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82> 거제 노자산 |
불로초가 있었다는, 신선이 된 산 … 눈앞엔 다도해 수묵화 |
이재희 기자 |
겨울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거제를 찾았다. '산&산'은 이미 거제의 가라산, 망산, 옥녀봉, 국사봉, 대금산, 계룡산을 소개한 바 있다. 가라산과 인접해 있는 노자산(老子山·565m)을 굳이 찾은 것은 오는 14일 거가대교 개통으로 거제도가 한층 부산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다도해가 운무에 싸여 한 폭의 수묵화다. 노자산 정상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추위도 잊은 채 절경에 빠져 버렸다. 불로초가 있었다는 산, 산세도 무척 빼어나 마침내 스스로 신선이 된 산. 그래서 노자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새 한 마리 푸드덕 날아오른다. 동백숲에 산다는 팔색조는 아닐까. 구름 위의 세상인 듯 황홀감에 가슴이 아린다.
주말 교통체증의 대명사이던 14번 국도를 버리고, 거가대교를 통해 거제로 진입하는 길은 가히 혁명이었다. 거제시청이 있는 고현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가니 평지마을이다. 평지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노자산 펜션~평지고개~전망바위~헬기장~561봉~노자산 정상~이층 정자~마늘바위~뫼바위 갈림길~조밭골~학동리 6.9㎞를 4시간 동안 걸었다.
1018번 지방도에서 평지마을을 바라보면 노자산의 큰 자락에 푸근하게 안겨 있는 형상이다. '관광 거제'라는 명성에 걸맞게 바닷가가 아닌 이곳에도 펜션이 많다. 도로에서 노자산 펜션이라는 이정표를 보며 마을회관을 지나자 사슴농장 아래에 혜양사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잘 나 있다.
혜양사로 가는 고개는 곧 확·포장이 될 모양인지 공사를 안내하는 깃발에 곳곳에 꽂혀 있다. 작고 호젓한 이 고갯길을 걸어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10분 만에 평지고개에 올라서자 갖가지 리본이 산길임을 안내하고 있다.
평지마을은 학동고개 밑의 좁은 골짜기에 있는데 첩첩산골임에도 논이 있어 평지라고 불렀단다. 산길로 성큼 접어들어 산행을 시작한다. 고개에서 출발하다 보니 계속 오르막길이다. 약간 쌀쌀했지만 겉옷을 입지 않기 잘했다. 온몸이 뜨거워지더니 급기야 뚝뚝 땀까지 흐른다.
30분을 걸어 전망바위에 도착했다. 구천리 일대가 보인다. 구천리는 아홉 골짜기에서 흐르는 냇물이 합쳐졌다는데 산양천이 신현읍 삼거리에서 돌고개를 아홉 번이나 굽이쳐서 구천이라 했다고도 한다. 과연 전망바위에서 보니 굽이굽이 골짜기 사이로 굽이친 길과 물길이 예사롭지 않다.
전망바위에서 계속 정상을 향해 간다. 작은 빌딩만한 바위 하나가 버티고 섰다. 노자산 산행은 곳곳에 전망 좋고 잘 생긴 바위가 있어 단조롭지 않다. 큰 바위를 에둘러 오름길을 간다. 30분을 더 걸었다. 묵은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이내 쉼터가 있고, 혜양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혜양사에서 오르는 산길은 중간에 임도를 지나야 하지만,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워 산꾼들이 즐겨 찾는 코스라고 한다. 가파른 오르막이 잠시 이어진다. 헬기장에서 24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널찍한 공터가 있어 여러 사람이 쉬어가기 좋겠다. 보통 단체 산행을 오면 여기에서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노자산 정상에서 학동 앞 바다와 반대편 율포만 일대가 두루 잘 보인다. 남쪽 해금강으로 이어진 능선도 뚜렷하다. 섬 산행 특유의 화려한 조망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예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어서 눈이라도 올까 내심 기대했는데 비다.
겨울산행에서 비를 맞으면 체온을 쉽게 빼앗겨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점심 먹는 것을 포기하고 비옷을 꺼내 입었다. 한결 따뜻하고 좋다. 멀리 가야 할 능선에 정자가 보였다. 그곳까지 더 걷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하고 배고픔을 참고 걸었는데 거의 25분이 걸렸다. 산행대장이 건네주는 사탕 하나가 큰 힘이 되었다. 비가 어깨 위에도 모자 위에도 발아래 고로쇠 단풍잎에도 떨어진다. 이 비가 땅 속으로 스며들면, 내년 봄 고로쇠나무가 힘차게 빨아올려 새싹을 틔울 것이다. 자연의 거대한 순환을 생각한다.
애써 도착한 이층 정자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튼실하게 잘 지어놓았다. 높은 산에 올라 한층 더 높은 이층 정자에 올라서니 자못 신선이 된 기분이다.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은 남해를 향해 깊숙하게 손을 내밀었다. 온몸에 힘을 주어 손이 닿을 수 있는 최대치까지 뻗은 모양새다. 대양을 향한 열망이 절절히 드러난다.
바다와 육지는 늘 맞물려 있어 서로 반목하고 으르렁거리는 관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거제의 꼬불꼬불한 해안선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둘 사이는 배척하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보듬고 함께하는 관계였다. 가장 내밀하고, 튼튼하게 서로의 몸을 밀착시킨 증거물인 해안선. 바다는 육지와 깊은 포옹을 하며 부끄럼도 잊은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비가 계속 내려 가라산까지 가려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갑자기 일정이 짧아지니 힘도 솟았지만 왠지 아쉬움도 들었다. 가장 아름답다는 노자산~가라산 능선길은 꽃 피는 계절에 다시 한 번 와야겠다. 능선을 온통 붉은 보라색으로 뒤덮은 얼레지 군락도 만날 수 있을 게다.
능선에 뾰족하게 솟은 마늘바위는 평소 올라서 지날 수 있으나 비가 오고 있어 미끄러울 것 같아 우회했다. 산길에 둥치가 굵은 소사나무가 많다. 늘 분재로 가꾼 나무만 보다가 자연 상태에서 제대로 큰 나무를 보니 경이롭다. 사람이 손을 대지 않으면 이렇게 잘 자라는 것을.
꼭 30분을 더 걸어가니 뫼바위 갈림길이다. 이제 학동마을로 하산한다. 낙엽이 융단처럼 깔렸다. 비에 젖으니 낙엽이 더 곱다. 산행을 마무리 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을까. 그만 '꽈당' 하고 말았다. 손목이 살짝 시큰거린다. 다리에 힘을 더 주며 신경을 쓴다. 하산을 할 때 나무뿌리나 가지를 밟으면 잘 미끄러진다. 주의해야겠다.
바다 내음이 난다. 할아버지 어부가 마루에 앉아 그물코를 손보고 있다. 집 앞에는 굵은 밧줄로 짠 망태에 수박만한 돌 하나 담아 매달아 놓았다. 올이 잘 매듭지도록 해 놓은 것이다. 겨울인데도 짙푸른 쪽파 밭을 지나니 몽돌이 예쁜 학동마을이다. 하산은 45분 걸렸다. 산행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박영태 산행대장 011-9595-8469.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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