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솔길 문학방 ♥/솔길 구시렁글

울진 백암산 상고대 속으로

호젓한오솔길 2016. 3. 17. 22:01



울진 백암산 상고대 속으로

 

 

                               솔길 남현태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고 하는 설 연휴를 쉬고 나니, 변화무상하게 흐르는 국제 정세 속에 나라 안이 온통 어수선하기만 하다. 북한의 수소폭탄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인하여, 13년간 이어져오던 허울좋은 남북 교류사업의 하나인 개성공단이 폐쇄 조치에 이르게 되고, 남북 관계가 다시 예전의 긴장상태로 돌아선다.

 

개성공단 5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 임금 70%가 김정은 정권에 흘러 들어가 핵무기 개발과 통치자금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 동안 북한에 퍼다 준 8조8천억 원 이상의 대북 지원자금이 적화통일을 위한 국방비로 이용되었다고 한다면 참으로 통탄할 노릇인데,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티격태격하며 기회만 엿보고 있는 적국에 공장을 지으면서 이런 종말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는 옛 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굶주림에 광견병까지 걸려 말라 죽어가는 미친개에게 햇볕정책이라는 명목으로 끌어안아 거두어 먹이고 혈세로 수혈을 하여 원기를 돋우어준 과오로 살이 오를 대로 오른 배은망덕한 미친 강아지가 발뒤꿈치를 물고 늘어지는 이상한 꼬라지가 되고 말았다.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 인간세계와는 달리 설을 쉬고 풀리기 시작한 날씨가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포근한 비가 내린 이번 주에는 별 다른 산행 계획이 없다. 봄 야생화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몇 주일을 더 기다려야 하고, 비가 내려 산천에 남은 눈이 거의 다 녹아버린 지금은 볼거리가 별로 없으니 산에 가고 싶은 의욕이 저절로 떨어진다.

 

토요일 밤에 일기예보을 보니, 일요일 새벽에 강원 영동지방과 경북 울진에 눈이 온다고 하여, 울진 백암산의 눈 산행을 기대하며, 마눌 보고 함께 가자고 하였더니 마지못해 억지로 따라 나서는 분위기다. 눈 위에서 먹기 어려운 도시락 대신에 여러 가지 간식거리를 챙겨서 아침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집을 나선다.

 

포항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한 울진 백암산은 벌써 11년 전인 2005년 10월에 처음으로 마눌하고 가을 산행을 다녀 오고, 2008년 1월 경포산악회 시산제 산행에 동참하여 동해를 품고 펼쳐지는 하얀 설경과 상고대 속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설국으로 걷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곳이다.

 

일요일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 일기 예보에 날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울진으로 향하는 7번 국도가 대체로 한산한 편이다. 포항에는 새벽까지 비가 내려 아스팔트가 촉촉했는데, 북으로 올라갈 수록 도로는 점점 습기가 없고 사방을 둘러 보아도 어디 눈이 내렸을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 미끄러운 눈 산행이라는 말에 부담을 느꼈던 마눌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한다.

 

포항을 출발할 때 영상 8도이던 기온이 북쪽으로 올라갈 수록 조금씩 떨어져, 아침 9시 30분경에 울진 백암온천 지역에 도착하니 바깥 기온이 영상 5도를 가리킨다. 기대하고 왔던 눈은 보이지 않고 올려다 본 백암산은 수줍은 듯 하얀 안개 속에 얼굴을 감추었기에 내심 상고대를 기대해보지만, 그러기엔 날씨가 너무 포근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차할 곳을 찾아 차를 몰고 온천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니, 호텔, 콘도 등에는 대부분 휴일을 즐기러 온 자동차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다시 돌아 내려와 온천지구 입구에 있는 '원탕고려호텔'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하여 백암폭포 쪽으로 향하니, 산행 차림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이 우리 둘 뿐인 것 같아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 든다.

 

백암온천 입구에 있는 표지석 앞을 지나 잠시 후 좌측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금강송 숲 언덕을 오르니 운동기구 시설과 정자가 있고, 능선을 따라 백암산 자락으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언덕 길에서 우측으로 온천지구 전경을 내려다 보며 잠시 걸으니 백암산 출입 통제초소가 나오고 지키는 사람은 없다.

 

초소 옆에 있는 백암산 산행 안내도를 살펴보고 빼곡한 금강송 숲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백암폭포와 백암산성을 거처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바로 백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이르러 좌측 백암폭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작은 골짜기와 능선을 몇 번 넘어 갈림 길에서 약 1Km 지점에 위치한 백암폭포 아래 골짜기에 이르고, 물소리 들리는 골짜기를 따라 잠시 오르면 허옇게 배를 드러낸 백암폭포가 눈에 들어 온다.

 

백암폭포는 해발 400m에 위치한 폭 25m 높이 30m에 2단 폭포이다.

백암과 주변 금강송과의 조화가 경관을 이룬다.

 

어제 내린 비로 불어난 물줄기가 겨우내 얼어 있던 얼음을 녹이면서 흘러 내리는 백암폭포는 그렇게 웅장하지는 않아도 물줄기와 하얀 얼음이 어우러져 나름대로 아름다운 멋을 풍기고 있다. 백암폭포 아래서 셔터를 누르면서 몇 일간 감기 몸살로 시작부터 지쳐 보이는 마눌이 잠시 휴식하기를 기다렸다가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르막 길이 마눌에게는 버거워 보이고, 인간의 아린 역사를 가슴에 새긴 노송들이 지운 낙엽 길 따라 시원한 조망이 좋은 묘지 앞에 이르니, 걸어 온 온천 지역은 제법 멀어 보이는데, 고도는 아직 별로 높이지 못한 것 같다. 우측으로 백암산은 짙은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었고, 가끔 산님들의 고함 소리가 멀리 안개 속에서 들려온다. 바위 사이에 노송이 어우러진 가파른 길 오르니 전망바위가 보이고 이 곳이 '새터바위'라는 안내판이 새워져 있다.

 

새터바위는 해발 550m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위 아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바위에 올라서면 백암산의 강인하고 활력있는 금강송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새터바위에서 건너다 본 백암산은 안개 속에 숨어 정체를 알 수 없고, 다시 이어지는 바위와 금강송이 어우러진 오르막길 오르면, 성벽을 쌓았던 바위들이 널브러진 백암산성에 이른다. 지도에는 할매산성으로 표기된 이 곳이 백암산성의 외성인 듯한데, 성벽 아래 경사가 급하여 올라오는 적군을 방어하기에 적소인 듯하다.

 

다시 이어지는 능선 길 따라 잠시 올라가니 양쪽으로 이어진 성벽이 있어 여기가 내성인가 했는데, 능선을 따라 잠시 더 올라가다 보니 백암산성이 450m나 남았다는 표지석이 새워져 있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가는 길은 싸락눈이 뿌리면서 날씨가 점점 차갑게 느껴지고, 마눌은 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지 오늘 어둡기 전에 하산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을 하면서 따라온다.


잠시 성루 같은 완만한 길이 이어지고 바위 틈에 일엽초가 자라고 있는 곳을 지난다. 옛 사람들의 고난의 흔적이 배어 있는 듯한 완만한 능선 길 따라 잠시 오르니, 높은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는 백암산성에 도착한다. 벡암산성에 새워진 이정표에는 이제 겨우 3Km남짓 걸어왔다고 한다. 지도상으로 '고모산성'이라고 표기된 이곳이 백암산성의 내성인 듯하고, 백암산성을 알리는 안내판은 하얗게 지워져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축성되어 돌무더기로 변해버린 백암산성을 지나 청솔이 분칠을 하고 있는 능선 길 걸으니, 볼을 애는 듯한 거센 찬바람에 마른 가지 마다 하얀 겨울꽃이 피어난다. 상고대가 피어나고 있는 길은 온천동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목쟁이를 지나 마지막 백암산으로 향하는 오르막 길은 추위에 힘들어 보이는 마눌도 펼쳐지는 상고대 아래서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다.

 

산 정상 부위에 흰바위가 있어 백암산이라고 한다는데, 바위에 붙은 이끼에도 고드름이 달려가고, 하얀 안개 아래 능선 가지 마다 상고대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조망 시원한 흰바위(백암) 위에서 걸어온 능선에 펼쳐지는 상고대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호초 같은 상고대에 카메라를 겨누고 연방 셔터만 눌러댄다.

 

오늘 눈산행을 왔다가 눈이 없어 실망한 산꾼에게 눈꽃 대신 서리꽃을 선물하는 무한한 자연의 조화와 배려 속에 산꾼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냥 즐겁기만 하다. 힘들게 올라온 마눌도 피로를 잊은 듯 즐거운 표정이니, 참으로 무궁무진 하고 신비한 것이 자연의 조화다.

 

정상에서 내려오던 단체 산님들도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탄성을 지르니, 오늘 산행도 대자연이 펼쳐주는 아름다운 상고대 경관으로 본전을 톡톡히 뽑은 듯하다. 흰바위 주변의 상고대를 바라보며 정신 없이 셔터만 눌러대다가 마지막 백암산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하얀 상고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길에서 발 걸음은 저절로 멈추어지고, 정상에서 마주 오는 산님들도 걸음을 멈추니 잠시 혼잡하게 지나간다. 흔들리는 산호초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눈길 바쁘고 언 손으로 셔터 누르는 마음은 급한데, 상고대 사이로 백암산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헬기장인 백암산 정상에는 단체 산행을 온 산님들 정상석 부근에서 사진을 찍으며 머물고, 주위에는 하얀 상고대가 분주하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백암산 정상의 상고대 풍경은 약 10년 전에 아름다웠던 북쪽 조망이 어느덧 나무가 많이 자라 막혀버려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한다.

 

마눌도 11년 만에 백암산 정상에 다시 올라온 기념 사진을 남기고, 사방을 둘러보며 하얀 경관을 사진에 담아보고는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을 찾아서 자리를 깔고 점심 겸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서 하산하기로 한다. 능선을 따라 하산 하는 길 이곳 능선에도 북쪽 방향으로는 온통 하얀 상고대가 만발하여 있다.


상고대를 만들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하늘에 구름이 바삐 움직이며 가끔 희미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지만, 앙상한 가지에 얼어 붙은 상고대는 찬 바람 따라 흔들릴 뿐 아직은 떨어질 기색이 없다. 구름 가려 흐리멍덩한 하늘 배경을 아쉬운 마음으로 열심히 셔터를 눌러가며 하산하는 능선 길은 잔설이 제법 남아 가끔은 미끄럽게 느껴진다.

 

성벽처럼 능선을 따라 늘어진 눈길에서 돌아본 백암산엔 상고대가 하얗게 덮여 있지만 트인 조망이 없어 제대로 감상을 할 수가 없으니, 나뭇가지 사이로 비집으며 백암산 정상부의 상고대 경관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앙상한 가지들을 포근한 솜으로 감싼 듯한 새하얀 상고대 터널 속으로 거닐던 걸음은 쭉쭉 뻗어 올라간 금강송 숲 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고도를 낮추는 능선 길이 마눌에게는 버겁고 지루한 느낌이 드는지 와간다는 길이 끝이 없단다.

 

능선에서 한화콘도 쪽으로 접어드는 길, 금강송 숲 사이 산책로를 따라 한화콘도 아래로 내려서고, 잠시 한화콘도 앞으로 난 도로변을 걸어 '원탕고려호텔' 주차장에 돌아오면서 오늘 산행 길은 종료된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백암산은 흐릿한 석양에 아련하다.

약 10.3Km의 짧은 거리에 무려 6시 30분이나 소요된 느림보 산행을 마치고, 오후 4시 20분경에 자동차에 돌아와 행장을 풀고 시동을 거니, 따뜻한 온천수를 뿜어내는 온정골의 포근한 날씨와는 달리 산정에 안개바람이 거세게 불어 하얀 상고대를 피우며 산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백암산은 올 때 마다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오늘 밤부터 다시 추워져 내일 아침에는 강추위가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바깥 기온이 아침에 보다 1도 떨어진 영상 4도를 가리킨다.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은 주말이면 늘 밀리는 7번 국도가 예상외로 소통이 원활하여, 저녁 6시경에 집으로 돌아와 소주 몇 잔 반주삼아 저녁을 먹으면서 오랜만에 마눌과 함께울진 백암산 상고대 산행길을 갈무리 해본다.

(2016.02.14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