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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 <301> 고성 무량산

호젓한오솔길 2011. 5. 1. 21:07

 

[산&산] <301> 고성 무량산
순하고 여린 산길… 사람 발길 적어 고즈넉한 산세 그대로
전대식 기자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리산 영신봉에서 또다시 솟구쳐 김해 분산까지 또 한 번의 획을 긋는다. 바로 낙남정맥이다. 하지만 낙남정맥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이 신음을 하고 있다. 안타깝다. 특히 경남 진주와 사천 일대의 송비산(243m)~무선산(278m)~봉대산(409m)과 고성의 백운산(484m) 산줄기는 고속도로, 지방도로가 정맥을 어지럽히고 있다. 다행히 쇠약해진 정맥은 다시 한 번 부활해 낙남정맥의 명맥을 잇는데 이곳이 바로 고성 무량산(無量山·583m)이다. 산꾼들에게 잘 알려진 고성 명산인 거류산(571m), 구절산(559m)보다 더 높다. 고성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산 높이와 산행의 맛이 꼭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량산은 거류산이나 구절산보다 산꾼들의 발길을 덜 탔다. 가파르거나 기이한 바위 봉우리도 없고, 물 좋은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산은 고즈넉한 산행을 즐기는 산꾼들에게 소리 없이 기억되는 산이다. 무량산은 지금 진달래가 지고 철쭉이 피고 있다. '산&산' 팀이 답사했더니 봄철 꽃 산행 코스로 잡아도 무리가 없겠다. 사람의 발때를 덜 탄 만큼 산길은 순하고 여렸다.


낙남정맥 명맥 되살리는
고성 지역 산 중 최고봉

측백·편백·떡갈나무 등
내리막길 울창한 숲 이어져


산행코스는 양화리 경로당에서 출발, 무량산 등산 안내판이 있는 곳을 본격적인 들머리로 잡았다. 227봉과 봉화산을 지나 556봉, 572봉까지 쭉 걷고 정상을 밟은 뒤 측백나무 숲과 화리재를 거쳐 숲길을 따라 하산한다. 기점과 종점이 딱 맞아떨어진다. 들머리~봉화산, 봉화산 안부~556봉 구간만 신경 써서 걸으면 무리가 없겠다.

양화리경로당 옆에 당산나무가 있다. 300년가량 된 느티나무다. 금줄이 쳐져 있어 잠시 고개를 숙였다. 느티나무 사이로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마을길을 따라 들머리로 걸어간다. 봄보리와 사료용 밀밭이 푸른 물결로 춤을 춘다. 명주바람이 불자 춤사위가 더 바빠진다. 등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이다. 기운이 난다.

20분 정도 신작로로 걸었다. 두릅, 음나무가 먹기 좋게 자랐다. 코투레골을 넘는 시멘트 고개에 올랐다. 고갯마루에 무량산 등산 안내판이 있다. 소갯글을 읽었다. '무량산은 대가면의 중심을 이루는 산으로 양화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는 형세다. 동서로 길게 뻗은 낙남정맥으로 고성 지역 산 중 최고봉이다.'

안내판은 또 '고성의 진산이며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형상으로 말 그대로 헤아릴 수 없는 은은한 산세를 지녔다'고 덧붙였다. 11년 전 낙남정맥을 종주하면서 무량산에 올랐던 홍성혁 산행대장이 "다시 찾게 돼 감개가 '무량'한 산"이라고 농을 했다.


안내판 왼쪽을 들머리로 잡고 산에 첫발을 댔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양발 가에 깔렸다. 밟을까 봐 조심조심 걸었다. 솔가리가 있어 길은 푹신푹신했다.
소나무 사이사이에 두릅나무 비슷한 게 있다. 산두릅이 맞나? 자세히 보니 옻나무다. 간혹 일부 등산객이 옷을 두릅으로 착각해 삶아 먹었다가 낭패를 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충분히 헷갈릴 만하다.

들머리에서 227봉까지는 10분. 봉우리 한쪽에 '제1전망대'라는 나무푯말에 걸려 있다. 별다른 경관은 없다. 계속 직진한다. 조금 벗어나니 오른쪽에 구절산~거류산~벽방산 마루금이 훤히 보인다. 마루금과 하늘이 닿은 부분이 햇볕 때문에 허옇다. 20분 정도 더 간다. 충효테마파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 주변에 진달래가 드문드문 피어 있다.

여기서 5분 정도 거리에 봉화산(353m)이 있다. 예전에 '고성 천왕점 봉수대'가 있던 데다. 여기서 봉화를 올리면 고성군 동해면 곡산과 통영
우산 봉수대가 불빛을 받았다.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봉수대 한쪽 대밭을 통과해 조금 더 걸으면 안부가 나온다. 소나무 숲 속을 걷는다. 낙화가 더딘 산벚나무, 왕벚나무가 산꾼을 미소 짓게 했다.

오르막을 오르면 자그마한 바위가 나온다. 바위 틈새에 진달래가 듬성듬성 피었다. 오르막을 조금씩 오르자 진달래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안부에서 30분쯤 걸어 556봉을 스쳤다. 10분 정도 지나자 고성 땅과 남해가 훤히 드러나는 전망 좋은 곳이 나타났다.
계단 모양의 바위에 앉아 잠깐 땀을 식혔다. 양화저수지와 대가저수지가 먹색 빛깔을 띠고 있다. 봄볕이 통영, 고성의 산과 섬들 머리에 앉았다.

자리를 떠서 10분 정도 올라갔다. 산꾼과
산악동호회의 등산 안내 리본이 어지럽게 달린 곳이 나타났다. 리본은 낙남정맥 답사를 기념하는 것이었다.

572봉을 스치고 정상 이정표까지는 10분 정도. 오는 길에 진달래 만발한 꽃길을 통과했다. 봄에는 진달래를 보는 산행이 대세다. 그 탓에 이름난 산은 몸살을 앓는다. 덜 알려져서인지 무량산은 이런 몸살을 피한 듯했다.

이정표부터 조금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10분쯤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은 정상 왼쪽은 화리재 방향이다. 무량산 정상을 밟고 이 삼거리로 다시 나와 화리재로 가야 한다.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6~7분 정도. 무난하게 정상에 오른다. 정상 둘레에 진달래와 철쭉이 담을 치듯 둘러쌌다. 북쪽을 본다. 학남산(550m)~백운산의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증축 중인 천비룡사가 백운산 중턱에 있다. 뒤로 돌아 남쪽을 본다. 고성, 통영 땅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서쪽 대곡산(545m)
정수리 부근에도 진달래가 분을 칠한 듯 곱게 피었다.


정상에서 삼거리로 돌아 나왔다. 화리재 방향으로 길을 냈다. 10분 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다. 화리재 쪽으로 계속 걷는다. 잠시 뒤 측백나무 숲길을 걸었다. 나무 그늘이 5분가량 계속 나온다. 그늘이 끝날 무렵 화리재를 만났다. 화리재부터는 내리막인데다 숲길이다. 길은 시멘트 길과 자갈 길이 번갈아 나온다. 구비를 돌 때마다 숲은 떡갈나무, 갈참나무, 측백·편백,
오리나무 등으로 장면을 바꿔 등장한다. 나무는 터널처럼 머리 위를 지난다. 산들바람과 골바람이 무람없이 나무를 흔든다. 산행의 노곤함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봄날이 가고, 벚꽃, 진달래, 철쭉마저 물러가면 이 길은 잎과 나무만으로 신록을 자아내는 '푸른 길'이 될 것이다.

화리재에서 50분 정도 이런 길이 계속 연결된다. '무량산
둘레길'로 불러도 무방하겠다. 미륵불을 모시는 무량사에 들렀다. 용화전 문을 열고 '석조여래좌상(경남 유형문화재 제121호)'을 구경했다. 유리곽 안에서 가사를 걸친 불상은 온갖 풍상을 겪었던지 머리, 코, 손 부분이 심하게 훼손됐다. 통일신라시대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무량사에서 마을 길을 따라 종점까지는 10분 정도. 산행거리 10.2㎞를 쉬는 시간 포함해 4시간 30분 정도 걸었다.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