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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法住寺]

호젓한오솔길 2010. 11. 26. 21:30

 

 

 

 

속리산 법주사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에 있는 절. 이 절의 개조()로 알려진 의신()이 일찍이 불법을 구하러 천축(:인도)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경전()을 얻어 귀국하여 나귀에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553년(신라 진흥왕 14) 이 절을 창건하였는데, 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법주사의 정신적 지주가 된 미륵신앙()이나 법상종()의 유식사상()은, 혜공왕 때 이 절의 중흥()에 크게 기여한 진표()와 그의 제자 영심()에 의하여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덕왕 때 중수()하였는데, 지금 남아 있는 석물()은 모두 이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하여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다.

경내에는 유명한
법주사팔상전(殿:국보 55)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국보 5), 석련지(:국보 64), 사천왕석등(:보물 15), 마애여래의상(:보물 216) 등의 국보 ·보물을 비롯하여 법주사세존사리탑(:시도유형문화재 제16호), 법주사사천왕문(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순조대왕태실(시도유형문화재 제11호)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이 밖에 대웅보전 ·조사각() ·
일주문() ·홍전문() ·대종각() ·능인전(殿) ·석조() ·수정암() ·중사자암() 및 여러 대사의 비, 암지() 등 많은 유물이 있다. 또 조선 후기까지 35칸에 2층으로 된 이 사찰의 중심 법당인 용화보전(殿)이 있었고, 이 전각 안에 금색의 육장상()이 있었다. 그러나 1872년 당백전() 주조 명목으로 대원군에 의해 육장상은 압수되고 용화보전도 헐리게 되었다. 1989년 사월 초파일에 옛 용화보전 자리에는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이 점안되어 법주사의 새로운 상징물이 되었다. 법주사는 진표 ·영심 이후 도생() ·자정() ·신미() ·수미() ·일선() ·각성() ·희언() 등 고승들이 그 법통을 이어왔다.

 

 

법주사 사천왕문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의 법주사()에 있는 불사()의 산문(). 1977년 12월 6일 충북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금강문법주사 팔상전(국보 55) 사이에 있는 불사의 산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중앙 1칸은 통로이고 양쪽 2칸에는 높이 5.7m, 둘레 1.8m의 천왕상을 2구씩 4구를 만들어 세웠다. 국내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는 사천왕상으로 법주사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동방지국천왕()은 수미산() 동쪽 승신주()를 지키며 손에 비파를 들고 있으며, 서방광목천왕(西)은 수미산 서쪽 우화주()를 지키며 손에 용과 여의보주를 들고 있다. 남방증장천왕()은 수미산 남쪽 담부주()를 지키며 손에 칼을 잡고 있으며, 북방다문천왕()은 수미산 북쪽 구노주를 지키며 손에 보탑을 들고 있다.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 의신()이 창건하고, 776년(혜공왕 12) 진표()가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 각성()이 중건하였다.

 

 

 

법주사 팔상전 [殿]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 경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목조 건물.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으로, 높이는 22.7 m이다. 법주사는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창건되었고, 팔상전은 정유재란 당시 불에 타 없어진 후 선조 38년(1605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인조 4년(1626년)에 완성된 것으로, 1968년의 해체 복원 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벽의 사방에 각 면 2개씩 모두 8개의 변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정사각형의 돌로 만든 기단부 위에 목조로 5층 탑신부를 쌓고 가장 위쪽에는 철제로 만든 상륜부를 두고 있다. 기단은 돌로 낮게 2단을 쌓았고, 그 위에 갑석을 얹었으며 4면에는 돌계단이 있다. 탑신은 1층과 2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 5칸, 3층과 4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 2칸씩으로 되어 있다.

 

석탑의 옥개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와 지붕을 씌우고 있는데, 지붕의 처마를 받치고 있는 공포가 다른 목조 건물에 비해 특이하다. 먼저 1층은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을, 2층에서 4층까지는 공포가 기둥 위에 놓이기는 했지만 다포 양식을 하고 있다. 5층은 기둥 사이에 공포를 놓은 완전한 다포 양식을 하고 있어 층마다 공포 양식이 다르다. 지붕은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이며, 지붕 위쪽으로는 석조 노반과 철제 오륜의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

건물 내부는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가운데에 찰주()의 심초석()이 있어 이 위에 심주()를 세워 상륜부까지 통하게 하였다. 1층의 변주()와 우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는 2층의 변주를 세웠는데, 이러한 가구법은 목조탑의 전형으로 생각된다. 1968년 해체 복원할 때 심초석 상면에서 은제 사리호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의 탑 가운데 가장 높은 건축물일 뿐 아니라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2010. 호젓한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