에 포함한다.), 이곳에서 황해도 곡산의 덕업산과 증격산을 거쳐 북상하다가, 서쪽으로 수안의 언진산과 천자산, 남쪽으로 서흥의 오봉산과 황룡산, 평산의 멸악산과 성불산을 지나고, 다시 서쪽으로 해주의 창금산과 북숭산, 신천의 천봉산, 송화의 달마산, 장연의 불타산을 지나 장산(곶)까지 뻗는다. 대동강 남쪽, 예성강 북쪽 산줄기이다.
⑦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 해서정맥의 개련산에서 남쪽으로 황해도 신계의 기달산으로 갈라져 나와 서남쪽으로 흐르면서 화개산과 학봉산을 지나고, 금천의 수룡산과 성거산을 거쳐 경기도 개성의 천마산과 송악산을 지나 풍덕의 백룡산에 이른다. 이름 그대로 임진강 북쪽, 예성강 남쪽 산줄기이다.
⑧ 한북정맥(漢北正脈) :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강원도 평강의 백빙산으로 갈라져 나와 김화의 오신산, 불정산, 대성산, 경기도 포천의 운악산, 양주의 홍복산, 도봉산, 삼각산(북한산), 노고산을 지나고, 고양의 견달산을 거쳐 교하의 장명산에 이른다. 한강 북쪽, 임진강 남쪽을 흐르는 산줄기이다.
⑨ 낙동정맥(洛東正脈) : 태백산에서 서남쪽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태백산 북쪽에서 벗어나, 경북 울진의 백병산과 평해의 백암산, 영덕의 용두산, 청송의 주방산(주왕산)을 지나고, 줄기차게 남쪽으로만 달려 경주의 단석산, 청도의 운문산, 언양의 가지산, 양산의 취서산, 동래의 금정산을 지나 엄광산에서 멎는다. 낙동강 동쪽 산줄기이며, 그 동쪽의 물은 모두 동해로 흐른다.
⑩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해 회유치를 지나 충북 보은의 피반령, 청주의 상령산, 괴산의 보광산, 음성의 보현산, 경기도 죽산의 칠현산에 이르러 북으로 한남정맥을, 남으로 금북정맥을 갈라놓는다.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을 합친 이름이며, 한강 남쪽, 금강 북쪽 산줄기이다.
⑪ 한남정맥(漢南正脈) : 한남금북정맥의 칠현산에서 경기도 안성의 백운산을 거쳐 북으로 용인의 보개산, 수원의 광교산을 지나 안양의 수리산에 이르고, 다시 서북쪽으로 인천의 소래산과 주안산에 이르고, 서북쪽으로 김포의 북성산과 가현산을 지나 통진의 문수산에 이른다. 한강 남쪽 산줄기이다. 그 서쪽의 물은 서해로, 남쪽의 물은 진위천과 안성천으로 흐른다.
⑫ 금북정맥(錦北正脈) : 경기도 죽산의 칠현산에서 서남쪽으로 안성의 청룡산을 거쳐 충남 직산의 성거산, 천안의 차령, 온양의 광덕산, 청양의 사자산과 백월산에 이르고, 북쪽으로 보령의 오서산, 덕산의 수덕산, 해미의 가야산을 지나 서산의 성왕산에 이르고, 서쪽으로 팔봉산을 지나 태안의 지령산에 이른다. 금강 북쪽 산줄기이다. 그 북쪽의 물은 무한천과 삽교천, 곡교천, 그리고 서해로 흐른다.
⑬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 백두대간의 장안산(영취산)에서 전북 남원의 수분현, 장수의 팔공산을 거쳐 진안의 마이산에 이르고, 주줄산 쪽으로 금남정맥을, 웅치 쪽으로 호남정맥을 갈라놓는다.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을 합친 이름이며, 금강 남쪽, 섬진강 북쪽 산줄기이다.
⑭ 금남정맥(錦南正脈) : 금남호남정맥의 마이산에서 서북쪽 주줄산을 거쳐, 충남 금산의 병산과 대둔산, 공주의 계룡산을 거쳐 부여의 부소산에 이른다. 금강 남쪽 산줄기이다.
⑮ 호남정맥(湖南正脈) : 진안의 마이산에서 웅치를 거쳐 서남쪽으로 태인의 묵방산, 정읍의 내장산, 동남쪽으로 장성의 백암산, 남쪽으로 담양의 금성산, 광주의 무등산, 능주의 천운산과 화악산, 장흥의 사자산에 이르고, 동쪽으로 보성의 주월산, 순천의 조계산을 지나 광양의 백운산에 이른다. 크게 디귿(ᄃ)자 모양을 이루면서 안쪽(동쪽)으로 섬진강을 에두르며, 바깥쪽(서쪽)으로는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을 흐르게 한다.
○ 백두대간식 표기 최초출현
-실질적 내용상의 백두대간이 최초로 나타난 문헌은 10세기 초의 고려 승려 도선이 지은 옥룡기(玉龍記)로서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물의 근원, 나무 줄기의 땅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다음으로 백두대간을 의미하는 대간(大幹) 이라는 용어를 국내에서 최초로 사용한 문헌은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로서 "대간은 끊어 지지 않고 옆으로 뻗었으며 남쪽으로 수천리를 내려가 경상도 태백산에 까지 통하여 하나의 맥령(脈嶺)을 이루었다" 라고 표현되어 있다.
-백두대간과 백두정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문헌은 이익의 [성호 사설](1760년 경)로서, 백두산을 우리나라의 조종산이며 대간의 시작 산으로 보았으며 "백두대간(白頭大幹)"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산맥상황도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백두대간을 체계화한 것은 1770년경(영조)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로서 백두대간에 대해서 그 용어뿐만 아니라 백두산에서 지리 산에 이르는 산맥연결의 상태 · 관계 · 순서를 알기쉽도록 일목요연하게 표로 제시 하였다.
다만 산경표의 저자나 제작시기에 대하여 다른 의견도 있다.
산림청에서는 ['96 백두대간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 의거 여암의 저서 로 추정하여 작성하였다 (여암이 지은 [산수고]에 산경의 내용이 있고 이저술과 거의 동시기에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여 신경준이라고 보게 되었다).
표기의 특징
-백두산을 어미산(根,母,始), 백두대간을 몸체(幹,身)로 표현하여 백두산과 백두대간을 인체의 母-體로, 나무의 根-幹관계로 보고 있으며
-지질구조나 구조선의 방향등 지표하의 지구 내부적 구조와 관계없이 지표상에 나타난 산천(山川)의 모양과 방향을 기초로하여 표기하였다.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를 위주로 한 표기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기복은 있으나 단절되지 않은 큰산줄기(大連山脈)
·대분수령으로 한반도 北-南走向의 大山脈軸
·대간, 정간, 정맥으로 계급화(位階性)
·주요 하천의 본류 방향을 기준으로 正脈이름을 붙임. (예 : 낙동강동쪽 → 낙동정맥)
·분기(分岐)가 이루어 진 곳에 주요 산들이 위치 (두류산 태백산, 속리산등)
·지리산은 백두산의 氣가 흘러(頭流)와 축적된 곳으로 보아 두류산으로 표기하고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백두대간의 산지체계 인식
-수계가 연속적인 것과 같이 산계도 연속되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한반도의 지리적 일체감을 인식할 수 있으며 경관측면에서 첨봉이나 능선 및 생활권역의 연결통로로서 주요고개를 중요시하고 고도가 높은 산능선일수록 위계가 높은 기본줄기로 보았다.
-줄기의 의미로 연결된 선을 설정하고 폭을 가진 띠의 형태인 산지개념 이므로 지질구조, 지형의 형성과정과 변화등은 고려하지 않았으며
인문 적인 생활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분수계 체계를 중시하며 국토의 일체감 측면에서 백두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면서 백두산의 상징성을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한다고 인식하였다.
◎오늘날 산맥(山脈)식 표기
산맥식 표기의 출현은
-현행산맥체계는 일본인지질학자고또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3년 발표 한 [한국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후 1904년, 야쓰쇼에이(失津昌永)가 이를 바탕으로 [한국지리]를 저술 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08년 한국에서 나온 대동서관 편집의 [대한 지지교과서(고등소학 대한지지)]에 산맥식 표기가 그대로 채택된 이후 자연스럽게 도입·사용되었다
※야쓰쇼에이는 저서 [한국지리]에서 "고또분지로가 1900년부터 약 15개 월간 탐험여행에 의거하여 한국의 산악계통과 지체구조를 밝혀냈으며 1901년 조선남부의 지세, 1902년 조선북부의 지세, 그리고 1903년에는 조선의 산악에 대해서 각각 논문을 발표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현행산맥체계에 비해 백두대간 표기는 고려초에 등장한 이후 20세기초까지 약 1,000년간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산맥식 표기의 특징은
-지질구조선에 의한 산맥체계이다.
-지도상에 산맥을 표기하면서 산계(山系)나 산맥(山脈)의 용어를 사용 하였다.
-산맥방향을 3가지로 제시하였다(한국방향, 요동방향, 중국방향)
◎ 두 방식 표기의 장단점
백두대간 체계는 지표분수체계에 따라 분류하였고, 현행 산맥체계는 지질구조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 백두대간의 성격
―산과 강에 기초하여 산줄기를 형성
―산줄기는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짐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자연스러운 선
―경관상 잘 보이는 무단절의 분수령 중심으로하천, 산줄기등의 파악이 쉬움.
―따라서 산지이용계획과 실천에 편리함
―풍수지리적한국지형과 山系의 이해에 편리
▶ 산맥구분의 성격
―지하지질구조선에근거하여 땅위의 산을 분류
―산맥선이 중간에 강에 의해 끊어짐
―실제지형과 불일치하는 가공된 지질선
―국제관행에 부합됨.
―산맥형성의원인과 관련성이 높음.
◆ 백두대간이란 ( 글 :이우형 고지도 연구가 )
백두대간 개관
우리 땅의 물줄기 가른 산줄기, 족보기술식으로 정리한 전통 지리개념
우리나라의 옛 지도들은 산줄기 지도라 할 수 있다. 살펴보면 연결되지 않는 산줄기는 없다. 함경북도의 두만강 끝에서 목포의 유달산까지도, 평안북도 신의주 앞산에서 부산의 금정산을 지나 바다 끝의 다대포 몰운대까지도 줄줄히 이어져 있다. 그저 모든 산줄기를 연결해 놓고 보자는 식의 지도인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산줄기라고는 없을 듯한 평야지대에도 뚜렷한 산줄기를 그려 놓았다. 예를 들면 백두산에서 이어져온 산줄기가 속리산에서 서쪽으로 가지쳐 수원의 광교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김포평야를 남북으로 가르며 강화를 마주보는 문수산성까지 연결되었다.
이 산줄기를 찾아 1:25,000 지형도를 가지고 답사해 보면, 수원 북쪽 광교산(582m)에서 안양 의왕 군포를 북으로 두고 해발 100여 m의 낮은 고개에서 안산의 수리산(475m)으로 건너뛰고, 다시 북쪽으로 광명시와 인천을 가르는 낮은 구릉으로 이어지다가 경인고속국고를 가로질러 철마산으로 가서는 계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부터의 산줄기는 지형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산줄기이다. 100m도 채 되지 않는 해안선의 낮은 구릉을 용하게 연결시켜 북으로 가현산 학운산 수안산 오봉산으로 이어져 것고개에서 문수산(376m)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단 김포평야의 산줄기만이 아니다. 이와 같은 산줄기는 전라도의 평야지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산줄기 표현의 옛지도는 공공도서관에만도 수백 점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1557년경에 제작되어 전도류(全圖類)로서 가장 오래된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之圖·국사편찬위원회 소장·국보 제284호)를 비롯하여 그 이후에 제작된 정상기(鄭尙驥)유형의 동국지도(東國地圖)인 「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 또는 군현도(郡縣圖)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같은 맥락을 이루어 똑같은 산줄기를 한결같이 그려 놓았다.
고산자 김정호(金正浩)도 이와 같은 지형 표현의 전통기법을 계승하여 「청구도」(靑邱圖)와 「동여도」(東與圖), 그리고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제작하였다.
「대동여지도」는 보다 정확하고 상세한 산줄기 물줄기 지도로서 거대한 지형지세도(축척 1:216,000·남~북 660cm)로 정립시킨 것이다.
그러면 이 산줄기들은 지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 산줄기인다. 또 산줄기라 할 수 없는 산맥들은 왜 지도상에 그려 놓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옛지도는 지형의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나라 땅의 미약한 하나의 능선일 망정 그 줄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연결되어 어디로 이어졌는지 뚜렷하고 명쾌하게 일러 주고 있다. 아울러 산줄기와 어루른 물줄기도 그 시작부터 지나치는 고을과 고을을 일러 주고, 어디고 흘러 가는가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도는 옛것이나 지금의 것이나 다양한 선과 선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같다. 이 선들은 특별히 선택된 선으로서 그 의미 부여가 당연하고 명확한 것들이다. 상식의 범주에 있는 것으로 사실에 입각한 것이며,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 의식을 담은 것이어서 생활 편의에 이용도가 가장 높은 것이며 정보적 차원의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옛지도에 그려진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위시하여 아무리 미약한 김포평야의 산줄기라 하더라도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편의와 직결된 의미있는 선이라는 것이다.
자연히 지도는 그 땅에 대한 그 땅 사람들의 공통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어야 지도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우리 옛지도에 나타난 산맥을 글로 정리한 것이 1800년경 찬표된 산경표(山經表)다. 산경표는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이 동국지도류의 산줄기 흐름을 토대로 <문헌비고>의 ‘산수고’(山水考)를 집필한 내용을 가지고 누군가가 찬표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하는 대표적인 본(本)은 세 가지가 있다. 규장각의 <해동도리보>(海東道里譜) 중의 ‘산경표’,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의 <여지편람>(輿地便覽)중의 ‘산경표’, 영인본으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崔南善)가 1913년 간행한 <산경표> 등이 있으나 모두가 같은 내용이다.
그 내용은 전국의 산줄기를 하나의 대간(대간),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다시 가지쳐 뻗은 기맥(岐脈)을 기록했다. 모든 산맥의 연결은 자연지명인 산이름, 고개이름 등으로 하고, 족보기술식으로 하였다.
그 산맥 이름과 순서는 ①백두대간(白頭大幹) ②장백정간(長白正幹) ③낙남정맥(洛南正脈) ④청북정맥(淸北正脈) ⑤청남정맥(淸南正脈) ⑥해서정맥(海西正脈) ⑦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⑧한북정맥(漢北正脈) ⑨낙동정맥(洛東正脈) ⑩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⑪한남정맥(漢南正脈) ⑫금북정맥(錦北正脈) ⑬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⑭금남정맥(錦南正脈) ⑮호남정맥(湖南正脈)으로서 모두가 15개다.
여기에 나타난 백두대간이라는 산맥 이름은 신라말 도선(道詵)의 <옥룡기>(玉龍記)를 비롯하여 이익(李瀷·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 그리고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 등에서 자주 보였던 산맥 이름으로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내린 우리 땅의 중심산맥이라는 것이다.
모든 산맥은 중심산맥인 백두대간에서 다시 가지치고 있는데, 북쪽과 남쪽의 연결 산맥인 장백정간과 낙남정맥을 그 순서에서 우선하고 나머지는 북쪽에서부터 차례대로 정하고 있다.
이들 산맥 이름의 특징은 산이름으로 된 것이 2개(白頭, 長白), 그 지방이름으로 된 것이 2개(海西, 湖南), 강이름과 관계된 것이 11개로서 전체적으로 산맥이름을 강이름에서 따와 그 강의 방위로 위치를 표시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맥의 순서를 정하고 이름을 강이름과 관계한 까닭은 모든 정맥은 관계한 강의 경계능선인 분수령으로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의는 그 강의 위치, 유역의 넓이, 모양, 그리고 그 세력을 쉽게 읽어 국토의 전체적 경영과 활용에 있어 정보적 입장에 있게 한 것이다.
특히 산맥의 이름을 강이름과 연관하여 부여한 것은 산이 곧 물과 관계된 자연의 섭리로서, 그 강을 이룬 물의 산지(産地)라는 지극한 상식을 포함하였다. 미루어 산맥의 원리 인식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랜세월 그 땅과 함께 하며 살아오며 얻어진 축척된 지리인식이며 이에 동화된 생활상식이었다.
이로서 조선시대의 산맥 즉 산경(山經)을 정리하면,
1) 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백두대간으로서 이 땅의 중심 산맥이 되며, 모든 물줄기를 크게 동서로 양분한다.
2) 정맥은 대간에서 가지쳐 나온 이차적인 산줄기로서 큰 강의 유역능선, 즉 원수분(原水分)능선이다. 따라서 정맥은 산줄기의 높이, 규모, 또는 명산, 진산 등과 관계하지 않고 아무리 낮고 미약한 산줄기라 하더라도 정맥의 산맥이기 때문에 그 끝까지 표현한 것이다.
즉 김포평야의 낮은 구릉이 바로 한강 유역을 가름하는 한남정맥의 줄기이므로 다른 산줄기에 우선하여 뚜렷이 표시된 것이다.
정맥들로 형성된 강은 우리나라 10대 강의 압록강(鴨綠江), 두만강(豆滿江), 청천강(淸川江), 대동강(大同江), 예성강(禮成江), 임진강(臨津江), 한강(漢江), 금강(錦江), 섬진강(蟾津江), 낙동강(洛東江) 등이다.
3) 기맥은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대간·정간과 정맥에서 다시 갈라져 나온 산맥으로서 내(川)을 이룬 능선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산맥개념은 현대의 산맥개념과는 달리 ①모든 산맥은 큰 강과 내(川), 그리고 골의 분수령으로서 그 하나하나의 경계선인 분수령이다. ②산줄기의 시작과 끝남의 지점이 명확하다. 따라서 정맥의 시작은 특정한 산이고, 그 끝남은 대체로 강 하구의 해안선까지 연결되어 있다. ③물줄기를 경계한 산맥이므로 지도상에서 전국토의 지형지세를 보다 쉽게 읽고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수계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형성과 그 생활권역을 그 유역과 함께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골짜기까지의 수계 파악도 용이하게 하여 생활과 직결되게 하였으며, 가장 중요했던 내륙 산골까지의 조운(漕運)영역도 쉽게 파악토록 하였다.
이와 같은 산맥개념은 인간주의(人間主義)를 기본으로 한 자연지리(自然地理)를 바탕에 둔 것으로 그 땅과 더불어 살아온 그 땅 사람들의 지리관인 지리심성(地理心性·Geomentality)에 기본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배워온 산맥의 이름들은 장백, 마천령, 함령, 낭림, 강남, 적유령, 묘향, 언진, 멸악, 마식령, 태백, 추가령(구조곡), 광주, 차령, 소백, 노령산맥 등이다.
이 산맥들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失洋昌永)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서 기인된 것이다.
이들 산맥은 일반 상식의 산맥과는 달리 지질구조선 즉, 암석의 기하학적인 형(形), 이것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한 것으로 땅속의 맥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광주산맥이 금강산 북쪽 언저리에서 시작되어 북한강 상류를 서쪽으로 건너 북한산에 이르고, 다시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 관악산 광교산으로 이어지고, 차령산맥은 설악산과 오대산 근처에서 시작되어 남한강을 건너 금강 하류를 끼고 돌아 대천 뒤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예는 다른 산맥에서도 마찬가지로 강이나 내를 건너 뛰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으나 산맥이라는 개념 자체가 땅 위의 어떤 선상(線上)을 기준하지 않고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하고 있으므로 어쩔 도리가 없다.
100년 전의 한 학설이 아직도 우리라는 ‘채’에 한번도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우리 땅 산줄기와 아무 관계도 없이, 우리 생활과 아무 관계도 없이, 그리고 자연지리의 활용에도 아무 관계없이, 그저 학교에서만 그러려니 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모든 나라에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땅의 산을 바라보는 산관(山觀)은 각기 다르다. 그 땅의 산들은 생활의 대상이 될 수도, 신앙의 대상이 될 수도, 정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뒷산이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활화산이라면 공포의 대상이 된다. 우리의 ‘뫼’ 즉 ‘산’은 이웃나라 일본의 ‘야마(山)’와 먼 나라들의 ‘마운틴(mountain)’과 그 개념이 다르다.
우리에게 산은 옛부터 낳는(始와 開) 산이었다. 가락국의 수로왕이 구지봉에서 나오고, 신라 육촌의 촌주들이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으며, 단군이 내려온 신단수도 산이었다. 모든 어머니들의 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인 자식의 점지를 산에서 얻어왔다. 우리 모두는 결국 산에 빌어 낳은 자식들의 후예들인 셈이다. 곧 우리의 산은 모두를 잉태하여 새롭게 시작하고 여는(開) 곳이다.
우리의 산은 삶과 정신(生과 精)의 산이다. 의식주 모두를 산에 묶어 두고 살아온 우리였다. 세 칸짜리 집을 지어도 들 한 가운데가 아닌 한 뼘 산에 의지하듯 등대고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안식을 느끼는 우리네였다. 어릴 때 처음 그린 그림이 산이었듯, 이 땅의 멋이라는 것과 가락이라는 것 모두가 산과 더불어 되지 아니한 것은 이 땅에 없다. 산과 물이 어우른 곳에 독특한 문화를 잉태하게 하였다.
지식을 쌓으러, 도를 닦으러도 산으로 가고, 머리 아픈 사람들도 산으로만 간다. 해서 상상과 여유를 얻어 온다. 우리의 교육은 산의 정기부터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교가의 가사가 그 지방 유명산의 정기부터 받아 놓고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산은 쉬는(死와 輪) 곳이다. 요즘 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 등산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에 있는 얕은 산의 부모님 산소에 다녀오고도 “산에 갔다 왔다”고 했다. 산은 부모님의 집이다. 영원한 쉼터이자 안식의 처소이다.
우리의 산은 저만치 홀로 있는 산이 아니었다. 늘 사람과 같이 더불어 살고 살아오고 있다. 눈을 뜨면 산이 보여야 안심하고 안식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는 산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귀결이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가 우주의 근본이라는 속에서, 들(野)은 땅(地)이 아닌 산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우리 고래의 인식이다.
산은 정상을 뜻하지 않는다. 남산의 철책 속만이 남산이라는 생각은 현대가 낳은 지극히 짧은 소견이다. 청계천을 건너면 남산골로 접어 들었던 산이 산을 의지한다는 사람들로부터 그 소임을 박탈당한 것이다. 우리가 저 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저 산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 옛산의 개념, 즉 산경 원리에서 이르는 우리 산의 개념은 그 산자락 앞의 들까지를 포용한 하나의 덩치, 모두를 두고 어느 곳이든지 그 산의 이름으로 불렀다.
결코 정복과 개인 소유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생(生)과 활(活), 그리고 정신과 문화에 직결된 다만 이 땅의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산줄기의 연결, 즉 백두대간과 그에서 뻗은 모든 정간은 물뿌리(水分岐)로서 모든 생명체의 시작인 물(重水)의 산지라는 인식이었다.
하나의 대간과 하나의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 여기에서 가지친 기맥으로 이땅을 가름한 산경원리(山脈)는 세분화되어 발달한 지역의 문화지리적 권역을 자연스레 분계하고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현재 우리는 크게 북부·중부·남부지방으로 나누고, 영남·호남·영동지방 등으로도 나누어 이야기한다. 다시 나누어 안동, 단양, 남원 등 지방으로도 이야기하며, 해안에서는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지방으로도 구분하고 있다. 이들 지방들의 경계를 편의상 행정 경계를 기준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산맥도에서는 북부지방은 해서정맥의 이북지역,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은 백두대간의 태백산 속리산 지역과 한남금북정백, 그리고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선에서 그 경계가 선명하며 오히려 자연·인문·식생·기후 등 자연지리적인 측면에서 예사스럽다.
해안지방에서도 내륙 어디까지를 경계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산맥개념의 산줄기로 볼 때 그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으며, 여타 지방의 경계도 확연히 가늠된다.
도시(聚落) 발달로 인한 영향 권역도 쉽게 파악되며, 식생활과 주거양식의 구분 분포도 이들 산맥 선과 일치하고 있다. 북부·중부·남부의 음식문화가 다른데 ‘황세기젓 문화권’·‘새우젓 문화권’·‘멸치젓문화권’으로 대별되어 재미스러우며, 다시 세분화되는 음식권도 이 산맥도로서 쉽게 읽어진다. 주거의 양식에 있어서도 남해안의 한옥에는 대청마루에 반듯이 덧문이 있는데, 낙남정맥의 북쪽에서는 이와 같은 구조의 집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 말의 방언을 도별로 대별하지만 같은 도내에서도 크게 다른 말씨가 있다. 경상도 말은 강원도 속초지방에서 전라도 여수지방까지 분포되며, 같은 전라남도이지만 호남정맥을 기준하여 서쪽의 광주 말과 동쪽 산간의 섬진강 유역인 곡성 구례 말은 전혀 다르다. 특히 경기도의 수원 말과 이웃한 용인 이천의 말이 다른데, 그 사이에는 한남정맥이 있다. 이와 같은 예는 일일이 지적의 여지가 없다. 산줄기의 가름으로 세분된 언어권은 곧 세분화되는 문화권과 직결된 선이 된다.
요즘은 비닐하우스로 강제 재배가 이루어지지만 농업의 절기와 식생의 분포, 꽃들의 개화일(온도의 차)도 정맥들의 선과 관계되고, 옛 보부상의 상권과 오일장의 권역도 이들 산맥의 가름과 관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상예보는 행정단위 구역 중심에서 점차 지형특성, 재해특성, 생활권 등을 고려한 53개 국지예보구역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 예보구역이 옛 지도에 나타난 백두대간과 14개의 정맥, 그리고 가지친 기맥들의 산줄기의 선과 일치하고 있다.
우리 땅 그 산들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창조한 모태라는 옛 선인들의 인식, 모든 산줄기는 물줄기 중심으로 가름한다는 산맥 원리이다. 그 크고 작은 산과 길고 짧은 산줄기는 우리를 낳고, 살게 하고, 쉬게하는 곳으로서 그 원초적 알맹이인 물(重水)의 산지라는 내재한 정의이다.
창조와 발전, 그리고 개혁은 문화의 원형을 정확히 파악하는 바탕에서 비롯되어야 무리가 없다. 미래를 창조하는 기본은 과거의 인식이 뿌리되어야 순리로서 지속성을 갖는 것이다.
산을 아끼고 그 산을 사랑하는 우리다. 모두가 우리 선조들이 정립한 산과 산맥의 원형을 되찾아 새롭게 인식한 바탕에서 우리 땅에 대한 내일을 기약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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