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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북산면 대곡리

호젓한오솔길 2011. 11. 5. 23:04

 

 

         [마지막 오지를 찾아서]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
  • 글·신준범 기자 사
  • 진·김승완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용한,‘육지 속의 섬 마을’
소양호의 수몰민 박기모 전 이상이 들려주는 마을 이야기

▲ 소양댐을 찾는 관광객들이 보지 못한 깊숙한 소양호의 풍경이 대곡리에 가면 있다.

섬이 된 마을이 있다. 춘천시 북산면 대곡리 대곡마을은 내륙의 섬이다. 여기를 섬이라 부르는 건 배로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춘선이 개통된 마당에 춘천에 그런 오지가 있을까 싶지만 춘천 사람들도 잘 모르는 오지다.


대곡마을이 있는 북산면은 이름처럼 춘천 북쪽의 첩첩산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춘천시내에서 북동쪽이며 화천·양구·홍천 경계에 있다.


46번국도를 타고 꼬불꼬불 배후령을 넘는다. 산을 넘자 길이 좀 편해지나 싶더니 쭉 뻗은 대로를 두고 비탈진 산길로 든다. 춘천-양구 간 구도로다. 구도로에서 풍기는 어감처럼 풀이 높고 차선이 유실된 곳도 있는 소외된 길이다. 작은 나루터에서 마중 나온 이건형 이장의 보트를 타고 소양호를 가른다. 소양댐에서 보던 소양호와 다르다. 관광객의 눈길이 닿지 않는 깊숙한 안쪽 소양호다.


사람이 만든 호수지만 사람 흔적이 없다. 초록이 지배하는 곳, 물 속에도 산이 있고 물 밖에도 산이 있다. 물빛보다 파란 건 8월의 하늘이다. 호수를 가르며 달리는 보트의 속도에 바람이 머릿결을 헝클이며 장난친다.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촉감과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호수의 풍경이 감미롭다.


▲ 1 대곡리 사과밭에서 본 소양호. 2 들짐승의 과수원을 침입을 막기 위한 고압선. 주민들의 갈등의 도화선이기도 하다.

보트로 10분쯤 달리자 호숫가 양지바른 곳에 대곡마을이 있다.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선에 집들이 드문드문 있다. 이장은 마을의 큰 어른인 박기모(74) 전 이장댁으로 안내한다. 이장은 “박기모 어르신은 마을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설명한다.


박 전 이장은 마을이 수몰되기 전부터 살아온 대곡리 토박이다. 소양댐이 준공된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무려 37년 동안 이장을 맡았다. 비공식 최장수 이장이라는 것이 마을사람들의 설명이다. 그는 “산으로 둘러싸여 도로를 이으려면 수백억이 드는데 가구 수가 적고 경제성도 없어서 길을 낼 수 없는 여건”이라고 한다. 호수만 건너면 46번국도가 있어 배가 유일한 왕래수단이 되었다. 대곡리 주민들은 가구당 차량 2대, 보트 1대를 가지고 있다. 마을 안에서 이용할 차량, 호수를 이동할 배, 호수 건너 나루터 앞에 세워둔 차가 있다.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편이 없고 민박 같은 숙소가 없다. 때문에 외부 사람은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어 마중 나오지 않는 이상, 들어가기 어렵다.


수몰되기 전 130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10가구 15명의 주민이 산다. 10가구 중 토박이는 두 집이고 나머지는 도시에서 들어온 이들이다. 6가구가 이곳에서 생업을 하며 살고 있고 나머지는 수시로 드나드는 이들이다. 고기잡이와 사과·복숭아·장뇌삼이 이들의 수입원이다. 특히 장뇌삼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산세가 험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고 삼이 자라기 좋은 천혜의 환경이라 “대곡리 산양산삼이 효험이 있다”고 얘기한다.


▲ 고목 아래에서 수몰된 마을이 있던 소양호를 바라보는 박기모 전 이장.

마을 앞에는 아담한 섬이 있는데 중뫼산이다. 댐이 생기기 전 마을 가운데에 솟은 산이라 그리 불렀다. 한때 강원개발주식회사에서 수출 목적으로 다람쥐 3,000마리를 풀어 키워 다람쥐섬이라고도 한다. 다람쥐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좁은 터에 지나치게 많은 다람쥐를 풀어놓으니 생존 경쟁이 심해져 스트레스를 받은 다람쥐들이 증식이 되지 않았다.


마을은 서쪽으로 바다를 둔 듯 트여 있어 오후 내내 힘센 여름 햇살이 든다. 더군다나 물에 반사된 빛까지 더해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덥지만 과수원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 한다. 저물녘이 되자 댄스곡에서 발라드로 노래가 바뀐 것처럼 풍경이 감성적으로 변한다. 짝사랑하는 남정네 앞에선 시골 처녀마냥 순식간에 하늘은 분홍으로 물든다. 핑크빛은 호수 위로 싸르르 번지며 묶여 있는 배마저도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만들어 버린다.


박 전 이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용한 마을”이라고 말한다. 뒤로는 첩첩 산이, 앞으로는 호수와 산이 감싸고 있어 그 어떤 소음도 이곳에 와 닿지 못한다. 멀리 춘천-양구 간 구도로가 보이지만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지나는 차가 없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대곡마을 사람들은 문명의 편리함에서 동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산증인이 박기모 어르신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 1 시골집에선 꽃도 인심마냥 풍성하게 피었다. 2 과수원 제초작업을 하는 대곡마을 주민. 3 대곡리에선 물에 잠긴 보트마저 평화로워 보인다.

그는 마을에 전기를 들이기 위해 1988년 춘천의 여관에서 3개월간 기거하며 매일 군청에 나가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2003년부터 제대로 된 상수도 시설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해 시행사에서 2년 동안 지하수를 파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어업과 산채류 외에 마땅히 수입이 없던 이곳에 장뇌삼을 처음 들여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은 주 수입원으로 바꿔놓았다. 2억 원의 예산 지원을 받아 농기구와 차량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송선을 구입하기도 했다. 마을 발전을 위해 열정을 다한 그였기에 건강 문제로 은퇴하기 전까지 37년간 이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화로운 풍경 속의 치열한 삶 
경치가 아무리 평화로워도 사람 사는 곳은 크고 작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마을 반장을 맡고 있는 정해운(58)씨는 지금보다 과거가 더 살기 좋았다고 한다. 야생동물의 과수원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고압선이 주민들 생활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문제가 됐다고 큰 목소리로 얘기한다. 마을 엽사이며 어업을 주로 하는 그는 “쏘가리와 뱀장어가 주로 올라오는데 올해는 수온이 차가워 고기가 잘 안 잡힌다”고 한다.


이건형 이장은 2억 원을 들여 도입한 수송선이 기존 민간 수송선 사업자의 소송으로 운행이 어려운 상태가 됐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과수원을 하는 가구가 많아 마을 내에 포장된 도로가 있어야 과일이 상하지 않게 온전히 옮길 수 있는데, 법규상 ‘농선’으로 등록된 점을 기존 사업자가 걸고 넘어져 레미콘이 몇 번 들어오다가 못 들어와 도로 공사가 중단됐다고 한다. 농선으로 등록됐으니 농기구나 농업 목적 외의 장비는 실을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이후 문제는 더 복잡해져 현재는 마을 공동의 수송선을 한번 사용할 때마다 고비용을 내며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박 전 이장의 아들인 박영남(42)씨는 시골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말한다. 


“대곡리가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봐서 농촌과 도시문화를 다 겪어봤습니다.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 너나할 것 없이 품앗이로 일했어요. 뭘하든 동네가 다같이 움직였고 동네사람들은 한집안이나 다름없었죠. 그게 진짜 시골이죠. 지금은 시골도 도시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 소양호에서 본 대곡마을.2km 가량 길쭉하게 마을이 이어져 있다.

박영남씨는 도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늘면서 농촌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에서 사는 법과 농촌에서 사는 법이 다른데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 룰을 모르니까 계속 농촌 문화와 어긋나게 된다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관습상 싫은 소리를 못 하니 농촌문화가 도시문화를 흡수하지 못하고 시골문화가 도시의 배타적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시골 사람들은 속상해요. 도시에서 온 사람한테 계속 당하니까 속상해요. 계속 양보만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구석에 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시골 사람이 바보가 아니란 걸 보여주기 위해 나쁜 말을 하게 되고……, 그런 게 도가 넘치니까 원주민들끼리 싸우는 지경에 이른 거죠. 농촌문화에 흡수되도록 10년 전에만 지적했어도 이렇게는 안 됐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만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다투기 싫어서 이렇게 방관만 하다 보면 농촌이 농촌도 아닌 도시도 아닌 이상한 곳이 되고 말 거예요.”


그는 이런 시골 상황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촌이 겪는 공통된 문제라고 한다. 도시 사람이 으리으리하게 신식집을 짓고 들어오면 허름한 집에 사는 시골 사람들은 기선을 제압당하게 되니까 얘기하기 어렵다고 한다.


저녁이 되자 세상의 외딴 곳에 온 것 마냥 완벽한 어둠이 드리웠다. 힘 있게 굽이치던 마루금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던 넓은 호수도 그저 검정일 뿐이다. 도시인에게는 쉬 익숙해지지 않을 어둠과 고요다. 이제야 완벽한 고립이 실감난다. 산과 물에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의 큰어른인 박기모 옹은 불평하지 않는다.
“고향이 수몰됐어도 그 때 댐을 만들었으니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겁니다. 나라가 이만큼 성장했으니 대곡리가 고립된 건 괜찮습니다.”


소양호에 가면 섬이 된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고립되어 더 좋은 곳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림처럼 잔잔한 소양호 풍경 속으로 대곡마을 사람들의 땀내 나는 치열한 하루가 시작된다.


▲ 대곡마을 나루터에 해가 저문다. 대곡리에선 평범한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