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43> 함양 남덕유산 |
이 장쾌한 조망… 세상만사 온갖 시름 다 어디갔어? |
전대식 기자 |
속리산을 지난 백두대간의 굵은 마루금은 한반도 남쪽을 동서로 나누며 남하한다. 산줄기는 지리산을 만나기 전 1,000m가 넘는 멧부리를 뿜어내는 데 바로 덕유산의 연봉들이다. 조선 중기의 풍수가인 남사고는 '덕유산 일대에 사람을 살리는 기운이 가득 차 있다'며 병란을 피하는 십승지지로 예언했다. 산에도 인격처럼 '산격(山格)'이 있는 것일까? 산꾼들은 덕유산을 '크고 넉넉하며 사람의 기운을 돋우는 명산'으로 추켜세운다.
하기야 그 앉음새나 산세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두꺼운 산 덩치가 동서로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함양과 거창에 걸쳐 있고, 남북으로는 하늘을 나는 용처럼 우람차고 길게 뻗었다. 조선 시대 실학자 이중환은 이 산을 대표적인 육산으로 꼽았지만, 무주 구천동 등 골산 못지않은 깊은 골도 가졌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향적봉(1,614m)을 북덕유산이라고 부르고 여기서 남쪽으로 약 20㎞가량 떨어진 봉우리(1,507.4m)를 남덕유산으로 부른다. 이 남북 봉을 잇는 능선이 덕유산 종주로다. 한때 종주 바람이 불면서 사람 몸살을 앓은 능선이기도 하다.
북적대는 주봉 향적봉보다 호젓
철계단 힘겹게 오르면 시야 확 트여
지리산 가야산 등 파노라마 조망
덕유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주능선에 올라서면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첩첩이 쌓인 주변의 산그리메다. 눈발 날리는 겨울이면 푸른빛의 산자와 백색의 설경이 어우러져 '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 산을 오르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쯤은 덕유의 주변 조망을 담은 사진을 대한 경험이 있을 게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온 산자락에 만발한 상고대의 장관도 덕유산으로 사람을 끄는 매력 포인트다. 하지만 주봉인 향적봉은 이맘때면 인산인해다. 온전히 땅을 밟고 오른 산꾼과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유람 온 관광객이 한 고스락에 뒤섞이면서 진득한 산행은 종적을 감추다시피 했다. 산을 즐기는 여유나 산행의 고즈넉함은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어떤 산꾼은 '크고 넉넉한 산'이 '번잡하고 성가신 산'이 돼 버렸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남덕유산은 이런 불만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주말이면 인파로 북적이는 향적봉의 요란함이 이곳에서는 한결 덜하고, 평일에는 오히려 한적한 편이다. 땀을 내고 숨을 토해 내며 정수리에 오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산행미를 갖추었다. 일망무제의 파노라마 조망도 향적봉 못지않게 뛰어나다. 북덕유를 사랑하는 이들이 이 시기에 일부러 남덕유로 향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싶다.
코스는 통상 영각사 아래 국립공원 이정표를 출발해 능선 안부인 영각재(고개)에 올랐다가 봉우리를 밟고 월성치나 황점마을 방향으로 하산로를 여는 식이다. 눈 산행을 고려한다면 6~7시간 이상 걸린다. 부산서 기점까지 이동 시간(자가승용차 기준 3시간 정도)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다 이 코스는 원점회귀가 아니어서 차량 회수나 대중교통 편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당일 산행지로는 빡빡한 셈이다. 하여 '산&산'은 이 코스를 버리고 원점회귀 코스로 꾸며봤다. 정상까지는 기존 루트와 같지만 남덕유산~서봉 사이 안부에서 한적한 계곡 길을 따라 기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꼭대기까지는 외길이지만, 이를 넘으면 길이 갈린다. 산행 초입 너덜 구간을 지나 목교 부근부터 영각재까지가 된비알이다. 쉬고, 먹는 시간을 포함해 4시간 30분이면 충분하겠다.
영각사 주차장 아래 국립공원 이정표가 서 있다. 이 절은 신라시대 헌강왕 때(877년)에 심광대사가 창건했는데, 현재 해인사의 말사다. 주차장 주변에 부도가 즐비하다.
국립공원 이정표에서 출발한다. 탐방지원센터(영각공원지킴터)까지 400m가량 걷는다. 제설 작업을 했지만 길에 살얼음이 깔렸다. 탐방지원센터는 전에 매표소가 있었던 곳이다. 주변에 화장실이 있다. '일몰 후부터 일출 2시간 전까지 야간 산행을 통제한다'는 현수막이 등산로에 걸려 있다. 센터 앞을 지나 산길로 들어선다. 갈매나무, 쪽동백, 당단풍나무, 개벚나무, 층층나무 등 갖은 수종이 길옆에 서 있다. 나무는 저마다 이름표를 달았는데, 잎이 떨어져 줄기만 남아 앙상하다.
첫 번째 이정표에서 5분쯤 지나자 길바닥에 돌부리가 널렸다. 돌과 돌 사이 얼음이 끼여서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럽다. 10분 정도면 목교에 닿는다. 눈길이 점점 두꺼워진다. 아이젠을 착용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덕유산 일대는 11월부터 4월 초순까지 거의 눈이 내리기에 아이젠과 스틱은 필수이고 때에 따라서는 스패츠도 지참해야 한다.
아이젠을 신으니 걷기는 한층 수월하지만, 오르막이라 보폭을 넓히기는 무리다. 잰걸음으로 보행속도를 올린다. 두 번째 목교부터 영각재까지 가풀막이다. 따사한 햇볕에 나뭇가지 상고대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아쉽다. 조망마저 막혀 답답하다. 헉헉대길 30분 남짓. 비로소 영각재 아래 계단에 닿는다. 아래쪽 비탈길에서 신음이 여기까지 들린다. 한숨을 돌리고 박차를 가해 영각재에 오른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에 표고가 1,268m를 가리킨다. 두 번째 목교 지점이 990m였으니 270여m를 오른 셈이다.
영각재 오른쪽 등로는 막혔고, 길은 왼쪽뿐이다. 저만치 '악!' 소리가 난다고 '악의 계단'으로 불리는 철 계단이 보인다. 끙끙대며 계단을 올랐더니, 주변이 삽시간에 확 트인다. 조금 전까지 신음은 온데간데없고 '와!' 하는 탄성이 나온다. 주능선을 만날 때까지 막혔던 조망이 교통체증 풀리듯 해소되니 후련한 기분이다. 눈을 덮어쓴 삿갓봉이 지척이다. 멀리 가야산의 성화석들이 에메랄드처럼 빛난다. 전망대로 먼저 올라간 등산객이 아래쪽을 보며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전망대 왼쪽으로 불끈한 남덕유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지점에서 철 계단을 밟고 전망대까지 7~8분 정도 걸린다. 전망대 쪽 조망은 아래보다 더 좋았지만, 고지가 눈앞이라 지체 않고 진행한다. 능선의 왼쪽 사면 길을 따라 10분쯤 가다가 '워매' '아따' '어머나!' 하는 소리가 들릴 무렵이면 꼭대기에 다다른 것이다.
남덕유산의 대가리는 돌덩이다. 백척간두의 심정으로 암릉 끝에 올라섰다. 발아래로 보이는 세상과 그 세상을 보듬은 산들을 바라본다. 멀리 지리산 일대가 구름에 잠겨 섬처럼 하늘에 떠 있다. 주봉인 천왕봉은 안 보이고, 반야봉과 영신봉의 대가리가 살며시 보인다. 그 왼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오도산~우두산~가야산~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잿빛 실루엣이 아득하다. 다시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덕유산의 주봉 향적봉과 그 앞의 삿갓봉이 헌걸차게 이쪽을 노려본다. 서쪽인 마이산, 운장산, 서대산의 마루금도 파노라마 조망에 한몫한다. 싸라기눈이 섞인 골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정상에서 30m쯤 서봉 방향으로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다. 여기에서 3분쯤 내려가면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은 삿갓봉 방향, 왼쪽이 하산길이다. 장수 사람들이 '장수 덕유산'으로 부르는 남덕유의 서봉(1,492m)을 보며 내려온다. 이정표에서 10여 분 지나 나오는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돈다. 갈림길의 높이가 1,360m. 밧줄이 설치된 지점(920m)까지 약 440m의 높이를 낮추어야 하니 급한 내리막은 당연지사. 소요시간 30분 정도. 기존의 남덕유산 하산 루트를 버리고 원점회귀를 위해 택한 길이다. 인적이 드물어 길은 호젓하고 깔끔하지만, 묵었다. '산행 시그널'도 귀했다. 본보 산행 안내리본을 충분히 달아놓았다.
밧줄 설치 구간에서 덕유교육원 야영장까지 30분 남짓 걸린다. 길옆 비탈에 있는 고로쇠나무마다 수액을 채취하는 튜브가 꽂혔다. 수액을 빼던 노부부가 물맛을 보라며 한 바가지 담아 주신다. 걸쭉하고 달콤한 맛에 산행 피로가 가시는 것 같다. 야영장에서 교육원 내부로 들어와 입구 표지석까지 침엽수가 우거진 산책로를 걷는다. 15분 소요.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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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남덕유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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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남덕유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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