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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이 만든 섬 꼭꼭 숨었네 소양호 품에

호젓한오솔길 2011. 8. 25. 20:58

댐이 만든 섬 꼭꼭 숨었네 소양호 품에

 

 

오지여행―춘천 대곡마을

 

내륙에 호수가 생기면서 섬이 된 마을이 있다.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는 내륙의 섬이다. 이곳을 섬이라 부르는 건 배로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뒷산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으나 워낙 산세가 험해 교통로가 없다. 경춘선이 개통된 마당에 춘천에 그런 오지가 있을까 싶지만 춘천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대곡마을이 있는 북산면은 이름처럼 춘천 북쪽의 첩첩산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춘천시내에서 북동쪽이며 화천·양구·홍천 경계에 있다.

소양댐이 생기면서 호수에 고립된 대곡마을의 한 주민이 잔잔한 소양호를 바라보고 있다./ 김승완 영상미디어기자wanfoto@chosun.com

 

작은 나루터에 마중 나온 이건형 이장의 보트를 타고 소양호를 가른다. 소양댐에서 보던 소양호와 다르다. 관광객 눈길이 닿지 않는 호수 안쪽 깊숙한 곳이다. 사람이 만든 호수지만 사람 흔적이 없다. 초록이 지배하는 곳, 물속에도 산이 있고 물 밖에도 산이 있다. 물빛보다 파란 건 8월의 하늘이다. 호수를 가르며 달리는 보트의 속도에 바람이 머릿결을 헝클며 장난친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촉감과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호수의 풍경이 감미롭다.

보트로 15분쯤 달리자 호숫가 양지바른 곳에 대곡마을이 나타난다.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선을 따라 집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장은 마을의 큰 어른인 박기모(74) 전 이장댁으로 안내한다. 이장은 "박기모 어르신은 마을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했다.

박 전 이장은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물에 잠기기 전부터 살아온 대곡리 토박이다. 소양댐이 준공된 1973년부터 2009년까지 37년 동안 이장을 맡았다. 그는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마을 뒤쪽으로 도로를 이으려면 수백억이 드는데 가구 수가 적고 경제성도 없어서 길을 낼 수 없는 여건"이라고 했다. 호수만 건너면 46번국도가 있어 유일한 왕래수단이 배가 되었다. 대곡리 주민들은 가구당 대개 차량 2대, 보트 1대를 가지고 있다. 마을 안에서 이용할 차량, 호수를 이동할 배, 호수 건너 나루터 앞에 세워둔 차가 있다.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편도 없고 민박 같은 숙소도 없다. 이 때문에 외부 사람은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어 마중 나오지 않는 이상 들어가기 어렵다.

소양호가 생기기 전 130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10가구 15명의 주민이 산다. 10가구 중 토박이는 두 집이고 나머지는 도시에서 들어온 이들이다. 6가구가 이곳에서 생업을 하며 살고 있고 나머지는 수시로 드나드는 이들이다. 고기잡이와 사과·복숭아·장뇌삼이 이들의 수입원이다. 특히 장뇌삼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산세가 험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고 삼이 자라기 좋은 천혜의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마을은 서쪽으로 호수를 끼고 시야가 트여 있어 오후 내내 힘센 여름 햇살이 쏟아진다. 여기에 물에 반사된 빛까지 더해 한낮에는 후끈 달아오르지만 과수원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 한다. 저물녘이 되면 완전히 다른 풍경이 된다. 짝사랑하는 남정네 앞에선 시골 처녀처럼 순식간에 하늘은 분홍으로 물든다. 핑크빛은 호수 위로 사르르 번지며 묶여 있는 배마저도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만든다.

'내륙의 섬'인 대곡마을 나루터./김승완 영상미디어기자

 

박기모씨는 "대곡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용한 마을"이라고 했다. 뒤로는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호수가 감싸고 있어 육지의 시끄러운 소리는 이곳에 닿지 못한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대곡마을 사람들은 문명의 편리함에서 동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주민들은 산증인이 박기모 어르신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그는 마을에 전기를 들이기 위해 1988년 춘천의 여관에서 3개월간 기거하며 매일 군청에 나가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2003년부터 상수도 시설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해 2년 동안 지하수 파는 작업이 벌어졌다고 한다. 박기모씨는 어업과 산채류 외에 마땅히 수입이 없던 이곳에 장뇌삼을 처음 들여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은 주 수입원으로 바꿔놓았다.

저녁이 되자 세상에서 가장 외딴곳에 온 것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 사위를 가렸다. 도시인에게는 쉬 익숙해지지 않을 어둠과 고요다. 이제야 완벽한 고립이 실감 난다. 산과 물에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의 큰어른인 박기모 옹은 불평하지 않는다.

"고향이 물로 갇혔어도 그때 댐을 만들었으니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겁니다. 나라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대곡리가 고립된 건 괜찮습니다."

그림처럼 잔잔한 소양호에 가면 섬이 된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고립되어 더 좋은 곳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찾아가는길

대중교통도 없고,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편도 없다. 마을 사람이 배로 직접 데리러 나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므로 마을 사람과 친분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나루터는 춘천시에서 46번국도를 타고 양구로 가다 추곡터널 지나 추곡약수터 방향으로 좌회전해 구(舊)도로를 따라가면, 추곡약수터 갈림길에서 3.5㎞지난 지점에 '대곡마을 배 타는 곳' 이정표가 있는 곳 아래에 있다. 춘천에서 온 손님을 마중할 때는 이리로 오지만 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나루터는 양구선착장이다. 문의 이건형 이장 010-9272-3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