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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黨' 남녀 진한 스킨십… 경찰, 야산 기습 단속도

호젓한오솔길 2011. 10. 24. 08:13

 

[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71] '에로黨' 남녀 진한 스킨십… 경찰, 야산 기습 단속도

 

 

1920년대 중·후반부터 조선일보 사회면엔 젊은 남녀가 일으키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고개를 든다. 공원·강변 등에서 너무 '진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이른바 '에로당(黨)'이 늘어난 것이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자 젊은 청년 남녀들이 손에 손목을 잇글고… 풍긔를 문란케 하는 일이 격증"하여 경찰은 골치를 썩였다.(1927년 4월 1일자) 인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던 뽀이' '모던 껄'들은 옥외에서도 키스 혹은 그보다 더한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았지만 경찰은 으슥한 곳의 스킨십까지도 단속했다. 경성에서 '에로당'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곳으로는 남산과 장충단공원이 꼽혔다.(1934년 4월 1일자) 여름밤이면 "한강 언덕 숩풀 속과 잔잔히 흐르는 물 우에는 청춘남녀들의 음탕한 우슴소리"가 그치지 않았고(1936년 7월 14일자) "밤 새로 두시 경이면 시내에서 택씨로 원앙(鴛鴦)의 짝을 지어 와서는 목선을 각기 강물 우에 띄워 노코 날이 박도록 청춘의 향락을 마음껏" 누리는 남녀 때문에 용산서는 밤을 새우며 '엄중경계'했다.(1937년 8월 1일자)

강변 으슥한 바위 틈마다 새워놓은 놀잇배에서 쌍쌍이 끌어안고 있는 남녀들을 그린 안석영(安夕影)의 만평‘초하풍경(初夏風景)’.(1930년 5월 21일자)

 

1934년엔 풍기문란 예방을 위해 '밀회에 사용하기 쉬운 으식하고 컴컴한 장소'에 경찰이'가등(街燈)' 50개를 증설하기도 했다. 그 장소는 오늘의 서울 중구 지역인 봉래정(蓬萊町·봉래동)·입정정(笠井町·입정동)·앵정정(櫻井町·인현동)·병목정(竝木町·쌍림동)·태평통(太平通·태평로) 등 30곳이었다. 경찰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서울 장안이 한층 명랑하여진다"고 밝혔다.(1934년 4월 1일자) 1935년 7월 3일 함흥경찰서는 시 외곽의 반룡산(盤龍山)이 '음분(淫奔)한 남녀의 유일한 밀회처'가 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높자 밤 10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병력을 총동원하여 반룡산 일원을 일제히 검색한 끝에 밀회하고 있던 남녀 16명을 검거하는 소동도 벌였다.(1935년 7월 6일자) 1936년에는 북한산·소요산·관악산 등 근교 산에 오르는 하이킹족 남녀 중 "숩 속에 드러가서 수목을 꺽거 제치고 남이 보지 안토록 자리를 정하고 아름답지 못한 짓을" 하자 이런 산에 경찰관을 배치하여 감시하기도 했다.(1936년 10월 30일자)

그래도 애정 풍속도는 점점 더 대담해졌다. 1938년 6월에는 새벽 4시 경성시내 대화정(大和町·중구 필동)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 안에서 45세 여성과 35세 회사원이 '풍기상 대단히 조치 못한 짓'을 하다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1938년 6월 25일자)

요즘 기준으로는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닌 듯하지만 당시 언론은 준열하게 꾸짖었다. 조선일보 1930년 5월 21일자 만평 '초하풍경(初夏風景)'에서 안석영(安夕影)은 강변 바위 틈마다 놀잇배를 세워놓고 쌍쌍이 앉아 끌어안고 있는 남녀를 그려놓고는 "그래도 리도령은 광한루에 올라 멀리 건네뛰는 춘향을 사귀여 그 노는 광경이 음성깁헛지만, 이들의 노는 광경은 몹시도 때가 묻어 보인다"며 "광풍아! 엇지하야 이 한강을 그대로 지나가느냐?"라고 독한 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