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86> 의성 선암산 |
칼바람이 분다 … 인적 없는 눈길엔 노루 발자국뿐 |
전대식 기자 |
몇 년 만에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삼한사온이 사라졌다는 엄살도 나온다. 전국에 연일 한파가 몰아치면서 부산도 얼마 전 모처럼 눈 구경을 했다. 기대보다 적게 내린 눈을 아쉬워하며 '산&산' 팀은 이번 주 산행지로 경북 의성군에 있는 선암산(船岩山·879m)을 택했다.
산도 산이지만 선암산 인근 빙계계곡은 밀양 얼음골처럼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기로 유명하다. 옛 사람들은 이 계곡에 얼음 구멍과 바람구멍이 따로 있다 하여 '빙산'이라고도 불렀는데, 약간 과장하면 예전엔 겨울에도 이 계곡에 김이 모락모락 났다고 했다. 북두산(598m)과 선암산, 뱀산(838m)이 계곡을 말편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어 보기에도 아늑하다. 경북 8승의 하나다.
경북 의성 일대에서 부산·경남 산꾼들한테 인기 있는 산은 금성산(530.1m), 비봉산(671.8m), 북두산, 복두산(508m) 등이다. 선암산은 앞에 산들을 아래로 보는 의성지역 최고의 산이라, 산꾼들은 주변에 갔다가 입맛만 다시고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선암산을 부산·경남 산꾼들은 '두고 보자 산'으로 부른다나 어쩐다나?
애초 용산교를 들머리로 척화~선암산~뱀산~큰한티재~용산교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산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3~4일째 내린 눈 탓에 용산교 부근 들머리 입구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산행팀은 현지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잦다는 기상정보도 있었다. 독자들이 산행팀의 루트를 따라 오를 경우 상당한 혼란을 줄 수 있고, 눈에 길이 가려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결국 현지에서 계획을 급히 수정, 대동리 경로당에서 출발해 임도를 타고 큰한티재에 올라 뱀산~선암산~척화~대동리 경로당 코스를 타기로 했다. 통상 산꾼들이 즐겨 택하는 코스를 역행하는 것이었다.
기점인 대동리 경로당 왼편에 북두산이 장중하게 버티고 있다. 북두산 중턱에 있는 고래수염 모양의 누런 암벽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용산교에서 백암사 방향으로 한 발씩 움직였다. 길은 흰색 생크림으로 포장한 것 같다.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부담스러웠다. 백암사 주변에는 인적이 없었다. 간혹 노루와 마을 개의 발자국이 가지런하게 나 있다. 길은 눈으로 만든 백지였다.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발목에 힘을 주지 않으면 중심을 잃을 수도 있겠다. 무결점의 눈길이 이어졌다. 앞 사람이 간 길이 곧 내가 갈 길이 될 터.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갈 때는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산행대장도 "이런 날은 옆 사람이 전우와 같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사과 과수원에도 눈이 쌓였다.
임도를 따라 1시간 동안 500여m를 걸어 큰한티재에 당도했다. 임도는 이곳까지 연결됐는데, 눈에 덮여 포장과 비포장이 분간되지 않았다. 이곳은 송이가 나는 철이면 입산이 금지된다. 곳곳에 붉은색의 '입산금지' 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임도 끝에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군 고로면'이라는 경계 간판이 서 있었다. 큰한티재에서 뱀산 북능선은 군위와 의성의 경계지역이다. 일연 스님도 이 길을 걸었을까? 그도 눈길을 헤치며 자신의 길을 열어 나갔을까?
경계 간판 옆에 큰한티재 이정표가 보였다. 선암산까지 3㎞.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했다. 눈꽃을 가득 머금은 솔을 쳐다보다 15분 만에 뱀산 북쪽 능선에 이르렀다. GPS를 보니 발을 움직여 위로 올라갈 때마다 고도계의 숫자도 가파르게 올라갔다. 뱀산 북능선을 타고 뱀산을 향할 때 표고가 벌써 700m로 올랐다. 발아래 길은 진작 사라졌다. 머리 위 나뭇가지에 달린 안내 리본으로 갈 길을 헤아려야 했다. 의성에 사는 김경경, 김문진, 안종화 씨가 붙인 것 같은 '막무가내(莫無可奈)'가 쓰인 흰색 리본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1시간 30분 만에 뱀산에 올랐다. 평상시 같으면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등산로를 타고 내려와야 했다. 그리했다면 가파른 경사에 눈까지 더해져 상당히 애를 먹었을 것이다.
의성군에 따르면 이 산은 예부터 암석이 많아 산세가 험악했다. 뱀이 많아 여름철에는 뱀 장수가 이 산에서 많은 뱀을 잡아갔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 산을 뱀산으로 불렀다.
뱀산에서 선암산까지 구간도 눈이 쌓였다. 하지만 평지로 느낄 만큼 체감 표고 차가 낮아 1.2㎞ 구간을 50여 분 만에 주파했다.
기점에서 선암산 정상까지 3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선암산 정상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소나무 등의 잔가지가 시야를 막았다. 지도상에 표시된 헬기장도 눈에 덮여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그 자리를 대충 알아보겠다. 선암산 정상을 알려주는 붉은색의 이정표가 없었다면 지나칠 만도 하겠다.
그래도 정상은 정상인지라 몇 걸음 옮겨 주위를 살폈다. 인근 북두산, 복두산이 한참 아래 보였다. 서쪽 방면으로 멀리 대구 팔공산이 어렴풋이 보였다. 눈이 그쳤지만 사위가 희미해 청명하게 보이지 않는 게 아쉬웠다. 눈꽃만 양껏 구경하고 하산길을 재촉했다.
정상에서 묘지를 지나 척화삼거리로 향했다. 내리막이라 걷는다는 느낌으로 미끄러지듯 발을 내디뎠다. 1시간 정도 아래로 내려가다 척화삼거리 이정표를 발견했다. 여기에서 기점인 대동리 경로당까지는 2㎞. 낮부터 눈이 그치고 해가 떠 눈이 제법 많이 녹았다. 등산화에 진흙이 조금씩 묻었다.
총총걸음으로 한참을 내려왔다. 드디어 들머리에 이르렀다. 여기에도 입산금지 간판이 곳곳에 서 있다. 돌아서서 선암산 정상을 쳐다보니 생각보다 정상 모양이 매서웠다. 여기서 대동리 경로당까지 10분이 안 걸렸다. 총 5시간 12분, 8.7㎞를 걸었다.
종점인 대동리 경로당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빙계온천'이 있다. 몇 년 전부터 개점휴업 중이다. 의성군청에 문의하니 "온천 주인이 바뀌어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라고 했다. 다행히 올해 상반기에는 개장할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선암산 산행 뒤에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그고 그날 산행을 돌아보는 느긋한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겨울 산행은 기상이 갑자기 바뀌기 십상이다. 방한복과 여벌의 양말은 물론, 스틱과 스패치, 아이젠 등은 반드시 휴대할 것.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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