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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의 명사산행] 오세훈 전 서울시장

호젓한오솔길 2011. 11. 30. 20:42

[엄홍길의 명사산행]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산 꼭대기선 다 내려다뵐 것 같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한민국 수도 서울을 이끌었던 사내가 입산한다. 서울의 진산 북한산에 든다. 히말라야 8,000m 자이언트 14개 봉을 오른 사내도 입산한다. 알피니스트의 진산 북한산에 든다. 의외다.
 
전 서울 시장은 알피니스트 같고, 히말라야 고봉을 오른 산악인은 오랜 공무원 같다. 등산복을 차려입은 오세훈 전 시장,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고산등반에서 은퇴한 사내와 시장 자리에서 내려온 사내가 평일이라 한적한 산에 든다.


▲ 북한산 정릉계곡을 오르는 오세훈 전 서울 시장과 엄홍길 대장.

시대를 이끈 거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두 사람이 산에 들어도, 북한산은 미동 없이 담담하다. 무뚝뚝한 방식으로 바위랑 흙길을 번갈아 내주며 몸부터 풀라 한다. 산에서는 시장이건 시장이었건, 대장이건 대장이었건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산은 공평하고, 이들은 정직하게 산을 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단풍이 여느 해보다 늦다. 10월 스무날을 지나는데도 정릉계곡은 녹색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다들 한 두 마디 오가는 말의 뼈에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발길이 목적이 아니라 마음이 오가는 것, <월간山> 독자들에게 야인이 된 오세훈이 전하려는 말에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티 내지 않는다. 산행이란 함께 땀 흘리고 서로 끌어주고 도와가며 완성해야 하는 것임을 때문이다.


오세훈 전 시장의 표정은 밝다. 불편한 질문에도 인상 쓰지 않고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치는 큰 그릇을 보여준다. 아프지만 웃는 사내의 속마음을 안다는 듯 북한산은 오를수록 아리따운 풍경으로 답한다. 그의 목소리엔 지독히 고집스런 울림이 있다. 엄홍길과 <월간山>이 오세훈의 울림에 귀 기울인다.
 
“좀 쉬어야죠. 요새 백수되고 나서 부부금실이 좋아졌어요. 매일 같이 못 있다가 아내 데리러 가기도 하고 산책도 같이 하고요.”


“시장님, 등산복이 잘 어울리네요. 아주 전문 프로 산꾼 같아요. 자세가 나오네요. 제가 동네 뒷산 가는 아저씨 같고요.”


시장으로서 해온 사업엔 자부심


▲ 칼바위능선의 험로구간을 오르는 엄 대장과 오 전 시장. 평소 테니스로 몸 관리를 한 오 전 시장은 어렵지 않게 바위를 오른다.

요즘 주로 하는 것은 테니스다. 늘 운동을 즐기며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는 쉰의 나이에도 탄탄한 체력을 자랑한다. 철인삼종경기 올림픽 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고 테니스 외에도 헬스, 자전거, 걷기를 즐긴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테니스를 칠 정도니 테니스 광이라 불러도 좋겠다. 테니스는 친구들과 친다.
 
“테니스는 잘 모르는 사람하고 치면 재미없어요. 공 살살 주고 그러니까. 친구들하고 쳐야 이기려고 있는 힘껏 하니까 재밌죠. 친구들끼리 경쟁이 붙어서 아주 재밌어요. 짧은 시간에 운동량도 많고요.”


시장이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해온 사업에 애정이 많다.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자주 하는데 한강 르네상스 사업으로 만든 걷기 코스와 자전거길을 둘러보고 부족한 건 없는지 확인한다. 그래서 “체력관리 겸 현장 확인 겸 해서 간다”고 말한다.


엄홍길 대장과는 막역한 사이다. 2005년 KBS 라디오의 기획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함께 다녀왔다. 희망원정대란 이름으로, 장애인과 도우미를 자처한 멘토들이 도와서 함께 오르는 과정이었다. 당시 엄홍길 대장을 비롯 오세훈 시장과 소설가 박범신, 가수 안치환 등이 함께 원정길에 올랐다.


“혜화동 관사에서 나오면서 이삿짐을 싸는데 킬리만자로 길만포인트에서 엄 대장이 사인해 준 배낭이 툭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때 엄 대장과 처음 만났죠. 참 재밌게 다녀왔어요.”


당시 보름 정도의 긴 일정이었는데 오 전 시장은 아쉽게도 정상에 서지 못했다. 정상에서 30여 분 거리인 길만포인트(5,600m)까지 올랐다.


“거기에는 엄 대장님도 모르는 스토리가 있어요. 좀 쑥스러운 얘긴데 화장실이 급해서 정상을 못 갔어요. 이야! 환장하겠데요. 일행은 전부 가는데, 급해 죽겠으니. 산이 숲이 없고 툭 트여 있어요. 으슥한 데 찾다가 일행들을 놓쳐버린 거죠. 그때는 새벽에 소식 오는 습관이 정말 원망스럽더라고요. 정상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마침 길만포인트에 장애우들이 몇 사람 쉬고 있어서 그들하고 같이 남았죠.”


▲ 1. 바위구간에 들어서기 전 오세훈씨가 스카프를 동여 맨다. 2. 마당바위에서 한 숨 돌리는 두 사람.

그는 나름 진단컨대 고소체질인 것 같다고 한다.


“나이 많은 박범신 선생은 괜찮은데 젊고 운동 많이 한 친구들은 금방 나가떨어지는 것 보고, ‘아, 이건 운동 많이 했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맞습니다. 더 높은 데로 가면 체력이나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킬리만자로 같은 산은 적응만 하면 되니까 체질이나 오르는 요령에 따라 다릅니다. 술을 잘 마시면 고소에서 적응을 잘한다는 산악계의 얘기도 있어요. 대체로 보면 술 좀 마시는 친구들이 고소에서 적응을 잘해요.”


오 전 시장은 술을 잘 못한다. 술을 분해하는 소화 효소가 부족해 한 잔만 마셔도 금방 얼굴이 빨갛게 변한다.


“그때 귀국할 때 홍콩의 식당을 들렀는데 다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때 저도 마셨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필름이 끊겼어요. 식당에서 나와서 야경도 보러가고 했다는데 다음날 일어나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술을 못 하는 건 집안 내력이다.


“술 마시면 다음날 일에 굉장히 지장이 생기죠. 시장직 맡았을 때는 딱 1~2잔 반주까지만 했어요. 2차 안 간 지 5년이 됐고요.” 


“나라 위하는 일이 꼭 정치만 있는 건 아니죠” 

계곡을 버리고 칼바위능선으로 든다. 산다운 경사가 본격적으로 거친 인사를 건넨다. 고도를 높일수록 단풍은 아름답다. 서울 하늘은 투명하게 맑아 산에 온 이들은 복 받은 풍경이다.


북한산이 제대로 돌고 내려가라고 초대장을 바위의 뭉툭한 촉감에 묻혀 보낸다. 적당히 사진만 찍고 내려가려 했던 대장과 시장은 “우리 올라갈까요”하는 작은 말 한마디에 공감하며 거침없이 산을 즐긴다. 의외로 바위를 잘 탄다.


오 전 시장은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의 김형섭 사장과 친구 사이다. 3~4년 전쯤 김 사장의 제의로 인수봉 슬랩을 오른 적이 있었다.


“그게 45도도 안 될 텐데 80~90도로 느껴지는 거예요. 아주 혼났죠. 깎아지른 절벽 같은 느낌이라 다리가 오그라드는 거예요.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서 뿌듯해하면서 경치를 보는데 옆에 할머니 한 팀이 올라와서 밥 먹고 있는 거예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정상까지는 못 가고 중간까지만 갔죠. 백두대간도 가고 싶은데 평일에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죠.”

 

그는 과거엔 유명하다는 산도 다녔다고 한다. 북한산 칼바위능선은 시청 간부들과도 함께 온 적이 있다. 그러나 5년 동안 산행할 기회가 많진 않았다. 주말에 어디 놀러간 적이 드물었다고 한다.


“주말마다 행사가 있었어요. 주말일수록 행사가 많아요. 안 그래도 올 가을에는 히말라야를 가야지, 하면서 못 가고 있어요. 시장 할 때는 참 가고 싶은 여행지가 많았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실행이 잘 안 되네요.”


▲ 칼바위능선 전망바위에서 포즈를 취한 엄홍길과 오세훈.

오세훈 전 시장에게 가장 궁금한 건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다. 그는 단 한마디로 압축한다.


“나라를 위해서 기여하는 일이 꼭 정치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곤 “제가 지금은 정치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산행에 집중한다. 시장에서 물러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보며 반가워한다. 악수를 청하는 건 물론, 기념사진까지 찍자며 적극적이다.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마침 음식을 먹고 있던 여성 등산객들이 오 전 시장을 대번에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어머! 너무 반가워요! 두부랑 막걸리 잡수시고 가세요. 이번에 적극 투표했는데 너무 아쉬워요.”


등산객들의 환대에 오 전 시장의 음성도 하이톤을 띠며 표정이 환해진다. “왜 그만두셨어요”라며 아쉬워하는 하는 이들도 있다. 엄 대장이 “퇴임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인기가 좋다”고 하자, 웃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불쌍한 사람 좋아해요”라고 받는다.


그는 얼마 전에 <오후의 서울 산책>이라는 책을 펴냈다. 서울의 명소 44곳을 섬세한 글과 사진으로 엮었다. 북촌한옥마을이나 정동길 같은 서울 토박이들이 좋아하는 오래된 명소부터 북서울 꿈의 숲이나 서서울호수공원 같은 새로운 서울의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은 안타까워서 썼어요. 주말에 멀리들 나가시잖아요. 근데 갈 때 차 막히고 올 때 또 엄청 막히잖아요. 안타까워서 서울 시내에도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데가 이렇게 많다는 걸 알려드리려 만든 거예요. 이렇게 될 줄 모르고 7월 초쯤에 내려고 지난 봄쯤에 돌아다니고 사진 찍고 한 건데, 여름에 비가 많이 왔잖아요. 타이밍이 안 좋다 해서 미루다가 또 주민투표하니까 미루다가 시장을 그만뒀잖아요. 출판사에서 버리기 아까우니까 책을 내야겠다는 거예요. 내가 타이밍이 안 좋다고 했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책을 꼭 내고 싶었던가 봅니다.”


디자인 서울은 겉멋 내기가 아니다


▲ 서울을 배경으로 선 두 리더.

<오후의 서울 산책>에는 그가 시장으로 있으면서 직접 만든 곳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북서울 꿈의 숲, 서서울호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등이 그의 임기 때 새로 만들거나 손을 본 곳이다. 그래서 “애착이 가는 곳들”이라고 한다. 공원 말고도 ‘문예창작공간’처럼 시민들이 잘 모르지만 한나절 가족 단위로 와서 오붓하게 보내기 좋은 곳이 많다고 설명한다. 그는 임기 때 ‘디자인 서울’을 강조했었다. 


“디자인이 겉멋 내는 게 아니거든요. 서울 시민들이 다 안다고 생각해요. 더 안락하고 쾌적하게 생활 시설물을 만드는 게 디자인이에요. 근데 그걸 선거철만 되면 페인트 칠하는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어버리니까, 도리 없죠. 다 내로라는 디자인 전문가들 모셔서 하는 것 아니겠어요. 디자인을 이렇게 해라, 공무원이 지시하는 거 아니거든요. 근데 참 정치라는 게 무서워요.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얘기한다.


“한강도 그래요. 시민들은 좋아졌다고 수십만 명이 나와서 즐기는데 정치인들은 돈 낭비한다고 얘길 해요. 도시에는 휴식공간이 있어야 해요. 원래 도시는 삶의 질이 휴식공간에서 나와요. 휴식 공간 만드는 작업이 각종 르네상스 작업이에요. 요새 한강만 바뀌었나요. 정릉천, 성북천, 도림천 지천들도 다 자전거길 생겼잖아요. 그게 한강과 지천 르네상스거든요. 동네주민들은 다 걷고 뛰고 자전거 타고 즐기며, 변한 서울을 몸으로 누리는데 정치인들만 그거 가지고 무슨 토목건설 사업했다고 그러니 안타까워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 알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대꾸를 안 하지요.”


의학적으로 이상은 없지만 속에 열이 가득 찬다는 화병에 걸린 사람처럼, 그는 답답해했다.


“한강에서 사업 벌일 때 시민단체 전부 다 와서 도롱뇽 죽는다고 반대했었어요. 사업 끝나고 나서 오히려 도롱뇽이 몇 십 배로 늘었어요. 근데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아무 소리 없어요. 그리고는 초점을 다른 데로 돌려요. 세비를 많이 썼느니 해서 공격해요. 조사해서 도롱뇽 수가 늘었다고 하면 또 거짓말한다고 난리칠 테니까 아예 환경단체한테 생태관리를 맡겼지요.”


엄 대장은 “무조건적인 반대는 지양해야 한다”며 말을 거든다. 디자인 사업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의 속에 눌러 담겨 있던 말들이 홍수처럼 나온다.


“디자인이라고 하니까 인공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까도 어떤 분이 성북천 너무 좋아졌다고 그러잖아요. 한 10년 전에 온 외국인이 있는데, 10년 전만 해도 도시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서 놀랐대요. 근데 요즘은 어딜가나 앉을 자리가 있어서 놀란대요. 당시에는 얘기 좀 나누려면 늘 커피숍에 갔다는 거예요. 요즘은 자투리땅 있으면 전부 나무 심고 벤치 만들고 했어요. 서울에 녹지면적이 5년 사이에 100만 평이 늘어났다는 거 아세요? 잘 모르겠죠? 미세한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서 녹지로 조금씩 바꾼 것이 100만 평까지 늘었어요.”


▲ 1 북한산성을 따라 걷는 두 사람. 2 등산객들에게 막걸리와 두부김치를 대접 받는 두 사람. 오 전 시장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걸 알 수 있었다. 3 산행 후 허기를 달래는 엄 대장과 오 전 서울 시장.

그는 서울시민과 언론에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매주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왜 서울을 이렇게 바꿔나가는가. 뭘 목표로 바꾸는가. 서울시민들이 알고 있어야 되니까요. 근데 나는 매주 목이 터져라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하는데도 천만 시민에게 모두 다 전달할 수 없어요. 방송을 1년에 한 번씩 한 시간만 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되면 가는 데마다 설명할 필요 없잖아요. 이른바 소통을 해야 되는데, 방송을 하면 물어보는 것만 답해야 하니까. 서울에 대한 큰 그림을 설명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해 없이 허심탄회하게 서울을 이렇게 바꿔가야 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려고 참 많이 돌아다녔죠.”


칼바위능선의 험한 바윗길을 지나 서울시내와 북한산 인수봉이 훤히 보이는 절정의 전망대에 섰다. 땀 흘린 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충분히 누리고 보국문으로 향한다. 보국문에서 다시 정릉계곡으로 산을 내려 갈 것이다. 그는 절정의 자리에서 내려선 것인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있는가. 높은 곳은 어떤 의미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스스로의 산에 들어섰으니 걸을 뿐이다.  


그는 시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서 새롭게 느끼는 것이 많다.


“산 위에 있으면 다 내려다보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더군요. 야인으로 돌아온 지금 훨씬 잘 보이죠. 산기슭에 내려가야 숲이 잘 보이는 거니까요. 허탈하지 않냐고요? 5년 동안 원도 한도 없이 일해서 그런 건 없어요. 또 그 결과물들이 다 남아 있잖아요. 5년 동안 400개의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 결과물이 시민들의 일상에 다 남아 있으니까요. 허탈하지 않아요. 다만 내 손으로 마무리 못 한 것들이 있어서 아쉽죠.”


보국문에서 간단히 김밥 도시락을 먹고 산을 내려선다. 엄홍길 대장의 배낭에 묶인 천의 의미를 오 전 시장이 묻는다. ‘가타’라는 네팔 부적으로 행운을 뜻한다고 한다.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울긋불긋한 건 불교문양이 들어간 것이다. 셰르파들이 불교도니까 원정 가면 걸어준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친한 식당 아주머니인데 그 네팔 분을 어머니라고 불러요. 그분도 나를 아들로 여기고요. 그 어머니가 주신 부적이에요. 미신 같지만 산을 오를 때도 그런 게 있어요. 어느 단계부터는 선택권을 자연한테 줘야 한다는 거예요. 신이 결정해 줘요. 나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는 거죠. 그 이상은 산이 선택해 줘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뭔가 에너지, 기운이 산과 맞아 떨어져야 정상에 설 수 있는 거죠.”


“서울 경쟁력이 29위에서 9위가 된 건…”


▲ 북한산 정릉계곡을 함께 오른 두 사람. 엄 대장은 산행으로 몸이 다져졌고 오세훈씨는 테니스로 다져져 몸이 탄탄하다.

오세훈은 서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이 변화시킨 서울에 대한 자부심도 숨기지 않는다.


“산과 강이라는 천연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서울의 삶의 질과 가치를 결정적으로 좌우하죠. 전 세계 그렇게 많은 도시가 있어도 이렇게 큰 강과 산을 낀 도시는 없어요. 제가 취임할 때 서울의 경쟁력이 세계 대도시 중 27위였는데 4년 만에 9위가 됐어요. 경쟁력이라는 게 한두 가지를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도시의 모든 것을 종합점수를 낸 순위예요. 교통, 환경, 복지 문화, 물, 공기 다 감안해서 그런 순위가 나온 거예요. 서울 시민들은 자부심 가질 만해요. 파리에 가보세요. 지하철 타면 경악스럽잖아요. 더럽고 냄새 나고 비싸고. 거기 비해서 서울은 영국 지하철의 4분의 1 가격이에요. 더구나 깨끗하고 편리하잖아요.”


그는 시간이 지나면 디자인 서울이 제대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서울 시민들은 못 느끼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서울 하면 디자인을 떠올려요. 지난 몇 년 동안 평가가 그래요. 근데 그걸 폄하하고 마치 해서는 안 될 걸 한 것처럼 얘기하니까 안타까워요.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를 안 하는 게 상책이라고 봐요. 시간이 지나 객관적인 평가로 보여줘야 한다고 봐요. 자꾸 싸움을 하면 점점 더 힘들어져요.”


산행을 마치자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속에 가득 찬 무언가를 산에게 얘기해 버렸기에 조금은 편안해진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