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람!!! 박정희!!!!1
“박정희 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등장할 줄 알았는데…” 전직대통령에게만 붙여야 한다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박정희 대통령만큼 조국과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던 대통령도 없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 같은 사람 3만명만을 괴롭혔지만 이후 대통령들은 3천만명의 국민들을 괴롭혔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기뻐했던 것도 사실이다. 권위주의와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견(短見)이었다.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들 정도이다.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들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박정희가 뿌려놓은‘신바람의 정신력’을 상당부분 후퇴시켜 놓았다. 하극상으로 자신의 상관을 체포하고 대통령이 된 사람, 친구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받은 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세월을 보낸 사람, 나라 곳간을 텅 비게 만들어 백성들이 금모으기 운동까지 하게 만든 사람, 하는 짓이 영락없는 *****였던 사람,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가족들의 비리가 부끄럽다며 벼랑에서 뛰어 내려 숨진 사람 등... 못 미치는 평가를 받고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모두가 박정희 직간접으로 연결이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박정희의 정적(政敵)이었다. 이들이 대통령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고, 간첩 하나도 제대로 못 잡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흔들고 있지만대통령은 친북좌파의 눈치를 보며 중도실용이라는 기회주의 노선을 걷는데 급급하고 있다. 박정희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왜 모두들 박정희의 반도 못 미치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 대한민국에 탄생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2009년 현재 그 보다 더 조국과 민족을 위했던 대통령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여자문제, ***간의 독재, 유신헌법 등 그의 단점은 좌파들의 좋은 공격거리가 되곤 한다. 하지만 박정희에게는 세종대왕 이래 그 어느 지도자도 갖추지 못했던 장점이 있었다. 국민들을 궁핍과 가난해서 구하겠다는 강한 의지, 사리사욕을 챙기지 않았던 청렴한 삶, 청와대 안의 야당(野黨) 육영수 여사, 주변 주변 강대국들과 북한을 상대로 한 배짱과 용기 등이 그가 갖고 있던 커다란 힘이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의 경제력이 대한민국을 앞섰다.이런 상황에서 박정희는 국민들에게 신바람 나게 일하는 ‘최면’을 걸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등이 이때 나온 ‘최면’ 구호이다.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북한은 무장공비와 간첩으로 맞섰지만 박정희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김정일 집단의 선전도구로 전락하지도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이 박정희를 연구하고 새마을 운동을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성장하게 만들었나가 연구대상인 것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하는데 일본 1백년, 미국 1백80년, 영국 2백년이 걸렸다. 이는 박정희와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인 것이다. 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세계인들의 평가는 우리들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끼게까지 한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것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 합니다” (김정일, 1999년 故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의 대화 가운데)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 시게루와 중국의 덩 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박정희는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현 싱가포르 고문장관)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 한국을 저개발의 농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앰스덴, MIT 정치경제학 교수) 박정희 대통령은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맨스로프, 러시아 안보연구소 교수) 놀라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홍, 중화인민공화국정책과학연구회장)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이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전 총리) 박정희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하였다” (버홀트 카터,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합니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뉴욕대학 명예박사) 1백2 달러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인당 GNP가 1천30 달러였을 때 한국의 1인당 GNP는 1만6천5백 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 살던 동남아 국가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존경스럽다”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미국 RAND 연구소) 빈곤했던 우리 역사에 대한 한에 가까운 처절한 심정, 그리고 빈곤을 극복하여 경제대국을 이룩하려는 치열한 집념에 숙연해지곤 했다” (고건, 전 대한민국 국무총리)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한국은 박 전 대통령의 지도 아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개발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잔라빈 차츠랄트, 전 몽골 총리) 수단과 같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세계은행 보고서는 버마와 필리핀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보았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원이 없는 남한은 경제적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은 오늘날 세계 11대 무역국이며 1996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중략) 불리한 자연 공간적 전제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경제기적을 이루어 냈다” (독일 국정교과서 고교 상급반 지리 92쪽) 대통령 박정희(1961∼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산업 능력을 가진 국가를 형성했다. 수도 서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독일 국정교과서 중학교 지리 1백9쪽) (블라디미르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후임 대통령들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유산을 남긴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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