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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왜 나부터 봐주지 않느냐고요?… 다행입니다

호젓한오솔길 2011. 10. 6. 21:43

왜 나부터 봐주지 않느냐고요?… 다행입니다

병원에서 대접받기 (2)응급실
나중에 도착했더라도 위급환자부터 치료
접수부터 해야 검사되고, 위급대비 누구나 수액 맞아

 

 

김현아·한강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 간호사

 

밤 늦은 시각, 배가 심하게 아프고 설사를 하는 50대 여성이 남편에게 업혀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얼마 후 숨이 조금 차다는 20대의 남자가 응급실로 걸어 들어왔다. 처음 환자는 단순 배탈로 판명돼, 장운동을 가라앉히는 약물을 수액으로 투여하며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다음에 온 20대 남성은 멀쩡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심근경색이었다. 의료진은 이 남성에게 몰려들었다. 처음 온 여성의 "기다려 보자"는 말 외에 별 대접을 못 받자 의사의 멱살을 잡으며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내팽개쳐 두냐"고 고함을 쳤다. 분초를 다투는 심근경색 환자의 치료까지 중단되는 위험한 순간이다.

이처럼 진짜 응급환자가 아닌 환자가 너도나도 응급실을 찾으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의 치료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 또, 응급실에서 소동을 벌이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위험하게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응급실은 말 그대로 '응급실'이다.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봐 주는 외래 진료소가 아니다. 응급실 의료진은 '생명이 위급한 사람부터'라는 대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밤 늦게 가벼운 질환이 찾아오면 필자는 되도록 아침까지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다. 약이라도 한알 처방 받겠다고 무턱대고 응급실을 찾으면 비싼 응급의료관리료를 전액 본인 부담해야 하고, 가산료 등으로 진료도 보기 전에 5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할 수 있고, 본의 아니게 다른 이의 생명이 걸린 치료를 방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잠시도 망설이지 말고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도 있다. 심근경색 등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하는 질환, 급성 의식장애·호흡곤란, 광범위한 화상, 다발성 외상이나 골절, 심한 출혈, 계속되는 각혈, 소아의 경련, 한밤중 38도 이상의 소아 고열, 얼굴 부종을 동반한 알레르기 등이다.

이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만약 다른 작은 병원을 경유해 큰 병원 응급실에 가는 경우, 소견서를 반드시 챙겨와야 한다. 소견서는 짧은 시간동안 생사를 다투는 응급실에서 불필요한 질문 없이 환자의 상태를 신속히 파악하는 '일등 공신'이 된다. 고혈압·당뇨병·신장질환 등을 앓는 사람은 평소에 복용하는 약이나 처방전을, 혹은 어떤 약을 한꺼번에 과량 복용한 경우에는 빈 약봉지라도 들고 와야 조금이나마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응급실에 도착하면 오자마자 접수부터 하라는 직원의 말에 화가 난다. 하지만 병원이 돈을 밝혀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접수를 해야 전산에 이름이 뜨고 차트를 만들 수 있으며, 차트를 만들어야 필요한 처방을 하고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접수를 마치면 누구나 수액부터 달게 된다. 이는 환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나중에 혈관을 찾지 못하게 될 경우에 대비해 미리 혈관을 확보해 두는 것이다. 대개 가장 굵은 바늘로 혈관을 잡아서 환자들이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이는 만약 쇼크가 오면 혈압 조절을 위해 다량의 수액 공급이나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얼마 전 밤 늦게 설거지를 하다가 깨진 유리그릇에 베어 응급실에서 오른쪽 무명지와 약지 사이를 10바늘 넘게 꿰맸다. 뼈까지 다 보일 정도로 심하게 베었지만, 다행히 동맥과 신경을 비껴나가 출혈은 거의 없었다. 만약 동맥이 끊겼다면 감당할 수 없는 출혈이 있었을 테고 분명 응급실 진료 1순위가 되었겠지만, 무사한 동맥을 들여다 보며 한 시간 넘게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처럼 응급실에 갔는데 뒤로 밀리면 상태가 가벼워서 그렇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고 기쁘게 생각하자. 만약 응급실에서 우선 순위로 진료받는다면 본인의 상태가 위급하다는 '나쁜 사인'이다.

 

/ 김현아·한강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