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추억
올해 추석은 아직 여름이 채 가시지 않는 9월 초순이라서 아직 과일도 제대로 익지 않고 들판을 누렇게 물들여야할 벼들도 푸른빛이 감돈다. 매년 추석 전날은 오후에 남동생과 같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 산소에 벌초하고, 추석날은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는 청송으로 증조부부터 8대조까지 문중 산소에 벌초와 성묘를 하러 가야 하니, 추석을 여유롭고 한가롭게 보내는 명절이 아니라 늘 바쁘게 보내야 한다.
추석 전에 날을 잡아 산소에 벌초를 끝내고 여유로운 기분으로 한가위를 맞이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모두 먹고살기 위하여 타지에 흩어져 살다 보니, 추석 전에 일부러 벌초하러 모이기 어렵다고 하여, 언제부터인가 집안 어른들이 벌초 참석률을 높이기 위해 추석날 오후에 모여서 산소에 성묘 겸 벌초를 하기로 결정하여, 늘 그렇게 하여 왔지만, 추석 전에 산행을 하다 보면 골짜기에서 들리는 예초기 소리와 깔끔하게 벌초를 해놓은 산소를 보면 왠지 마음이 초조해지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올 추석도 연휴 기간에는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더욱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전날 고향으로 들어가서 춘천서 온 동생과 큰 아들과 함께 세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간다. 간밤까진 내린 비로 축축한 풀숲을 헤치면서 할아버지 산소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내가 앞에 가면서 길을 치는데, 숲속으로 드리워진 졸참나무 가지를 낫으로 툭 잘라서 왼손으로 치켜들었더니, 갑자기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축구공만한 말벌집이 잘린 가지에 달려있다. 갑자기 허공중에 집이 들린 놀란 말벌들이 아우성을 지른다.
엉겹결에 말벌집이 달린 가지를 풀숲에 버리고, '말벌이다' 하면서 도망을 치다가 걸음을 멈추고 웅크리니 벌들이 따라와 등 뒤에서 윙윙거리다가 물러간다. 그 와중에 한 사람도 쏘이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신기할 정도다. 말벌들이 산소 입구를 막고 있어 올해는 벌초를 포기해야 하나 하면 서 잠시 망설이다가 풀숲을 헤집고 우회하여 산소에 들어가서 조심조심 말벌들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벌초하니, 처음 예초기 소리에 벌들이 흥분하여 설치다가 한참을 지나니 만성이 되었는지 벌집이 잠잠해진다.
* 산소 입구에 독이 올라 윙윙대는 말벌들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벌초를 하는 데.
독사 한마리가 도망가지 않고 산소 주위에 토글이고 있다가 내 까꾸리에 목뼈가 부러져 생을 마감한다.
산소 주위에 독사가 많아서 늘 주의하라고 하여 올 때 마다 눈에 띄지만, 오늘처럼 내가 독이 오른 날은 죽는 날이다.
* 조심조심 말벌 집 주위를 살펴가면서 벌초한다.
* 잠잠해진 말벌집이 궁금해진 모양이다.
* 벌초를 마치고 살금살금 다가가 보니 잘린 졸참나무 풀 가지에 달리 말벌 집에는 벌들이 집속으로 모두 들어갔는지 조용하다.
* 몇 마리만 주위를 돌면서 보초를 서고 있다.
* 저놈을 공중에 들고 흔들면서도 한방도 쏘이지 않았으니, 오늘 억수로 운이 좋은 날인 듯하다.
*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벌초를 마치고, 아버님 산소에 돌아와서 바라본 마을 쪽 풍경. 향로봉에 구름 감긴다.
*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큰골 쪽 풍경.
* 양배추가 알이 배어간다.
* 향로봉 풍경.
* 벌초하러 따라온 큰아들도 한 장 찍어달란다.
* 익모초 꽃.
* 마지막을 사르는 빨간 자태가 곱다.
* 억새.
* 아버님 산소를 벌초하는데, 병풍석에 손바닥만한 집을 지은 기세등등한 땡비집을 만나서 풀 가지를 꺾어 들고 요절을 내고는 벌초를 마무리한다.
* 벌초를 마치고 산소 가에 셋이 앉아서 복주를 조금 과하게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위태로웠던 하루를 무사히 잘 넘긴다.
집에 도착하니 잠시 후 비가 내리고, 그 비는 밤새 찔끔거린다.
추석날(2011.09.12)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수시로 뿌리던 비가 개인 듯하고 마을이 안개가 자욱하다. 아침에 우리 집과 재종 형님네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는 재종 조카와 둘이와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 있는 조상님 산소에 벌초하러 간다. 8대조와 6대조 산소에 먼저 모여서 벌초하고, 눌인리 콩밭 골에 있는 7대조 산소에 성묘를 마치고 내려와서 능남에 있는 5대조, 고조부, 증조부 산소에 벌초를 하면, 성묘를 열 번 올려야 한다.
* 침류헌 맞은편 길가에 주차하고. 개울을 건너서 보텀산소(8대조,6대조)에 벌초하러 오른다.
* 벌초하러 오신 재종 형수님이 쉬고 있네요.
* 10대조 할아버지께서 기거하시던 곳이랍니다.
* 영양남씨 족보 : 24세손 큰아들 경욱이 기준. (23세손인 내 기준으로 설명한 자료들과는 차이가 있음)
* 침류헌 전경.
* 노후 된 주사채와 대문채 모습.
* 침류헌 앞을 걸어 올라간다.
* 돌아본 침류헌 앞 풍경.
* 보텀산소 가는 길.
* 바람기 없는 숲속으로 모두 오르막길에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 대구와 지역에서 온 친척들이 먼저 와서 벌초를 끝내고, 할머니 산소에서 마지막 풀을 베고 있다.
* 뒤쪽 8대조 내외분 산소, 앞쪽 6대조 산소.
* 8대조(내외분) 산소.
* 산소 전경.
* 8대조 산소에서.
* 6대조 산소에서.
* 보텀산소에 벌초와 성묘를 마치고.
* 하산하는 오솔길.
* 언덕배기에서. 잘려진 수로가 이색적이다.
* 우람한 노송 아래로.
* 침류헌 앞 풍경.
* 노후로 붕괴된 대문채.
* 노후로 붕괴된 주사채.
* 복원된 침류헌.
* 침류헌 전경.
* 개울 건너서.
보텀산소에 성묘를 마치고, 모두 자동차로 이동하여 눌인 3리 콩밭골 산중턱에 있는 7대조 산소로 향한다.
* 눌인 3리 콩밭골에 있는 7대조 산소는, 산소 뒤에 박힌 바위에 폭 파인 호박이 있어 호박산소라고 부른다.
* 7대조 산소 전경.
* 지역에 사시는 조카분이 매년 미리 올라와 벌초를 해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 성묘 준비를 하고.
이곳 7대조 산소에 올라 올 때 월매 골짜기가 뿌옇게 밀려오던 비바람이 성묘를 하는 동안 치적치적 내리더니, 마치고 내려오는 도중에 장대비가 쏟아진다. 얼른 우의를 꺼내 입고 내려와 능남에 있는 5대조, 고조부, 증조부 산소로 향한다.
* 능남 산소 전경.
* 뒷줄, 5대조 산소 성묘.
* 뒷줄, 고조부 산소 성묘.
* 앞줄, 증보부의 형님(좌), 증조부 산소(가운데),
* 빗속에서 10번의 성묘를 끝으로.
* 산소 뒤에 둘러앉아 음복을 마치고 오늘 행사를 종료한다.
* 해가 갈수록 참여 인원이 점점 줄어들어 관심이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명절 쉬고 처가에 들리는 것이 대세이고 보면, 여유로워야 할 추석날 모여서 조상 산소에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하는 것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스트레스를 주게 되는 것이므로 현 시대에는 조금은 맞지 않는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
* 청송의 가을 사과 부사는 이제 한창 맛이 들어가고 있다.
* 부사 사이에 간간이 심어놓은 이놈은 제법 붉은 빛을 토한다.
* 맛이 들어 보이네요.
매년 똑같이 이루어지는 추석행사인데, 올해도 작년처럼 추석날 비가 내려서 성가신 성묘길이 되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일가친척들이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정담으로 오르내린 하루가 저문다.
벌초를 끝내고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저녁 먹고, 내일 아들들이 돌아갈 준비도 해야 하고 하여, 늦은 시간에 포항으로 돌아오면서 신묘년 한가위 일정을 마무리한다. 물론 비가 내린 관계로 한가위 달구경을 하지 못한 조금은 아쉬운 추석이 되긴 하였지만...
2011.09.12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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