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솔길 자료실 ♥/여행,산행지

[산&산] <397> 경주 단석산

호젓한오솔길 2013. 5. 24. 22:30

 

[산&산] <397> 경주 단석산

칼로 바위 가른 영웅의 결기 '살아있는 전설' 되어 산객 맞는다

박태우 기자

 

 

 

▲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 김유신 장군이 신검을 얻어 단칼에 벴다는 설화가 전해져 오는 단석산 정상의 단석.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걷는다'는 삼국지연의에는 유비와 손권이 동오에서 바위를 앞에 놓고 차례로 칼로 내려치는 대목이 나온다. 유비와 손권은 '대업을 이루게 해 달라'는 저마다의 속마음을 숨기고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로 단칼에 바위를 두 동강 낸다. 여포나 관우처럼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용장이 아니었던 이들이 바위를 쪼갰다는 걸 쉬이 납득하기는 어렵지만, 난세 호웅들의 야심과 결의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전국시대 검성(劍聖)으로 명망이 높았던 야규 무네요시(柳生宗嚴)가 검법의 극의를 터득한 뒤 칼로 큰 돌을 잘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나라라고 비슷한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바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신라의 김유신이다. 삼국
사기에는 김유신이 화랑 시절이던 17세 때 혼자 중악 석굴에 들어가 수행한 이야기가 나온다.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께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나흘째 되는 날 난승(難勝)이라는 도인이 나타나 비법서와 신검(神劍)을 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려고 신검을 구해 월생산(月生山)의 석굴 속에 숨어 들어가 검술을 수련했다. 칼로 큰 돌들을 베어서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그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아래에 절을 짓고
이름을 단석사(斷石寺)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신라 김유신 화랑 시절 설화 얽힌 곳
잘린 돌·천주암·기암괴석
산재
군락 이룬 진달래·철쭉 만개 기다려
암벽에 새긴 신선사 마애불상군 감탄

경북 경주시 건천읍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단석산(斷石山·827.2m)이 바로 이 월생산이다. 김유신에 얽힌 유명한 설화 중 술을 먹고 잠 든 사이에 말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생 천관녀의 집으로 가자 말을 단칼에 참(斬)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무예가 출중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또 지금도 단석산에는 김유신이 베었다는 단석(斷石)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앞의 중국이나 일본 단석 설화에 비하면 훨씬 구체적이고 신빙성을 더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주 '산&산'은 김유신의 단석 설화를 좇아 단석산에 산재해 있는 기암괴석들을 둘러보는 코스를 기획했다. 단석산은 산 정상 능선에 진달래 군락지가 있어 봄철이면 상춘객들이 몰려들고, 신라 천년의 미소를 머금은 유서 깊은 마애불상군을 둘러보는 답사 산행지(본보 2008년 4월 24일 게재 산&산 156회)로도 이름난 곳이다. 그때와는 코스를 달리했다.

구체적 경로는 방내마을 버스정류장~조망바위~너럭바위~천주암~진달래 군락지~단석산 정상~쌍바위~신선사(마애불상군)~오덕선원~절골 버스정류장 순이다. 총 산행 거리 10.5㎞에 걷는 시간은 5시간, 휴식을 포함하면 6시간쯤 걸린다.

산행은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방내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한다. 다리를 건넌 뒤 왼쪽으로 꺾어 20여m 가다 '덕동산업' 왼쪽으로 난 길로 올라간다. 고속철 고가 철로의 교각 아래를 지난 뒤 포장 임도를 따라 농장을 거쳐 4분쯤 올라가면 본격적인 산행로가 열린다. 무성한 산죽림 사이를 헤치고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관목과 잔가지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단조로운 산길이 지겨워지려 하던 차에 생강
나무 몇 그루가 노랗게 꽃망울을 틔워 아직 가시지 않은 겨울의 스산함을 지우고 있다.

20분쯤 오르면 멋들어진 거송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산객을 맞는다.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은 됨직한 신령스러운 소나무다. 새파랗게 이끼가 낀 바위 무더기와 물을 머금은 낙엽을 밟으며 호젓한 산길을 오른다. 심산유곡에 들어선 것처럼 사위가 적막에 잠기고, 이따금씩 들리는 산새 소리가 청명하다.

25분쯤 오르면 첫 번째 갈림길이다. 지형도상으로 이곳에서 왼편(동남쪽)으로 수리바위, 눈바위, 불선바위가 솟아 있다. 산&산 팀은 1시간 동안 사면을 굴러가면서 이들 바위에 오르는 등로를 찾았지만 워낙 묵은 길이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100m쯤 가면 3단으로 깎아질러 내달리는 이들 바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망 바위가 있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서 10분을 오르면 재 삼거리다. 오른쪽은 장군봉(457m)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이 등로다. 등고선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을 12분쯤 걸으면 방내지 가는 갈림길과 마주친다. 오른쪽이 정상 방면이다. 

천주암에 올려져 있는 단석은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절단면이 칼로 벤 것처럼 깔끔해 보다 현실적이다.
쭈뼛 선 머리처럼 가지를 삐쭉하게 세운 굴참나무들을 지나면 등로 왼편으로 제법 너른 너럭바위가 있다. 북으로 동쪽 건천읍과 그 너머로 구미산, 동쪽으로 경주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다시 20분을 오르면 천주암(송곳바위)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으로 꺾어 100m쯤 가면 깎아지른 절벽에 석탑처럼 솟아 있는 천주암과 마주한다. 바위 중앙이 옴폭 들어간 곳에는 김유신 장군이 6년간 수도 끝에 신검을 얻어 절단했다는 설명과 함께 가로 60㎝, 두께 15㎝가량의 단석이 올려져 있다. 실제 칼로 벤 것처럼 절단면이 깔끔하다.

천주암을 지나 완만한 산길을 20분쯤 오르면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가 펼쳐진다. 탱글탱글 꽃봉오리를 여문 진달래가 완연한 봄소식을 기다리며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진달래 만개 시기인 매년 4월 말 즈음 이곳에서는 진달래 산행축제가 열린다.

15분여를 더 올라 긴급 대피소가 있는 곳이 단석산 정상이다. 억새평원인 산정에는 삼각점을 비롯해 크고 작은 바위와 돌무지가 어지럽다. 정상석 뒤편으로 중심부가 쩍 갈라진 높이 1m쯤 되는 단석이 김유신이 잘랐다는 바위로 익히 알려져 있다. 천주암의 단석과 비교하면, 칼로 내려쳤다기보다 정으로 쪼갰다고 보는 편이 적합할 것 같다. 오히려 앞쪽의 중앙이 갈라진 거북등 같은 바위가 단석에 가까워 보인다. 명색이 국립공원 지구이고,
역사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곳인데 탐방객들을 위한 변변한 안내문 하나 없다.

어느 게 단석인지 궁금해 경주시에 문의해봤다. 통상적으로는 많은 이들이 정상에 있는 돌을 단석으로 여기고 있는데, 역사적으로 고증되지 않은 전설이다 보니 칼로 자르듯 단정할 수가 없단다. 최근에는 특정 바위가 아닌 여러 곳에 산재한 비슷한 바위들을 뭉뚱그려 단석이라고 한단다.

단석 논란은 이 정도로 해두고, 삼국 중 최약체로 평가받던 신라를 통일왕국의 초석 위에 올려놓은 공의 기개와 결기를 느껴봤다. 경주 시가지를 병풍처럼 두른 송화산과 선도산, 벽도산, 그 뒤로 남산의 금오봉, 조향산, 토함산 삼태봉 등 신라의 삼산오악이 파도처럼 물결친다.

하산은 신선사 방면으로 잡는다. 굴참나무 군락을 지나 15분쯤 가면 길 양편으로
어깨를 겯고 있는 쌍바위에 이르는데, 왼편 바위가 조망하기에 좋다.

갈림길을 지나 4분쯤 가면 그 유명한 신선사 마애불상군이다. 산 중턱에 'ㄷ'자 모양으로 솟은 거대한 암벽 위에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 등 10구의 불상을 돋을새김으로
봉안하고, 자연 석실로 삼았다. 7세기 초에 조성된 이곳은 인공으로 지붕을 덮어 만든, 토굴법당으로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강화유리로 된 지붕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신선사를 지나면 다소 지루한 포장임도가 이어진다. 신선사
주차장, 산행 안내도, 오덕선원, 단석산장, 우중골을 차례로 지나 25분쯤 더 걸으면 20번 국도와 합류하는 곳이 종착점인 절골 버스정류장이다. 산행 맛을 더 만끽하고 싶다면 '산&산 156회'에 소개됐던 것처럼 신선사~북쪽 능선길~505봉~안부~절골 버스정류장 코스를 권한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답사대장 010-3740-9323.

글·
사진=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경주 단석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경주 단석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