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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는 원래 군화, 우산은 '부(富)의 상징'이었다

호젓한오솔길 2010. 6. 25. 21:02

 

장화는 원래 군화, 우산은 '부(富)의 상징'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 때문에 이제 장화와 우산은 상비품.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장화'를 신는 이들이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많아졌다. 생활용품이 아니라 패션용품으로 등극한 것이다.

레인 부츠, 원래는 승마용이었다.

'모내기용'부터 '패션쇼용'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레인 부츠는 원래 '군화'였다. 레인 부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웰링턴 부츠' 혹은 '웰리스(Wellies)'라는 말이 익숙하다. 18~19세기 영국 총사령관이었던 아서 웰즐리(Wellesley), 후에 '웰링턴(Wellington) 공작'이라 불리게 된 웰즐리는 나폴레옹을 패배시키며 명성을 얻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승마용 고무장화를 신고 전장(戰場)을 누볐고, 그의 패션은 이후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레인 부츠, 한마디로 '고무 장화'로 유명한 브랜드는 에이글, 헌터, 어그 등. '고무 마니아'인 찰스 굿이어와 히람 허친슨 두 친구가 머리를 맞대 연구하다 굿이어는 '굿이어 타이어'를, 허친슨은 '에이글 부츠'를 내놓았다. 159년 전 일이다.

우산, 처음엔 나약한 물건이었다.

기원 전 1200년경 처음 등장한 우산. 하늘을 받치는 물건으로 신성시되던 양산에 비해 우산은 그리스 로마인들에게 '비를 피하려는 소심한 물건' 취급을 받아왔다. 때문에 남자들은 거의 들고 다니지 않았다.

1708년 '커시(kersey's)사전'에도 우산에 대해 '주로 여성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쓰는 물건'이라고 묘사돼 있다. 이후 18세기 영국 귀족 조나스 한웨이가 30년간 매일 우산을 들고 다니면서 그 필요성을 인정 받기 시작했고, '영국의 상징'처럼 알려졌다. 남자들에겐 오랜 기간 버림받았지만 17세기 이후 여성들에겐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화가 귀스타브 카이유보트의 '파리, 비오는 날'이나 르누아르 '우산'에서 보듯 19세기엔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상징물이 됐다.

'구찌 우산'도 없이 비 오는 날 외출을?

'패리스 힐튼 다이어리' 책 속 '상속녀가 절대 하지 않는 12가지' 중 하나가 바로 구찌 우산 없인 비 오는 날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에서도 60만~100만원의 우산이 나온다. 우산 하나에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약 6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우산을 드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이었다. 1953년 협립이 국산 우산을 만들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