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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

호젓한오솔길 2011. 9. 13. 20:39

 

 

[꽃남 한승국의 조곤조곤 산행기]

 아침가리골

 

계곡산행의 멋… A부터 Z까지 모두 맛보다
7km 절경 물줄기 따르며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산행을 가진 회사 산악회를 따라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을 하고 왔습니다. 아침 나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녘의 논배미들은 그 많은 비를 어떻게 잘 받아 넘겼는지 키대로 자란 벼들이 이삭들을 내 달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도시에서 “덥다! 덥다!” 하면서 에어컨을 빵빵 틀어대고 고속도로 씽씽 달려 바닷가를 다녀오는 사이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들은 이렇게 위대한 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나 봅니다.

산행대장님이 이번 산행은 본격 계곡 탐험이라고 귀띔해 주길래 특별히 트레킹화를 하나 미리 구입했지요. 근데 이걸 따로 들고 가나 집을 나설 때부터 신고 가나? 고민했지요. 결론은 ‘무겁고 갑갑한 등산화를 왜? 가벼운 트레킹화 바로 신고 가지’ 싶어서 새로 산 트레킹화를 신고 집을 나섰습니다. 기왕에 물속으로 뛰어들 건데 또 양말은 신어 뭣하랴 싶어서 아예 맨발인 채로요.

양말을 안 신고 신발을 신어보긴 아주 어릴 때 말고는 처음입니다. 뭐 기분이랄 거까진 없고요. 근데 우리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이 방동약수 마을입니다. 저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 계곡에서 바로 트레킹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처음 시간 반가량은 산행을 해야 그 장소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거 참 미리 좀 알려주지 않고선….

 


▲ 전문 산악인들로 보이는 한 팀이 완전 무장을 하고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하는 광경.

 

산행 기점은 큰 차들도 너끈히 다닐 수 있는 산판 도로입니다. 그래선지 간간이 개인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소음을 내며 우릴 앞질러 갑니다. 근데 우리 말고도 등산객 한 팀이 더 와서 초입부터가 매우 혼잡하고 소란스럽습니다. 이러니 어떤 나라들은 자연 명소를 공개하되, 수십 명 단체는 거부 하고 4~5인 소그룹에게만 허용한다고 하지요.

짙을 대로 짙어 거무튀튀하게까지 보이는 녹음

때는 바야흐로 여름 후반부. 짙을 대로 짙어 거무튀튀하게까지 보이는 녹음 속에서 매미, 쓰르라미 같은 곤충들과 산새들이 절정의 여름을 노래하느라 엄청 시끄럽습니다. 도시의 소음을 피해 떠나왔는데…. 하긴 여기는 자연의 소리들이라 들을 만합니다. 그리고 기분도 좋습니다. 풀과 나무들은 이 소리들을 들으면서 서서히 가을을 준비하겠지요.

미상불 줄기들은 각양각색의 씨앗들을 매달았고, 꽃들도 계절 자리 바꿈을 시작했는지 여기저기서 가을 꽃들이 관찰됩니다. 아마도 불순한 일기에 놀라 성급하게 꽃을 피운 녀석들일 겁니다. 그리고 꽃들에는 여척 없이 벌, 나비 같은 벌레들이 앉아서 속 궁합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 또한 여름에 치러야 할 위대한 과업이자 지엄한 사명이지요.


▲ 아침가리골 하단부 계곡을 트레킹하는 대원들.

 

‘꽃남’인 나,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카메라를 꺼내 이런 꽃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담으며 올라갑니다. 처음엔 찍고 달리고 하다가 그만 편하게 뒤처져버리기로 합니다. 이렇게 길이 좋은 데다 회사산악회가 설마하니 나를 떼놓고 가겠나 싶어서죠. 마타리, 등골나물, 물봉선, 뚝갈, 오리방풀, 눈개승마, 모싯대, 환삼덩굴, 개당귀, 어수리, 짚신나물, 각시취, 쉬땅나무, 쑥부쟁이, 까실쑥부장이, 고려엉겅퀴, 염아자, 동자꽃, 조록싸리, 구절초, 달맞이꽃 등, 여러 꽃들은 올 여름 큰 비로 재미를 못 본 걸 보상받기라도 할 양 등산로 양 켠에 대열을 이루고 피어 있습니다.

근데 이건 착각이겠지요. 이들이 나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고 저마다 애교를 잔뜩 떨고 있어 보이는 건요. 이들을 그냥 지나친다면 저 정말 꽃남 사표 내야겠지요. 그래서 이후부턴 시간 한번 확인 안 하고 열심히 카메라에만 담으며 고갯마루까지 올라갔지요.

고갯마루에서 대열의 후미 한 명을 만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됩니다. 안도감에 그만 속도가 다시 떨어져버려서요. 내리막 길로 접어들자 이젠 그만 찍고 대열이나 따라잡자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오른쪽 새끼발가락 부분에서 통증을 느낍니다. 신발을 벗어보니 허걱! 언제 그랬는지 2cm가량 살갗이 벗겨져 벌겋게 속살이 보이고 둘레엔 제법 피까지 엉겨 있습니다.


▲ 1 다 내려와 만난 널널해진 계곡 바닥. 물이 맑고 바닥이 깨끗해 마치 그림 같다. 2 계곡으로 피서 나온 한 가족. 아빠는 천렵을 하고 아이들과 엄마는 모래 놀이 중.

 

세상에! 들꽃 담기에 바빠 새 트레킹화에 맨 발가락이 슬려 물집이 잡히는 줄도 몰랐군요. 발가락 상태를 보고 나니 통증이 더 느껴져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없습니다. 마침 길이 비포장 부분이 끝나고 콘크리트 길이 시작돼 신발을 벗어 들고 걷기로 합니다. 따끈따끈 발바닥에 와 닿는 햇볕에 잘 달궈진 길이 기분 좋습니다.

근데 간간이 예고 없이 달려 나와 길을 건너는 도마뱀 녀석들 때문에 질겁을 하게 됩니다. 어릴 땐 도마뱀 정도야 일부러도 곧잘 잡아 꼬리도 잘라주곤 했지만 혹시 살모사란 놈이 나타날까 싶어서요. 어쨌든 맨발의 이 꽃남,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완벽한 자유랄까요, 해방감 같은 거 만끽합니다. 그러다 보니 손에 든 카메라도 집어 던지고, 입은 옷 마저 다 벗어버리고 싶어집니다. 문명 속으로 왔다가 다시 밀림 속으로 돌아간 타잔의 기분이 이랬겠죠. 하지만 나는 참아야 합니다. 가끔씩 아래에서 부릉부릉 차들이 올라오니까요. 이 깊은 산길까지 차를 몰고 오다니, 자연모독 같습니다.

정말이지 이곳 아침가리골은 십승지지보다 더 깊숙이 자리해 6·25전쟁이 난 줄도 몰랐다는데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일요신문에 간단히 소개해 놓은 ‘삼둔오가리’란 글이 눈에 듭니다. 예부터 전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숨어 있기 좋은 강원도 방태산 기슭의 다섯 마을로, 삼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둔, 귀둔, 월둔이고, 오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명지가리, 연가리, 곁가리, 적가리랍니다. 이 중에서도 아침가리는 투명한 계곡과 함께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우거진 숲이 매력적인 산골 마을로 아침에 잠시 해가 비치는 동안만 밭을 갈 수 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한자로 ‘조경동(朝耕洞)’이라 부르고 쓰기도 한답니다.

 

일부러 하반신 모두 담그며 산행

방동약수 마을에서부터 오름 길 3km, 다시 내림 길 3km를 걸었나요. 11시반쯤 뒤늦게 계곡 중간 조경동에서 이제 막 트레킹을 시작하려는 본대에 합류합니다. 벗어 들고 다니던 트레킹화를 다시 신고 물 속으로 들어서니 오히려 발가락이 안 아픕니다. 생각보다 물도 안 차고요. 이제부터 최소한 열 군데 이상 계곡을 건넌다는데 스릴 있을 거 같아 기대가 큽니다.

처음부터 허벅지까지 빠지는데 사람들은 차 안에서 나눠준 밀봉 비닐봉투에 휴대폰, 신용카드 같은 거 다 넣어놔 안심이 돼 그런지 일부러 하반신을 다 담그며 기분을 내기 시작합니다. 이거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알탕 아닌가요? 아무튼 파란 하늘, 흰 구름 몇 점, 약간의 바람 좋은 날씨, 계곡 양쪽 높은 절벽에 선 푸른 장송들, 기묘한 암반, 바위, 수박 색 옥류, 소를 이루다 말고 급하게 흐르는 계류, 낙차만큼 떨어져 내리며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 맑디 맑은 물 속에 노니는 버들치 같은 물고기들… 수달과 열목어, 하늘다람쥐 같은 천연기념물들이 사는 이 청정 계곡 물에 뛰어들어 건너자니 땀투성이 우리가 무슨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합니다.


▲ 1 마타리. 2 쉬땅나무. 3 염아자. 4 눈개승마. 5 고려엉겅퀴. 6 도라지모싯대.

 

높지는 않지만 여러 모양의 폭포들까지 7km 골짜기는 그야말로 일급 계곡으로서 지녀야 할 요소를 A부터 Z까지 모두 갖춘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긴 오지 중의 오지로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지요. 요즘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니 한 걸음 한 걸음이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자주 다니기 시작하면 금방 파괴되고 말 것 같아서요.

다들 이렇게 멋진 산천경개를 예상이라도 했는지 도중 물가 암반에 앉아 점심을 들고 가잡니다. 주섬주섬 점심거리들을 꺼내는데, 가장 먼저 내놓는 것이 술들입니다. 전날 저녁 예기치 못한 진한 술자리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새벽에 세수도 못 하고 짐을 챙겨 나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충 사온 대추떡이 전부인 나로서는 여기저기서 오라고 불러주는 손짓들이 너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조심스레 계곡을 건너는 대한항공 산악회원들.

 

저는 산에서 술 마시는 건 안전 문제상 반댑니다. 참았다 내려와서 ‘타는 목마름으로’ 마시는 냉막걸리 ‘딱 한잔 주의자’인데요. 누가 권하면 하는 수 없이(?) 마시긴 합니다. 근데 잠시 여기저기 한 잔씩 얻어 마신 술이 막걸리, 인삼주, 가시오가피주, 오디주, 삼지구엽초주, 더덕주, 맥주까지 7가지나 됩니다. 아직 길이 꽤 남았는데 걱정입니다. 혹시 잘못해 카메라를 물에 빠뜨리면 어쩌나 싶어 널름널름 받아 마신 입을 한 대 쥐어박습니다.

올 여름 더위, 이제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을 듯

식후 계곡에 발 담그는 사람, 아예 옷을 입은 채로 잠수하는 사람… 그러기에 계곡은 충분히 넓고, 물도 많고 깊기도 합니다. 또 하도 맑아서 정말 빠져보고도 싶어집니다. 널따란 소 앞에서는 작은 조약돌을 주워 물 수제비 뜨기 장난도 쳐봅니다. 여러 명이 저마다 실력을 뽐내 보는데 한번은 잘 던지니까 돌이 무려 일곱 차례나 물 위를 튕기고서야 가라앉습니다. 제가 단연 1위로군요. 계곡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고, 수량도 많아집니다. 다이빙을 하고도 남을 깊이와 풀장처럼 널따란 얕은 물 운동장도 나옵니다. 자세히 보면 계곡 양쪽으로 길이 나 있지만 이미 계곡 지치기 맛을 본 사람들은 일부러 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적신 채 걷기를 고집합니다. 처음 담글 때가 문제지 한번 담그고 나면 계속 담그고 싶은 묘한 마력 같은 걸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계곡 트레킹 기념 촬영은 그 이름에도 걸맞게 계곡 물속에 몸들을 담근 채 합니다. 아내, 아들, 딸… 회사 직원 가족들 모두 함께 “하나, 둘 셋!” 포즈들 아주 자연스럽고, 표정들 참 밝습니다. 모두들 신이 나서 첨벙첨벙… 동심으로 돌아간 듯 즐겁기 짝이 없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7km 계곡을 두 시간 남짓에 다 내려와버립니다. 이번 트레킹에 참가한 사람들 하나 같이 입을 모읍니다. 올 여름 이제 얼마든지 더워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앞으로 겪을 노염에 대한 더위까지도 오늘 여기서 다 씻어버렸기 때문이라나요.

계곡 트레킹의 종점 진동리로 다 내려와서야 저는 비로소 오늘 세수를 합니다. 강처럼 커져버린 큰 계곡으로 내려가 머리까지 감고 나니 기운이 새로 나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 술기운도 깊은 산 좋은 공기와 계곡 건널 때마다 떠 마신 맑은 물 덕분인지 크게 영향을 못 미쳐 안전하게 잘 내려왔고요. 그랬다 해도 다음에 또 이러면 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