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 [玉山書院]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서원으로서 16세기의 유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배향한다. 1967년 3월 8일 사적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다. 창건된 해는 1572년(선조 5)이다.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李齊閔)은 안강 고을의 선비들과 더불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독락당(獨樂堂) 아래에 사당을 세웠으며,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1574년(선조 7)에 '옥산'이라는 편액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양식은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사당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보여 준다.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무변루(無邊樓)라는 누각이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펼쳐진다. 정면에는 구인당(求仁堂)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의 동·서재실이 있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體仁廟)라는 사당이 나타나는데, 사당의 주변에는 장판각(藏板閣)·전사청(典祀廳)·신도비(神道碑)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두 곳에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 경내에 있는 어서각(御書閣) 소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적의 사저에 있는 독락당에 있는 소장본이다. 보관된 책 중에서 1513년에 간행된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은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보물 제52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 《삼국사기》 《해동명적》 《이언적수필고본일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16세기 영남사림파의 선구가 되는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독락당에서 계곡을 따라 5분여를 걸어 내려오면 계곡의 반대편 얕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시골마을 골짜기에 위치한 서원의 규모에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한눈에 짐작 할 수 있다. 옥산서원은 1574년 조선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이 이언적 선생을 추모하고 그의 학문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서원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즐겁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논어에서 따온 말로 조선중기의 학자인 노수신이 명명하였다. 서원의 중심이되는 건물은 구인당인데 옥산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처음 편액의 글씨는 선조의 명을 받은 이산해의 글씨로 였지만 1839년 구인당이 화재로 소실되자 헌종의 명을 받은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이 걸리게 되었다. 구인당(求仁堂)은 이언적의 저서인 구인록(求仁錄)에서 가져온 것이다. 구인당 뒤로는 사당인 체인묘(體仁廟)가 있고, 학문의 실천을 강조한 민구재(敏求齊), 학문하는 자세의 이치를 뜻하는 암수재(闇修齊)와 웅장한 규모의 누정인 무변루(無邊樓)가 있다.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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