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속으로…만추 단풍명소
지리산 피아골·백암산 애기단풍… | |
세월 참 빨리 간다.
가을의 전령 억새가 만개했다고 귓전을 때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설악에서 출발한 단풍이 적토마를 탄 듯 시나브로 남녘땅 우리네 가슴 속으로 다가왔다. 신이 난 산꾼들은 어린 아이마냥 단풍이 물드는 속도와 보조를 맞춰 주말이면 산행지를 바꿔가며 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때 쯤이면 일년 중 한 번도 산을 찾지 않던 아줌마 부대들도 연중 행사로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단풍 명소를 찾는다. 지자체는 덩달아 축제를 마련한다. 이번 주가 어쩌면 올해 제대로 된 단풍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서둘러 떠나보자. # 단풍 명소 중의 명소 지리산 피아골 지리산에서 가장 단풍이 아름다운 계곡으로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꼽힌다. 피아골 단풍은 울긋불긋하다든가 알록달록하지 않다. 그냥 붉다. 워낙 붉어 핏빛단풍으로 불린다. 피아골은 한국전쟁 때 빨치산들이 최후의 항쟁을 벌인 곳으로 지난 1984년 피아골 산장을 지을 때 산장터에서 많은 인골이 나왔다고 한다. 해서 피아골 단풍은 망자의 피가 묻어난 것이라고도 전해온다. 빛깔 고운 단풍은 피아골에 삼홍(三紅)을 빚었다. 온 산을 붉게 태우니 산홍(山紅)이요, 수정같이 맑은 물줄기를 붉게 비추니 수홍(水紅)이며, 그 품에 안긴 사람도 붉게 물드니 인홍(人紅)이라 했다. 남명 조식은 '천공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까지 붉더라'라는 삼홍시를 남겼다.
피아골 단풍 구경은 구례 토지면의 신라 천년고찰 연곡사에서 시작된다. 경내 동부도(국보 제5호) 북부도(국보 제54호)를 잠시 둘러본 후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직전마을에서 본격 산행을 시작한다. 연주담~통일소~삼홍소~삼홍교~구계포교~선녀교를 거쳐 계곡의 끝인 피아골 산장에서 단풍은 절정을 이룬다. 대략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삼홍소 주변과 구계포교가 가로지르는 계곡 주변 그리고 해발 850m 지점의 피아골 산장 주변이다. 구례군은 3~4일 연곡사와 피아골 일원에서 제31회 피아골 단풍축제를 연다. 임걸령을 돌아 오는 등산대회와 단풍 전통떡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 애기단풍이 빠질쏘냐, 장성 백암산 내장산과 함께 내장산 국립공원에 포함돼 있지만 내장산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질 뿐 단풍만으로 볼 때는 내장산의 그것에 못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해서 최근에는 국립공원 이름을 내장산·백암산 국립공원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암산 단풍의 특징은 애기단풍. 잎의 크기가 어른 엄지손톱만큼 작고 유난히 색이 선명해 붙여진 이름으로 백암산 일대에서만 자생한다. 다른 단풍 산과 달리 백암산에는 노란색의 은행나무와 갈색톤의 갈참 신갈 졸참나무 등이 한데 어울려 천연색의 향연을 이룬다. 특히 거대한 회백색 암봉인 백학봉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단풍이 쌍계루를 감싸고 있는 비경이 인공연못에 투영되는 모습은 장관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 총림 중의 하나인 백양사와 주차장에서 쌍계루로 가는 중간에 있는 700년생 갈참나무, 백양사를 삼창한 고려말의 선승 각진국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났다고 전해오는 역시 700년된 이팝나무 그리고 계곡 초입 주변의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비자나무숲은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볼거리다. 등산 코스는 쌍계루에서 출발, 약사암 백학봉 상왕봉을 거쳐 원점회귀 가능하면 3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장성군은 3~4일 백양사에서 장성 백양 단풍축제를 연다. 전국 단풍등산대회, 산사음악회, 7080 라이브 공연, 장성 곶감 깎기 등이 펼쳐진다. # 단풍만은 내가 최고, 정읍 내장산 예부터 '춘변산(春邊山) 추내장(秋內藏)'이라 했다. 봄이면 변산의 신록이 으뜸이요, 가을에는 내장산 단풍이 최고라는 이야기다. 그만큼 단풍에 관한 두말하면 잔소리다.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이어지는 단풍터널이 절정으로 치달을 땐 현란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내장사 일대의 수백 년생 단풍나무는 만추의 단풍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나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지리산 월출산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손꼽힐 만큼 산세도 빼어나다. 내장사를 중심으로 월영봉에서 서래봉과 주봉인 신선봉을 지나 장군봉에 이르기까지 9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종주하는 데는 10시간쯤 걸린다. 해서, 부산서 당일치기로 불가능해 통상 기암절벽과 1㎞ 정도의 암릉이 이어지는 서래봉 코스가 단풍산행을 하기에 적합하다. 단풍철이면 전국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 흠이라면 흠.
내장산은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울긋불긋 물든 산비탈을 가로질러 올라가기 때문에 한눈에 내장산을 조망할 수 있다. 입구의 내장산 탐방안내소는 의외로 볼거리가 많다. 5년만에 단풍축제가 부활했다. 1~4일 내장산 5주차장에서 열리는 내장산 단풍 부부사랑축제가 그것이다. 부부사랑가요제, 달빛사랑 콘서트 등이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된다. # 국토 최남단 단풍축제 해남 두륜산 땅끝에 있는 전라도 해남땅의 두륜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늦게 단풍이 든다. 뭐니뭐니해도 두륜산의 자랑은 신라 천년고찰 대흥사를 품 안에 안고 있다는 점. 대흥사는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청도 운문사 등과 함께 관광객이 많기로 유명한 절집. 명산에 명찰, 이 이상의 궁합도 없는 듯하다. 여기에 단풍까지 물들었으니 금상첨화라 아니할 수 없다. 두륜산은 대흥사를 중심으로 주봉인 가련봉을 비롯 노승봉(능허대) 두륜봉 고계봉 도솔봉 혈망봉 등 8개의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다. 신기하게도 경내에서 보이는 두륜산은 누운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암릉길에서 펼쳐지는 다도해의 황홀한 풍경은 한 장면도 놓치기 싫은 한 폭의 그림같다. 4㎞나 되는 절 진입로의 울창한 숲이 일궈내는 화려한 단풍과 경내 전각 뒤로 은은하게 물든 우아한 단풍은 단풍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대흥사 원점회귀 코스는 4시간 정도 걸린다. 두륜산에도 4년 전부터 운행해 온 케이블카가 있다. 집단시설지구인 유스호스텔 입구에서 출발, 1.6㎞를 올라 고계봉 인근에 닿는다. 단풍이 절정일 때 환상적이다. 해남군과 대흥사는 단풍이 절정일 것으로 예상되는 9~11일 단풍축제를 개최한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해남 달마산 또한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축제는 없어도 단풍은 화려하다 우선 국립공원 가야산. 합천 해인사로 이어지는 홍류동 계곡의 단풍이 일품이다. 가을 단풍이 계곡에 비쳐 붉은 물이 들었다는 데서 유래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계곡 주변의 아름드리 노송과 단풍나무가 빚어내는 묘한 색채대비가 압권이다. 계곡 뒤로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다. 경내에는 50여 동의 법당이 가지런하게 배치돼 있다. 담양 추월산은 이름 그대로 가을산이고 달빛산이다. 단풍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모습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내리비치는 달빛 아래의 자태 또한 매혹적이다. 붉은 단풍을 배경으로 한 기암괴석과 발 아래 펼쳐지는 담양호를 한 화폭에 담을 경우 그 아름다움이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일대 장관이다. 또 해발 600m쯤 되는 높이의 절벽에 위치한 보리암은 속세와 격리된 극락세계가 연출된다. '호남의 금강산' 순창 강천산도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은 알짜배기 단풍명소다. 높이(584m)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은 골짜기와 깎아지른 절벽에 분포한 애기단풍이 화려하다. 강천사 부근 50m 높이에 걸린 구름다리 주변의 단풍은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동백만 떠올리기 십상인 선운산의 단풍도 아름답다. 초가을 꽃무릇이 절 주변을 물들이다 지고 나면 10월 하순부터 단풍이 들기 시작, 이달 초순 절정을 이룬다. 절 입구 도솔천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은 도솔암까지 3.2㎞나 이어진다. 우산 모양을 한 수령 600년의 장사송, 신라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불가에 입문해 공부했다는 진흥굴 등도 빠뜨려선 안될 볼거리이다. ◇ 떠나기전에 - '땅끝' 해남에서의 1박 - 400년 전통가옥 이색체험을 '단풍구경도 식후경'. 구례 지리산 피아골을 찾았다면 지리산 온천랜드로 이동, 전라도 음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한국회관(061-783-3844)이 유명하다. 더덕백반 산채정식이 맛있다. 반찬이 20여 가지나 나오는 데 맛 또한 일품이다. 백암산을 찾았다면 장성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호반가든(061-392-8692)에서 메기찜을 맛보자. 맛의 비결은 시래기. 가을 시래기를 삶아 말린 후 요리할 때 다시 삶기 때문에 그 맛이 아주 쫄깃쫄깃하다. 메기찜 속에 깔린 시래기를 먹기 위해 찾는 단골들이 많다. 메기찜의 경우 요리시간이 30분쯤 걸려 예약을 하면 편리하다. 백양사IC와 백양사의 딱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차로 6분 거리. 해남은 너무 멀어 1박을 해야 한다. 평범한 숙소보다 대흥사 입구 유선관(061-534-3692)에 묵자. 400년 된 전통 가옥이다. 원래 대흥사를 찾는 수행승이나 신도들의 객사로 사용됐으나 7, 8년 전 마당을 넓히고 온돌방을 보일러 시설로 바꿨다. 방엔 TV도 없고 욕실과 화장실도 바깥에 있어 불편하지만 창호문과 뒷마당의 장독집, 집 뒤로 흐르는 계곡이 운치를 더해준다. 새벽에는 대흥사의 도량석과 새벽 예불소리도 들린다. 담양 추월산의 경우 담양시장(담양5일장) 내에 위치한 옛날 순대집(061-381-1622)을 찾아가자. 추월산 주차장에서 차로 10분 거리. 부산행 방향과 거의 같다. 주메뉴는 대통 암뽕순대. 비닐에 당면 들어간 순대와는 천양지차다. 돼지 창자 속에 선지 우거지 깻잎 파 시금치 (간)고기 찹쌀 녹두 참기름 들기름과 갖은 양념을 넣고 찐다. 여기까지는 여느 순대집과 대동소이하다. 비결은 1m 길이의 대나무에 넣어 1시간 정도 삶는 것. 대나무에 의해 비린 냄새 제거는 물론이고 물에 삶을 때와 달리 양념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훨씬 뛰어나다. 대통 암뽕순대,순대국밥 등 하나같이 맛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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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호젓한오솔길
글쓴이 : 호젓한오솔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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