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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세암

호젓한오솔길 2012. 12. 2. 23:24

 * 마등령에서 오세암으로 내려가는 길도

    자연석으로 만들어 놓은 돌계단과,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 오세암 경내 풍경.

 

 

오세암 [五歲庵]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암자.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백담사에서 약 6㎞ 떨어진 곳에 있으며, 영시암을 지나 마등령으로 가는 길에 있다. 647년(신라 선덕여왕 13) 자장(:590~658)이 이 곳에 선실()을 지은 뒤, 관세음보살언제나 함께 있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관음암()이라고 하였다.

1445년(조선 세조 1)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이 곳에서 출가하였고, 1548년(명종 3) 보우()가 이 곳에서 기도하다가 문정왕후에 의해 선종판사로 발탁되었다. 1643년(인조 21) 설정()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856년(고종 2) 남호가
해인사의 《고려 대장경》 2질을 인출하여 1부는 오대산 상원사에, 1부는 이 곳에 봉안하였다. 1888년(고종 25)에는 백하가 2층 법당을 짓고 응진전을 건립하여 16나한상과 각종 탱화를 조성, 봉안하는 등 크게 중건하였다. 그뒤 6·25 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으나 지금도 수선 도량과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당 뒤로는 관음봉·동자봉이, 오른쪽으로는 공룡릉이 올려다보이며, 인근에
내설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만경대가 있다. 주변에 백담사·용대자연휴양림·십이선녀탕계곡·옥녀탕계곡·장수대·대승폭포 등 관광지가 많다.

 

 * 오세암 경내 풍경 산님들 쉬는 모습 여유롭다.

 

 * 오세암 경내 풍경 한가롭게 보인다.

 

 * 오세암 경내에 세 사람의 스님이 바삐 움직이는데, 이 곳 오세암이 초행이고 백담사로 간다고 한다.

 

 * 관음봉 동자봉 아래 오세암 전경이 초록 속에 아름답다.

 

 * 그 동안 꼭 한 번은 오고 싶었던 오세암을 뒤로 하고 백담사 쪽으로 향한다.

 

오세암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나오는 길에 아직 이른 시간이라 서인지 올라오는 산님들이 줄을 잇는다. 아직 점심 때는 이르지만 아침을 김밥 한 줄로 때우고 먼 길을 걸어 온 터라 배가 출출해 온다. 할 수 없이 영시암이 가까워지는 길 가 바위에 홀로 앉아 도시락을 펼치니 오가는 사람들이 처다 보기도 하여, 배는 고픈데 사늘한 도시락 밥이 목구멍에 걸려서 잘 넘어가지가 않는다. 대충 몇 젓가락 뜨다가 집어 넣고 찰떡 한 조각 꺼내 씹어 삼키며 허기를 채우고 배낭을 챙겨 매고 일어선다.

 

2012.05.18(19) 호젓한오솔길

(산행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