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조선인 식인" 태평양전쟁 만행 확인돼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식인(食人) 만행에 저항하다가 무차별 학살된 사실이 정부 조사로 처음 확인됐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장 오병주)는 지난 2006년부터 3년여간의 조사 끝에 펴낸 ‘밀리환초 조선인 저항사건과 일본군의 탄압 진상조사 보고서’를 5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2년 초 조선인 군무원 800∼1000명은 비행장 등 군사시설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최전방 요충지였던 마셜제도 동남쪽 끝 밀리환초(環礁·고리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로 강제 동원됐다.
- ▲ 일제강점기에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식인사건에 저항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가 무차별 학살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일본 정부의 '구해군군속신상조사표' 문건. 신상 란에 '일리도에서 1945년 3월18일 대장 및 내지인 공원을 살해, 도망을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켜 다음날 본 섬에서 토벌대가 파견돼 반란총살'이라고 적혀 있다.(사진=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위원회) /연합뉴스
이 일대는 원래 토질과 기후가 나빠서 식량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미군의 공격으로 1944년 6월 이후에는 식량 보급이 막혀버렸다. 이에 일본군과 조선인은 섬에 흩어져 식량을 채집하거나 농경, 어로로 생존해야 했다.
그런데 1945년 초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이 도려져 잔혹하게 살해된 조선인 사체가 발견됐다. 그에 앞서 며칠 전 일본인들은 조선인 숙소로 ‘고래고기’를 가져다 줬었다. 주변에 자꾸 사람이 없어지는 걸 이상하게 여기던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산 사람을 살해해 먹은 뒤 조선인에게도 먹인 것을 눈치챘다.
결국 1945년 2월28일 체르본 섬에 살던 조선인 120여명이 집단 봉기했다. 이들은 감시 목적으로 파견된 일본인 11명 중 7명을 숲속으로 유인해 흉기로 살해한 뒤, 이튿날 미군에 투항하려 했다.
그러나 날이 밝자 이웃 루크노르섬에서 기관총으로 완전무장한 일본군 토벌대 15명가량이 체르본섬을 공격했다. 결국 조선인 100여명이 학살 당했고, 봉기는 진압됐다.
이때 일부 조선인은 야자수 나무 위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는데, 이들의 증언 덕분에 대학살과 일제의 '식인' 만행이 역사 속으로 묻히지 않고 공개될 수 있었다. 보고서는 조선인의 집단 저항이 일본군의 식인사건 때문으로 보인다고 결론냈다.
연구를 진행한 조건 전문위원은 “저항사건의 발단이 된 ’일본군 식인사건’은 실증에 어려움이 있으나 적지 않은 정황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사실로 판단된다”고 연합뉴스에 설명했다.
그는 “밀리환초 식인사건은 독특한 정신주의와 결부된 일본군 내의 가혹한 풍토, 기아상황과 미군에 대한 공포, 전쟁 스트레스가 중첩돼 일어난 만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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