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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소골 계류를 가로지르는 등산객들. 용소골은 ‘물속의 길’이 더 멋지고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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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鷹峰山·998.6m)은 자유의 산이다. 이 산에는 원상 그대로의 자유가 있다. 길을 걷고 싶으면 걷고, 걷다가 더우면 그대로 물속에 뛰어들면 된다. 그런다고 하여 호각을 불며 제지하거나 벌금을 물리는 사람도 없다.
여름 계곡 산행 시 사망사고는 심장마비가 태반이라고 한다. 땀이 식지 않은 채로 찬 물에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하는 것이다. 대부분 산중 계류는 뛰어들기는 고사하고, 손발을 담그고 1분을 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차갑기 마련이다.
그러나 응봉산의 계곡들은 비가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수온이 미지근하게 여겨질 정도가 된다. 동쪽에 위치한 덕구온천이 암시하듯, 응봉산 전체의 체온이 뜨거워서일까. 아무튼 여름 응봉산 계류는 타 계곡에 비해 높은 수온을 유지, 오래도록 유영해도 별로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아예 구명조끼들을 챙겨 입고 줄지어 검푸른 소로 뛰어드는 ‘알탕 산행’을 즐기곤 한다. 자율 속의 자유를 만끽하며 즐기는 최고의 여름 계곡 산행지, 그곳이 바로 응봉산임을 이들 알탕족이 웅변한다. 설악, 지리의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응봉산이 가진 이 자유로움의 값어치를 결코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수질 오염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지만, 매년 장마철이나 태풍 때 엄청난 부피와 속도로 흐르며 골 안의 잡다한 것들을 쓸어내리는 용소골이나 재량밭골 물줄기를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사람이 풍덩 몸을 던져 더위를 식히는 정도의 행위는 골짜기의 깊은 오염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자기보다 하류 쪽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위해 계류에 함부로 무엇을 버리거나 골짜기 내에서 대소변을 보는 행위는 최대한 삼가는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용소골, 재량밭골, 구수골 등 모두 명계곡
응봉산에는 용소골, 문지골, 버릿골, 재량밭골, 온정골, 구수골 등 여러 가닥의 뛰어난 계곡이 형성돼 있다. 주변 사방에서 경치 좋은 골짜기만 골라 이 산중에 끌어 모아둔 것이나 아닐까 싶게 하나같이 멋진 계곡들이다. 그중에도 대표적인 것이 정상에서 남동~북서향으로 흐르는 용소골이다. 해발 1,000m도 넘지 않는 산이 어떻게 이렇듯 웅장한 계곡을 품어안을 수 있었을까 싶게 용소골은 길고 깊으며, 여러 다양한 형상의 암반과 그 위를 흐르는 계류로 시종일관 감탄스럽다.
용소골의 대표적 지류인 문지골은 용소골에 못지않은 경관을 지녔으되 조금은 규모가 작은 계곡이다. 용소골의 1, 2, 3용소만큼 크지는 않으나 나름 멋진 물줄기를 자랑하는 폭포들이 굽이마다 나타난다. 용소골보다 한결 산행객이 적다는 것이 등산꾼들에겐 매력 포인트이다.
산 북동쪽의 재량밭골은 맹렬한 폭포로 드러나는 용소골의 기운이 크게 순화된 듯한 이미지의 와폭들과 좀더 만만해 뵈는 깊이의 소들이 연이어지는, 용소골의 누이쯤 되는 계곡이다. 용소골은 초심자로 하여금 간혹 살떨리는 긴장을 맛보게 하는 아슬아슬한 지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이곳 재량밭골은 누구든 받아들일 듯한 너그러운 품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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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용소골 폭포 옆 밧줄구간. 초심자는 간혹 오금이 저려 지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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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정상 남동쪽 구수골은 골짜기의 가닥들이 아홉이나 된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얻은, 수량 풍부한 계곡이다. 구수라는 이름의 유래는 그러하되 어감은 순박함, 유순함과 통하는 듯하다. 과연, 골짜기는 제 이름이 주는 어감을 의식하며 진화하기라도 한듯 순한 경사와 물줄기로 저 위까지 이어진다. 암반 계곡이되 깎아지른 폭포는 드물고, 두루뭉술하여 물줄기가 얇게 저며지듯 하며 술술 넘어가는 부드러운 굴곡면이 주류를 이룬다. 이렇듯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되 뛰어난 명계곡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것이 응봉산의 계곡들이다.
응봉산의 얼굴 마담격 능선길인 옛재능선은 아름드리 노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한편 완경사여서 사계절 매력만점인 능선이다. 이 능선과 골짜기들을 잘 엮으면 전에 없이 알찬 여름휴가 산행이 될 것이다.
다만 이 산은 여름 장마가 끝난 직후 찾아가는 것이 좋다. 바위산이어서 장마가 끝나고 좀 오랜 시일이 지난 뒤에는 계곡의 수량이 크게 줄어서 별 재미없는 산행이 된다.
산행 여정은 어떻게 엮든 하산 끄트머리에선 계곡을 만나게끔 짜는 것이 좋겠다. 옛재능선으로 하산하면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기가 쉽지 않다. 한편 온정골은 계곡 풍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수량도 적은 편이며 온천장을 찾은 이들이 종종 평상복 차림으로 올라오곤 하여 하산로로는 별로다.
가장 권할 만한 산행길 엮기는 옛재능선→정상→용소골이다. 송림 능선을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용소골로 하산하는 이 코스는 여름 응봉산 최고의 코스 엮기라 할 수 있다. 다만 코스가 길므로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구수골로 올라 용소골로 하산하기는 응봉산에서 가장 긴 산행길이 될 것이다. 이 경우는 새벽 일찍 출발이 되도록 서둘러야 한다. 아니면 용소골 상류의 작은당귀골 입구 작은 막영 터(모래사장)에서 막영하는 1박2일 산행을 구상해 본다. 이외에도 작은당귀골 입구에서 20분쯤 내려가서 골이 왼쪽으로 휘어나가기 시작하는 지점 오른쪽의 모래톱도 야영하기에 괜찮다.
옛재능선→정상→재량밭골은 정상 북쪽 능선상의 골짜기로 내려서는 지점을 주의해 잘 찾아야 한다. 커다란 소나무 고사목이 공룡뼈처럼 앙상한 가지를 뻗은 채 드러누운 곳(세계측지계 좌표 N37 05 03.4 E129 13 39.2)을 일단 찾아간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계곡에 내려서기까지는 엄청난 급비탈이므로 주의를 거듭해야 한다.
문지골을 즐기려면 용인등봉으로 올랐다가 하산로로 택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외, 어느 계곡이든 수량이 괜찮은 구간만 물탕을 튀기며 왕복하는 것도 좋다. 다만 1박2일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이후 휴일의 용소골은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이어 산행하는 곳이 되었다. 제1, 2용소 위의 로프 구간에서 공포에 휩싸인 초심자로 인해 뜻밖의 정체가 일어나기도 한다.
응봉산 계곡, 특히 용소골 막영 산행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폭우 시 급증하는 계류급류다. 막영하는 날 저녁부터 폭우가 쏟아진다면 정상 쪽으로 급히 탈출해 옛재능선으로 하산한다.
응봉산은 코스를 어떻게 엮든 자칫 길을 잘못 들 경우 매우 위험해진다. 계곡 양쪽이 대부분이 벼랑이거나 아니면 엄청난 급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전에 정보를 잘 파악해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