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솔길 자료실 ♥/여행,산행지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와 천왕봉의 절경이 한눈에

호젓한오솔길 2013. 6. 28. 20:42

 

 

武陵이 어디냐 물으신다면… 옌가 하노라

  • 산청=최홍렬 기자

     

  •  

    초여름 지리산은 밤꽃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산기슭부터 중턱까지 어른 손바닥 모양의 허여스름한 꽃을 피우는 밤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 밤나무 너머로 동네 뒷산이 보이고, 또 그 너머로는 아름다운 계곡이 주위의 산세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경관이 가장 좋은 곳 중 하나로 꼽히는 산청 '덕산'(德山)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시천면·삼장면이지만,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덕산이라고 불렀다. 59번 국도를 따라가면 동서(東西)로 달리는 지리산의 웅장한 산세와 천왕봉에서 뻗어나온 봉우리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여행에 동행한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는 "산들이 다투지 않고 어울리는 모습이 가히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했다.

     

    61세의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선생이 후학을 기르기 위해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자리 잡은 곳도 천왕봉이 바라다보이는 덕산이었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남명 '두류산 양단수')

     

    서천서원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천서원
    남사 예담촌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사 예담촌

     

    산천재에는 남명 선생이 심은 450여년 된 남명매가 있다. 남사마을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斷俗寺址)의 정당매(政堂梅) 등과 함께 '산청 3매(梅)'라 불린다. 매년 봄이 되면 수백 년 된 나무에서 피는 매화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남명 기념관에서는 선생이 스스로 정신을 맑게 하고 행동을 반듯하게 하기 위해 항상 차고 다녔던 방울인 성성자(惺惺子)를 구경할 수 있다. 남명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덕천서원(德川書院) 마루에 오른 조 박사는 "서원 주위에 인물들이 많이 난다는 문필봉 기운이 깃들인 봉우리들이 보인다"고 했다. "서원 앞에 내다보이는 산도 마루에 앉았을 때 딱 눈높이 정도로 적당하다. 너무 큰 산이 앞을 가로막으면 기(氣)가 죽어 못쓴다"고 했다.

     

    남사 예담촌은 담쟁이넝쿨과 어우러진 높은 돌담, 그리고 정자와 골목길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전통 한옥마을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흙으로 쌓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로 보이는 한옥 정경이 일품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白衣從軍) 할 때 이 마을에서 묵어갔다는 것을 알리는 기념관도 있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에 자리한 대원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 중 하나다. 올여름에도 수십명의 비구니 선객(禪客)들이 모여 정진하고 있다. 절이라기보다 양반집 후원같이 정갈하고 그윽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대원사계곡은 지리산 등산로 들머리로, 맑은 계곡과 기암괴석이 많은 것으로 이름이 나있다. 특히 대원사 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에 이르는 2㎞ 구간은 우리나라 최고의 탁족처(濯足處) 중 하나로 꼽힌다. 계곡 주변을 뒤덮은 아름드리 금강송 숲은 여름철 등산객들의 땀을 씻어주는 청량제다.

     

    조용헌 박사는 "옥계청송(玉溪淸松)의 명승지"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풍류는 노송(老松)과 청류(淸流), 만월(滿月) 같은 것으로 이루어지죠. 이 계곡은 바위틈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자란 노송과 청류가 도드라지네요. 저 맑은 물에 근심 걱정을 다 흘려보내는 것이 풍류의 맛입니다. 우리 마음속 화(火)는 물(水)로 씻어내야죠." 장맛비가 다시 오려는지 어슴푸레 바라보이던 지리산 봉우리들이 구름으로 덮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