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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지하 동굴… 5000만병의 강렬함이 숨쉬고 있었다

호젓한오솔길 2012. 10. 11. 23:11

24㎞ 지하 동굴… 5000만병의 강렬함이 숨쉬고 있었다

 

 

FRANCE '뵈브 클리코' 샴페인하우스에 가다

"끼이익."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자 서늘한 한기가 몰려왔다. 계단을 따라 지하 20여m를 내려가자 눈에 펼치진 것은 피라미드 모양의 공간이 군데군데 이어진 석회동굴. 동굴 깊숙한 곳에서 "윙~"하며 지게차가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층층이 쌓인 샴페인 병들이 주황색 조명 아래에서 매끄러운 윤곽을 드러냈다.

"이 석회 동굴은 자연적으로 항상 섭씨 10~12도, 습도 80%를 유지합니다. 중세시대에 마을 사람들이 건축에 사용할 석회를 구하기 위해 팠던 동굴인데 지금은 샴페인을 숙성하고 침전물을 제거하는 보관소로 사용하고 있죠. 24㎞ 길이의 동굴 속에는 출시를 앞둔 샴페인 약 5000만병이 숨 쉬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랭스(Reims) 지방 지하에 똬리를 튼 이 동굴은 바로 샴페인 하우스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의 지하 셀러(보관소)다.

 



뵈브 클리코의 지하 와인 셀러(보관소). 45도 각도로 구멍 낸 나무틀에 유리병을 거꾸로 세우고 병을 돌려주는 방법으로 침전물을 제거하는 모습 / 뵈브 클리코 제공

 

◇지하 동굴 속 샴페인

우리가 흔히 부르는 '샴페인(Champagne)'은 사실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에만 허락된 이름이다. 프랑스의 6대 와인 산지 중 하나인 샹파뉴에서도 랭스는 주 생산지다. 랭스는 수많은 샴페인 제조 업체들이 집결해 있는데, 2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샴페인 명가(名家) 뵈브 클리코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뵈브 클리코는 1772년 필립 클리코가 설립한 세계 제2위 샴페인 하우스다. 세계적 샴페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1805년 '마담 클리코'라 불리는 그의 며느리 바브 니콜 퐁사르당이 사업을 물려받으면서부터다. '뵈브'는 프랑스어로 미망인이라는 뜻.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읜 그가 시댁의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샴페인 하우스 이름이 '클리코'에서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으로 바뀌었다.

지하 동굴 셀러에는 샴페인 하우스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동굴 곳곳에는 이곳에서 오래 근무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근무 기간 등이 적힌 팻말이 붙어 있고, 샴페인을 담은 병들 위에는 뽀얀 먼지가 내려앉아 있다. 프랑스에서는 샴페인 숙성 기간을 법적으로 1년 반~3년으로 정해 놓는데, 뵈브 클리코 샴페인은 기본 2년에 종류에 따라 8년까지 숙성한다고 한다.

9월 수확철을 맞아 인부들이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 뵈브 클리코 제공
20여m 지하에 있는 24㎞ 길이의 지하 와인 동굴 / 뵈브 클리코 제공
동굴 안 비스듬히 세워 둔 나무 틀에 병들이 비스듬히 꽂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샴페인을 발효시킬 때 생기는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고전적인 방식 '르뮤아주(remuage)'다. 45도 각도로 구멍 낸 나무틀(리들링 테이블)에 유리병을 거꾸로 세우고 일정 시간마다 병을 돌려주며 침전물을 아래로 모이도록 하는 기법이다. 안내를 맡은 카타르지나 카누는 "샴페인 기포를 많이 잃지 않으면서 침전물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마담 클리코가 최초 개발한 것"이라며 "현재 여러 샴페인 업체들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지하 샴페인 셀러의 한쪽 벽에는 적십자 마크와 함께 'ABRI(피난처라는 뜻)'라는 글이 쓰여 있다. 1·2차 세계대전 기간 마을 주민과 직원들이 은신처로 사용했던 흔적이다. 전쟁 당시 값비싼 샴페인을 숨기기 위해 벽돌로 공간 입구를 막아버린 흔적도 있고, 발틱해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200년 전 샴페인도 전시돼 있다. 뵈브 클리코가 빈티지 샴페인(수확한 포도 상태가 좋은 해에 나온 포도로만 만드는 샴페인)을 만든 연도가 새겨진 52개의 계단을 올라 지하 동굴을 빠져나왔다.

◇900여 가지 와인 맛보고 블렌딩

이번엔 승용차를 타고 포도밭으로 향했다. 작은 지방 도시와 감자 등의 농작물 재배지를 30분 정도 달리니 초록색 포도밭이 펼쳐졌다. 포도밭 곳곳에 노란색 닻 모양의 마크가 그려진 비석들이 보였다. 노란색은 클리코 하우스를 상징하는 색으로, 뵈브 클리코 포도밭이라는 뜻이다.

뵈브 클리코는 랭스에 390㏊(390만㎡)의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 랭스에는 최고 등급 포도밭 '그랑 크뤼' 토지가 17개가 있는데 이 중 12개, 다음 등급인 '프리미에 크뤼' 44개 중 19개가 뵈브 클리코 포도밭이다.

1m 간격으로 끝없이 늘어선 포도나무에는 적포도인 피노누아·피노 뫼니에, 백포도인 샤도네이가 알알이 맺혀 있다. 9월 중순쯤 거둬들여 압착해 액을 짜낸다. 이렇게 짜낸 3종류의 액을 숙성·발효시키고 블렌딩하면 샴페인이 된다. 클리코 하우스의 맛을 총괄하는 셀러 마스터 도미니크 드마르빌은 "뵈브 클리코는 3가지 품종의 포도 중 피노누아를 50% 이상 블렌딩해 강렬함과 파워를 표현한다. 이렇게 만든 샴페인 뵈브 클리코 '옐로 레이블'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우리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했다.

매년 수확하는 포도 상태는 랭스 지역 70여 곳의 포도밭마다 다르다. 일조량과 토양, 지형, 기후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뵈브 클리코 와인 메이커팀은 그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500여 가지 베이스 와인과 400여 가지 리저브 와인(1~23년 전 수확된 포도로 만든 와인) 등 총 900여 가지 와인을 맛보고, 적절한 것을 선택해 블렌딩한다. 가장 대표적인 샴페인 '옐로 레이블'은 과일 향이 강하고, 강렬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특징이다.

랭스의 넓은 포도밭 언덕 위에 포도원 책임자의 집이었던 '마누아 드 베르지'가 있다. 지금은 뵈브 클리코의 영빈관 격으로 쓰이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초록색 포도밭 풍경은 흰 구름과 어우러져 그림 같다. 셀러 마스터 도미니크에게 좋은 샴페인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샴페인은 즐거움, 행복, 축복의 자리를 위한 와인입니다. 뵈브 클리코이건 아니건 마시면 행복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샴페인이죠."

[[여행수첩]]

일반인도 예약 후 투어 가능

일반인들도 관람료를 내고 뵈브 클리코 방문자센터에서 지하 셀러 투어와 샴페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다. 테이스팅하는 샴페인 종류와 개수에 따라 3가지 프로그램이 있으며, 1인당 25~90유로. 사전 예약이나 상담을 통해 포도 산지 견학을 포함하는 맞춤 프로그램도 가능하다. 모든 프로그램은 프랑스어나 영어로 진행되며, 사전 예약이 필수다. 일반 프로그램은 이메일
visitcenter@veuve-clicquot.fr, 맞춤 프로그램은 receptionvcp@veuve-cliquot.fr로 예약하면 된다.

샴페인이 생산되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 랭스는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140㎞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 고속열차 TGV로는 45분 정도 걸린다. 랭스에는 관광객들이 쉽게 샴페인을 접할 수 있도록 뵈브 클리코가 운영하는 방문자센터가 있다. 포도 산지는 방문자 센터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