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寶鏡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일조(日照)의 스승인 당(唐)나라 때 서역(西域)의 승려 마등(摩謄)과 축법란(竺法蘭) 두 승려가 중국에서 가지고 온 팔면경(八面鏡)을 일조에게 내어주며, 조선 동해 끝 남산 밑에 있는 용담호(龍潭湖) 깊은 곳에 이 거울을 묻고 그곳에 사찰을 세우면 불법이 만대에 번성한다고 하자, 이에 따라 723년(성덕왕 22)에 세운 절이다.
그 후 고려 고종(高宗) 때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건하고, 1677년(숙종 3)에 도인(道仁) ·천순(天淳) ·도의(道義) 등 세 승려가 삼창하였다. 대웅전 ·적광전(寂光殿) ·보제루(普濟樓) ·천왕문(天王門)을 비롯한 14채의 당우(堂宇)가 있는데, 1973∼38년 사이에 크게 보수하였다. 경내에는 부도(보물 430)와 원진국사비(보물 252)가 있고, 그 밖에 5층석탑 ·부도군 등의 유물이 있다.
보경사 대웅전 [寶鏡寺大雄殿]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 보경사의 대웅전.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31호로 지정되었다. 보경사는 동해안 지역에서는 규모가 매우 큰 절로, 602년(신라 진평왕 25) 중국의 진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智明法師)에 의하여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지명법사가 중국에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8면보경(八面寶鏡)을 동해에 가까운 내연산(內延山) 아래 용담호 옆에 깊이 파묻고 그 위에 세운 절이라고 해서 보경사(寶鏡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특히 보경사는 경북 3경(慶北三景)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풍치 속에 자리하고 있어 빼어난 주위 경관을 자랑하는 고찰이다.
보경사는 창건된 이후 신라 제35대 경덕왕 4년에 철민화상에 의하여 한 차례의 중창이 있었다. 그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제23대 왕인 고종 원년 때 보경사의 주지가 된 대선사 승형, 곧 원진국사(圓眞國師)에 의하여 다시 중창되었다. 원진국사는 당우가 퇴락한 것을 보고 승방 4동과 정문 1칸 등을 중창하고, 종·경·법고 등의 도구도 완비하였다.
대웅전이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677년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근세에 와서는 1932년에 중수되었다. 원진국사 이래로 계속하여 퇴락과 중창·중수를 거듭해오다 최근의 보경사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77년 벽암화상에 의해서였다.
보경사 적광전 [寶鏡寺寂光殿]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보경사는 동해안 지역에서는 규모가 큰 절로, 602년(신라 진평왕 25) 중국의 진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智明法師)에 의하여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된 이후 신라 제35대 경덕왕 4년에 철민화상에 의하여 한 차례의 중창이 있었다. 그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제23대 왕인 고종 원년 때 보경사의 주지가 된 대선사 승형, 곧 원진국사(圓眞國師)에 의하여 다시 중창되었다. 원진국사는 당우가 퇴락한 것을 보고 승방 4동과 정문 1칸 등을 중창하고, 종·경·법고 등의 도구도 완비하였다.
지금 있는 적광전(寂光殿)은 1677년(숙종 3)에 중건한 것이다. 그 후에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근세에는 1932년에 중수되였다. 1977년 보경사의 주지로 부임한 벽암화상은 원진국사 이래로 퇴락과 중창·중수를 거듭해오던 보경사를 개수하고, 퇴락한 적광전(寂光殿) 삼존불상의 금의(金衣)를 일신하는 개금불사를 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와가로 되어 있다. 다포집임에도 불구하고 연등천장인 점 등 몇 가지 특색이 있고, 치목수법이 건립 연대와 부합된다. 기단(基壇)은 외벌대로 아주 낮게 조성하였는데, 기단의 바닥면에는 전을 깔고 원좌(圓座)가 있는 사각형의 주초를 놓았다. 주초 위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는데, 귀기둥의 안쏠림과 귀솟음이 뚜렷하다.
하방 밑에는 쇠시리한 화강암으로 고막이벽을 대신 막았다. 전면 어칸의 하방 양쪽에는 동물 형상을 한 둔테목을 설치하였다. 공포는 내외 2출목(出目)이며 2개의 앙설(仰舌)은 자른 부위가 사절(斜截)된 형태이고 기둥머리 상부에는 봉두(鳳頭)로 장식하였다. 내포(內包)에는 교두형의 첨차단이 있으며, 다포집임에도 불구하고 우물반자는 설치하지 않고 불단 상부에는 종량 사이에 붉은 천으로 막아 두었다.
측면 상부에는 보 방향으로 앙설을 걸고, 이 위에 당초각의 부재를 중앙과 양 귀에서 얹었다. 이것은 반자가 없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허실감을 메우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나중에 개수된 것이다. 문짝은 정면 각 칸마다 3분합의 교살문과 뒷면 중앙에 외여닫이를 두었으나 역시 후에 새로 단 것이다.
보경사 오층석탑 [寶鏡寺五層石塔]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보경사는 602년(신라 진평왕 25)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중국에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8면보경(八面寶鏡)을 동해에 가까운 내연산(內延山) 아래 용담호 옆에 깊이 파묻고 그 위에 세운 절이라고 해서 보경사(寶鏡寺)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사찰이다
이 석탑은 1023년(고려 현종 14)에 건립된 5층석탑으로 일명 금당탑(金堂塔)이라고도 한다. 《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 의하면 1023년 3월에 도인(道人)과 각인(覺仁), 문원(文遠)이, 절이 있는데 탑이 없을 수 없다 하여 서로 의논하고 발원하여 시주를 얻어서 세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층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5층석탑으로, 기단과 옥신(屋身)에는 목조 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귀기둥이 있다. 옥신과 옥개(屋蓋)는 각 1매석(枚石)으로 만들어져 있다. 처마끝은 수평을 이루고, 처마선(線)은 끝에서 약간 들려 경쾌한 곡선을 이룬다. 옥개석의 상부에는 2단의 탑신받침이 있지만,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 있다.
기단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 1.5m 이고, 탑의 높이는 5m로, 탑신의 체감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高峻)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보경사 원진국사비 [寶鏡寺圓眞國師碑]
경상북도 포항시 송라면(松羅面) 보경사에 있는 고려시대 원진국사(1187∼1221)의 비.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83m, 너비 1.04m, 두께 0.17m이다. 송라면 내연산(內延山)에 있는 보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723년(성덕왕 22)에 일조대사(日照大師)가 세운 사찰이다. 원진국사는 고려시대의 승려로 속성은 신씨(申氏), 호는 승형(承逈), 자는 영회(永廻)이며, 원진은 시호이다. 13세 때인 1200년(신종 3)에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로 출가해 동순(洞純)에게서 배웠으며, 1201년 금산사(金山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보경사에 있는 이 비석은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碑身)은 사암이다. 귀부와 대석(臺石)은 한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고 비좌(碑座)는 폭이 배면과 거의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엽(單葉) 44연판(蓮瓣)을 새겼으며 그 위에 비신을 얹었다.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고 거북 등에는 육각형의 무늬 안에 ‘왕(王)’자가 질서있게 새겨져 있다. 비석의 위쪽 양끝을 귀접이한 신석(身石) 둘레에는 당초문(唐草文)을 새겨 장식하였다. 비석 둘레의 조식은 고려시대 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며, 이수(螭首)가 없는 귀접이 형식도 비교적 하대(下代)에 속하는 보광사대보광선사비(普光寺大普光禪師碑:보물 107)와 조선시대에 속하는 억정사 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보물 16) 등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비명은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글씨는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보경사의 탱자나무 [寶鏡寺─]
1974년 12월 10일 경상북도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내연산(內延山) 기슭에 자리한 보경사 경내의 천왕문(天王門) 오른쪽 보경사 종무소 마당에 있다. 본래 2그루의 탱자나무가 있었으나 그 중 한 그루는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 부러져 현재는 밑동만 남아있다. 커다란 원형의 수관(樹冠)을 이루는 탱자나무는 수세(樹勢)가 왕성하고, 밑동의 지름은 0.8m, 나무 높이는 6m 정도이다. 탱자나무로서 이렇게 크고 수령이 오래 된 것은 매우 희귀하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 보경사 경내에 있는 탱자나무.
보경사는 602년(신라 진평왕 25) 중국의 진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智明法師)에 의하여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가장 큰 절로, 특히 경북 3경(慶北三景)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풍치 속에 자리하여, 어느 명승 고찰에도 손색이 없는 빼어난 주위 경관을 자랑하는 고찰이다.
2010. 호젓한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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