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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사연서린 옛 삼남길 따라

호젓한오솔길 2011. 9. 5. 20:08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 일주]

굽이굽이 사연서린 옛 삼남길 따라

  • 글·송철웅
  • 사진·자전거 일주팀

 

장흥 천관산에서 바다 쪽으로 흐르는 하천을 건너는 자전거 행렬. 장마 뒤끝이라 물이 둑을 넘어 흐르고 있다.

 

해남~완도~신지도~고금도~강진~장흥~보성~율포~득량만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장대비가 내리는 서울을 떠나 서해안고속도로 서천쯤을 지날 때부터 비가 그치며 뭉게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더니 김제 만경평야의 지평선에서 거대하고 찬란한 무지개를 만났다. ‘집단가출 자전거 전국일주’ 11차 구간 출발점인 해남에 도착하자 구름이 말끔히 걷힌 밤하늘엔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랐고 월광에 압도된 가운데서도 뭇별들이 천구 가득 반짝인다.


 

남도의 밤은 덥고 습했다. 땅끝 부근 사구미해변에 텐트를 설치하는 동안 불과 10분 사이 온 몸이 땀에 젖어버렸다. 속옷차림만으로도 더위를 가눌 길 없어 침낭은 둘둘 말아 베개로 썼다.


 

달포 가까이 한반도를 짓누르던 장마가 퇴각하며 질펀하게 남겨놓은 후끈한 열대야…. 건너편 산에서 악을 쓰듯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와 그 반대편 바다에서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까무룩히 의식을 잃었다.


 

땅끝의 아침은 늦잠을 불허했다. 오전 6시쯤부터 야영지에 햇볕이 든 탓이다. 볕이 닿자마자 텐트 내부 온도는 수직 상승, 너구리가 연기에 쫓기듯 뛰쳐나올 수밖에.


 

완도를 향해 페달링을 시작하자 아스팔트는 이미 달궈져 헬멧 속에서 흘러내린 땀이 뺨을 타고 턱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길은 조선시대 9대 간선도로 삼남길의 일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육로다. 옛사람들은 한양에서 삼례, 전주, 태인, 정읍, 나주, 강진을 거쳐 해남으로 들어와 이진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 조천관, 관덕정으로 가며 이 길을 통과했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 무역을 위해, 관직 부임을 위해, 혹은 귀양을 가느라 이 길 위에 굽이굽이 사연서린 발자국을 남겼을 수많은 인생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페달을 밟는다.


 

혼자 터벅터벅 걷는 국토종주 중인 청년
77번지방도 고갯마루에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터벅터벅 걷는 청년을 만났다. 청년의 이름은 이대한(23·홍익대 경제학과 휴학 중). 불과 2주 전 군복무를 마쳐 짧은 머리인 그는 가을학기 복학을 앞두고 해남 땅끝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홀로 도보여행에 나섰고 오늘은 그 첫날이란다.

1 해남 땅끝마을 인근 사구미 해안에서 바이크캠핑에 적당한 데크를 발견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을 맞았다. 남도의 태양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웠다. 2 완도군 신지면 신상리의 마을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지친 몸을 쉬어간다. 해변 야영장을 찾다 여의치 않아 결국 이 쉼터는 이날 밤 야영장이 됐다.

땅끝은 국토순례에 있어서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름방학을 맞아 국토종단여행에 도전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지점인데 이대한씨도 그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단독으로 먼 길에 나선 강인한 젊음에게 집단가출 멤버들의 격려가 쏟아졌고 허영만 화백은 완주를 기원하는 그림 사인을 선물했다.


 

가끔 바다 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에 대적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사람도 자전거도 뜨끈뜨끈하다. 마치 사막을 횡단하듯 우리는 달리면 달릴수록 말린 생선 신세가 되어갔다.


 

한낮의 갯마을 들녘엔 사람이 전혀 없다. 농부들은 해뜨기 전에 일을 다 해두고 한낮엔 쉬기 때문이다. 완도가 건너다보이는 이진리를 통과하며 제주행 선편이 있음을 알리는 현수막을 발견한 것은 뜻밖이었다. 옛날 삼남길을 걸어 제주도로 가던 나그네들은 바로 이곳 이진항에서 제주행 배를 탔다. 이제는 불과 30여km 거리인 완도에 제주로 가는 쾌속 카페리 터미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진항엔 아직도 먼 옛날 삼남길의 화석처럼 제주행 선편이 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도와 다리로 연결된 신지도는 아름답기로 근동에서 소문난 명사십리 해변을 품고 있다. 대개 관광지의 지명에는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게 마련이어서 전국적으로 많은 해변에 ○○십리(10里)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 10리를 꽉 채운 경우란 거의 없다.


 

1리가 약 400m이므로 10리면 4km. 하지만 신지도 명사십리는 섬의 남쪽을 향해 열린 해변의 길이가 약 3.8km에 달해 10리에 근접해 있다. 게다가 물이 깨끗하고 모래가 고와 해마다 여름이면 피끓는 젊음들을 유혹하는 곳.


 

하지만 집단가출 자전거 나그네들에게 신지도는 고난의 섬이었다. 섬 전체가 험준한 산악지형인 탓에 높은 고개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글거리는 남도의 땡볕 아래 고갯길을 넘을 때 허벅지 근육은 터질 듯 부풀었고 심장과 폐는 한계치의 RPM으로 요동치는데 한 구비 넘고 잠시 숨을 돌릴라치면 어느새 또 하나의 고개가 나타나 질릴 지경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명사십리 해변이 있는 대곡리(한들)에 들어서자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 펼쳐져 한시름 놓는가 싶었으나 앞을 보니 아찔한 높이의 산이 버티고 있다. 보통 업힐(up hill)할 때 뒷바퀴 변속기어 중 가장 큰 톱니는 최후의 순간을 위해 가능하면 아껴둔다. 너무 가파른 고개를 만나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마지막 순간을 맞았을 때 히든카드로 꺼내들 수 있는 마지막 보루. 하지만 신지도 대곡리에서 신상리로 통하는 가파르고 긴 고갯길은 초장부터 최후의 기어를 요구했다.


 

뭐, 레이스를 벌이는 것도 아닌지라 고갯길에서 너무 힘들면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바이크를 끌고 간다는 뜻의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의 은어)로 천천히 걸어도 뭐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일단 자전거에 올라앉으면 반드시 타고 오르고 말겠다는 오기가 발동하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다 집어치우고 내려서 걷자는 자아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자아가 싸움을 벌이게 된다.

 

1 마침내 완도 입성. 집단가출 나그네들이 완도대교를 건너 신지도를 향하고 있다. 2 라이딩을 멈추고 다이빙. 마치 달군 쇠를 물에 집어넣었을 때와 같은 극도의 청량감을 느껴본다.

해남~완도~신지도~고금도~강진~장흥~보성~율포~득량만

그 싸움에서 승리한 뒤 고갯마루에서 맞는 바람의 시원함은 자전거 타기에서 가장 강력한 보상이다. 오체투지를 하듯 꾸역꾸역  올라온 구비진 길을 내려다보며 느끼는 성취감은 자전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인 것이다.


 

그날 밤은 아름드리 노송들이 똬리를 튼 신상리 마을 정자에서 야영했다. 저녁 식사로 숭어 몇 마리를 굽고, 보양을 한답시고 닭을 삶아먹었는데 잠자리에 들자 음식찌꺼기를 노린 들고양이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섬사람들은 고양이를 ‘귀댁이’라고 불렀는데 인기척을 느끼면 민감하게 반응하며 일단 도망치는 보통 고양이와는 달리 어찌된 셈인지 이 동네 야생 고양이들은 코펠을 열고 음식을 탐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눈길이 마주쳐도, 심지어 소리를 지르거나 돌멩이를 던져도 여유 있게 슬쩍 쳐다볼 뿐 당당하게 자기 할 일(?)을 했다.


 

기어이 자전거도 팽개치고 냇물로 풍덩   
이튿날 아침 일찍 첫 도선을 타고 고금도로 건너가 마량다리를 건너 강진을 향한다. 남해의 섬들은 장기적인 국토개발계획에 의해 다리로 연결되고 있는데 완도에서 고금도를 오가는 도선도 머잖아  다리가 놓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었다. 


 

대한민국 남쪽 해안이 서해나 동해에 비해 월등히 아름다운 것은 해안선이 복잡해 곳곳에 비경이 숨어 있는 데다 높은 산들이 해안 가까이까지 뻗어 있는 덕분이다. 어제 지나온 해남에 달마산 두륜산이 있다면 강진은 오봉산, 장흥은 도립공원 천관산이 솟아 있다. 호남이 미식의 땅이 된 것은 바다와 산, 평야가 적절히 분포돼 있어 언필칭 산해진미의 식재료가 사시사철 넘쳐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


 

장흥 관산리 삼산읍을 지날 때 천관산에서 삼산들녘으로 흘러드는 냇물을 보자 도저히 버틸 수 없어 기어이 자전거도 체면도 팽개치고 뛰어들었다. 물에 뜨거운 몸이 닿자 마치 대장간에서 달궈진 쇠가 치치직 소리를 내는 것만 같다.


 

물은 맑고 차가워 물안경을 쓰지 않아도 유리처럼 투명하게 수중세계를 볼 수 있었는데 물속엔 버들치로 짐작되는 수많은 물고기가 떼로 몰려다닌다. 물고기들은 잠수를 해서 움직임을 줄이고 가만히 있으면 발가락이며 종아리를 쪼듯 톡톡 건드리곤 했다. 뜨거운 한낮, 개울에서 멱감기는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안내해 천관산 자락 물가에서 우리는 들떠서 웃고 떠들었다.


 

보성으로 향하는 2번지방도에서 2명의 자전거 여행객을 만났다. 26세 동갑나기 예비역 대학생인 김주환, 한물결씨. 부산 출신인 이들은 지난 7월 방학과 함께 부산을 떠나 동해안으로 북상한 뒤 서해안을 돌고 이제 남해안을 따라 고향 부산을 향하는 중이었다. 벌써 20일을 자전거를 타고 길 위에서 보낸 두 젊은이는 그냥 봐서는 국적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검게 그을린 채 수염까지 텁수룩해, 비록 주행거리는 길지만 매달 한 번씩 끊어서 편안하게 전국을 일주 중인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두 사람과 헤어진 뒤 보성 율포까지 진출한 일행은 다음날 고흥의 입구인 득량만의 겨드랑이를 겨누고 새벽길을 떠났다. 새벽에 길을 나선 것은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함이다.


 

군농, 서당, 비봉을 거치는 이른 아침의 보성해안도로는 바람이 시원했고 더불어 찬란하게 아름다워 페달링에 저절로 힘이 붙고, 리듬이 생긴다. 보성 해안도로는 한적하고 부드러웠고, 오른쪽 뺨으로 맞는 바닷바람이 더 없이 상쾌해 일찌감치 길을 나선 것은 과연 잘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해는 금방 높아졌지만 작열하는 태양 아래 펼쳐진 남쪽 바다는 깊이 있는 쪽빛이 두드러져 보여 눈이 시원하다.


 

보성 시골 구석에서 만난 절묘한 냉면 맛
남도의 해안은 대부분 생활의 현장이지 관광지가 아니어서 식사할 곳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만나는 마을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득량면 소재지까지는 가야 식당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완도에서 도선을 타고 고금도로 넘어간 뒤 마량을 거쳐 장흥으로 진입 보성을 겨냥해 질주한다.

 

미식의 고장 호남에서 식당을 못 만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어이  없었지만 별 수 없이 뜨거운 햇살 아래 끝없는 페달링. 정오를 넘겨 도착한 득량면은 전라선 득량역을 중심으로 면사무소와 농협이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민촌은 산자락과 들녘 여기저기 넓게 흩어져 있고 가게라야 면사무소 앞길에 구멍가게 하나, 이발소 하나, 그리고는 농기구수리센터, 철물점, 건자재상이 전부였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촌로에게 식당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송죽식당 단 하나뿐이란다. 식당이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그 식당의 음식 수준을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와 같다. 인근에 경쟁 상대가 없는 단 하나의 식당이니 굳이 맛있게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달리 밥 얻어먹을 곳이 없는데….


 

하지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분위기가 심상찮다. 주방에서는 메밀면을 뽑는 기계가 가마솥에 쉴 새 없이 면을 쏟아내고 있었고 2명의 손빠른 아주머니가 삶은 달걀, 무절임 등 고명을 던지듯 얹어 척척 내놓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냉면. 서빙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청년에게 이 집에서는 육수도 직접 만드느냐고 물어보니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투로 “그라재라우”한다.


 

20여 분을 기다려 겨우 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으니 제초작업을 하다 온 듯한 옆테이블 농부들이 자기들은 이미 50분을 기다렸다며 안 됐다는 눈길을 보낸다. 냉면은 40분 만에 나왔다. 삶은 달걀, 쇠고기 수육 외에 노란 지단과 빨간 수박을 고명으로 얹은 모습이 서울 을밀대나 우래옥의 깔끔한 냉면 모습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불안했으나 국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누군가 큰 소리로 심벌즈를 치는 듯한 충격에 빠졌다.


 

단정하면서도 우묵하고 깊은 맛. 메밀 사리도 적절한 점도와 메밀향이 수준급이다. 집을 떠나 멀고 먼 남도의 보성 바닷가 마을에서 이런 냉면을 만난 것은 뜻밖이어서 감동이 밀려든다.


 

사리를 추가로 주문하자 우리가 허기졌다는 것을 눈치 챈 서빙 청년이 대나무 소반에 큼직한 뭉치의 사리와 함께 삶은 달걀까지 가져다준다. 이날 보성 득량 냉면은 발군의 맛과 함께 호남의 푸근한 인심까지 보여주며 나그네들에게 깊은 위로와 안도감을 선사한 보약 같은 음식이었다.


 

안타깝게도 송죽식당의 냉면은 연중 7, 8월 단 두 달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하기야 나머지 시즌에 낙지요리, 한우요리, 생선요리가 즐비할 터이니 굳이 냉면 메뉴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냉면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이 집 음식의 수준 높은 내공이 다른 메뉴에서는 어떻게 발휘될지 궁금해, 다음달 이곳에서 자전거여행을 다시 출발할 때 다시 한번 들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