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35> 해남 달마산 |
공룡 등줄기 닮은 암릉… 땅끝마을서 솟은 '남도의 금강산' |
전대식 기자 |
백두대간에서 불거진 호남정맥은 전남 화순군 바람재(노적봉)에서 바다로 방향을 꺾어 한반도 마지막 맥을 댑니다. 바람재에서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까지 약 300리에 달하는 이 맥이 바로 '땅끝기맥'인데요. 기맥의 맏형 격인 도립공원 두륜산을 지나 땅끝마을 앞에서 용솟음치는 산이 '남도의 금강산' 달마산(達摩山·489m)입니다. 우리 국토의 대미를 마감하는 명산이죠.
매년 해넘이·해돋이 철이면 많은 산꾼이 이 산을 찾곤 합니다. 일부러 간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데, 왜일까요? 뭍이 다해야 비로소 바다가 시작된다는 '끝의 시작'이라는 이치를 몸소 깨닫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더는 갈 곳 없는 극단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임전무퇴의 각오를 마음에 새기고 오는 걸까요? 아마 해남군의 캐치프레이즈인 '희망의 시작, 땅끝'이란 말에 실마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세밑과 원단에 즈음해 달마산에서 '땅끝 기운'을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해넘이·해돋이 철이면
산꾼 몰리는 '한반도의 대미'
벼랑에 있는 도솔암과
미황사 '천년의 길' 볼거리
통상 달마산 코스는 송촌마을~불썬봉(489m·달마산 주봉)~도솔암~송지면 마봉리 코스가 잘 알려져 있다. 산행시간만 6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미황사를 빼먹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미황사~불썬봉~하숙골재 코스는 단조로운 게 아쉽다. '산&산'은 해남지역 산악회와 미황사의 도움을 받아 원점회귀 코스로 꾸며봤다. 부산에서 해남까지 자가승용차로 이동시간이 5시간 안팎 걸린다는 점도 고려했다. 코스는 미황사~불썬봉~하숙골재~도솔암~미황사 천 년의 길~미황사로 돌아온다. 능선에 험한 구간이 제법 있어 산행 초보자들한테 다소 까다롭겠다. 산행 길이 11.1㎞, 5시간 정도 걸린다.
미황사 주차장에서 산행 채비를 마쳤다. 정문을 지나자 머리 위로 '쉿! 묵언'이라고 쓴 현수막이 눈에 꽂힌다. 조심조심 계단을 밟고 절 바로 밑에 있는 임시 주차장에 닿았다. 경내 입구인 자하루 처마 너머로 보이는 달마산의 돌덩이들이 마치 보살과 나한상처럼 기립해 있다.
절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좌측으로 틀면 동백나무 밑에 등산로 푯말과 달마산 안내도가 보인다. 본격적인 들머리다. 미황사를 뒤로 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길이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꺾이면서 갈림길 두 곳을 잇따라 지난다. 헬기장 아래 갈림길까지 7분 정도. 두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간다. 오른쪽은 주능선으로 바로 붙는 등로다. 너덜이 많고 묵은 길이라 이 길을 피한다.
기엄기엄 돌길을 오른다. 길에 박힌 자잘한 바위가 오히려 버팀목이 된다. 비나 눈 온 뒷날에는 돌부리가 미끄러울 수도 있겠다. 길과 싸우느라 등 뒤로 눈도 주지 않다가 불썬봉 바로 밑에서 잠깐 섰다. 조망이 확 트였다. '아!' 소리가 절로 난다. 불썬봉이 지척이라 걸음을 서둘렀다.
불썬봉은 360도로 탁 트인 조망처다. 어엿한 일망무제의 풍경이 사방에 펼쳐진다. 북쪽으로 두륜산의 멧부리가 이쪽으로 덤벼들 기세다. 동쪽으로 완도 상황봉이 우뚝하고 완도대교가 바다 가운데로 획을 긋는다. 서쪽으로 보이는 진도는 구름에 가려 어슴푸레하다. 남쪽 땅끝마을 일대에 햇살이 소복하다.
조선시대까지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하여 '불을 써는(써다는 켜다의 전남 방언) 봉'이라 해서 불썬봉이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불썬봉 대신 이 지점에서 북쪽으로 470m쯤 떨어진 곳에 '달마산(達馬山)'으로 오기했다. 해남의 향토사학자들과 산악인들이 '주봉 위치와 말 마 자를 고쳐달라'고 지리원에 건의했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달마산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의 시조가 된 달마대사가 머무를 만큼 산세가 뛰어나다는 데서 유래했다. 기록상으로 고려의 무외 스님이 처음으로 이 산을 달마산으로 불렀다. 그는 '달마산 정수리의 바위들은 사자와 용, 호랑이가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릉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불썬봉을 불선(佛仙), 불성(佛聖)봉으로도 부른다. 미황사 스님들은 달마봉으로 쓴다.
불썬봉에서 내려왔다. 이제부터 땅끝기맥을 따라 암릉을 헤쳐가야 한다. 멀리서 볼 때 암릉은 잿빛 수석 전시장인 듯 황홀했다. 하나 막상 당면하자 암릉은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줄기처럼 날카롭고, 까다롭게 다가왔다. 군데군데 설치한 밧줄과 계단이 어느 산행 때보다 고맙게 느껴진다.
15분 정도면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20m쯤 가면 문바위가 보인다. 갈라진 바위 틈으로 힘겹게 몸을 빼낸다. 문바위에서 돌 능선을 더듬고 나아가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오른쪽이 미황사 하산로다.
왼쪽으로 다시 돌길이 이어진다. 내리 오르막이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새 암릉이 이빨처럼 박힌 날등으로 올라섰다. 양쪽에서 바람이 불어대니 몸이 휘청한다. 길 양쪽을 보니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신경을 써서 이 구간을 돌파해야 한다. 돌 날등은 대밭삼거리까지 이어진다.
대밭삼거리를 지나 471봉, 460봉을 지나 20분쯤 가면 성가신 암릉이 사라지고, 흙 냄새 나는 육산에 온 듯 푸근한 흙길 능선이 반긴다. 이런 길은 하숙골재 삼거리를 지나 떡봉과 359봉까지 이어진다. 대밭삼거리~359봉까지는 넉넉잡아 50분 정도 소요.
359봉부터는 전방으로 보이는 도솔봉 통신 중계탑을 보면서 걷는다. 도솔암 아랫길에서 암릉의 조망이 좋다는 전망대까지 갔다가 다시 도솔암 쪽으로 유턴한다. 왕복 소요시간 20분 남짓. 도솔봉은 통신시설 탓에 접근 불가다.
도솔암은 V자 형태로 벌어진 절벽 사이에 쌓은 석축 위에 앉아 있다. 아래에서 보면 하늘 속에 절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도량인데,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이 불을 질러 원래 건물은 아예 사라졌다. 그동안 절터만 남았다가 지난 2002년 6월 법조 스님과 신도들이 공을 들여 새로 법당을 만들었다.
도솔암에서 내려오면 길 우측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용담굴이 있다. 그 안에 샘이 있다. 물이 귀한 달마산에서 해발 350m 부근에 사철 내내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여기서부터 10분 정도 너덜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한다. 경사가 급하고 돌부리가 위태로운 데가 많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조금만 참으면 미황사 천 년의 길이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땅끝마을까지 연결된 길이 16㎞가량의 둘레길이다. 아는 사람만 찾는 길이라 인적이 드문 호젓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삼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소나무 숲을 거닌다. 오른쪽 위를 쳐다보면 천태만상의 돌부리들이 기세등등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나에게 하루를 주면 네게 천 년을 돌려주리라!'는 도솔암 나무 푯말의 글귀가 눈에 밟힌다. 40분 남짓 숲길을 걸으면 부도전 앞 임도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10분 거리에 미황사가 있다. 미황사는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에 있는 절이다. 서기 749년 의조 스님이 창건했다. 몇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 모습을 갖췄다. 대웅보전(보물 제947호)과 응진당(보물 제1183호)이 유명하다. 대웅보전과 그 뒤로 돌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 기암괴석들이 잘 어울린다. 한 폭의 동양화일까? 한 장의 달력 사진일까? 낙조에 물든 선경이 한참 동안 발길을 붙잡는다. 대웅보전 앞마당을 지나 자하루를 통과해 다시 일주문을 돌아왔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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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달마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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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달마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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