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 타운의 아침은 밝았으나 비가 내렸다.
구름의 이동을 짐작할 수가 없으니 하루의 일기를 예측할 수도 없다.
이 곳의 일기는 아주 변덕이 심하다.
밴덜리슴(Vandalism)
기차역에 나갔을 때, 역사 앞의 대형 유리벽이 산산히 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젯밤에 그랬구나! 불만이 있다고 공공시설을 저렇게 난폭하게 파괴하다니…”
우리가 만난 사람들 모두가 천사 같았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 분명 밴덜리슴(Vandalism)이란 게 퍼렇게 살아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폭력은 만행인데, 이 나라에 폭력이 많다더니 여기 지방도시에도 ..!”
스톡홀롬으로 가는 기차에서도 몇 번이나 하늘을 쳐다보았다.
-제발 오늘은 일기가 좀 청명했으면…-
어제 저녁에는 숙소에서 50대 부부를 만났다.
“스웨덴에서 농업은 국내생산량의 겨우 1% 밖에 안 돼요.”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편, 하이텍 산업에 사회적 에너지를 집중한 나라. 완전고용을 지향하여
소득의 균형배분을 서두른 북유럽의 나라들은
농업경제를 포기한 나라들이다.
산야가 온통 목초지대뿐 농장은 거의 없다.
그런데 모두가 무역강국이다.
그래도 고도 산업화에 따른 식품의 수입의존은, 어쩐지 갑갑하다.
농산물을 재배하지 않는다는 건 타국의 농업을 장려한다는 말이다.
소득의 기회도 잃고 농산물의 품질도 신뢰할 수 없다.
농약의 농도나 위생처리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문제발생의 여지가 자꾸만 생긴다.
그걸 어떻게 감당해?
베이비 붐
그러니까 그것은, 어제의 성장요인이 될 수 있었으나, 오늘은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의 수입의존도가 근 20%나 늘어났다.
식품수입의 격증에 정부도 당황하고 있는 것은, 식품은 일차 생필품이며
국민건강이나 생명의 안전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잘 사는 나라다.
최근에는 스톡홀롬에 '베이비 붐'이 기사화되었다.
작년만 해도 조산실이 부족했다. 시설도 조산원(midwife)도 부족했다.
그래 많은 경우, 다른 지역으로 가서 출산을 했다.
금년 5월까지 12,300명의 어린이가 스톡홀롬에서 태어났다.
아마 연말까지 금년중에 적어도 27,000명의 어린이가 테어날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세웠다.
그래 금년에는 수용시설과 조산원을 많이 늘였다.
시민들은 누구나 앞으로 더 큰 베이비 붐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유럽은 별로 인구가 많지 않아 정부도 이를 권장하고 있다.
스톡홀롬 중앙역에서 한국 여대생을 만났다.
지금 프랑스에서 어학코스를 밟고 있는 중에 스웨덴과 놀웨이를
관광하기 위해 왔다.
성격이 밝고 부드러워 붙임성이 있다.
아직 성수기가 아닌 때여서 한국 학생은 어쩌다 만날 수가 있었다.
중앙역의 열차안내소에서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다. 지도를 주었다.
그런데 그 인포메이션 센터의 위치가 역사에서 동쪽으로 약 300 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아주 불편한 조치였다.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로 불편했다.
“제기랄!”
그쪽으로 한 발 두 발 걸어갔다.
-왜 이렇게도 멀어? 역사 부근에 있어야 할 인포메이션 센터가-
막상 거길 도착했을 때, 아침 아홉시가 다 됐는데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아마 이사를 준비하는 건 아닐까?
가까이 있던 현지인도 창안을 들여다보았다.
“페업했나봐요.”
여행안내를 받지 못하면 일정을 만들 수가 없다.
목적지와 교통편을 알 수 없으니 아무나 닥치는 대로 물어가자.
그게 아니면 발에게 자유를 주자. 하하
비록 여행안내를 좀더 자상하게 받진 못해도 목적지의 이름은 알고 있다.
목표를 보고 쏜다면, 이미 그것은 공포(空砲)는 아니다.
타고 내리고, 내리고 타고
hop on, hop off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게 좋아!
1주 패스가 있으니 아무 거나 탈 수 있다.
어딜 먼저 가느냐는 알 바 아니다. 하하
족보를 들여다 보았다.
스톡홀롬 시내- Vasa의 Royal Warship, Nordic Museum, City Hall,
Skansen, 중세 박물관, Riddarbolm church, Drottningholm 궁전,
Royal Palace(kungliga slottet), 대성당, 시청사, KAKNES 타워 전망대,
ferry, 트램, 지하철, 버스-
라고 적혀있었다.
그래 물어 물어 가기로 했다.
먼저 버스를 탔다. 가다가 내려 올드 타운이란델 갔다.
궁전이 있고 관광단이 있었다. 그리고 시청사를 보았다.
유명한 노벨평화상의 수상지라는 게 아닌가?
그 다음엔 트램을 탔다.
전함 바사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함이고 KAKNES전망대는 스톡홀롬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있다고 했으나 우린 이 전망대엘 가지 않았다.
독일의 쾔른에서,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그리고 시카고와 홍콩의 카울롱에서
전망대에 올라갔으나 별 감동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래 사양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 전망대에 갔을 때, 가슴에 담겼던 행복의 추억이 가끔
사람을 울게 한다.
실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 대화의 기쁨과 공존의 확인이 가장
아름다운 인간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올라가고도 싶지만, 여긴 반찬이 너무 많은 밥상과 같다.
그리고 다리가 아프다. 하하...
페리
그런데 날씨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몇 번, 또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가끔 지상으로 나오긴 했으나 지하터늘에선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재미가 없었다.
그냥 맛만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hop on, hop off를 반복하는 동안, 사실은 스톡홀롬도 별로 크지 않고,
Saint Petersburg처럼 아니 그보다 더 명소가 한데 가까이 몰려있다는 걸 알았다.
시내 쇼핑가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묘령의 여인이 상점 문앞에서 빨간 우산 한개를 주었다.
"오늘 비가 종종 내리는데 이걸 쓰세요. 돈은 받지 않아요. 호호"
디자인이 고상한 빨간 우산!
외국 사람에게 줘 봤자 광고효과도 없을 텐데 이걸 왜 줘?
우산을 들고 나니 이상하게도 비는 그리 많이 오지 않았다.
그래 짐이 되었으나 준 사람의 호의 때문에 전연 불편을 느낄 순 없었다.
'상점 피알'이 아니라면, 그럼 '국가 피알'이 이 여인의 의도가 아닌가?
Gröna Lund 어린이 공원은, 시니어의 경우 무료입장이나 서울 어린이 대공원만
훨씬 못했다. 하하
이번엔 쉬엄 쉬엄 오는 비를 맞으며 페리를 탔다.
왠 관광객이 이리도 많을까?
둘은 동행인이지만 셋은 이미 군중인데 군중치곤 너무 사람이 많다.
공영페리는 테이 페스가 통했으나 한시간 반짜리 페리는 아마 사영이어서
패스가 통하지 않았다.
1인당 약 3만원의 요금을 지불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페리를 권했다.
'스톡홀롬' 관광의 필수 항목이라는 것이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은 다들 '스탁홀름'이라고 발음했다.
중세의 아름다운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빌딩으로 둘러싸이고,
바다로 통하는 길고 넓은 만에 여러 개의 교량이 놓여있다.
꼬리에서 파도를 일으키며 달리는 페리가 사람을 흥분시킨다.
괜히 유쾌해진다.
잔뜩 몰려있는 관광객의 눈은 모두가 바쁘다. 폭식이라도 하겠다는 태도다.
보이는 건 뭐든 놓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 거기서도 자는 사람들이 있다.
어쩜 일기 탓도 있겠지만, 비싼 돈 내고 아마 멀리서 왔다면
일생에 단 한번 손에 쥘까 말까한 이 귀한 기회를 그래 눈을 감고 보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깨울 수도 없지 않는가? 하하
1000헥타르의 넓은 대지를 자랑하는 유르고덴 공원(Royal Djurgården park)은
섬이다.
이 섬안에는 바사호 박물관, 북방 민족 박물관 등의 박물관이 있고
그 중 스칸센(요새라는 뜻)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박물관이다.
스칸센은 산업화로 인해 스웨덴의 고유전통이 사라지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여
전국에서 약 150동의 전통적인 건물을 모아 만들었고,
중세의 세그롤라 교회와 17세기의 영주저택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동물원이 있다.
하루 종일 스톡홀롬 관광을 마치고 다시 템플 타운으로 갈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왕궁, 트램, 페리, 박물관 다 좋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건
역시 사람구경이었다.
허리가 굽고 주름살이 깊은 노인들, 철없이 뛰노는 아이들, 멋쟁이 연인과
하니문족들, 그리고 피부와 눈색깔이 다른 외국인들!
신이 나서 움직이는 인종시장의 눈요기도 아주 재미있다.
Gröna Lund 어린이 공원
스톡홀롬 신드럼
스웨덴은 주로 유럽의 여러나라와 무역을 해서 성공했다.
최근 인도에 수출하는 품목만도 통신, 목재. 수력발전, 철광석, 팔프, 화장지,
섬유, 실, 고철, 유기화학, 의약품, 지류, 기계, 철강등이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에릭슨과 볼보가 그 대표주자이다.
북유럽의 어디서도 유에스 달라는 거의 푸대접이었다.
미국이 소외되고 있었다.
스웨덴은 인구 900만명, 기대수명 80.5세, 1인당 GDP 는 최근에 업데이트된 CIA
자료에 의하면 50,000달러, 세계 8위.(놀웨이는 8만 4천5백 달러(2위),
그리고 한국은 19,800 달러(35위))의 순이다.
1위는 10만달러가 넘는 룩셈불그이다.
”150년전에 최빈국이었어요. 이제 최고의 부자나라가 된건, 다 기술인력과
산업진흥에 그 원인이 있어요.”
스웨덴도 옛날엔 최빈국이었다고 했다.
-그럴 테지 고난의 능선을 넘었으니까 찬란한 평원의 평화가 있는 거지!
하! 부럽다. 언제 우리 코리아도 이렇게 잘 살아보나?-
스웨덴도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세율은 높고 겨울도 지루할 정도로 길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최고 수준인 사회복지시스템은 사회적 평등이란 측면에서
국민들에게 일체감을 주고 있다.
또 일과 생활의 밸런스는 스웨덴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가 되고 있다.
아이들의 양육비도 정부가 보조해주고 있다.
스웨덴 정부도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에 정책비중을 크게 두고 있다.
잘 사는데는 역시 잘 사는 이유가 있다.
오늘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일단의 놀웨이 사람들이 있었다.
놀웨이 물가를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스웨덴 물가가 조금 싼 편이야요."
그 분들 중에 자녀들 다 출가해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일부러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놀웨이에 오면 꼭 전화해달라는 당부를 했다.
얼마나 고마운 분의 마음인가?
또 아이다호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는 딸네 집엘 왔다면서 희색이 얼굴에
가득 피었다.
딸의 친구가 결혼한다는 얘기를 늘여놓을 때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그 두 여인의 가슴엔 사랑이란 게 호수의 맑은 물처럼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온세상에 퍼진 말중에 ‘스톡홀롬 신드럼’이라는 말이 있다.
그게 무슨 말인가?
1973년, 스톡홀롬에서 은행강도가 인질을 납치하여 일주일 간이나 버텼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인질들이 범인들을 동정하고 편들어, 나중에 경찰에서도 강도들에게
불리한 진술까지 전면 거부하게 되었다.
이는 주로 육체, 정서적인 강박 때문이며, 폭력이나 보복공포도 있었지만,
범인의 값싼 친절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고, 구조도 그 과정의 위험 때문에
일종의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세상에선 이와 비슷한 현상을 스톡홀롬 신드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지 뉴스
한편, 돌아오는 기차에서 신문을 들고 있던 노인은 친절하게도 오늘의 기사를
해설해 주었다.
요즘의 현지 뉴스중엔 독일의 내연 여인이 스톡홀롬의 아기 둘(1살, 3살)을
살해하고, 그 엄마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있었다. 아이들의 계부가 옛날에
만났던 애인이 범인이었다.
미모란 센스있는 남자라면 한번쯤 걸리고 싶은 올가미가 아닌가? 그러나 때로는
올가미가 목숨을 앗아가는 형틀이 되고 폭약이 된다.
범행동기는 순전히 질투 때문이라고 했다.
독일 여인은 악마의 혼이 되어 파멸을 선택했다.
그러나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원수가 비록 개미 같이 보여도 언젠간 코끼리가
된다는 걸 기억해야 했었다. 실로 얏잡아 볼수록 커지는 게 죄악이다.
또 10세 소녀와 31세 여인을 강간하고 죽인 Eklund 사건이 있었다.
둘 다 끔직한 살인 사건이었다. 치한이란 분명 문명사회의 독거미, 언제나 으슥한
구석에 숨어서 산다.
“무서워요. 사람의 생명 알기를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사람들”
스웨덴은 역시 낙원은 아니었다.
실로, 환락과 비애는 가까운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노인은 스웨덴엔 19만 수천의 섬이 있고, 아키펠러고(군도)를 관광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키펠러고 얘기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몇차레 들어온 최선의
옵션이였다.
그는 니나삼을 소개해주었다. 니나삼은 항구다. 니나삼에서 출발하는
페리를 타면 어디나 좋다고 했다.
그 중에서 Nattro 섬과 Rano섬이 좋다고 했다.
독수리는 파리를 잡지 않는다. 이제 눈높이가 너무 높아졌다. 유명하지 않으면
가고 싶지가 않아졌다. 눈을 버린 게 아닌가? 하하
내일은 그렇담 그 좋다는 아키펠러고엘 가자.
페리를 타고 푸른 발틱해의 보스니아만을 달려 아름다운 섬으로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Nattro 섬이냐? Rano 섬이냐?
아래에 비디오가 있습니다.
-이 여행기의 출판을 도와주실 분에게
천행이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