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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금 묻는 남산제일봉

호젓한오솔길 2007. 12. 29. 15:11

 

 

최근 미국이나 독일, 영국 등 서양인들이 풍수지리에 '심취'하고 있다. 미국에선 풍수지리 이론에 따라 건축된 집이 다른 집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고, 풍수 강좌를 듣는 이들이 급증하는 등 풍수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음택(陰宅)이나 양택(陽宅)에 주안점을 두는 것에서 벗어나 실내·외 인테리어나 조경, 납골당, 부동산 등으로 풍수지리 이론의 적용범위가 크게 넓어지는 추세다. 미신 또는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던 풍수지리 이론이 시나브로 '과학'으로 인정받으며,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고 있는 것이다.

해인사 남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
경남 합천 가야면 남산제일봉(1,010m). 홍류동계곡을 사이에 두고 가야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다. 해인사를 기준으로 남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지칭하는 것이 그대로 봉우리 또는 산의 이름이 됐다. 일부 등산객들은 남산제일봉을 매화산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매화산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1.1km를 더 내려간 곳에 있는 산을 일컫는 게 정확하다.

남산제일봉은 능선을 따라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고, 그 바위들로 연결된 능선이 아기자기해 등산코스로 인기가 높다. 남산제일봉에 오를 때마다 휴일이 아닌 날에도 대구나 서울, 전주 등에서 온 등산객을 만날 정도로 전국적으로 이름이 나 있다.

남산제일봉 산행은 청량사와 해인사관광호텔을 기점으로 이뤄진다. 농산정 기점, 고운암 기점 코스도 있지만 비지정등산로인 데다 경관이 청량사나 해인사관광호텔 기점 코스에 비해 크게 낫지 않아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실정. 또 청량사 기점 등산로는 지난 4월 해인사에서 자연보호 등을 이유로 철사줄로 막아 놓아 현재로서는 해인사관광호텔 기점 등산로가 유일한 셈. 이 등산로도 6월부터 폐쇄될 예정이었으나 등산객들의 반발로 그나마 개방되고 있는 상태다. 청량사와 해인사관광호텔을 연결하는 산행을 즐겨온 등산객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빼어난 암릉미!
해인사관광호텔 주차장을 지나면서 남산제일봉을 향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널찍한 등산로를 따라 가는 편안한 길이다. '남산제일봉 2km, 치인집단시설지구 0.5km'라는 안내판을 지나면 계곡으로 내려선다. 돼지골이라 불리는 계곡이다. 계곡을 따라 그리 가파르지 않은 등산로를 걸어 개울을 두 차례 건너선 다음 능선 위로 올라선다. 치인집단지구에서 약 2km 올라온 곳이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500m 정도를 더 올라야 남산제일봉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턴 등산로가 가팔라지고, 수없이 나타나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산행을 하면서 인공적인 시설물인 계단을 오르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고 힘드는 일이지만 헬스장에 있는 '스탭퍼(계단오르는 것과 같은 운동기구)'를 밟는 운동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오를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드디어 남산제일봉에 오른다. 뾰족한 모양의 바위들로 이뤄진 남산제일봉은 칠불봉에 버금가는 또 다른 석화성(石火星·바위로 된 불꽃)의 절정이다. 수많은 바위들이 등을 맞댄 채 솟구친 봉우리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꽃을 떠올리게 한다.
남산제일봉에서 바라보는 주위 풍광도 그 모습만큼이나 빼어나다. 북쪽으로는 나지막한 오봉산과 그리고 해인사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더 들면 가야산 정상인 칠불봉과 우두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동북쪽 청량사로 내려서는 등산로를 따라 펼쳐진 암릉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화기를 막는 소금 단지.
매년 단오에 법보종찰 해인사 스님들은 남산제일봉에 소금 단지를 묻고 있다. 100년이나 이어진 중요한 행사다. 스님들이 남산제일봉에 소금 단지를 묻는 이유는 해인사의 화재를 막기 위해서다. 해인사 창건 이후 사찰 내력을 기록한 '해인사지(海印寺誌)'를 보면 소금 단지를 묻게 된 연유를 알 수 있다.

1695년부터 1871년까지 176년 동안 해인사에는 7차례의 큰 불이 나는 등 화재가 잇따랐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해인사 남쪽에 있는 남산제일봉이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정면대립한 해인사로 그 화기(火氣)가 날아들어 불이 자주 났다는 것. 봉우리 형상이 불꽃처럼 생긴 것도 화재를 불러 일으키는 산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1817년 여섯 번째 화재 이후 재건할 때엔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좌향(坐向·앉은 방향)을 서쪽으로 약간 돌리기도 했다. 또 남산제일봉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바닷물로 불기운을 잡는다는 뜻에서 소금 단지를 묻었고, 그 이후 해인사에는 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오에 소금을 묻는 것도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에 소금을 묻어 화기를 누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런 연유로 제수천 전 성주문화원 원장은 "남산제일봉을 불을 묻는다는 뜻의 매화산(埋火山)으로 부르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출처 :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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