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법사(智明法師)
경북 포항 내연산 보경사(內延山 寶鏡寺) 전설
지명법사(智明法師)는 진평왕 7년(585) 7월에 중국에서 불교를 수학하기 위해
진(陳)나라로 가는 사신들과 동행하여 불법 수학의 길에 올랐다. 10년이라는 구
도(求道)의 세월이 흘러갔다.
이 동안 중국의 정세는 바뀌었고 수(隋)나라의 문제는 진나라를 쳐서 진(陳)을
멸망시킨 뒤였다. 지명법사는 자신이 10년 동안 갈고 닦으며 전심 전력을 다하
여 수학하여 온 것을 유명한 도인이나 법사, 선지식을 친견하여 문답하며 견문도
넓히고 자신의 수행을 인가받기 위하여 양자강을 건너 북으로 북으로 명승 고찰
과 선지식 순방길에 올랐다.
지명법사는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졌을 때, 중국 최초의 창건 사찰인
하남성(河南城) 낙양(洛陽) 백마사(白馬寺)를 순방의 첫 목표로 하여 도착하게 된
것이다.
백마사는 지명법사가 그곳에 도착할 당시에 5백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중국
최초의 창건 고찰로서 가람이 웅장하게 장엄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색이 창연하
여 순례자들은 어느 누구나 경의를 표하는 사찰이다.
이 고찰에 도착한 지명법사는 대웅전에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하여 대웅전 법
당에 들어섰다. 대웅전에 봉안된 부처님은 인도에서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
법란(竺法蘭) 두 스님이 중국으로 불법(佛法)을 전하기 위하여 모셔온 석가모니
불상이다.
이 석가모니 불상을 친견하여 예배드리기 위해 불상을 우러러 보자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신도 모르는 어떤
감회에서 오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지명법사는 왜 눈물이 비오듯 하며 서러움이
복받쳐 오는 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참배가 끝난 후 80이 넘은 주지 노승을 친견하고 해동 계림국에서 불법을 구
하기 위하여 중국에 유학 왔다가 사찰 순례와 선지식을 친견하러 순방 길에 올라
처음으로 백마사를 순례하게 되었음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주지 노승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눈을 감고만 있었다.
한참 후에 조용히 눈을 뜬 후 시종을 물리치고 나서,
"아!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마총의 임자가 왔구나!"
하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님은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시며 어디를 인도하는지 백마사를 나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교가 처음으로 중국에 전해졌을 때, 가섭마등과 법란 두 스님이
석가모니 불상 한 분과 불경을 모시고, 12면경과 8면경을 백마에 싣고서
불법을 전하기 위하여 중국으로 왔는데 백마는 중국에 도착하여 죽었기
때문에 그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백마사라 사명을 정하고 그 백마를 묻고서
그 무덤을 백마총이라고 불렀는데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다."
백마사에서 한 5리쯤 가서 곱게 단장되어 있는 무덤 하나를 발견하였다.
"저것이 이야기한 백마총이다."
지명법사는 백마총에 삼배를 올리고 백마총 기적비의 비문을 읽었다.
"서천 중인도에서 태어난 이 백마는 숙세의 인연으로 말의 몸을 받았으나
체구가 건장하며 근력이 나라연(那羅延. 金剛力士) 같고 지혜가 뛰어났다.
이 백마가 석가모니 불상과 불경을 등에 싣고 험악한 산과 계곡의 10만리
길을 거쳐 이 진단국에 도착하여 목숨을 마쳤다. 그러나 부처님과 인연을
맺지 못한 한인에게 인연을 맺게 하고 교화하게 한 이 공덕으로 이제는
축생의 몸을 받지 않고 세세생생에 태어나는 곳마다 정토에 태어나고
항상 이목이 청수하고 총명하며 신체가 단정하여 또한 동진출가(童眞出家)
하여 삼장의 교리를 통달하고 불법의 대도를 깨우쳐 대법사ㆍ선지식이 되어
불법을 널리 선포하고 수없는 중생을 교화ㆍ제도하는 보살도를 닦아 마침내
최정각을 이룰지니 이 인연 공덕과 원력으로 세세생생의 대복전(大福田)이
될지어다.
아! 거룩하고 성스러운 공덕이여!
이 얼마나 거룩하고 장엄한 원력인가!
그 빛은 진단국과 해동에 빛이 될지니라!"
비문 읽기를 마친 지명법사는 주지 노승이 말하지 않아도 법사 자신이 전생에
이 백마로 태어나 전법한 공덕으로 해동의 승려로 태어나 이제 그 전법의 인연이
닿아 이곳에서 다시 만난 인연을 깨닫고 무한한 감회에 젖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에 주지 노승은 주장자를 세 번 치면서 외쳤다.
"오늘 백마총의 임자인 지명스님이 여기 왔으니 호법신령과 호법신장은
그 법보를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라."
노승의 외침이 끝난 후 백마총 바로 옆의 땅이 갈라지면서 석함이 솟아 올랐다.
"지명스님! 저 석함을 열어 보아라!"
돌 석함이 종이장처럼 가볍게 열렸다. 석함 뚜껑 뒷면에 뚜렷한 글씨가 새겨
져 있었다.
"내 일찍이 백마의 몸으로 태어나 마등(摩騰), 법란(法蘭)의 두 도인을 모시고
불상과 불경 그리고 12면경과 8면경을 운반한 공덕으로 다시 몸을 얻어
백마사에 마등, 법란 두 도인의 제자가 되는 인연을 얻었다. 그때에 마등,
법란 두 도인이 나 일조(日照)에게 이르기를, '동국 조선 해뜨는 곳 종남산
아래 백척 깊은 못이 있으니 그곳이 동국 명당이다. 그곳을 메워 이 8면경을
묻고 법당을 창건하면 만세천추에 불법은 멸하지 않을 것이니 너는 그곳에
태어나 이 인연을 짓도록 하여라.' 하는 법연을 받았다. 이제 나의 인연이
다 함을 알고 해동 계림국에 호법성왕이 출현할 때에 인간의 몸을 받아 다시
해동의 사문이 되어 이곳 백마총에 와서 이 8면경을 취해 해동으로 돌아가
대 불사를 일으켜 세세생생 불법이 흥하여 정토을 이루고자 함이다.
일조 근지."
이 기록의 주인인 스님은 지명스님이 중국에 도착한 해의 450년 전의 백마사
주지 노승이다.
그때 백마사 주지 노승인 일조(日照) 스님이 전생의 지명스님이었고, 또 그것을
취하러 중국에 와서 백마사에 도착한 지명스님은 전생의 일을 깨닫게 되어 두 눈
에는 눈물만이 앞을 가릴 뿐이었다.
그 석함 속에는 지명스님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지 8면경이 빛을 더욱 발하고
있었다.
주지 노승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자! 이 물건의 임자를 이제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 또한 임자가 나타나기
를 이제까지 기다리고 있었단다. 오늘에야 임자를 만났으니 할 일을 다 마친
것 같구나! 자! 이 8면경을 잘 호지하라!"
지명스님이 8면경을 받아 지니자 석함이 저절로 땅속으로 사라졌다.
주지 노승은 이 8면경은 돌로 다듬어진 거울이지만 보배의 거울이니 8면보경
(八面보鏡)이라고 말하며, 8면보경이 지닌 뜻을 설명했다.
그리고 주지 노승은
"이 큰 뜻을 지닌 8면보경을 소중히 보호하여 본국에 돌아가 국토를 정법으로
정토를 이루고 만민을 제도, 교화하는 대불사를 일으키도록 하여라!"
백마사로 돌아온 주지 노승은 절의 승려들과 모든 대중을 모아 놓고 말씀하시
기 시작했다.
"이젠! .... 나는 이 생에서 할 일을 다 하고 인연따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 몸을 버려야 할 때가 왔구나! 사부대중들은 의심나거나, 의혹된 것을
질문하라!"
모든 대중은 갑자기 주지 노승의 말에 숙연해지면서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하였
다.
"현재의 과(果)를 잘 관찰해 보면 과거의 전생을 알 수 있고,
현재의 인(因)을 잘 관찰하면 미래를 알 수 있느니라!"
는 말을 마치고 입적하셨다.
모든 사부대중들은 부모님을 잃은 것과 같이 통곡하며 슬퍼하였다.
지명스님은 주지 노승의 49재를 지내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덕 노승의 수행
원력과 공덕을 찬미하는 염불과 예불을 하였다.
49재를 마친 지명법사는 백마사에서 제공하여 주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장안에 도착하였다.(601년) 지명법사는 자신이 전생에 백마인 축생의 몸을 받았
음을 깨닫고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도착하여 장안의 모든 선지식을 순방하면
서 문답을 하였다. 중국의 고승 대덕스님들은 지명법사의 지혜와 법력에 다 탄
복하고 칭찬하지 않는 스님이 없었다.
지명법사는 이제 순례가 끝났으니 중국에는 더 머무를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 대불사(大佛事)를 일으켜야 되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다.
문황제에게 귀국의 뜻을 표하여 허락을 얻은 후 고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보경사 적광전과 오층석탑
고국에 돌아오니 왕과 대신들이 8면보경을 친견하기를 원하자 지명법사는 그
8면보경을 부처님의 불단 위에 안치한 후 향을 사르고 삼배를 올린 후 8면보경을
싼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투명한 8면보경이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왕이 보경을 보자 삼배를 올리고 자세히 친견하고 난 후에 지명법사는
"8면보경은 소승의 전법의 전생 인연이지만 대왕님의 인연이기도 합니다.
호법성왕이 탄강하시어야 이 국토에 전해질 수가 있었기에 대왕님의 호법
인연인 것으로 인한 것이옵니다."
"그럼! 내일부터라도 동해안에 있는 해맞이(迎日) 고을로 출발하여
모든 백성들이 동참하는 대불사를 성취시키도록 합시다."
"대왕님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렇게 하여 왕은 시신들 수십명을 대동하고 지명법사와 함께 영일을 향하여
행차하여 영일 해안에 이르자 하늘은 끝없이 높고 밝았고, 만경창해는 더욱 푸
르고 넓었다.
왕이 해안에서 어디를 금당으로 정하였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지명법사는 하늘
을 쳐다보며 보살의 형태를 한 구름을 가리키면서,
"저 구름을 따라서 가면 틀림없는 명당자리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그래서 일행은 보살모양을 한 5색구름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북으로 수 십리를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갔다. 산을 끼고 맑게 흐르는 계곡은 마치 신선이 사는 곳
으로 여겨졌다.
이 산의 이름은 내연산(內延山)이었고 계곡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산
의 전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윽하여 그 장엄스러움은 말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
었다. 계곡 사이에 평원처럼 고요하면서 넓은 연못이 있었다. 일행은 자신도 모
르게 그곳에 멈추었다.
그 누구도 이런 절경을 이제까지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며 자신들도 모르게 우
리가 찾는 금당자리가 여기로구나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속에서 지명법사는 왕에게,
"바로 이곳이 8면보경의 법보를 모시고 금당(金堂)을 모실 대 성역이옵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왕의 일행은 많은 인부들을 동원하여 연못을 메우고 그 중앙에
8면보경을 봉안하였다.
이와 같이 8면보경(八面寶鏡)을 봉안하여 금당(金堂)을 창건하여 세워진 절이라
하여 보경(寶鏡寺)라고 하였다.
-전통사찰의 창건설화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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