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에 정통한 산꾼이라면 밝얼산(739m)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배내고개와 간월산(1083m) 사이에 솟은 배내봉(966m)에서 동쪽으로 갈라지는 지능선 상에 있는 자그마한 산이 바로 밝얼산.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산꾼에게는 이 산은 생소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소외된 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랴. 해발 1000m급 봉우리가 즐비한데다 곳곳에 비경과 유서깊은 문화재 또는 유적지를 품고 있는 영남알프스에서 해발 700m대에 불과한 작은 산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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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밝얼산은 밝음과 광명을 뜻하는 산이름과는 달리 평소에는 그다지 많은 산꾼들이 찾지 않는 일명 '소외된 산'이다. 그러나 별로 높지 않은 산인데도 정상에 오르면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 정상부 주변의 시원한 풍광이 환하게 드러나는 일급 조망처로 평가받는 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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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에서 지난 2007년 5월 배내봉~밝얼산 원점회귀 코스를 한 차례 답사, 보도한 이후에야 이 산을 찾는 산꾼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이 역시 배내봉 또는 간월산과 연계된 산행 중간에 그저 거쳐가는 봉우리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밝얼산 자체만을 목표로 한 산행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의미다. '밝음' 또는 '광명'을 뜻하는 '밝' 자와 '신성함'을 뜻하는 '얼' 자로 이루어진 이름만 놓고 본다면 '밝고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을 가졌다. 당연히 '밝게 빛나야 할 것 같은' 산이건만 무엇이 이렇게 서럽도록 소외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너무 잘 난' 산들 옆에 있다가 보니 산꾼의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물 세계에 빗대자면 '생존 경쟁에서 뒤졌다'고 할 수도 있다.
2011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수능 시험을 마친 자녀와 함께 가볍게, 그러나 의미 있게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산을 선정해 소개하기로 하고 밝얼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학생 개개인의 인생에서 큰 관문을 통과한 것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덧붙여 산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앞날에 '밝은 빛'이 비치길 바라는 근교산 팀의 응원도 담고자 했다. 취재팀이 답사한 밝얼산은 말 그대로 거대한 영남알프스 산군의 주봉들이 엮어내는 주능선의 한쪽 귀퉁이에 솟아난 작은 봉우리다. 베테랑 산꾼에게는 별로 힘들지 않은 산이지만 그동안 책과 씨름하느라 운동량이 부족했을 수험생에게는 절대 만만치 않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바탕 땀을 쏟아붓고 나서 정상에 올라서 보면 영남알프스의 주요 봉우리 대부분을 아우르며 조망하는 극상의 상쾌함도 느낄 수 있는 산이 바로 밝얼산이다.
산행은 등억온천으로 유명한 울주군 작괘천 상류의 간월산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해 상북면 길천리 순정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로 정했다. 통상적으로는 간월산 자연휴양림과 인근의 알프스산장 또는 간월산장 등을 기점으로 삼아 간월산 배내봉 밝얼산으로 한 바퀴 도는 원점회귀 코스가 그나마 산꾼에게 인기 있는 코스지만 이번에는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는 가벼운 코스다. 간월산 자연휴양림 입구 표지석~채석장 앞 저수조~임도~지능선 삼거리~갈림길~밝얼산 정상~폐 헬기장~잇따른 전망대~무명 묘~밝얼산 이정표~순정마을 경로당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리고, 휴식 등을 포함해도 4시간이면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다.
간월산 자연휴양림 입구 표지석에서 왼쪽 작괘천을 건너지 말고 저수조를 바라보며 계곡 상류로 직진한다. 저수조 뒤쪽은 채석장.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출입문이 닫혀 있다. 오른쪽으로 산길을 잡는다.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다. 50m쯤 오르면 임도를 만나는데 곧바로 횡단해 재차 산길로 붙는다. 초반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간간이 낙엽이 쌓인 곳도 있지만 대체로 걷기 좋은 길이다. 길옆으로는 낙엽들이 제법 수북하다. 어느새 가을이 다 갔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하산 중이던 60대 부부 산꾼이 친절하게도 "길이 조금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산행하라"고 조언해 준다.
들머리에서 천천히 20분 정도 오르면 능선 안부 갈림길.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적송이 산행로 주변을 감싸고 있다. 능선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잠시 눈길을 돌려 왼쪽을 바라보면 간월산 정상과 간월공룡능선, 912m 봉과 그 아래 천길바위 등이 눈에 들어온다. 간월산 뒤로는 신불산에서 뻗어내린 신불공룡도 하늘 금을 그리며 바짝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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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자연휴양림 입구 표지석 오른쪽으로 출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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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외길이다. 능선만 줄곧 따르면 되니 혼란스럽지 않다. 완만하던 오르막이 조금 더 경사도를 높이는가 싶더니 작은 중간 봉우리에 오른다. 지형도에는 표기돼 있지 않은 봉우리지만 GPS수신기에 나타난 고도는 해발 680m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넓적 돌이 여러 개 있다. 진행 방향으로 바라보면 멀지 않은 곳에 밝얼산 정상이 밝게 빛나고 있다. 살짝 내려서는 척하다가 조금씩 경사도를 높이며 10분 만에 정상에 닿는다. 대체로 육산이지만 정상부는 작은 바위로 이뤄져 있고 주변이 탁 트여 조망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왼쪽(서쪽)으로는 배내봉이 우뚝하고 그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이어지는 간월산, 신불산이 드러난다. 특히 북쪽으로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과 쌀바위, 상운산, 운문령, 문복산, 고헌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길이 호쾌하게 달리고 있다. 북쪽 큰 능선 앞쪽 가까이에는 배내봉 북쪽으로 이어지는 오두산(823.8m) 능선도 반갑게 다가온다. 비교적 소외된 산이지만 밝얼산 정상에는 어느 산꾼이 만들어 놓은 듯한 가로 30㎝ 세로 20㎝ 크기의 소탈한 정상 석이 있다. 하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처량한 느낌도 든다. 이곳에서 바라본 풍광은 배내봉이나 간월산 정상에서 보는 조망 느낌과는 또 다른 벅참을 갖게 한다. 특히 온전히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니라 약간은 눈길을 들면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산 너머 또 다른 산이 있다는 것도 새삼 실감하게 되는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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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얼산 하산길에 밟는 무성한 낙엽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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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방향에서 왼쪽 능선을 타면 배내봉을 거쳐 간월산 또는 능동산으로도 갈 수 있지만, 하산길은 오른쪽(동쪽)이다. 문복산, 고헌산을 바라봤을 때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길이 열려 있다. 2분쯤 가면 폐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4분만 가면 왼쪽에 전망대다. 오두산 능선과 그 아래 가매소골과 불굴암 등이 눈에 들어온다. 가지산 정상부는 오두산 능선에 가려 모습을 감췄지만 오른쪽의 상운산과 문복산 고헌산은 여전히 훤하다. 다시 2분 뒤 왼쪽에 전망대 한 곳을 더 지나면서 길은 능선을 따라 계속 내리막이다. 지천으로 깔린 낙엽은 원 없이 밟을 수 있는 대신 바닥이 약간 미끄러우니 주의해야 한다. 능선길 주변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잇따라 나타나는데 10여 분이 지나면서부터는 능선 마루금에서 살짝 오른쪽 사면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능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길은 우마차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널따랗게 변하고 지그재그를 그리며 서서히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 두 번째 전망대에서 25분가량 하산하면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하지 말고 왼쪽의 조금 더 넓은 길로 방향을 잡는다. 리본을 참고하자. 10분 후 무명 묘를 지나면서 순정마을이 훤히 드러나고 2분 후 밝얼산 이정표가 있는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5분쯤 내려서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00m만 가면 순정마을 경로당 앞에 도착한다. 버스를 타려면 순정못 둑 밑을 지나 10분쯤 걸어나가야 한다.
◆ 떠나기 전에
- 밝얼산 넓은 하산길 주민들 삶과 질곡 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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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 도중 곳곳에 잘 생긴 바위들이 즐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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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얼산 정상에서 날머리인 울주군 상북면 길천리 순정마을까지 하산하는 길은 완만하면서도 널따란 길이다. '잘하면 우마차도 다닐 수 있겠다' 싶을 정도인데, 실제 알고 보니 이 길은 사람만 다닌 길이 아니라고 한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순정마을 젊은이들이 산에 땔감용 나무를 하러 갈 때 소를 몰고 오가던 길이라는 것이다. 보통은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는 것이 상식적인데 특이하게도 당시 순정마을 젊은이들은 소를 몰고 밝얼산은 물론이고 배내봉, 그 너머 배내골 사슴농장까지도 갔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게에 얹을 수 있는 양과 소에 실을 수 있는 땔감의 양이 너무 큰 차이가 났을 뿐 아니라 힘도 덜 들기 때문이라는 것. 한편 이 길은 한국전쟁 이후까지 계속 활동했던 영남알프스 일대의 파르티잔(일명 빨치산)들의 주요 이동 루트이기도 했다. 주민 사이에서 '밤손님'으로 불렸던 파르티잔들은 이 능선길을 이용해 자신들의 아지트였던 신불산에서 마을까지 내려와 식량을 빼앗아 가기도 했고, 간혹 사람들을 현혹해 함께 데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파르티잔들을 따라나섰던 사람 대부분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울러 심심산골이던 배내골 사람들이 언양장에 나들이할 때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밝얼산 길은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오롯이 남아 있는 길이다.
◆ 교통편
- 언양에서 간월 등억온천행 323번 버스 이용
부산 금정구 노포동 시외버스종합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5분 소요, 3200원. 등억온천 또는 간월행 버스는 언양터미널 주변 시내버스 승강장에서 탄다. 대우여객(052-264-2525) 323번으로 오전 7시20분, 8시20분, 9시20분, 11시20분에 출발한다. 부산역에서 KTX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KTX 울산역까지 19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8100원이라는 요금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KTX 울산역에서 출발하는 등억온천행 323번 버스 발차 시간은 언양터미널 통과 예정시간에서 10분씩만 앞당기면 된다. 버스 요금은 1000원. 간월입구 정류장에서 내리면 들머리인 간월산 자연휴양림까지 도로를 따라 30분쯤 걷는다. 산행 후 순정마을 입구 후리 버스승강장에서 언양행 버스는 오후 2시10분, 3시10분, 4시10분, 5시10분 등에 있으며 8시10분이 막차다. 자가용 이용자가 차량을 회수할 때도 이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택시(080-263-6000)도 가능한데, 요금이 1만5000원 안팎이라는 점이 다소 부담스럽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서울산(삼남)IC~양산 35번(작천정 신불산)~작천정 울산 12경 우회전(등억온천단지 대형 입간판)~등억리~알프스산장~간월산 자연휴양림 입구 표지석 순이다.
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