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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찬 물소리, 바스락 낙엽소리와 걷는 골짜기… 지루할 틈 없네

호젓한오솔길 2012. 11. 22. 22:28

 

우렁찬 물소리, 바스락 낙엽소리와 걷는 골짜기… 지루할 틈 없네

  • 울진=한필석 월간 山 기자

 

 

울진 백암산

산 밖은 초겨울로 접어들었는데 울진 백암산의 깊은 골짜기는 아직 늦가을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은 백암산 신선골 호박소 부근의 계곡. / 정정현 영상미디어 기자

 

경북 울진 백암산(白巖山·1004m)은 크다. 동해를 가까이 두고 태백 천의봉(매봉산·1303m)에서 부산 앞바다까지 뻗어내리는 370㎞ 낙동정맥에서 살짝 벗어나 있음에도 주변 산봉을 호령하듯 당차게 솟구쳐 있다.

어머니 치맛자락처럼 품을 넓게 펼친 백암산은 치유 능력도 갖추었다. 장대처럼 솟구친 정상은 동해 바다는 물론 멀리 태백산과 청송 일원의 산봉도 눈에 들어와 꽉 막힌 가슴을 열어 준다. 기운찬 산릉에 빼곡하게 우거진 솔숲은 몸속 깊이 맑은 정기를 심어준다. 여기에 산 동쪽 기슭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는 또 다른 치유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백암산이 이 정도 산인 줄 알았다. 그러다 신선골에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매력에 반했다. 짙은 숲 속 깊은 골은 기암절벽을 띠 두른 채 비경을 감추고 있었다. 마음소(매미소), 닭벼슬바위, 신선탕 등 이름도 예쁜 명소들을 지나치며 미소 짓고, 이무기라도 당장 솟아나올 듯한 용소를 바라보며 은밀함에 놀랐다. 참새가 날아오르다 힘들어 눈물 흘렸다는 참새눈물나기를 지나면서 골짜기는 험난해지려니 걱정했지만 들어설수록 오히려 호젓해졌다.

초겨울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골짜기는 가을 풍광을 간직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산길은 낙엽에 덮여가고 있는데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단풍잎은 파르르 떨면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신선골은 더욱 아름다웠다.

산허리를 가로지른 산길 따라 닭벼슬곡, 가마실곡, 용지곡 등 지계곡을 지나 계곡 암반으로 내려서는 순간 섬뜩해졌다. 골짜기 안에 협곡이 숨어 있었다. 깊이 파인 바위 협곡은 뱀이 훑고 지나간 듯 구불구불하고 그 아래로는 짙푸른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뱀골'이란 이름에 맞다 싶었다.

 

 

물소리에 바람소리가 섞이면서 골짜기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듯 요동쳤다. 그러다 계곡으로 내려서자 하얀 물거품을 날리며 떨어진 물줄기는 어느 순간 옥빛으로 변하고, 옥빛 물 담은 널찍한 소는 물 따라 바람 따라 날려 온 낙엽과 솔잎을 흔들어대며 묘한 그림을 그려놓고 있다.

골짜기는 가도가도 끝이 없건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낙엽 두터운 산길은 한 발짝 뗄 때마다 슥슥 소리 내며 마음을 잡아당기고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산세가 깊어지면서 산객의 마음을 빼앗아갔다.

백암산과 낙동정맥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머리에 닿자 곧추선 바위 협곡 아래 기다란 담이 마음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지만, 까치둥지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백암산 동릉은 또 어떤 초겨울 풍광으로 산객을 감싸줄까 하는 기대에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 지능선에 거침없이 올라선다.

낙엽 밟히는 소리에 취해 있노라면 아름드리 소나무숲을 파고든 찬바람이 얼굴을 후려치고, 멋들어진 소나무 자태에 감탄하면서 한 발 한 발 오르리 동릉 갈림목이요, 내친김에 걸음을 몰아치자 1004m 높이 백암산 정상이다. 순간 남으로 뻗고 북서쪽으로 뻗은 낙동정맥이 납작 엎드리며 반겨주고, 눈이 번쩍 트이면서 가슴이 활짝 펼쳐졌다.

 

여행 수첩

 

■ 백암산은 겨울로 접어들면서 인기를 끄는 온천 산행지다. 백암산 동쪽 기슭에 있는 백암온천은 알칼리성 천연라돈 온천수로 섭씨 48~53도 수온을 유지해 온천욕에 최적이고,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많이 함유해 만성 피부염, 중풍, 동맥경화, 부인병 등에 효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불예방기간에도 입산통제를 하지 않는 백암산 산행은 백암온천단지를 기점으로 하는 원점회귀행 코스가 적합하다. 온천단지에서 영양 방향으로 4㎞ 떨어진 신선골은 골짜기 길이만 해도 7.5㎞가 넘는다. 그렇지만 출발지점 해발고도가 160m, 골짜기 산길이 끝나는 지점이 380m로 220m밖에 차이 나지 않아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3시간 소요). 이후 지능선을 타고 백암온천 단지로 내려서는 데 1시간30분, 백암폭포 길로 하산하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산행 시간을 줄이려면 태백온천모텔 뒤편 산불감시초소에서 백암폭포길(정상까지 3시간)이나 능선길(약 2시간30분)을 타고 정상에 올라선 다음 다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첫 번째 갈림목에서 지능선을 타고 신선골로 내려서면 된다. 5~6시간 소요. 백암온천 기점 동릉~정상~백암폭포~백암온천 산행은 4~5시간 걸린다.

 

 

■ 동해안을 따를 경우 7번 국도 상의 평해에서 접근(약 12㎞). 중부권은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에서 영주→36번 국도 태백·울진 방향→법전1교 갈림목→31번 국도→영양터널→문암삼거리→88번 국도→구수령→백암온천 방향으로 접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