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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 <395> 문경 공덕산

호젓한오솔길 2013. 5. 24. 22:33

 

[산&산] <395> 문경 공덕산

기세 좋은 암릉길 오르니 저 멀리 자연이 선물한 피라미드가…

박태우 기자

 

 

▲ 안장바위에서 묘봉 가는 길 중간의 암릉지대에서 바라본 공덕산 남서쪽 조망. 피라미드 여러 개를 잇달아 세워 놓은 듯한 운달산의 기세가 제법 매섭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햇볕조차 들지 않는 심산유곡에서 낙엽 스치는 발걸음 소리를 길벗 삼아 산을 오른다거나, 더 오를 곳 없는 산 정상에서 발아래 세속을 굽어보며 흘러가는 한 줌 구름에 헛헛한 마음을 실어 보낸 경험이 있는 산꾼들이라면 한 번쯤 읊조려봤음직한 시 구절이다. 이 선시(禪詩)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무학 대사의 스승인 나옹 화상의 작품이다. 절친했던 친구가 죽자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이냐'며 마을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모두 '모른다'고 하자 괴로워하며 경북 문경의 공덕산 묘적암으로 요연 선사를 찾아가서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공덕산(功德山·913m)은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와 동로면 노은리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지형도에는 공덕산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사불산(四佛山)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일명 '사불암'이라 불리는 천강석조사불상(天降石造四佛像)에서 사불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에 하늘에서 한 길이나 되는, 반듯한 사면체 바위가 붉은 비단에 싸여 이곳에 내려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왕이 이곳까지 찾아와 예배하고, 이 바위 옆에 대승사를 지었다고 하니 그 유래가 아득하다.

나옹화상 출가·전설 깃든 곳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기암괴석
분재 같은 노송 사이 전망 일품


대승사와 여러 암자들을 품고 있는 공덕산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전나무와 갖가지 활엽수들이 청명한 기운을 자아내는 산사길도 고즈넉한 운치가 일품이지만, 정상에 이르기 전 암릉지대에서 마주하는 기암괴석의 향연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등산로는 대승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일반적이지만 '산&산'은 접근성을 고려해 대승사 초입의 공덕산
주차장을 기점으로 삼았다. 구체적인 등로는 '공덕산 주차장~윤필암~안장바위~묘봉~전망바위~쌍연봉~대승봉~옛고개~공덕산 정상~방광재~대승사~공덕산 주차장'이다. 총길이 8.5㎞로 휴식시간을 포함해 5시간 30분가량 걸린다.

들머리는 공덕산 주차장이다. 안내판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은 대승사 가는 길인데, 왼쪽 윤필암 방면 임도를 탄다. 비좁은 아스팔트길이지만, 좌우로 우거진 소나무 숲이 정취를 살려준다. 5분가량 걸으면 음각으로 묘적암·윤필암 방향을 바위에 새겨놓은 갈림길에 이른다. 100m가량 더 걸어 윤필암으로 간다. 비구니들만 사는 절이라 방금 싸리비질을 끝낸 듯한 기분이 나는, 고즈넉하고 정갈한 청정도량이다. 이 절 한쪽 절벽에는 불상이 따로 없는 법당인 사불전이 있다. 사불전 한 면의
대형 유리문이 사불암 쪽을 향해 나 있어 이를 모신다고 한다. 사불암은 1천40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에 깎여 마모가 심하고 윤곽만 희미하게 남아 있어 다소 초라해 보인다. 사불암에 이르려면 윤필암 밑으로 난 오른쪽 가파른 산길을 40분가량 올라야 한다.

윤필암 바로 앞 삼거리에서 맨 흙이 살아 있는 왼쪽 산길을 따라 묘적암 방면으로 향한다. 5분쯤 걷다보면 오른편 바위 위로 묘적암 입구라고 쓰인 표지목이 보인다. 맞은편 전신주 옆 샛길을 타고 능선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임산특용작물 집단재배지로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한다는 영농조합법인 명의의 경고판이 턱하니 가로막고 있다. 낭패감이 번졌다. 대승사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영농법인에 문의했다. 등산객들이 공들여 키운 도라지나 버섯을 캐 가거나 훼손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 경고판을 세웠다고 한다.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순수 산꾼들의 발길까지 막지는 않겠다며, 특용작물 보호를 위해
펜스가 둘러쳐진 곳은 들어가지 말라는 당부를 보탰다.

오르막 산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오른편 전나무 숲 사이로 묘적암이 내려다보인다. 나옹 선사가 출가한 곳이다. 흙담에 소박한
대문까지 갖춰 암자라기보다 시골 고택에 가깝다. 구태여 산사의 정적을 깨 스님의 참선정진을 방해할까 두려워 가던 길을 이었다.

어른 한 명이 족히 앉을 정도로 가운데가 움푹 패인 안장바위. 나옹화상의 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전설이 얽혀 있다.
능선 갈림길을 지나 10분쯤 걸으면 거대한 바위들이 막아선다. 바위 틈새를 헤집고 타 넘거나 로프에 의지해 깎아지른 암릉을 오르내려야 한다. 부부바위, 낙타바위 등 갖가지 형상을 한 기암괴석 무리가 눈길을 잡는다. 산행로 가운데 어른 한 사람이 앉을 정도로 중간이 움푹 팬 스쿠터 모양의 바위가 대문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안장바위다. 나옹 화상의 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안장바위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다.

나옹은 날마다 하릴없이 안장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오뉴월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고된 농사일을 하던 산 아래 마을 농부들이 이 바위에서 놀고만 지내는 나옹이 보기 싫어 안장바위를 깨뜨려버렸다. 그러자 그로부터 수년간 가뭄과 흉년이 계속됐다. 농부들은 나옹이 범상치 않은 것을 알고 안장바위를 다시 이어놓고서야 가뭄과 흉년이 끝났다고 한다.

오솔길이 이어지나 싶더니 다시 로프지대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가파른 암벽을 기다시피 매달려 올라간다. 다리를 헛디디거나 발이 미끄러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장쾌하게 펼쳐지는 일망무제의 조망에 눈이 시원하다. 이따금씩 휘몰아치는 칼바람 소리에 귓가가 서늘해진다. 이래저래 짜릿하고 상쾌하다.

아름드리 노송과 바위들이 어우러진 암릉길을 25분가량 오르면 묘봉(810m)에 이른다. 이곳에서도 제법 괜찮은 조망이 펼쳐지지만, 15분쯤 더 가면 분재 같은 노송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전망바위가 있다. 너럭바위 위에 서면 남서쪽 협곡 아래로 윤필암과 묘적암이 내려다보이고, 배나무산과 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로 하늘금을 이룬 운달산은 피라미드 3개를 나란히 세워 놓은 것처럼 뾰족하게 섰다. 동쪽 윗무랑 마을 분지 건너로 보이는 천주봉 풍광도 일품이다.


사면에 바짝 붙어서 능선을 타고 12분쯤 오르면 쌍연봉(828m)이다. 얕은 내리막을 15분쯤 걸어 대승봉(820m)으로 간다. 낙엽길을 밟으며 능선을 따라 다시 10여 분가량 내려가면 벤치가 놓여 있는 옛고개다. 사거리에서 남쪽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대승사 가는 길이다. 동쪽으로 난 나무 계단을 타고 20분여 오르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2분쯤 더 걸으면 공덕산 정상(913m)이다. 삼각점이 있는 정상은 참나무 군락으로 뒤덮여 천주봉 조망이 띄엄띄엄하다.

하산길은 방광재를 거쳐 대승사 방면으로 내려간다. 일산(日傘)처럼 햇볕을 가리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낙엽길을 밟으며 삼거리를 거쳐 능선을 내려가면 윗무랑 마을에서 대승사 들어가는 길과 합류하는 데 이곳이 방광재다. 50분 소요. 방광재에서 대승사에 이르는 700여m 구간은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아름드리 전나무와 느티나무, 참나무 사이로 유연하게 산자락을 타고 굽어지는 길이 운치 있다.

1천400년의 역사 속에서 중창과 소실을 반복해 온 대승사는 일제 강점기 시절 성철, 청담, 서암 등의 고승들이
주석하며 선풍을 일으킨 곳으로 수행도량의 기풍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현재도 수많은 납자스님들이 용맹정진 중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고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건물이 마뜩잖은 느낌도 준다. 참선, 도자기, 약초 재배, 수제차 체험 등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불이문과 일주문, 사방댐을 지나 30분쯤 더 가면 종착점인 공덕산 주차장이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답사대장 010-3740-9323.

글·
사진=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문경 공덕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문경 공덕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