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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DMZ 평화누리길

호젓한오솔길 2011. 8. 19. 07:26

 

 

[트레킹, 이 길을 걸어요]

김포 DMZ 평화누리길

 

 

 

전쟁의 상처도 보듬는 초자연의 푸름
대명항~문수산성 '김포1구간' 5시간 걸리는 총 15.4㎞ 코스
대명항부터 원머루나루 구간식당 없어 먹을거리 챙겨와야

 

전선은 항상 적막하다. 길게 뻗어 있는 철책선 주변에 새겨져 있는 것은 군인들의 발자국뿐이다. 행여 민간인이 다가가려고 해도 철조망에 붙어 있는 경고문이 접근을 가로막는다. 철책 너머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이 지역은 유실 지뢰 및 폭발물이 발견되는 지역으로…"로 시작하는 문구 앞에서 멈춘다.

그래서 전방에는 원초적인 자연이 살아있다. 전쟁과 분단의 상흔(傷痕)이 남긴 역설이다.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는 60년 가까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덕에 세계적인 자연의 보고(寶庫)가 됐다. 그 자연을 함께 누리고자 경기도는 지난해 김포·고양·파주·연천을 잇는 182.3㎞의 도보여행길을 묶어 DMZ 트레킹 코스 '평화누리길'로 만들었다. DMZ 인근에 설치된 군사 철책선을 따라 걷는 코스다.

왼편으로는 바다가 오른편으로는 숲이 흐른다. 경기도 김포시 DMZ 트레킹 코스에선 바다와 숲이 한데 어우러진다. 자연의 흐름은 철조망도 뛰어넘는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wanfoto@chosun.com

 

철책선 따라 놓인 옛 포대 길

그중 가장 서쪽의 해안가를 따라 걷는 길이 '김포 1구간'이다. 대명항~덕포진~쇄암리~김포CC~문수산성까지 이어지는 15.4㎞의 코스다. 길 입구는 대명항에 있다. 대명항 주차장 안쪽에 있는 함상공원을 왼편으로 끼고 걸어나가 보자. 공원 바깥에서도 보이는 '운봉함'은 1944년 제작돼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퇴역 함정이다.

공원 담벼락이 끝날 때쯤 안내지도와 작은 철책문이 보인다. 문을 열고 10m쯤 들어가면 길이 시작된다. 왼편으로는 해안가를 따라 철책이 길게 뻗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푸른 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들판 위로는 하얀 백로가 노닐고 있다.

30분 남짓 걸으면 길 오른편으로 옛 포대가 나온다. 조선시대 진영으로 한양으로 통하는 바닷길의 요충지였던 덕포진(德浦鎭)이다. 바다 건너 강화도에 마주 보게 지어진 초지진(草芝鎭)과 양쪽에서 포를 쏘며 외적의 침입을 저지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와 싸우고 신미양요 때 미군 함대에 맞선 역사적인 곳이다. 사적 제292호로 지정돼 있다.

포대는 멀리서 보면 작은 언덕처럼 생겼다. 가까이 보면 작은 구멍 7개가 보인다. 포탄을 쏘던 구멍이다. 뒤쪽으로 돌면 대포를 놓던 자리가 있다. 1980년에 이뤄진 발굴 조사에서는 포탄이 7개 나왔다는데 지금은 대포나 포탄은 없고 포대만 남아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5개짜리와 3개짜리 포대가 잇따라 나온다. 과거에는 살벌한 군사시설이었겠지만 지금은 무성한 숲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경치가 됐다.

덕포진 끝에는 커다란 묘가 하나 있다. 뱃사공 손돌(孫乭)의 묘다. 고려시대 손돌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파천(播遷)하려는 임금을 배에 태웠다. 물길이 험난하니 임금이 문득 "나를 죽이려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어 손돌의 목을 벴다. 그 후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음력 10월 20일이면 거센 소용돌이 물살이 인다고 한다.

그 억울함이 뭍에도 남았을까. 손돌 묘를 지나면서 길이 험난해졌다. 철책선은 여전히 해안선을 따라 이어졌지만 갯벌이 으레 이어지는 해안이 아니라 해안절벽이 나왔다. 산처럼 가파르게 올랐다가 줄을 붙잡고 내려가는 길이 반복됐다. 30분도 되지 않아 등줄기엔 땀이 흘렀다. 산을 즐겨 타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코스다. 가급적이면 등산화를 신고 오는 게 좋다. 한여름이지만 무성히 자란 나무가 햇볕을 가려줘 따갑진 않았다.

김포 DMZ 트레킹 길 위에 피어 있는 능소화.

 

강아지와 닭이 노니는 농촌길

산길을 내려가면 신안리와 쇄암리가 나온다. 김포쌀을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길은 마을 바깥쪽으로 나 있다. 하지만 드문드문 민가도 있어 졸고 있는 강아지나 마당에 풀어놓은 암탉을 볼 수 있다. 마을 어귀엔 꽃도 피어 있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간 느낌 그대로다.

이 구간을 걸을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대명항 입구부터 원머루나루에 이르는 8.3㎞ 구간에 식당이나 상점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힘들다고 택시를 잡아탈 수 있는 탈출로도 없다. 마을 두 곳을 지나지만 해안선으로 난 길만 따라 걷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출발 전 물과 먹을거리를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원머루나루의 구멍가게를 지나치면 다시 해안길이다. 갈림길마다 김포시가 설치한 표지판이 있어 비교적 쉽게 행로를 찾을 수 있다. 가로수 그늘이 없어 햇볕이 따갑다.

원머루나루부터 2시간 남짓 걸으면 포내천을 지나 문수산이 보인다. 삼거리엔 마을산성 입구라는 이정표가 서있고 바로 그 밑에는 '첫째길 끝지점'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20m 앞에 문수산성 남문이 보인다. 이곳이 1구간의 종점이자 2구간의 출발점이다.

대명항부터 문수산성까지는 5시간이 넘게 걸린다. 김포시청 홈페이지(gimpo.go.kr) 문화·관광 안내에는 약 4시간 소요된다고 돼 있지만 그보다는 난도(難度)가 높다. 체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덕포진 첫째 포대 뒤로 뻗은 언덕길을 걸어 남쪽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덕포진 주차장을 지나 동명항으로 돌아가면 1시간짜리 산책 코스라고 한다. 출발하기 전 김포시청 문화관광과(031-980-2743)에 구간별 공사 여부를 물어보는 게 좋다.

협찬: Lafu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