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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많이 마시는 당신, 수면마취 잘 안될 수도…

호젓한오솔길 2010. 8. 21. 14:15

 

[Why] 술 많이 마시는 당신, 수면마취 잘 안될 수도…

 

 

미국에선 통제물질 지정된 '프로포폴' 한국에선 2년간 500만병 넘게 소비
뇌 손상 없어… 술 세면 '약발' 덜 받아

 

전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9일 반(半)수면 상태의 여성 환자를 상습 추행한 혐의(준강제추행)로 광주 모 정형외과원장 최모(58)씨를 구속했다.  본지 8월 10일

최씨는 1년 동안 7명의 환자를 무려 14차례나 추행했다. 환자에게 수면 진정제를 투여하고 반수면 상태에 빠졌을 때 몸을 만졌다. 간호사는 진료실에서 이미 내보냈다. 이런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엔 경남 통영의 40대 병원장이 수면 내시경 여성환자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다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마취제 들어가면 10초 안에 스르륵

수면마취(의학명/감시 마취 관리)에 주로 사용하는 약은 프로포폴과 미다졸람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2008년 1월 1일부터 2009년 9월까지 국내 병원에 공급된 프로포폴(앰풀과 바이알 포함)은 557만4441개, 미다졸람은 972만1614개였다.

프로포폴은 마이클 잭슨의 사망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약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프로포폴이 몸 안에 들어가면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수면상태에서 깨어나는 데 짧은 시간(5~10분)이 걸리기 때문에 최근 들어 많이 사용한다. 미다졸람은 프로포폴과 함께 쓰이기도 하고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마취상태에서도 통증을 느끼기는 하지만 마취에서 깨면 그 통증을 기억하지 못한다.

건국대 마취통증의학과 김덕경 교수는 "이런 약물은 조금만 과량(過量)이 들어가도 호흡이 억제되거나 혈압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시술, 수술하는 동안 꾸준히 모니터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김도완 교수는 "한 사람에게 투여하는 양은 몸무게에 따라 다르지만 프로포폴은 몸무게 1㎏당 1~1.5㎎, 미다졸람은 1㎏당 0.05~0.07㎎을 넣는다"고 말했다.

8월 초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보험급여의약품목록표에 따르면 프로포폴 120㎎짜리 제품은 약 2600~3800원, 미다졸람은 15㎎짜리가 약 1400~1800원이다. 병원에서 맞을 때는 '의료행위'가 추가되므로, 비용이 더 올라간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수면마취하면 머리 나빠진다?

수면마취를 꺼리는 사람들은 '수면마취를 자주 하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속설을 말한다. 김 교수는 "예전엔 전신마취를 할 때 혈압이 떨어져 마취 중에 뇌로 혈류가 적게 흘러가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럴 때 뇌세포가 손상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엔 수면마취를 할 때 모니터로 환자의 전체적인 신체기능을 확인하고, 적정량의 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술이 센 사람은 마취가 잘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평소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활성화되어 있다. 마취약이 알코올과 비슷한 성분이 있기 때문에 약품이 몸에 들어오면 효소가 기다렸다는 듯이 분해작용을 한다. 이를 '교차 내성'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술에 강한 사람은 마취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고, 이런 사람에게는 평균보다 많은 양의 마취제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면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올랐을 때 수술 도중 깨어날 수도 있을까. 이를 '마취 중 각성'이라고 하는데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000명 중 한 명꼴로 마취 중 각성이 일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약간 과장됐다고 한다.

마취 중 각성은 분만이나 심장 수술을 할 때, 상대적으로 자주 일어난다. 분만할 때는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심장 수술에서는 심박 수가 떨어질 수 있기에 약품을 적게 쓰기 때문이다.

마취 중 각성보다 위험한 건 수면마취 그 자체다. 김덕경 교수는 "보통 환자들이 전신마취는 무서워하고 수면마취를 가볍게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수면마취를 하면 수술중 환자의 반응을 볼 수 없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배현민씨는 "위 내시경을 할 때 잘못해서 천공(穿孔·구멍)이 생겨도 환자는 수면상태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 중얼중얼… 고백한다?

수면마취에서 깨어나는 사람들이 '헛소리'를 한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건양의대 김성주 석좌교수는 "실제로 수면마취 중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한 젊은 여성 환자가 마취약이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대 위에서 '오빠, 나 담배 한 대만 피우고 하면 안 될까요?'라고 물어 당황한 적이 있었다. 어떤 환자 분은 '선생님, 언제 저랑 소주 한잔 하실래요?', '사실 저 선생님 좋아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환자들은 대부분 정신을 차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술에 취한 채로 운전을 할 경우 다른 차들이 눈에 보이고 기억이 또렷한 것 같지만, 다음날 깨서는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헛소리는 주로 마취약이 들어간 직후, 수면상태에서 점차 깨어날 때 한다. '얕은 진정상태'에서다. 김성주 교수는 "수면마취 상태에 말을 시키지 않으면 대부분 가만히 있는다. 말을 시키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말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굳이 말을 걸지 않으면 대부분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수면마취상태에서 성추행 또는 성폭행이 일어나는 건 거의 힘들다고 한다. 수술을 할 때 누군가는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달 초 일어났던 성추행 사건도 의사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