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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김소월

호젓한오솔길 2007. 9. 5. 18:17

 * 성법령에서 바라본 고향 상옥 풍경입니다.

 

 

유난히도 무덥던 8월도 어느덧 지나가고...가을 장마비가 멈출줄을 모르고 두서없이 내리는 9월도 벌써 다섯날이 지나고 있네요..날씨가 무덥던 비가오던 계절은 소리없이 흘러서 이제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나 봅니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모두들 고향을 찾아 조상님들의 산소에 벌초도 하고 명절 준비를 하느라.. 평소에는 무심하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한번쯤은 느껴보는 시기가 된 듯 하여...

 

김소월님의 명시 "고향" 에다가..그간 고향길에 드나들며 담아온 고향 상옥의 풍경 사진들과 ..작년 추석에 가족 친지들과 조상님들 산소에 석묘 가면서 담아온 한가위의 추억들을 역어 다시 올려 보면서.. 다가 올 금년 추석을 미리 그려봅니다....

 

 

 * 통점재에서 바라본 먹방골 풍경입니다..(겨울)

 

 * 통점재에서 바라본 먹방골 풍경입니다..(초여름)

 

 * 통점재에서 바라본 상옥리 풍경입니다.

 

  


고향(故鄕) / 김소월(金素月)


     (1)

짐승은 모르나니 고향이나마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 하던 것

잠들면 어느 덧 고향입니다.


조상님 뼈가서 묻힌 곳이라

송아지 동무들과 놀던 곳이라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지마는

아아 꿈에서는 항상 고향입니다.


     (2)

봄이면 곳곳이 山(산)새소리

진달래 花草(화초) 滿發(만발)하고

가을이면 골짜구니 물드는 丹楓(단풍)

흐르는 샘물 위에 떠나린다.


바라보면 하늘과 바닷물과

차 차 차 마주붙어 가는 곳에

고기잡이 배 돛 그림자

어기엇차 디엇차 소리 들리는듯.


     (3)

떠도는 몸이거든

故鄕(고향)이 탓이 되어

부모님 記憶(기억) 동생들 생각

꿈에라도 항상 그곳서 뵈옵니다.


고향이 마음속에 있습니까

마음속에 고향도 있습니다.

제 넋이 고향에 있습니까

고향에도 제 넋이 있습니다.


     (4)

물결에 떠나려간 浮萍(부평)줄기

자리잡을 새도 없네

제 자리로 돌아갈 날 있으랴마는!

괴로운 바다 이 세상의 사람인지라 돌아가리.


고향을 잊었노라 하는 사람들

나를 버린 고향이라 하는 사람들

죽어서만은 天涯一方(천애일방) 헤매지 말고

넋이라도 있거들랑 고향으로 네 가거라.

 

 

 * 상옥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통점재길..

 

 * 내연산 향로봉에 걸린 안개..

 

 

 

김소월 [, 1902.8.6~1934.12.24]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외 많은 명시를 남겼다.
본명 정식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평북 구성
주요작품 《진달래꽃》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금잔디》 《산유화》
김소월 시비 / 남산 소월길에 있는 김소월 시비.

본명 정식(). 1902년 8월 6일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하였다. 오산학교()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도쿄상대[]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진재()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당시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 김억()의 지도와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의 봄》 《야()의 우적()》 《오과()의 읍()》 《그리워》 등을 《창조()》지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먼 후일()》 《죽으면》 《허트러진 모래 동으로》 등을 《
학생계()》 제1호(1920.7)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배재고보에 편입한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바람의 봄》 《봄밤》 등을 《개벽()》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1922년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그 후에도 계속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등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에는 《영대()》지 3호에 인간과 자연을 같은 차원으로 보는 동양적인 사상이 깃들인 영원한 명시 《산유화()》를 비롯하여 《밭고랑》 《생()과 사()》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에서 간행되었다.

그후
구성군() 남시()에서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하였으나 운영에 실패하였으며, 그 후 실의의 나날을 술로 달래는 생활을 하였다.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불과 5, 6년 남짓한 짧은 문단생활 동안 그는 154 편의 시와 시론() 《시혼()》을 남겼다.

평론가
조연현()은 자신의 저서에서 “그 왕성한 창작적 의욕과 그 작품의 전통적 가치를 고려해 볼 때, 1920년대에 있어서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하였다. 7·5조의 정형률을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계속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 상옥 2리 에서 샘재로 가는길..

 

 * 상옥에서 샘재..내연산수목원(포항) 가는길..

 

 * 향로봉 위에 일출..

 

 

 * 하옥리 마두밭 앞 거랑..

 

 * 아버님 산소 엽에서 바라본 먹방골 마을..

 

 * 고향집 뒤에서..

 

 

 

 

 * 시골집 앞 논두렁...

 

 

 

 

 * 작년 추석 석묘길에서...담은 사과...

 

 * 꿀물이 졸졸..달콤한 냄새를 풍깁니다...ㅋ

 

 * 6대조와 8대조 산소입니다..

 

 

 

 * 증조부,고조부,5대조 내외분과..그 형제 내외분들을 한자리에 모셨습니다..

 

 * 덕분에 매년 추석날..가까운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석묘도 하고..

 

 

 * 그간의 안부도 물으면서.. 조상을 기리는 하루를 보냅니다..

 

 * 이제 음복 시간이네요..

 

 

  * 서로의 인사와 모르는 가족 관계를 소개도 하고...

 

 * 내년을 기약하면서 각자 집으로 헤어집니다..

 

 * 어느덧 동산에는 한가위 보름달이 고개를 내밀고요..

 

 * 날은 점점 어두워 지고... 시골의 가을밤은 깊어만 가네요..

 

 * 밝은 한가위 달은 휘영청 온누리에 자비롭게 비춥니다.... 더도말고 덜도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2007.09.05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