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81> 고령 미숭산 |
고분군, 눈물고개, 우륵의 청금정 … 대가야 500년을 걷는다 |
이재희 기자 |
대가야라는 나라가 있었다. 역사에서 잊혀진 나라였다. 미숭산(美崇山·755m)을 찾아갔다가 대가야를 만나고 왔다. 2천 년 전 대가야는 경북 고령과 경남 합천 일대에 기반을 둔 철의 나라이자, 가야금의 나라였다.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밀집한 주산(主山·310m) 능선길을 걷는 동안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신라 왕릉만큼 거대하지는 않지만, 산줄기에 자리 잡아 위세가 등등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장묘로 실체가 확인된 44호 고분 앞을 지날 때는 앳된 얼굴의 '순장 소녀'가 떠올랐다. 주산을 지나 미숭산으로 가는 길은 '눈물 고개'. 나라를 잃은 대가야 백성들이 피란 가던 고갯길이던가. 대가야의 역사를 타박타박 걸어가는 초겨울 산행이었다.
미숭산 산행은 고령 읍내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대가야박물관에서 시작한다. 왕릉전시관~지산리 고분군~주산~눈물고개 길~반석 쉼터~가야 약수~청금정~반룡사 갈림길~천제단~미숭산성~합천학생야영장 갈림길~미숭산~나상현(나대치)~신리 임도~신리저수지~옥담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지는 13.9㎞를 5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미숭산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고, 정비가 잘 돼 산책로 같은 기분이었다. 꽤 먼 거리인 데도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GPS에 찍힌 평균속도는 시속 3㎞. 거의 평지 속도이다.
대가야박물관에서 대가야를 배웠다. 대가야 중심의 가야건국 설화는 최치원 선생의 석이정전(釋利貞傳)을 인용한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다고 한다. 가야산 만물상의 여신 '정견모주'와 하늘의 신 '아비가'가 혼인을 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 둘째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되었단다. 이때가 서기 42년. 역사서에 삼국시대로 명명돼 가벼이 취급된 고대 왕국 대가야의 역사는 562년 신라에 합병되기까지 무려 520년이나 이어졌다.
잘 정비된 고분들 사이를 지나 주산으로 간다. 아직 햇살이 펴지지 않아 초겨울의 쌀쌀함이 묻어난다. 산책을 하는 주민이 더러 있다. 이정표도 잘 갖춰져 따로 리본을 달 필요도 없었다. 다만 길이 워낙 여러 갈래여서 잘 선택해야겠다.
고분군을 지나니 주산과 미숭산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 길은 주산을 오르지 않고 바로 미숭산으로 가는 우회로인 셈이다. 갈림길을 지나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주산과 충혼탑 갈림길이다. 곧장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어서 충혼탑으로 살짝 우회한다. 출발한 지 딱 30분이 지났다.
충혼탑 방면으로 잠시 걸었을까. 이내 주산으로 오르는 오름길이 시작된다. 20분 만에 주산에 도착했다. 이곳은 주산산성이 있던 곳이기도 해서 성벽을 복원하기 위해 벌목 작업이 한창이었다. 방어의 기능이 사라진 옛 성터는 관광 기능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주산에서 미숭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눈물고개 길.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무릎 꿇은 대가야. 백성들은 이 길로 피란을 갔던가 보다. 하기야 나상현 너머가 바로 합천이니 이 길 말고는 달리 도망칠 길이 없었겠다.
눈물고개를 걸어 18분 후에 반석 쉼터에 도착했다. 어쩐 일인지 이곳에는 음수대가 있었다. 등산객 편의를 위해 고령군에서 설치를 했단다. 쉼터에서 쉬고 있던 여성 등산객이 알려주었다.
고령에 산다는 이 분은 천연염색을 하려 귀농을 했다. '인연이야기'라는 공방을 열어 염색도 하고 한복도 손수 짓는단다. 올해 초부터 산행을 시작해, 처음엔 100m만 걸어도 숨이 찼단다. 그런데 요즘은 수 ㎞도 거뜬하단다. 건네는 원두커피 향이 짙다.
작은 만남을 뒤로 하고 18분을 더 걸어 거북머리에서 가야생수가 샘솟는 자리에 도착했다. 임도가 연결돼 있어 중간 하산로로 그만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청금정(聽琴亭)으로 간다. 악성 우륵이 대가야를 그리워하며 뜯는 가야금 소리를 듣는 길이란다.
청금정 팔각정자에 올라서니 미숭산까지 이어진 웅대한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가야가 멸망하기 꼭 11년 전 대가야를 떠나 신라에 귀순한 우륵이 뜯는 가야금의 소리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청금정을 지나 이어지는 능선길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솔숲이 주는 향이 그윽하다. 솔바람도 쐐쐐~ 정겹다. 반룡사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도 25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약간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20분을 더 걷자 천제단이라는 작은 돌 표지가 보인다. 천제단은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자리였다는데 비석은 그저 삐딱하게 기울어 있다.
천제단을 지나니 미숭산성이다. 고려 말 이성계가 역성혁명을 일으키자 정몽주의 문인이었던 이미숭 장군이 고려를 되찾기 위해 군사를 모으고 항거한 곳이 이곳이다. 고립된 장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고려 복원 운동은 끝났다. 하지만 후세가 그의 절개를 기려 원래 상원산이던 산을 미숭산으로 바꾸어 불렀다.
'이긴 자가 강하다'는 공격적 명제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미숭산성 오름길은 이때까지의 길과 다르게 꽤나 가팔랐다. 천제단에서 미숭산성까지 꼭 30분이 걸렸다.
산성터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학생야영장 갈림길 근처에 빨간 찔레 열매가 제 몸을 한껏 뽐내고 있다. 이제 새들이 먹어줘야 자손이 퍼진다. 미숭산 정상까지는 17분이 더 걸렸다.
가야산 칠불봉과 우두봉이 북쪽에 보인다. 왼쪽 거창 쪽으로는 오도산이 어렴풋하다. 그 너머 덕유산 능선이 우람하게 펼쳐져 있건만 아쉽게도 연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미숭산 정상은 실은 합천군 영역이다. 고령 땅을 그리 걸어 왔건만 정상은 군계를 살짝 비켜나 있다. 합천군에서 지번까지 새긴 정상석을 멋들어지게 세웠다.
정상을 뒤로 하고 나대치로 간다. 나대치는 신라군과 대가야군의 대치로 긴장이 팽팽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형도에는 나상현으로 되어 있다. 길가에 보리수나무가 많다. 내려오는 데 23분 걸렸다. 신리저수지로 하산하는 산길은 임도를 확장하고 정비하면서 사라져버렸다.
꼬불꼬불한 임도를 내려간다. 낙엽송이 샛노랗다. 중간쯤 내려오니 공사 중이다. 12월 초순까지 수해복구 공사를 한단다. 신리저수지는 상류의 공사 여파로 온통 황톳물이다. 옥담마을 버스정류장까지 내려오는데 꼬박 1시간이 걸렸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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